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이패드 그림

입력 2019.07.01 (06:0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회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 (이미지 출처: Art&object)

올해 여든둘의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 지난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예술가의 초상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이 1,019억 원에 낙찰되며 생존 작가 최고가 기록을 세웠죠. (이 기록은 얼마 전에 깨졌습니다.) 물론 가격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만, 적어도 호크니가 생존 화가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화가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호크니의 개인전에 거는 한국 관객들의 기대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겠죠. 저 역시 그랬고요. 관람객이 뜸할 것으로 기대하고 평일 점심시간을 골라 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죠. 평일 낮시간에 거대한 줄을 이룬 미술관 '순례자들' 틈바구니에 서 있자니 적잖이 당황스럽더군요. 호크니가, 대체, 왜? 20대부터 7, 80대까지 폭넓은 연령층을 아우르는 관람객들은 이 전시에서 과연 무엇을 기대하는 거지?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그랜드 캐니언〉, 1998, 60개의 캔버스에 유채, 207×744.2cm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그랜드 캐니언〉, 1998, 60개의 캔버스에 유채, 207×744.2cm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마지막 전시실에서 들려온 관람객의 탄성

전시장 두 곳을 돌아 나와 마지막 세 번째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저는 비로소 그 해답의 실마리를 어느 관람객의 '탄성'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로 7m가 넘는 초대형 캔버스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그랜드 캐니언의 풍경. 제 바로 뒤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와, 만 5천 원이 전혀 아깝지 않네!" (이 전시의 성인 입장료는 만 5천 원입니다.) 캔버스 60개를 이어붙여 완성한 이 작품의 장쾌한 스케일과 강렬한 색감은 가히 압도적이라 할 만합니다.

호크니의 작품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건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이란 작품 한 점을 선보인 작은 전시회였습니다. 이번 서울시립미술관 전시회에서도 마지막 전시실에서 이 대작을 볼 수 있는데요. 공교롭게도 그해에 호크니에 관한 책 한 권이 소리소문없이 번역 출간됩니다. 영국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가 10년에 걸친 호크니와의 대화를 정리한 <다시, 그림이다>(디자인하우스, 2013)입니다.

호크니 예술의 역사를 일별할 수 있는 이 훌륭한 책에서 제가 특별히 주목한 부분은 호크니의 아이패드 그림이었습니다. 2010년 1월 27일, 지금은 고인이 된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뒤흔든 새로운 기계의 출시를 선언합니다. 아이패드였죠. 그리고 채 석 달도 안 된 2010년 4월 6일, 호크니는 자신의 첫 아이패드 드로잉을 완성해 마틴 게이퍼드에게 보냅니다. 일흔셋의 화가가 이 혁신적인 기계에 얼마나 빠르게 반응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죠.

"아이패드를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어요. 이걸로 원하는 것을 그대로 할 수 있다고요!" (마틴 게이퍼드의 책 <다시, 그림이다> 191쪽에서 인용)

데이비드 호크니, iPad drawing printed on paper, image: 81.1☓60.9cm, sheet: 93.8☓71cm, ed.17/25, 2010데이비드 호크니, iPad drawing printed on paper, image: 81.1☓60.9cm, sheet: 93.8☓71cm, ed.17/25, 2010

국내 경매에 나온 호크니의 아이패드 그림

시립미술관 전시가 뜨겁게 달아오른 와중에, 국내의 한 미술품 경매에 호크니의 아이패드 그림 한 점이 출품됐습니다. 요세미티의 어느 숙소 주변 풍경을 아이패드로 쓱쓱 그려낸 이 작품은 경매에서 4천5백만 원이란 거액에 낙찰됩니다. 2천6백만 원에서 경매가 시작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꽤 열띤 경합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죠. 게다가 아이패드로 그려 종이에 인쇄한 작품이고, 25개 에디션 가운데 17번째로 순위가 꽤 밀리는 작품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아이패드라는 새롭고도 진기한 물건을 받아들고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했을 호크니의 모습을 잠시 상상해 봤습니다. 시립미술관 전시에서도 확인했듯이, 올해 여든이 넘은 노대가는 한평생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발전시키고 혁신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은 아직도 진행형이죠. 호크니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눠온 미술평론가의 눈에도 그런 노대가의 지치지 않는 열정이 경이롭게만 보였을 겁니다.

