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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돋보기] “핵보다 경제” 철권통치자 누르술탄…‘강대국도 내 손안에’
입력 2019.07.07 (09:20) 수정 2019.07.07 (10:45) 글로벌 돋보기
한국에서 비행기로 7시간 거리. 중국대륙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향하면 광활한 고원 지대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고층 빌딩이 즐비한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누르술탄'이다. 중앙아시아 하면 여전히 많은 사람이 유목이나 드넓은 초원을 떠올리지만, 누르술탄은 개발된 지 20년밖에 안 된 도시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누르술탄에서는 지난주,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국제 금융 포럼(아스타나 파이낸스 데이. Astana Finance Day. 7월 1일~4일)이 열렸다. 포럼을 주최한 아스타나 국제금융센터(AIFC. Astana International Financial Centre)의 규모와 시스템은 세계적인 금융중심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아스타나'는 수도 누르술탄의 옛 이름이다. 올해 3월 개명됐다. 누르술탄은 1991년 소련 해체와 동시에 맞은 독립 이후 최근까지 무려 30년 동안 집권해온 직전 대통령(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의 이름이기도 하다.

누르술탄과 이전 수도였던 알마티 등의 발전상은 옛 소련 시절의 군사시설만 남아 황량하기 그지없던 카자흐스탄의 초고속 성장과 번영을 상징한다. 2000년 이후 불과 10년 만에 천 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이 만 달러 수준으로 치솟은 카자흐스탄의 발전은 누르술탄 전 대통령의 결단력과 탁월한 외교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핵 포기 대가로 서방국가들로부터 받은 지원금을 국가 개발의 종잣돈으로 활용했고, '자원 부국'을 뛰어넘어 금융산업 등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독재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 그를 다수의 카자흐스탄 국민이 존경하는 이유다.

카자흐스탄의 안정적인 성장을 가능케 한 것은 러시아·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중동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균형 외교'였다. 그런데 독립 이후 줄곧 이어져 온 카자흐스탄의 외교 전략에도 최근, 미국 등 서방세계로 균형추가 기우는듯한 변화들이 감지된다. 금융 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움직임도 그중 하나다.

■ “핵보다 경제”…카자흐스탄, ‘선제적 핵 포기’ 뒤 초고속 성장

남한 면적의 27배. 인구 천 8백만의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 중 가장 넓고 가장 잘 사는 국가이기도 하다. 1991년 독립 직후 2000년까지는 초인플레이션과 인구 유출 문제까지 겹치면서 GDP 대비 국가부채가 4백 퍼센트까지 증가해 사실상 국가 부도 상태까지 갔었다. 이런 카자흐스탄이 일어설 수 있었던 첫 번째 동력은 선제적인 핵 폐기 선언과 적극적인 이행이었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일부 독립 국가들은 비자발적인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 보유량도 어마어마했다. 미국과 러시아 다음으로 3위(우크라이나, 1,800발), 4위(카자흐스탄 1,400발), 5위(벨라루스 800발)를 차지할 정도였다.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500여 발과 전략폭격기 120여 대도 이 세 나라에 배치돼있었다. 그러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핵 폐기 비용과 경제 지원'을 약속하며 이들 국가의 비핵화에 발 벗고 나섰다.

핵 폐기 방침 밝히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1991년) 핵 폐기 방침 밝히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1991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비핵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나라는 카자흐스탄이었다. "핵보다 경제"라는 신념이 강했던 누르술탄 대통령은 독립한 해인 1991년 세미팔라딘스크 핵실험장 폐쇄라는 상징적 조치를 단행한 데 이어 바로 이듬해부터 러시아에 핵무기를 반환하기 시작했고, 1993년에는 핵확산금지조약 NPT에 가입했다. 1994년에는 국제원자력기구 IAEA에 가입해 국제사회의 사찰을 수용했다.

