정치 실종 여의도…“YS라면 어땠을까?”

입력 2019.06.2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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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제 한잠도 자지 못하고…여러 가지 지금 정신적으로 피로합니다. (중략) 이 암흑적인 살인정치를 감행하는 이 정권은 필연코 멀지 않아서 반드시 쓰러질 것이다, 쓰러지는 방법도 비참하게 쓰러질 것이라는 것을 예언해 두는 것입니다." (1969년 6월 21일 김영삼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 국회 본회의 신상발언 중)

야당 원내총무는 국회에서 부르짖었습니다. 대통령을 가리켜 "박정희 씨는 독재자요"라고 정면 비판하기까지 했습니다. 3선 개헌을 앞두고 서슬이 퍼런 시절, 야당의 원내 수장은 왜 목소리를 드높였을까요?

50년 전 오늘, 1969년 6월 20일 김영삼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는 밤 10시쯤 서울 상도동 자택으로 귀가하던 중 신원미상의 괴한 3명으로부터 습격을 받았습니다. 작업복 차림의 청년 3명 가운데 2명이 승용차를 가로막았고, 나머지 한 명이 YS가 앉은 쪽 차 문을 열려고 시도했습니다.

1969년 ‘초산 테러’ 당시 파손된 김영삼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의 승용차 (사진 출처: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1969년 ‘초산 테러’ 당시 파손된 김영삼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의 승용차 (사진 출처: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

다행히 차 문은 잠겨 있었고, 괴한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습니다. YS는 수류탄으로 여기고 운전기사에게 전속력으로 달리라고 소리쳤습니다. 괴한은 손에 든 물건을 차량을 향해 던졌고 승용차는 페인트칠이 다 벗겨질 정도로 파손됐습니다. 당시 괴한이 던진 유리병에는 위험물질인 강초산(질산)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때문에 훗날 '초산 테러 사건'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사건 다음날 국회 본회의 신상발언에 나선 YS는 사건의 배후에 정권과 중앙정보부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1주일 전 YS는 "이 나라는 독재국가요, 특히 독재국가로 끌고 나가고 있는 원부(怨府)가 바로 중앙정보부이며 그 책임자인 김형욱은 민족의 반역자다"라고 발언했는데, 여기에 앙심을 품고 테러를 실행했다는 겁니다.

초산 테러 사건 이후 YS는 1971년 대선에 나설 신민당 후보로 나서겠다고 선언하고, '40대 기수론'을 주장하며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초산 테러 사건은 그래서 YS 정치사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바로가기] 김영삼-상도동 50주년 기념 영상

상도동서 모인 여의도 정치인들…"YS, 국회서 싸우자는 게 평생 지론"

초산 테러 사건 50주년을 맞이해 오늘(20일) 상도동에선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가 YS의 민주화 투쟁을 기념하기 위해 '김영삼-상도동 5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한 겁니다. 행사엔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 한국당 김무성 전 대표 등 YS 문하생들과 김영삼 정부 주요 인사 2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또 문희상 국회의장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권노갑 민주평화당 고문,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 등도 참석해 YS의 민주주의 정신을 기렸습니다.

20일 서울 동작구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열린 ‘김영삼-상도동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발언하고 있다.20일 서울 동작구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열린 ‘김영삼-상도동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오늘 축사에선 실종된 여의도 정치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은 모든 나랏일은 국회에서 결정돼야 하고, 싸우더라도 국회 안에서 싸워야 한다는 평생의 지론을 갖고 계셨다"며 "지금 국회가 이 깊은 뜻을 되새기고 무거운 사명감을 느끼고 각성해야 한다"고 현 국회 상황을 에둘러 비판했습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도 "YS는 대통령이 돼서 인물 고를 때, 정치적 동지가 아닌 실제로 훌륭한 사람들을 고르려고 노력했다"며 "지금 우리 정치가 배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YS가 지금 계시면 정치가 한 걸음 더 발전했을 것"이라며 "대통령제에서 벗어나 다당제와 연합정치의 길로 가셨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YS 문하생의 막내였던 바른미래당 정병국 의원도 "김영삼 전 대통령은 평생 의회민주주의자로서 국회를 중히 여기셨는데 국회 중진 의원으로서 그 역할을 다해내지 못하고 있다"며 "참으로 면목없게 생각하고 선배들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김무성 "YS는 의회주의자, 지금 계셨으면 원내투쟁"

또 다른 YS 문하생인 한국당 김무성 의원도 기념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복잡하게 꼬인 현 정국 상황에 대해 쓴소리를 했습니다.

