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배상안을 일본이 거부…당황한 정부의 다음 카드는?

입력 2019.06.2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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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조성안' 제안하자마자 日 퇴짜에 '당황'

6월 19일 오후 4시 11분. 외교부 홈페이지에 '강제 징용 판결 문제 우리 정부 입장'이란 글이 올라왔습니다. 지난해 10월 나온 우리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한국과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조성해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제안을 담은 글이었습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7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정부가 제시한 해법이었습니다.

6월 19일 오후 5시. 일본 교도통신은 외무성 간부를 인용해 "일본은 한국 정부의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어 오스가 대변인이 기자 회견을 열어 "한국의 제안은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고노 다로 외무상까지 나서 "한국의 제안은 국제법 위반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불과 한 시간도 되지 않아 한국 정부의 제안에 퇴짜를 놓은 겁니다.

[사진 출처 : 외교부 홈페이지 캡쳐][사진 출처 : 외교부 홈페이지 캡쳐]

"일본의 즉각적인 거절, 예상하지 못했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지난 주말 일본을 비공개로 방문해 고위 당국자에게 이 제안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면담에서 한일 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외교부 당국자도 어제 기자들을 만나 "일본의 반응을 예단할 순 없지만, 일본이 진지하게 검토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일본이 우리 정부가 발표한 지 채 한 시간도 안 돼 거절 의사를 밝히자, 외교부는 크게 당황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제안은 국내 당사자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교부가 안을 발표하기 전에 피해 당사자들, 해당 기업들과 전혀 사전 논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월에 이번에 발표한 방안과 비슷한 안이 제기됐을 땐 정부가 '비상식적'이라고 일축했다가 왜 갑자기 입장이 바뀌었는지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는 "1월에 나온 안은 정부가 주도하는 안이었고, 이번엔 정부가 빠진 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안이어서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여러모로 정부가 다음 주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서둘러서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무리수를 던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본 고노 다로 외무상일본 고노 다로 외무상

일본, 오늘도 거부 입장 거듭 밝혀…"중재위원회 구성 요구"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오늘도 한국 정부의 제안에 거부 입장을 거듭 밝히면서, 한국 정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이 문제를 해결할 중재위원회에 참여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모든 배상 책임이 끝났다면서, 이 문제는 대법원 판결이 아니라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외교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른 외교적 해법은 총 3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양자 간 협의입니다. 일본은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양자 간 협의를 요청했지만, 우리 정부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일본은 두 번째 단계인 '중재위원회 구성'을 요구했습니다. 양국에서 각각 중재위원을 선임해 문제를 푸는 방식입니다. 한 나라의 요구가 있으면 30일 이내에 중재위원을 구성해야 하는데, 우리 정부는 역시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어느 한 나라가 중재위원을 임명하지 않을 경우, 마지막 3단계, 두 나라는 중재위원을 구성할 3국을 지명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어제 이 마지막 단계를 우리 정부에 요청했습니다. 이마저도 거절하면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 카드를 꺼낼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일본이 요구하는 중재위원회 구성이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등은 모두 우리 정부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한 절차입니다.


외교부 "외교적 협의 계속…신중하게 대응할 것"

우리 정부는 우선 일본과 외교적 협의는 계속해 나간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정부는 새로운 카드를 내놓기보다는 '신중 모드'로 돌입할 확률이 높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앞으로는 신중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면서 "일본 측도 한국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고려 사항과 입장을 이해해 달라"고 밝혔습니다.

우리 정부는 애초부터 삼권 분립 원칙에 따라 대법원 판결에는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번에 제안한 것도 한일 양국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전제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방안에 일본은 물론 당사자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 방안을 계속 밀어붙이긴 힘든 상황입니다. 정부는 이제 과거사 문제는 그것대로 진실과 원칙에 입각해 해법을 모색하되, 비핵화 의제 등은 별도로 논의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일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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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제징용’ 배상안을 일본이 거부…당황한 정부의 다음 카드는?
    • 입력 2019-06-20 17:17:10
    취재K
'기금조성안' 제안하자마자 日 퇴짜에 '당황'

6월 19일 오후 4시 11분. 외교부 홈페이지에 '강제 징용 판결 문제 우리 정부 입장'이란 글이 올라왔습니다. 지난해 10월 나온 우리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한국과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조성해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제안을 담은 글이었습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7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정부가 제시한 해법이었습니다.

6월 19일 오후 5시. 일본 교도통신은 외무성 간부를 인용해 "일본은 한국 정부의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어 오스가 대변인이 기자 회견을 열어 "한국의 제안은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고노 다로 외무상까지 나서 "한국의 제안은 국제법 위반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불과 한 시간도 되지 않아 한국 정부의 제안에 퇴짜를 놓은 겁니다.

[사진 출처 : 외교부 홈페이지 캡쳐]
"일본의 즉각적인 거절, 예상하지 못했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지난 주말 일본을 비공개로 방문해 고위 당국자에게 이 제안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면담에서 한일 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외교부 당국자도 어제 기자들을 만나 "일본의 반응을 예단할 순 없지만, 일본이 진지하게 검토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일본이 우리 정부가 발표한 지 채 한 시간도 안 돼 거절 의사를 밝히자, 외교부는 크게 당황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제안은 국내 당사자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교부가 안을 발표하기 전에 피해 당사자들, 해당 기업들과 전혀 사전 논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월에 이번에 발표한 방안과 비슷한 안이 제기됐을 땐 정부가 '비상식적'이라고 일축했다가 왜 갑자기 입장이 바뀌었는지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는 "1월에 나온 안은 정부가 주도하는 안이었고, 이번엔 정부가 빠진 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안이어서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여러모로 정부가 다음 주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서둘러서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무리수를 던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본 고노 다로 외무상
일본, 오늘도 거부 입장 거듭 밝혀…"중재위원회 구성 요구"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오늘도 한국 정부의 제안에 거부 입장을 거듭 밝히면서, 한국 정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이 문제를 해결할 중재위원회에 참여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모든 배상 책임이 끝났다면서, 이 문제는 대법원 판결이 아니라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외교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른 외교적 해법은 총 3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양자 간 협의입니다. 일본은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양자 간 협의를 요청했지만, 우리 정부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일본은 두 번째 단계인 '중재위원회 구성'을 요구했습니다. 양국에서 각각 중재위원을 선임해 문제를 푸는 방식입니다. 한 나라의 요구가 있으면 30일 이내에 중재위원을 구성해야 하는데, 우리 정부는 역시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어느 한 나라가 중재위원을 임명하지 않을 경우, 마지막 3단계, 두 나라는 중재위원을 구성할 3국을 지명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어제 이 마지막 단계를 우리 정부에 요청했습니다. 이마저도 거절하면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 카드를 꺼낼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일본이 요구하는 중재위원회 구성이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등은 모두 우리 정부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한 절차입니다.


외교부 "외교적 협의 계속…신중하게 대응할 것"

우리 정부는 우선 일본과 외교적 협의는 계속해 나간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정부는 새로운 카드를 내놓기보다는 '신중 모드'로 돌입할 확률이 높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앞으로는 신중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면서 "일본 측도 한국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고려 사항과 입장을 이해해 달라"고 밝혔습니다.

우리 정부는 애초부터 삼권 분립 원칙에 따라 대법원 판결에는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번에 제안한 것도 한일 양국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전제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방안에 일본은 물론 당사자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 방안을 계속 밀어붙이긴 힘든 상황입니다. 정부는 이제 과거사 문제는 그것대로 진실과 원칙에 입각해 해법을 모색하되, 비핵화 의제 등은 별도로 논의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일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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