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60년 ‘개 시장’ 문 닫았다…전국 첫 폐업

입력 2019.07.03 (08:32) 수정 2019.07.0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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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개 식용 문화에 대한 논란이 여전한 가운데 이른바 개 시장으로 불렸던 구포 가축시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성남 모란시장, 대구 칠성시장과 함께 전국 3대 개시장으로 불렸었죠.

개 도살은 물론, 판매도 중단돼 완전한 폐업으로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60여년 만에 사라지게 된 구포 가축 시장, 그 현장을 뉴스따라잡기에서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어제 오후, 부산 구포 가축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먼저 눈에 띄는 건 폐업을 알리는 현수막이었습니다.

해마다 복날이 다가오는 이맘때, 가장 바쁘던 시장 안은 적막했습니다.

[가축시장 상인/음성변조 : "복날은 많지. 사람들이 복날 되면 보신탕 먹으러 오거든. (손님이) 많이 왔는데 부산이 다 아는데."]

문을 걸어 잠근 가게 앞엔 빈 철장들만 덩그러니 놓여있고, 시장 골목에 들어서면 귀가 따갑게 울리던 개 짖는 소리도 이젠 더는 들리지 않습니다.

[박용순/구포시장 가축지회장 : "다 닫았습니다. 문을 (열고) 있는 건 고기 조금 남은 거 이제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지난 60여 년 간 주로 식용 개를 사고 파는 '개 시장'으로 불려온 구포 가축시장.

그제 오후, 부산시와 상인들이 이곳을 완전 폐업하기로 하고 협약식을 체결했습니다.

녹이 슨 빈 철장들이 부지런히 옮겨지고, 식용으로 판매하기 위해 시장 골목에 있던 개들은 모두 동물보호소로 보내졌습니다.

[전진경/동물권 행동 '카라' 이사 : "38마리의 동물들은 홍역 검사를 전부 마쳐서 같이 있을 위탁처를 마련했어요. 그곳에서 행동교정을 받고 입양을 갈 때까지 보호를 받다가 좋은 가정의 반려견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예정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들어선 구포 가축시장은 성남 모란시장, 대구 칠성시장과 함께 전국 3대 개 시장으로 손꼽혀 왔습니다.

한때는 점포가 60여 개가 넘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지만 동물 보호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함께 동물 학대의 온상으로 지목되면서 점점 쇠락했습니다.

[가축시장 상인/음성변조 : "개장, 가축장, 저기서부터 저기 끝까지 다 가축. 오리, 닭, 개 세 가지 (파는데) 굉장했다고."]

[박용순/구포시장 가축지회장 : "한 10년 전부터 위축되기 시작했죠. 위축되기 시작해서 이제 상가도 문을 많이 닫았고……."]

해마다 7월이면 시민단체와 동물보호단체가 구포 가축시장에서 시위를 벌여 상인들과 마찰을 빚었습니다.

[인근 주민/음성변조 : "자꾸만 일주일에 한 번씩 경찰차하고 서울에서 오더라. 개 도살하지 말자는 피켓 들고……."]

[가축시장 상인/음성변조 : "세월이 가다보니까 동물단체에서 자꾸만 하지 말라고 하니까 여러분들이 싫다 하시니까 (영업을) 안 하겠다. 우리가 그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그렇게 오랜 갈등을 빚어왔지만, 부산시가 상인들에 대한 보상 대책과 함께 가축 시장 정비 방안을 마련하면서 생계를 이유로 폐업에 반대해왔던 상인들의 합의를 끌어냈습니다.

[박용순/구포시장 가축지회장 : "처음에는 반대가 엄청 심해서 좌절하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한분 한 분 만나서 설득하고……."]

구포 가축시장 폐쇄 요구는 성남 모란시장의 개시장 정비가 시작되면서 본격화됐습니다.

지난해 모란시장의 마지막 개 도축 업자가 자진 철거하기도 했죠.

[전진경/동물권 행동 '카라' 이사 : "어딘가에서 도살해온 고기는 여전히 판매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었죠. 그러나 오늘 구포 개 시장은 완전 폐업에 이르렀다는 점이 아주 독보적인 진전이라고 볼 수 있고요."]