김 의원은 국회 정상화와 관련한 질문에 "나경원 원내대표가 협상하고 있는 와중에 김 빼는 말을 할 수는 없다"면서도 "YS는 강력한 투쟁은 투쟁이고, 국회는 또 의회주의자로서 국회 활동해야 한다는 분이었으니 이럴 때 계셨으면 원내투쟁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현 정국에 대해 "지금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김 의원은 민주당을 향해 "여당은 야당이랑 싸우면서 이기려 들면 안 되고 야당의 체면을 살려줘야 한다"며 자세 전환을 촉구하는 한편, 자당인 한국당의 원내 전략을 두고는 "야당도 적당하게 해야지, 판을 깨려 하면 공멸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20일 서울 동작구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열린 ‘김영삼-상도동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와 만나 인사하고 있다.20일 서울 동작구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열린 ‘김영삼-상도동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와 만나 인사하고 있다.

김영삼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자유를 위해 싸우렵니다"

기념행사를 마친 뒤 참석자들은 초산 테러 현장을 찾아 YS의 손녀 김인영 작가가 디자인한 동판 제막식을 지켜봤습니다. 동판에는 김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얼굴이 여러 사람과 손을 잡은 그림이 담겼는데, 힘을 모아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김봉조 민주동지회 회장은 이 자리에서 "YS의 강한 민주화 의지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 정도가 됐다"며 "그 정신을 지킬 수 있도록 초산 테러 50주년을 꼭 명심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김영삼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가 국회 본회의에서 신상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김영삼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가 국회 본회의에서 신상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

50년 전 국회로 다시 돌아가 볼까요? 당시 야당 원내총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초산 테러 바로 다음날 국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 김영삼이가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바른길, 정의에 입각한 일, 진리를 위한 길, 자유를 위한 일이면 싸우렵니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이 땅은 우리만이 살다가 죽을 땅이 아니요, 우리의 사랑하는 후손들에게 물려줄 땅이기 때문에, 나 자신이 그러한 희생을 당할지라도 우리 땅은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와 꽃피는 평화, 자유스러운 평화를 가져와야 하겠습니다." (1969년 6월 21일 김영삼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 국회 본회의 신상발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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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실종 여의도…“YS라면 어땠을까?”
    • 입력 2019-06-20 16:57:25
    취재K
"저는 어제 한잠도 자지 못하고…여러 가지 지금 정신적으로 피로합니다. (중략) 이 암흑적인 살인정치를 감행하는 이 정권은 필연코 멀지 않아서 반드시 쓰러질 것이다, 쓰러지는 방법도 비참하게 쓰러질 것이라는 것을 예언해 두는 것입니다." (1969년 6월 21일 김영삼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 국회 본회의 신상발언 중)

야당 원내총무는 국회에서 부르짖었습니다. 대통령을 가리켜 "박정희 씨는 독재자요"라고 정면 비판하기까지 했습니다. 3선 개헌을 앞두고 서슬이 퍼런 시절, 야당의 원내 수장은 왜 목소리를 드높였을까요?

50년 전 오늘, 1969년 6월 20일 김영삼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는 밤 10시쯤 서울 상도동 자택으로 귀가하던 중 신원미상의 괴한 3명으로부터 습격을 받았습니다. 작업복 차림의 청년 3명 가운데 2명이 승용차를 가로막았고, 나머지 한 명이 YS가 앉은 쪽 차 문을 열려고 시도했습니다.

1969년 ‘초산 테러’ 당시 파손된 김영삼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의 승용차 (사진 출처: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
다행히 차 문은 잠겨 있었고, 괴한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습니다. YS는 수류탄으로 여기고 운전기사에게 전속력으로 달리라고 소리쳤습니다. 괴한은 손에 든 물건을 차량을 향해 던졌고 승용차는 페인트칠이 다 벗겨질 정도로 파손됐습니다. 당시 괴한이 던진 유리병에는 위험물질인 강초산(질산)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때문에 훗날 '초산 테러 사건'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사건 다음날 국회 본회의 신상발언에 나선 YS는 사건의 배후에 정권과 중앙정보부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1주일 전 YS는 "이 나라는 독재국가요, 특히 독재국가로 끌고 나가고 있는 원부(怨府)가 바로 중앙정보부이며 그 책임자인 김형욱은 민족의 반역자다"라고 발언했는데, 여기에 앙심을 품고 테러를 실행했다는 겁니다.