구소련 시절, 카자흐스탄에서는 400차례 넘는 핵실험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카자흐스탄 국민들도 핵무기에 강한 거부감을 갖게 됐던 이유다. 지도자의 결단력과 국민 여론에 힘입어 카자흐스탄은 핵무기 반출을 시작한 지 불과 3년 만인 1995년 말 비핵화를 완료했다. 속전속결로 비핵화가 이뤄지면서 서방국가들이 약속했던 지원금이 밀려 들어왔다. 2010년대 중반까지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에 유입된 총 금융자금의 70%인 누적 3천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유치했고 석유산업 기반시설 등에 집중투자해 자원 부국으로서의 발전 기틀을 마련했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서명식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서명식 (1994년)

카자흐스탄은 1994년 미국·영국·러시아와의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를 통해 안전 보장까지 약속받았으며, 독립 이후에도 러시아의 침략을 두려워한 나머지 비핵화에 소극적이었던 우크라이나와 달리 러시아와 군사협정을 맺는 등 가장 위협적인 적국의 보호 아래 들어가는 전략으로 안정을 꾀했다. '러시아로부터의 안전 보장'과 '미국의 경제 지원'을 모두 얻은 누르술탄은 사실상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해 굵직굵직한 개발 정책들을 밀어붙였다.

■ ‘서브프라임’ 위기에 손 내민 중국…‘일대일로’, 반중 정서에 막혀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카자흐스탄 경제에도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였다. 당시 하루가 다르게 국민소득이 증가했던 카자흐스탄은 저금리로 일본 엔화 등 다량의 외화를 차입해 개발 붐을 일으켜 부동산 시장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중앙아시아의 두바이'를 목표로 항구도시 '악타우'를 특별경제구역으로 지정해 대규모 공사를 진행하는 등 외국 자본도 물밀 듯이 들어왔다.

그런데 이런 거침없는 질주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게 됐다. 이후 안정되는듯했던 카자흐스탄 경제는 2014년부터 4년 동안 '유가 쇼크'로 힘을 잃었다. 한때 2,000억 달러를 넘었던 GDP(국내총생산)는 2017년 기준 1,600억 달러를 유지하고 있으며, 12,000달러로 정점을 찍었던 1인당 GDP도 2017년 기준 8,800달러 선에 머물러 있다.

 나자르바예프 국립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누르술탄 대통령과 악수하는 시진핑 주석 (2013년) 나자르바예프 국립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누르술탄 대통령과 악수하는 시진핑 주석 (2013년)

금융위기 이후 고유가 장벽에 막힌 카자흐스탄이 손을 잡은 것은 중국이었다. 시진핑 주석이 일대일로 구상을 처음 밝힌 곳은 2013년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 국립대학이었다. 이듬해인 2014년 누르술탄 대통령은 "중국으로부터 자원 영역이 아닌 분야에서 230억 달러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수십 개의 중국 법인을 현지에 건설하기 위한 비용이었다.

이후 2017년까지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으로 카자흐스탄에 400억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이런 움직임은 카자흐스탄 국민의 반중국 정서를 자극해 철권통치자인 누르술탄조차 중국 카드를 내려놓는 계기가 됐다. 누르술탄은 2016년 외국인에게 토지 임대를 최고 25년까지 허용하려 했지만 '중국화의 서막'이라는 거센 반발에 직면했고 대규모 시위까지 일어나자 방침을 철회했다.

카자흐스탄의 주류인 카자흐족은 19세기 조공을 강요하던 청나라를 피해 러시아의 지배를 선택했을 정도로 반중 정서가 강했다. 현지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카자흐스탄 국민들은 '중국에 나라가 먹힐지 모른다'는 거부감이 상당하다"며 자국의 정서를 전했다.

■ ‘영국 시스템’ 선진 금융 일으켜 ‘제2의 도약’ 꿈꾼다

석유와 천연가스 관련 산업이 전체 생산 규모의 60% 가까이 차지하는 카자흐스탄은 제조업 기반도 취약하다. 한때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물류 허브'를 꿈꾸기도 했지만, 내륙국이라는 한계로 이마저 포기했다. 그래서 지금 야심 차게 공들이고 있는 분야가 금융 산업이다.

‘아스타나 국제 금융센터’ 전경 ‘아스타나 국제 금융센터’ 전경

2015년 나자르바예프의 지시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아스타나 국제금융센터(AIFC)가 수도 누르술탄에 둥지를 틀었다. '중앙아시아의 홍콩·싱가포르'를 표방하는 AIFC는 국제적 수준의 금융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외국 기업이나 투자자들에게 파격적인 세제 혜택 등을 지원한다. 하지만 투자 유치를 위한 다양한 지원책이나, 지난해부터 매년 개최되는 국제 포럼·압도적인 건축물 등이 주는 화려함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모든 금융 서비스에 '영국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었다.