"그것은 그림일기이자 아침에 눈 떴을 때 보는 것과 같은 가장 평범한 광경이 어떻게 미술의 무한한 주제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설명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하루 중 각기 다른 시간대에 포착한 건초더미, 포플러, 루앙 대성당과 같은 주제를 그린 모네의 회화 연작의 디지털 계승자였다. 그러나 아이패드가 가진 참신함의 일면은 즉흥성이었다. 호크니는 그것을 어디든 항상 들고 다녀서 보이스카우트답게 항상 그릴 준비가 되어 있다." (마틴 게이퍼드의 책 <다시, 그림이다> 192쪽에서 인용)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이패드 그림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이패드 그림

시대 변화를 포착해내는 노대가의 예민한 감각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는 아쉽게도 이 부분을 별도로 소개한 섹션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화가로서의 생애에서 결코 작지 않은 의미를 갖는 호크니의 아이패드 회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적어도 호크니는 아이패드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명으로 기억되겠구나…. 호크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아이패드 위에 그린 드로잉이 아닙니다. 이것은 드로잉을 유통시킬 수 있는 방식입니다. 이는 새롭습니다. 매우 새로운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혼란을 낳을 것입니다." (마틴 게이퍼드의 책 <다시, 그림이다> 200쪽에서 인용)

<다시, 그림이다>의 저자 마틴 게이퍼드는 엄청나게 빠른 시대 변화를 예민하게 읽어내는 노대가의 녹슬지 않은 감각에 주목하면서 아주 자명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호크니는 묘사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는 사람들이 실제 현실만이 아니라 그에 대한 시각적 재현과 해석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생전에 국내에서 다시 보기 힘들지도 모를 호크니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 수많은 관람객이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미술관에 가는 이유입니다.

■전시 정보
제목: 데이비드 호크니 展
기간: 2019년 8월 4일까지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작품: 회화, 드로잉 등 130여 점

데이비드 호크니 〈클라크 부부와 퍼시〉, 1970~1, 캔버스에 아크릴릭, 213.4×304.8cm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데이비드 호크니 〈클라크 부부와 퍼시〉, 1970~1, 캔버스에 아크릴릭, 213.4×304.8cm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이패드 그림
    • 입력 2019-07-01 06:03:06
    취재K
회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 (이미지 출처: Art&object)

올해 여든둘의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 지난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예술가의 초상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이 1,019억 원에 낙찰되며 생존 작가 최고가 기록을 세웠죠. (이 기록은 얼마 전에 깨졌습니다.) 물론 가격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만, 적어도 호크니가 생존 화가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화가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호크니의 개인전에 거는 한국 관객들의 기대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겠죠. 저 역시 그랬고요. 관람객이 뜸할 것으로 기대하고 평일 점심시간을 골라 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죠. 평일 낮시간에 거대한 줄을 이룬 미술관 '순례자들' 틈바구니에 서 있자니 적잖이 당황스럽더군요. 호크니가, 대체, 왜? 20대부터 7, 80대까지 폭넓은 연령층을 아우르는 관람객들은 이 전시에서 과연 무엇을 기대하는 거지?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그랜드 캐니언〉, 1998, 60개의 캔버스에 유채, 207×744.2cm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마지막 전시실에서 들려온 관람객의 탄성

전시장 두 곳을 돌아 나와 마지막 세 번째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저는 비로소 그 해답의 실마리를 어느 관람객의 '탄성'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로 7m가 넘는 초대형 캔버스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그랜드 캐니언의 풍경. 제 바로 뒤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와, 만 5천 원이 전혀 아깝지 않네!" (이 전시의 성인 입장료는 만 5천 원입니다.) 캔버스 60개를 이어붙여 완성한 이 작품의 장쾌한 스케일과 강렬한 색감은 가히 압도적이라 할 만합니다.

호크니의 작품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건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이란 작품 한 점을 선보인 작은 전시회였습니다. 이번 서울시립미술관 전시회에서도 마지막 전시실에서 이 대작을 볼 수 있는데요. 공교롭게도 그해에 호크니에 관한 책 한 권이 소리소문없이 번역 출간됩니다. 영국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가 10년에 걸친 호크니와의 대화를 정리한 <다시, 그림이다>(디자인하우스, 2013)입니다.

