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물도 안 떠갔는데 ‘수질 적합’이라고?…인천시의 황당한 수질검사

입력 2019.06.2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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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가 발생한 지 벌써 3주째입니다. 피해 지역 주민들의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먹는 물은 생수로 대체한다고 해도, 씻고 음식을 조리하는 등의 생활용수가 걱정입니다. 이런 고통 속에서 지내고 있는 주민에게 황당한 일이 있습니다.

인천시 서구 당하동에 사는 강 모 씨는 지난 3일, 수도꼭지 필터가 붉게 변한 데다 가습기 물통에 까만 가루에 내려앉아 겁이 났습니다. 4살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 씨는 다음 날 아침 상수도사업본부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집 수돗물을 검사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수질검사 의뢰했더니..오지도 않아"


이틀 뒤 인천상수도사업본부 수질연구소 직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6일 11시쯤 강 씨의 집을 방문해 검사에 필요한 수돗물을 채수하겠다는 겁니다. 다음 날 강 씨는 수질연구소 직원을 기다렸지만 12시가 넘도록 직원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늦춰질 수 있다는 연락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강 씨는 외출을 했고, 이후에도 수질검사팀의 방문 문의는 오지 않았습니다.

수돗물의 상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강 씨는 엿새 뒤 다시 수질연구소에 전화를 걸어 '채수'를 왜 하지 않냐며 항의합니다. 그러자 전화를 받은 다른 직원은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며,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 강 씨에게 문자 한 통이 옵니다. 강 씨 집의 수돗물을 검사한 결과 '적합 판정'이 났다는 겁니다. 검사 결과지를 우편으로 보내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아래는 강 씨에게 전달된 문자입니다.

지난 12일, 강 씨에게 전달된 문자입니다.지난 12일, 강 씨에게 전달된 문자입니다.

수돗물 떠가지도 않았는데 검사를 했다?

강 씨는 너무 황당했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수돗물을 떠 가지도 않았는데, 검사를 했다니…그리고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수질검사팀의 답변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강 씨의 집에 상수도사업본부수질연구소에서 보낸 우편물이 도착합니다. 해당 우편물을 아래 사진과 같습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6일 날 채수를 했고, 채수자 공무원의 이름까지 상세히 적혀있습니다. 검사결과 적합 판정과 함께 탁도, 수소이온농도, 잔류이온농도, 잔류염소 등 세세하게 검사항목이 나열돼 있습니다. 강 씨는 담당 직원을 만나지 못했는데, 담당직원은 어디서 물을 떠갔을까요? 그리고 이 결과서는 어떻게 나온 걸까요?

수질검사팀의 태도는 강 씨를 화나게 만듭니다. 담당 직원은 다짜고짜 물을 떠갔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은 11시쯤 강씨의 집을 방문했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강씨의 집을 방문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지만 고발을 하라고 되레 큰소리를 칩니다.

답답한 강 씨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아파트 CCTV를 모두 돌려봅니다. 당일 오전 11시부터 1시까지 강씨의 집을 방문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후 1시 이후에는 남편이 집에 있었고, 남편 또한 아무도 집에 방문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담당 직원의 실수였다"...허술한 수질검사

취재진은 인천 수질연구소를 찾았지만 담당 직원은 자리를 비웠고, 해당 팀장은 자신들도 황당하다며 말을 잇지 못하고 취재를 거부했습니다. 다만 최근 수질 관련 민원이 쏟아지다 담당 직원의 실수로 빚어진 일이라며 민원인에게 사과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정말 단순 실수일까요? 이상하게도 같은 아파트 사는 다른 주민은 강씨보다 먼저 수질검사를 의뢰해 채수를 해갔는데, 아직 결과를 통보받지 못했습니다. 왜 강씨가 수질연구소에 항의한 날 이런 문자가 왔는지 수상한 대목입니다.


주민들 고통에도 붉은 수돗물 대처 '주먹구구'

인천시는 지난달 30일 붉은 수돗물이 나오고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수돗물 검사를 의뢰했고, 적합 판정이 나왔다며 먹어도 된다고 발표했다 시민들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돌연 태도를 바꿔 먹지 말라고 번복했습니다.

정부원인조사단은 인천시가 정수장 탁도계가 고장 났는데도 몰랐다고 밝히는 등 총체적인 부실이 드러났다고 중간조사 결과까지 발표했습니다. 그동안의 과정을 볼 때 강 씨에게 일어난 일을 단순 실수와 착오라고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강씨는 "인천시가 민원이 들어온 가정을 방문해 수질검사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정말 제대로 수질검사를 하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저는 지금을 재난상황이라고 보거든요. 민감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인천시가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을 하는구나..."고 토로했습니다. 정말 이번 일이 강 씨에게만 국한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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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물도 안 떠갔는데 ‘수질 적합’이라고?…인천시의 황당한 수질검사
    • 입력 2019-06-20 19:10:41
    취재K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가 발생한 지 벌써 3주째입니다. 피해 지역 주민들의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먹는 물은 생수로 대체한다고 해도, 씻고 음식을 조리하는 등의 생활용수가 걱정입니다. 이런 고통 속에서 지내고 있는 주민에게 황당한 일이 있습니다.