‘아스타나 파이낸스 데이’ 포럼 프레스센터‘아스타나 파이낸스 데이’ 포럼 프레스센터

AIFC에 가입한 법인이나 개인 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자체 법원과 중재 센터까지 두고 있으며 모든 조정 절차는 철저히 영국법에 기초한다. 대통령이 임명권을 갖는 법원장과 판사, 중재위 핵심 간부 대부분이 영국인이다. 영국 시스템 도입에는 센터의 뼈대를 선진적으로 구축하는 의미를 넘어 국제 정세를 활용한 함의까지 담겨있다.

러시아 매체 '디에스'는 "영국법에 따라 중재 법원을 출범시켜 만든 아스타나의 작전은 중앙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붕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AIFC에 대한 강한 경계심을 보였다. 카자흐스탄의 전통적인 우방은 러시아이다. 하지만 누르술탄 대통령은 카자흐스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대국들과 이른바 '균형 외교'를 해온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서양과 동양의 가교'를 자처하며 유럽·중동 국가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 균형외교도 ‘친미’로 탈바꿈?…긴장한 러시아

그런데 누르술탄식 균형외교에 최근 들어 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러시아 매체 '노뷔테니'는 지난해 4월, '나자르바예프가 러시아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카자흐스탄이 미국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카자흐스탄이 자국에 미군 기지를 건설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했다. 노뷔테니는 "나자르바예프는 매우 실용적이고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라면서 "그는 러시아가 향후 미국으로부터 받을 타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으로 믿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카자흐스탄-미국 정상회담 (지난해 1월)카자흐스탄-미국 정상회담 (지난해 1월)

또 다른 매체인 디에스가 AIFC를 비판한 것도 발단은 미군기지 문제였다. 디에스는 노뷔테니 보도로 문제가 불거질 당시 "누르술탄이 미군 화물 수송을 위해 카스피해에 있는 '악타우'와 '쿠릭' 항구 사용을 허가하는 의정서에 서명했다. 그가 미국을 방문한 직후 협정의 진전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매체들이 전한 '카자흐스탄 내 미군기지 건설' 명목은 '아프가니스탄 재건 지원'이었다.

디에스는 "아프간 주둔 미군의 기존 물류 공급 경로인 파키스탄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하자 미국이 카자흐스탄을 대안으로 삼았다. 카자흐스탄도 북서 항구를 개방하기 위해 미국과 나토군의 요구에 부응하는 군사기지에 대한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보도했다. 카자흐스탄이 악타우 개발을 위해 미국의 힘을 끌어들였다고 분석한 것이다. 디에스는 "카스피해에 미국인이 존재하는 것은 러시아에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카스피해 주변국에 대한 러시아의 통제를 깨기 위한 시도"라고 주장했다.

카스피해와 인접한 카자흐스탄의 ‘악타우’와 ‘쿠릭’ 항구는 미국으로서 ‘러시아-중국 견제’와 ‘중동 영향력 유지’ 두 가지를 충족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카스피해와 인접한 카자흐스탄의 ‘악타우’와 ‘쿠릭’ 항구는 미국으로서 ‘러시아-중국 견제’와 ‘중동 영향력 유지’ 두 가지를 충족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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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해에는 쿠웨이트 전체 매장량과 맞먹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련 붕괴 직후 11개의 서방국가가 카스피해 유전 개발에 뛰어들었다. 미국도 그중 하나이다. 중국의 경우, 카스피해부터 자국의 서부지역까지 이어지는 송유관을 통해 카자흐스탄으로부터 원유를 공급받고 있다. 하지만 '셰일 혁명'으로 최대 산유국 반열에 오른 미국으로서는 카자흐스탄과의 군사 협력을 자원 확보보다는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30년 대통령직’ 사임했지만…거세지는 ‘민주화’ 요구

카자흐스탄 매체 '텡그리뉴스'는 "미군 기지 건설 주장은 헛소문이며, 카자흐스탄은 아프간 재건을 위한 국제사회 노력 일환으로 '무기가 없는 화물' 이송에만 참여한다"고 반박했다. 정부의 공식 입장을 전한 것이다. 하지만 현지에서 만난 한 전문가는 '미군기지 논란'에 대해 "다른 강대국과도 함께 할 수 있다는 메시지", '영국법을 적용한 AIFC'에 대해서는 "300년 동안 러시아 지배 아래 있었지만 독립국으로서 얼마든지 다른 체제의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누르술탄 대통령은 90년대 외국 자본으로 수도 아스타나(현재 이름: 누르술탄)를 건설할 당시, '왜 멀쩡한 수도(알마티)를 놔두고 쓸데없이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하냐'는 미국에 '러시아에 더 가까이 수도를 지으면 그들을 견제할 수 있어 당신들에게도 좋은 것 아니냐'는 논리로 반발을 무마했다고 한다. 이런 특유의 뚝심으로 카자흐스탄의 발전을 이끈 그는 지난 3월, 30년 가까이 유지했던 대통령직을 내려놨다.

