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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포트] 위안부 할머니의 벗 ‘일본 평화 운동가’
입력 2019.06.22 (22:01) 수정 2019.06.24 (09:30)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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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긴 시간 동안 위안부 할머니들과 근로정신대 피해자, 강제 징용 피해자들을 도우며 일본 내에서 소송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본의 양심세력, 평화운동가들인데요.

위안부 할머니들이 자신의 인생에 빛을 비춰줬다며 지금도 매년 한국에 와 할머니들을 찾아뵙는 일본인들을 이승철 특파원이 만나고 왔습니다.

[리포트]

해가 뉘엿해지는 시간.

바쁜 걸음들 사이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바위처럼 살자꾸나."]

위안부 피해 여성과 함께 걷는 모임이 연 수요 집회입니다.

수요일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일본 시민들에게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할머니들의 일본 방문 등을 계기로 그 뜻을 잇고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2008년부터 시작된 일본 수요집회.

벌써 10년 넘게 오사카와 고베, 한신 등 3곳에서 매주 돌아가며 집회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다나카/군 위안부 피해여성과 함께 걷는 연락회 : "평화로의 길을 함께 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할머니들의 뜻을 이어서 만들어가고 싶어요."]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취재진을 환한 미소로 맞아주는 하나후사 부부.

1989년 위안부 할머니들과 인연이 돼 이후 일본에서 제기한 피해 배상 소송 지원까지.

30년간 묵묵히 한 길을 걸으며 할머니들의 친구가 된 이들입니다.

["이게 1993년 사진이네요. 여기서 할머니들과 모두 모임을 가졌어요."]

종업원만 7명이었던 큰 식당을 접고, 집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현재의 작은 식당을 꾸린 것도 할머니들을 제대로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후사 부부 : "할머니들과 함께하면서 저희 부부 사이도 그렇고... 마음도, 정신적으로도 더 풍요로워졌어요. 수입이 준 것보다 훨씬 윤택해졌어요."]

수입이 절반 이하로 뚝 줄었지만 오히려 부부 사이는 좋아졌다며 웃는 두 사람.

2003년 결국 소송은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로 끝이 났지만 그 후로도 매년 한국으로 가 할머니들을 만납니다.

일본 곳곳에서 위안부 피해와 강제 징용 문제 등 과거사 문제를 파헤치고 진정한 미래를 위해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온 사람들이 바로 이들 '평화 운동가'들입니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군함 모양의 섬.

지옥도라고도 불리웠던 '군함도'입니다.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임을 내세워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지만 폐허 곳곳에는 강제 노동에 시달렸던 이들의 목소리가 베어 있는 듯합니다.

바로 이 뒤가 바다입니다.

군함도는 한 번 들어오면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이 군함도에서 일하다 숨진 한반도 출신 강제 징용자들의 명단을 최초로 밝혀낸 것은 나가사키의 운동가들이었습니다.

군함도에서 숨진 이들의 화장 기록을 뒤진 결과였습니다.

비극이 역사가 된 순간이었습니다.

["(전라남도, 경상남도...) 질식사, 변사, 압사..."]

전쟁을 위해 수많은 군함을 만들어내고, 바다 밑에서 석탄을 캐내다.

결국, 원자폭탄까지 투하됐던 나가사키였지만 이제는 평화 운동의 중심지가 됐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세운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은 그렇게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곳도 다음 세대에 어떻게 평화 운동의 유산을 남겨야 할지 고민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180명의 회원들이 매년 내는 소정의 회비로 운영되지만 그 회원들조차 이제 고령화되면서 숫자가 점점 주는 실정입니다.

[사키야마/나가사키 평화자료관 사무국장 : "젊은 층이 자료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내용이나 취지에 공감해 주고, 그러면서 앞으로 활동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합니다)."]

일본군에 동원됐던 오키나와 징용자와 위안부 피해자의 흔적을 찾는 할머니 활동가들.

지금도 매주 금요일이면 미쓰비시 앞에서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집회를 여는 나고야의 금요행동.

홋카이도 탄광의 비극을 기억하는 현지의 연구자들.

누군가의 아픈 과거를 자신의 것으로 이해하고, 오랜 시간, 사죄를 위해 노력했던 이들은 이제 6~70대가 됐습니다.

[야노 사무국장/강제징용 보상 추구 공동행동 : "일본에서도 (위안부, 강제징용) 재판을 했었다는 걸 들으면 모두 깜짝 놀라요. '그렇게 오랫동안 재판을 해온 건가요?' 하고요. 그 과정을 겪어온 피해자들에게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요."]

최근 도쿄대에서 시작된 '화해학'연구는 그래서 지금까지 일본 내 평화세력의 활동상을 온전히 담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토노무라/도쿄대 총합문화연구과 교수 : "세대 계승을 위해서라도 70~80년대를 포함해 활동가들의 역사를 기록해 전하고...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는 것의 중요성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수요 집회 현장을 지나다 말을 걸어온 여대생.

케이팝에 끌려 한국을 좋아하고, 그래서 이제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일본의 어두운 과거사도 알고 싶다고 합니다.

[마가리/대학 1학년 :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한국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역사나 정치는 알지 못해요."]

17살에 위안부로 끌려갔던 김학순 할머니의 아픈 사연은 한 아이의 발길을 멈춰 세웠습니다.

세대를 잇는 평화의 길은 우리가 찾아야 할 미래를 향한 길이기도 합니다.