호크니 예술의 역사를 일별할 수 있는 이 훌륭한 책에서 제가 특별히 주목한 부분은 호크니의 아이패드 그림이었습니다. 2010년 1월 27일, 지금은 고인이 된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뒤흔든 새로운 기계의 출시를 선언합니다. 아이패드였죠. 그리고 채 석 달도 안 된 2010년 4월 6일, 호크니는 자신의 첫 아이패드 드로잉을 완성해 마틴 게이퍼드에게 보냅니다. 일흔셋의 화가가 이 혁신적인 기계에 얼마나 빠르게 반응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죠.

"아이패드를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어요. 이걸로 원하는 것을 그대로 할 수 있다고요!" (마틴 게이퍼드의 책 <다시, 그림이다> 191쪽에서 인용)

데이비드 호크니, iPad drawing printed on paper, image: 81.1☓60.9cm, sheet: 93.8☓71cm, ed.17/25, 2010
국내 경매에 나온 호크니의 아이패드 그림

시립미술관 전시가 뜨겁게 달아오른 와중에, 국내의 한 미술품 경매에 호크니의 아이패드 그림 한 점이 출품됐습니다. 요세미티의 어느 숙소 주변 풍경을 아이패드로 쓱쓱 그려낸 이 작품은 경매에서 4천5백만 원이란 거액에 낙찰됩니다. 2천6백만 원에서 경매가 시작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꽤 열띤 경합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죠. 게다가 아이패드로 그려 종이에 인쇄한 작품이고, 25개 에디션 가운데 17번째로 순위가 꽤 밀리는 작품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아이패드라는 새롭고도 진기한 물건을 받아들고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했을 호크니의 모습을 잠시 상상해 봤습니다. 시립미술관 전시에서도 확인했듯이, 올해 여든이 넘은 노대가는 한평생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발전시키고 혁신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은 아직도 진행형이죠. 호크니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눠온 미술평론가의 눈에도 그런 노대가의 지치지 않는 열정이 경이롭게만 보였을 겁니다.

"그것은 그림일기이자 아침에 눈 떴을 때 보는 것과 같은 가장 평범한 광경이 어떻게 미술의 무한한 주제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설명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하루 중 각기 다른 시간대에 포착한 건초더미, 포플러, 루앙 대성당과 같은 주제를 그린 모네의 회화 연작의 디지털 계승자였다. 그러나 아이패드가 가진 참신함의 일면은 즉흥성이었다. 호크니는 그것을 어디든 항상 들고 다녀서 보이스카우트답게 항상 그릴 준비가 되어 있다." (마틴 게이퍼드의 책 <다시, 그림이다> 192쪽에서 인용)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이패드 그림
시대 변화를 포착해내는 노대가의 예민한 감각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는 아쉽게도 이 부분을 별도로 소개한 섹션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화가로서의 생애에서 결코 작지 않은 의미를 갖는 호크니의 아이패드 회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적어도 호크니는 아이패드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명으로 기억되겠구나…. 호크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아이패드 위에 그린 드로잉이 아닙니다. 이것은 드로잉을 유통시킬 수 있는 방식입니다. 이는 새롭습니다. 매우 새로운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혼란을 낳을 것입니다." (마틴 게이퍼드의 책 <다시, 그림이다> 200쪽에서 인용)

<다시, 그림이다>의 저자 마틴 게이퍼드는 엄청나게 빠른 시대 변화를 예민하게 읽어내는 노대가의 녹슬지 않은 감각에 주목하면서 아주 자명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호크니는 묘사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는 사람들이 실제 현실만이 아니라 그에 대한 시각적 재현과 해석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생전에 국내에서 다시 보기 힘들지도 모를 호크니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 수많은 관람객이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미술관에 가는 이유입니다.

■전시 정보
제목: 데이비드 호크니 展
기간: 2019년 8월 4일까지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작품: 회화, 드로잉 등 130여 점

데이비드 호크니 〈클라크 부부와 퍼시〉, 1970~1, 캔버스에 아크릴릭, 213.4×304.8cm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