구포 가축시장의 폐업은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더 타임즈, 미국의 피플지에서 구포시장의 폐업 소식을 이렇게 발빠르게 전하기도 했는데요.

다음주 12일이 초복인데요, 하루전인 11일까지 완전 폐업을 앞둔 상황.

60년 역사를 뒤로하고 사라지는 가축시장을 인근 주민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인근 주민/음성변조 : "아무래도 좋지. 밤 되면 개들 많이 넣어놨지. 복날 되고 그러면 잠을 못 잔다 시끄러워서. 비가 오려면 냄새가 나지. 지금도 좀 나죠."]

[인근 주민/음성변조 : "사람들이 다 혐오시설로 생각하니까. 바깥에 개를 살아있는 짐승을 잡는 게 보이면 소 돼지 모양하고 달라서……."]

대체로 폐업을 찬성하는 분위기 속에 속을 태우는 분들도 있습니다.

[인근 상인/음성변조 : "다른 사람들은 반기지만 나는 사료팔기 때문에 지금 완전히 (아무)생각이 없습니다."]

가축 시장 인근에서 20년 넘게 사료를 팔았던 상인들인데요.

폐업을 앞두고 팔지 못한 사료들이 수북히 쌓여있습니다.

[인근 상인/음성변조 : "여름에는 이곳 저곳 (사료를) 대주니까 개 사료가 많이 나간다고 봐야죠.(거래하던 가게가) 한 열군데 되나요."]

[인근 상인/음성변조 : "지금 이 골목에 누구 오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이제 직업을 바꾼다는 게……. 어디서 보상받을 거예요? 반납받는 데도 없고."]

시장과 공생하며 장사를 해 온 인근 상인들의 얘기도 들어봤습니다.

[인근 상인/음성변조 : "영양탕 집은 영업을 한다고 따로 붙여야 하나 지금. 바로 오늘 타격이 오는 거예요."]

구포 가축시장이 사라진 자리엔 동물복지시설과 공원 등이 들어서 반려동물과 시민을 위한 쉼터로 거듭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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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60년 ‘개 시장’ 문 닫았다…전국 첫 폐업
    • 입력 2019-07-03 08:38:21
    • 수정2019-07-03 09: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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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개 식용 문화에 대한 논란이 여전한 가운데 이른바 개 시장으로 불렸던 구포 가축시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성남 모란시장, 대구 칠성시장과 함께 전국 3대 개시장으로 불렸었죠.

개 도살은 물론, 판매도 중단돼 완전한 폐업으로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60여년 만에 사라지게 된 구포 가축 시장, 그 현장을 뉴스따라잡기에서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어제 오후, 부산 구포 가축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먼저 눈에 띄는 건 폐업을 알리는 현수막이었습니다.

해마다 복날이 다가오는 이맘때, 가장 바쁘던 시장 안은 적막했습니다.

[가축시장 상인/음성변조 : "복날은 많지. 사람들이 복날 되면 보신탕 먹으러 오거든. (손님이) 많이 왔는데 부산이 다 아는데."]

문을 걸어 잠근 가게 앞엔 빈 철장들만 덩그러니 놓여있고, 시장 골목에 들어서면 귀가 따갑게 울리던 개 짖는 소리도 이젠 더는 들리지 않습니다.

[박용순/구포시장 가축지회장 : "다 닫았습니다. 문을 (열고) 있는 건 고기 조금 남은 거 이제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지난 60여 년 간 주로 식용 개를 사고 파는 '개 시장'으로 불려온 구포 가축시장.

그제 오후, 부산시와 상인들이 이곳을 완전 폐업하기로 하고 협약식을 체결했습니다.

녹이 슨 빈 철장들이 부지런히 옮겨지고, 식용으로 판매하기 위해 시장 골목에 있던 개들은 모두 동물보호소로 보내졌습니다.

[전진경/동물권 행동 '카라' 이사 : "38마리의 동물들은 홍역 검사를 전부 마쳐서 같이 있을 위탁처를 마련했어요. 그곳에서 행동교정을 받고 입양을 갈 때까지 보호를 받다가 좋은 가정의 반려견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예정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들어선 구포 가축시장은 성남 모란시장, 대구 칠성시장과 함께 전국 3대 개 시장으로 손꼽혀 왔습니다.