도쿄에서 이승철입니다.
  • [글로벌 리포트] 위안부 할머니의 벗 ‘일본 평화 운동가’
    • 입력 2019-06-22 22:40:42
    • 수정2019-06-24 09:30:22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앵커]

긴 시간 동안 위안부 할머니들과 근로정신대 피해자, 강제 징용 피해자들을 도우며 일본 내에서 소송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본의 양심세력, 평화운동가들인데요.

위안부 할머니들이 자신의 인생에 빛을 비춰줬다며 지금도 매년 한국에 와 할머니들을 찾아뵙는 일본인들을 이승철 특파원이 만나고 왔습니다.

[리포트]

해가 뉘엿해지는 시간.

바쁜 걸음들 사이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바위처럼 살자꾸나."]

위안부 피해 여성과 함께 걷는 모임이 연 수요 집회입니다.

수요일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일본 시민들에게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할머니들의 일본 방문 등을 계기로 그 뜻을 잇고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2008년부터 시작된 일본 수요집회.

벌써 10년 넘게 오사카와 고베, 한신 등 3곳에서 매주 돌아가며 집회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다나카/군 위안부 피해여성과 함께 걷는 연락회 : "평화로의 길을 함께 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할머니들의 뜻을 이어서 만들어가고 싶어요."]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취재진을 환한 미소로 맞아주는 하나후사 부부.

1989년 위안부 할머니들과 인연이 돼 이후 일본에서 제기한 피해 배상 소송 지원까지.

30년간 묵묵히 한 길을 걸으며 할머니들의 친구가 된 이들입니다.

["이게 1993년 사진이네요. 여기서 할머니들과 모두 모임을 가졌어요."]

종업원만 7명이었던 큰 식당을 접고, 집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현재의 작은 식당을 꾸린 것도 할머니들을 제대로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후사 부부 : "할머니들과 함께하면서 저희 부부 사이도 그렇고... 마음도, 정신적으로도 더 풍요로워졌어요. 수입이 준 것보다 훨씬 윤택해졌어요."]

수입이 절반 이하로 뚝 줄었지만 오히려 부부 사이는 좋아졌다며 웃는 두 사람.

2003년 결국 소송은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로 끝이 났지만 그 후로도 매년 한국으로 가 할머니들을 만납니다.

일본 곳곳에서 위안부 피해와 강제 징용 문제 등 과거사 문제를 파헤치고 진정한 미래를 위해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온 사람들이 바로 이들 '평화 운동가'들입니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군함 모양의 섬.

지옥도라고도 불리웠던 '군함도'입니다.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임을 내세워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지만 폐허 곳곳에는 강제 노동에 시달렸던 이들의 목소리가 베어 있는 듯합니다.

바로 이 뒤가 바다입니다.

군함도는 한 번 들어오면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이 군함도에서 일하다 숨진 한반도 출신 강제 징용자들의 명단을 최초로 밝혀낸 것은 나가사키의 운동가들이었습니다.

군함도에서 숨진 이들의 화장 기록을 뒤진 결과였습니다.

비극이 역사가 된 순간이었습니다.

["(전라남도, 경상남도...) 질식사, 변사, 압사..."]

전쟁을 위해 수많은 군함을 만들어내고, 바다 밑에서 석탄을 캐내다.

결국, 원자폭탄까지 투하됐던 나가사키였지만 이제는 평화 운동의 중심지가 됐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세운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은 그렇게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곳도 다음 세대에 어떻게 평화 운동의 유산을 남겨야 할지 고민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180명의 회원들이 매년 내는 소정의 회비로 운영되지만 그 회원들조차 이제 고령화되면서 숫자가 점점 주는 실정입니다.

[사키야마/나가사키 평화자료관 사무국장 : "젊은 층이 자료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내용이나 취지에 공감해 주고, 그러면서 앞으로 활동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합니다)."]

일본군에 동원됐던 오키나와 징용자와 위안부 피해자의 흔적을 찾는 할머니 활동가들.

지금도 매주 금요일이면 미쓰비시 앞에서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집회를 여는 나고야의 금요행동.

홋카이도 탄광의 비극을 기억하는 현지의 연구자들.

누군가의 아픈 과거를 자신의 것으로 이해하고, 오랜 시간, 사죄를 위해 노력했던 이들은 이제 6~70대가 됐습니다.

[야노 사무국장/강제징용 보상 추구 공동행동 : "일본에서도 (위안부, 강제징용) 재판을 했었다는 걸 들으면 모두 깜짝 놀라요. '그렇게 오랫동안 재판을 해온 건가요?' 하고요. 그 과정을 겪어온 피해자들에게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요."]

최근 도쿄대에서 시작된 '화해학'연구는 그래서 지금까지 일본 내 평화세력의 활동상을 온전히 담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토노무라/도쿄대 총합문화연구과 교수 : "세대 계승을 위해서라도 70~80년대를 포함해 활동가들의 역사를 기록해 전하고...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는 것의 중요성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수요 집회 현장을 지나다 말을 걸어온 여대생.

케이팝에 끌려 한국을 좋아하고, 그래서 이제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일본의 어두운 과거사도 알고 싶다고 합니다.

[마가리/대학 1학년 :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한국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역사나 정치는 알지 못해요."]

17살에 위안부로 끌려갔던 김학순 할머니의 아픈 사연은 한 아이의 발길을 멈춰 세웠습니다.

세대를 잇는 평화의 길은 우리가 찾아야 할 미래를 향한 길이기도 합니다.

도쿄에서 이승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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