초산 테러 사건 이후 YS는 1971년 대선에 나설 신민당 후보로 나서겠다고 선언하고, '40대 기수론'을 주장하며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초산 테러 사건은 그래서 YS 정치사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바로가기] 김영삼-상도동 50주년 기념 영상

상도동서 모인 여의도 정치인들…"YS, 국회서 싸우자는 게 평생 지론"

초산 테러 사건 50주년을 맞이해 오늘(20일) 상도동에선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가 YS의 민주화 투쟁을 기념하기 위해 '김영삼-상도동 5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한 겁니다. 행사엔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 한국당 김무성 전 대표 등 YS 문하생들과 김영삼 정부 주요 인사 2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또 문희상 국회의장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권노갑 민주평화당 고문,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 등도 참석해 YS의 민주주의 정신을 기렸습니다.

20일 서울 동작구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열린 ‘김영삼-상도동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오늘 축사에선 실종된 여의도 정치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은 모든 나랏일은 국회에서 결정돼야 하고, 싸우더라도 국회 안에서 싸워야 한다는 평생의 지론을 갖고 계셨다"며 "지금 국회가 이 깊은 뜻을 되새기고 무거운 사명감을 느끼고 각성해야 한다"고 현 국회 상황을 에둘러 비판했습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도 "YS는 대통령이 돼서 인물 고를 때, 정치적 동지가 아닌 실제로 훌륭한 사람들을 고르려고 노력했다"며 "지금 우리 정치가 배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YS가 지금 계시면 정치가 한 걸음 더 발전했을 것"이라며 "대통령제에서 벗어나 다당제와 연합정치의 길로 가셨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YS 문하생의 막내였던 바른미래당 정병국 의원도 "김영삼 전 대통령은 평생 의회민주주의자로서 국회를 중히 여기셨는데 국회 중진 의원으로서 그 역할을 다해내지 못하고 있다"며 "참으로 면목없게 생각하고 선배들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김무성 "YS는 의회주의자, 지금 계셨으면 원내투쟁"

또 다른 YS 문하생인 한국당 김무성 의원도 기념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복잡하게 꼬인 현 정국 상황에 대해 쓴소리를 했습니다.

김 의원은 국회 정상화와 관련한 질문에 "나경원 원내대표가 협상하고 있는 와중에 김 빼는 말을 할 수는 없다"면서도 "YS는 강력한 투쟁은 투쟁이고, 국회는 또 의회주의자로서 국회 활동해야 한다는 분이었으니 이럴 때 계셨으면 원내투쟁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현 정국에 대해 "지금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김 의원은 민주당을 향해 "여당은 야당이랑 싸우면서 이기려 들면 안 되고 야당의 체면을 살려줘야 한다"며 자세 전환을 촉구하는 한편, 자당인 한국당의 원내 전략을 두고는 "야당도 적당하게 해야지, 판을 깨려 하면 공멸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20일 서울 동작구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열린 ‘김영삼-상도동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와 만나 인사하고 있다.
김영삼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자유를 위해 싸우렵니다"

기념행사를 마친 뒤 참석자들은 초산 테러 현장을 찾아 YS의 손녀 김인영 작가가 디자인한 동판 제막식을 지켜봤습니다. 동판에는 김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얼굴이 여러 사람과 손을 잡은 그림이 담겼는데, 힘을 모아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김봉조 민주동지회 회장은 이 자리에서 "YS의 강한 민주화 의지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 정도가 됐다"며 "그 정신을 지킬 수 있도록 초산 테러 50주년을 꼭 명심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김영삼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가 국회 본회의에서 신상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
50년 전 국회로 다시 돌아가 볼까요? 당시 야당 원내총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초산 테러 바로 다음날 국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 김영삼이가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바른길, 정의에 입각한 일, 진리를 위한 길, 자유를 위한 일이면 싸우렵니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이 땅은 우리만이 살다가 죽을 땅이 아니요, 우리의 사랑하는 후손들에게 물려줄 땅이기 때문에, 나 자신이 그러한 희생을 당할지라도 우리 땅은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와 꽃피는 평화, 자유스러운 평화를 가져와야 하겠습니다." (1969년 6월 21일 김영삼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 국회 본회의 신상발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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