인천시 서구 당하동에 사는 강 모 씨는 지난 3일, 수도꼭지 필터가 붉게 변한 데다 가습기 물통에 까만 가루에 내려앉아 겁이 났습니다. 4살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 씨는 다음 날 아침 상수도사업본부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집 수돗물을 검사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수질검사 의뢰했더니..오지도 않아"


이틀 뒤 인천상수도사업본부 수질연구소 직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6일 11시쯤 강 씨의 집을 방문해 검사에 필요한 수돗물을 채수하겠다는 겁니다. 다음 날 강 씨는 수질연구소 직원을 기다렸지만 12시가 넘도록 직원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늦춰질 수 있다는 연락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강 씨는 외출을 했고, 이후에도 수질검사팀의 방문 문의는 오지 않았습니다.

수돗물의 상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강 씨는 엿새 뒤 다시 수질연구소에 전화를 걸어 '채수'를 왜 하지 않냐며 항의합니다. 그러자 전화를 받은 다른 직원은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며,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 강 씨에게 문자 한 통이 옵니다. 강 씨 집의 수돗물을 검사한 결과 '적합 판정'이 났다는 겁니다. 검사 결과지를 우편으로 보내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아래는 강 씨에게 전달된 문자입니다.

지난 12일, 강 씨에게 전달된 문자입니다.
수돗물 떠가지도 않았는데 검사를 했다?

강 씨는 너무 황당했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수돗물을 떠 가지도 않았는데, 검사를 했다니…그리고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수질검사팀의 답변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강 씨의 집에 상수도사업본부수질연구소에서 보낸 우편물이 도착합니다. 해당 우편물을 아래 사진과 같습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6일 날 채수를 했고, 채수자 공무원의 이름까지 상세히 적혀있습니다. 검사결과 적합 판정과 함께 탁도, 수소이온농도, 잔류이온농도, 잔류염소 등 세세하게 검사항목이 나열돼 있습니다. 강 씨는 담당 직원을 만나지 못했는데, 담당직원은 어디서 물을 떠갔을까요? 그리고 이 결과서는 어떻게 나온 걸까요?

수질검사팀의 태도는 강 씨를 화나게 만듭니다. 담당 직원은 다짜고짜 물을 떠갔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은 11시쯤 강씨의 집을 방문했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강씨의 집을 방문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지만 고발을 하라고 되레 큰소리를 칩니다.

답답한 강 씨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아파트 CCTV를 모두 돌려봅니다. 당일 오전 11시부터 1시까지 강씨의 집을 방문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후 1시 이후에는 남편이 집에 있었고, 남편 또한 아무도 집에 방문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담당 직원의 실수였다"...허술한 수질검사

취재진은 인천 수질연구소를 찾았지만 담당 직원은 자리를 비웠고, 해당 팀장은 자신들도 황당하다며 말을 잇지 못하고 취재를 거부했습니다. 다만 최근 수질 관련 민원이 쏟아지다 담당 직원의 실수로 빚어진 일이라며 민원인에게 사과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정말 단순 실수일까요? 이상하게도 같은 아파트 사는 다른 주민은 강씨보다 먼저 수질검사를 의뢰해 채수를 해갔는데, 아직 결과를 통보받지 못했습니다. 왜 강씨가 수질연구소에 항의한 날 이런 문자가 왔는지 수상한 대목입니다.


주민들 고통에도 붉은 수돗물 대처 '주먹구구'

인천시는 지난달 30일 붉은 수돗물이 나오고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수돗물 검사를 의뢰했고, 적합 판정이 나왔다며 먹어도 된다고 발표했다 시민들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돌연 태도를 바꿔 먹지 말라고 번복했습니다.

정부원인조사단은 인천시가 정수장 탁도계가 고장 났는데도 몰랐다고 밝히는 등 총체적인 부실이 드러났다고 중간조사 결과까지 발표했습니다. 그동안의 과정을 볼 때 강 씨에게 일어난 일을 단순 실수와 착오라고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강씨는 "인천시가 민원이 들어온 가정을 방문해 수질검사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정말 제대로 수질검사를 하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저는 지금을 재난상황이라고 보거든요. 민감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인천시가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을 하는구나..."고 토로했습니다. 정말 이번 일이 강 씨에게만 국한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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