한때는 점포가 60여 개가 넘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지만 동물 보호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함께 동물 학대의 온상으로 지목되면서 점점 쇠락했습니다.

[가축시장 상인/음성변조 : "개장, 가축장, 저기서부터 저기 끝까지 다 가축. 오리, 닭, 개 세 가지 (파는데) 굉장했다고."]

[박용순/구포시장 가축지회장 : "한 10년 전부터 위축되기 시작했죠. 위축되기 시작해서 이제 상가도 문을 많이 닫았고……."]

해마다 7월이면 시민단체와 동물보호단체가 구포 가축시장에서 시위를 벌여 상인들과 마찰을 빚었습니다.

[인근 주민/음성변조 : "자꾸만 일주일에 한 번씩 경찰차하고 서울에서 오더라. 개 도살하지 말자는 피켓 들고……."]

[가축시장 상인/음성변조 : "세월이 가다보니까 동물단체에서 자꾸만 하지 말라고 하니까 여러분들이 싫다 하시니까 (영업을) 안 하겠다. 우리가 그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그렇게 오랜 갈등을 빚어왔지만, 부산시가 상인들에 대한 보상 대책과 함께 가축 시장 정비 방안을 마련하면서 생계를 이유로 폐업에 반대해왔던 상인들의 합의를 끌어냈습니다.

[박용순/구포시장 가축지회장 : "처음에는 반대가 엄청 심해서 좌절하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한분 한 분 만나서 설득하고……."]

구포 가축시장 폐쇄 요구는 성남 모란시장의 개시장 정비가 시작되면서 본격화됐습니다.

지난해 모란시장의 마지막 개 도축 업자가 자진 철거하기도 했죠.

[전진경/동물권 행동 '카라' 이사 : "어딘가에서 도살해온 고기는 여전히 판매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었죠. 그러나 오늘 구포 개 시장은 완전 폐업에 이르렀다는 점이 아주 독보적인 진전이라고 볼 수 있고요."]

구포 가축시장의 폐업은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더 타임즈, 미국의 피플지에서 구포시장의 폐업 소식을 이렇게 발빠르게 전하기도 했는데요.

다음주 12일이 초복인데요, 하루전인 11일까지 완전 폐업을 앞둔 상황.

60년 역사를 뒤로하고 사라지는 가축시장을 인근 주민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인근 주민/음성변조 : "아무래도 좋지. 밤 되면 개들 많이 넣어놨지. 복날 되고 그러면 잠을 못 잔다 시끄러워서. 비가 오려면 냄새가 나지. 지금도 좀 나죠."]

[인근 주민/음성변조 : "사람들이 다 혐오시설로 생각하니까. 바깥에 개를 살아있는 짐승을 잡는 게 보이면 소 돼지 모양하고 달라서……."]

대체로 폐업을 찬성하는 분위기 속에 속을 태우는 분들도 있습니다.

[인근 상인/음성변조 : "다른 사람들은 반기지만 나는 사료팔기 때문에 지금 완전히 (아무)생각이 없습니다."]

가축 시장 인근에서 20년 넘게 사료를 팔았던 상인들인데요.

폐업을 앞두고 팔지 못한 사료들이 수북히 쌓여있습니다.

[인근 상인/음성변조 : "여름에는 이곳 저곳 (사료를) 대주니까 개 사료가 많이 나간다고 봐야죠.(거래하던 가게가) 한 열군데 되나요."]

[인근 상인/음성변조 : "지금 이 골목에 누구 오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이제 직업을 바꾼다는 게……. 어디서 보상받을 거예요? 반납받는 데도 없고."]

시장과 공생하며 장사를 해 온 인근 상인들의 얘기도 들어봤습니다.

[인근 상인/음성변조 : "영양탕 집은 영업을 한다고 따로 붙여야 하나 지금. 바로 오늘 타격이 오는 거예요."]

구포 가축시장이 사라진 자리엔 동물복지시설과 공원 등이 들어서 반려동물과 시민을 위한 쉼터로 거듭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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