지난달 카자흐스탄 수도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지난달 카자흐스탄 수도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 BBC 보도 링크

하지만 사임 후에도 국정 현안을 관장하고 공식 석상에서 대통령보다 상석에 앉는 등 여전히 일인자로 군림하는 모습이다. 누르술탄이 사임 뒤 후계자로 지명한 토카예프(현 대통령)의 당선이 확실시된 가운데 지난 3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뻔한 결과로 끝났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초, 수도 누르술탄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민주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는 이유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져 수백 명이 체포됐다.

현지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누르술탄이 경제발전을 이룬 것은 높게 평가하지만, 민주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를 존경하지만 존경할 수 없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바뀌었다고 하지만 수도의 관문 공항까지 '누르술탄'으로 간판을 바꿔놓은 것을 보고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재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아온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하지만 오랜 기간, 강대국들의 각축장이었던 나라를 통치하면서 오히려 강대국 간 역학관계를 십분 활용해 실리를 챙겨온 그의 전략은 미국 주도로 세계 질서가 급변하는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 [글로벌 돋보기] “핵보다 경제” 철권통치자 누르술탄…‘강대국도 내 손안에’
    • 입력 2019-07-07 09:20:46
    • 수정2019-07-07 10:4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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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비행기로 7시간 거리. 중국대륙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향하면 광활한 고원 지대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고층 빌딩이 즐비한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누르술탄'이다. 중앙아시아 하면 여전히 많은 사람이 유목이나 드넓은 초원을 떠올리지만, 누르술탄은 개발된 지 20년밖에 안 된 도시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누르술탄에서는 지난주,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국제 금융 포럼(아스타나 파이낸스 데이. Astana Finance Day. 7월 1일~4일)이 열렸다. 포럼을 주최한 아스타나 국제금융센터(AIFC. Astana International Financial Centre)의 규모와 시스템은 세계적인 금융중심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아스타나'는 수도 누르술탄의 옛 이름이다. 올해 3월 개명됐다. 누르술탄은 1991년 소련 해체와 동시에 맞은 독립 이후 최근까지 무려 30년 동안 집권해온 직전 대통령(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의 이름이기도 하다.

누르술탄과 이전 수도였던 알마티 등의 발전상은 옛 소련 시절의 군사시설만 남아 황량하기 그지없던 카자흐스탄의 초고속 성장과 번영을 상징한다. 2000년 이후 불과 10년 만에 천 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이 만 달러 수준으로 치솟은 카자흐스탄의 발전은 누르술탄 전 대통령의 결단력과 탁월한 외교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핵 포기 대가로 서방국가들로부터 받은 지원금을 국가 개발의 종잣돈으로 활용했고, '자원 부국'을 뛰어넘어 금융산업 등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독재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 그를 다수의 카자흐스탄 국민이 존경하는 이유다.

카자흐스탄의 안정적인 성장을 가능케 한 것은 러시아·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중동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균형 외교'였다. 그런데 독립 이후 줄곧 이어져 온 카자흐스탄의 외교 전략에도 최근, 미국 등 서방세계로 균형추가 기우는듯한 변화들이 감지된다. 금융 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움직임도 그중 하나다.

■ “핵보다 경제”…카자흐스탄, ‘선제적 핵 포기’ 뒤 초고속 성장

남한 면적의 27배. 인구 천 8백만의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 중 가장 넓고 가장 잘 사는 국가이기도 하다. 1991년 독립 직후 2000년까지는 초인플레이션과 인구 유출 문제까지 겹치면서 GDP 대비 국가부채가 4백 퍼센트까지 증가해 사실상 국가 부도 상태까지 갔었다. 이런 카자흐스탄이 일어설 수 있었던 첫 번째 동력은 선제적인 핵 폐기 선언과 적극적인 이행이었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일부 독립 국가들은 비자발적인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 보유량도 어마어마했다. 미국과 러시아 다음으로 3위(우크라이나, 1,800발), 4위(카자흐스탄 1,400발), 5위(벨라루스 800발)를 차지할 정도였다.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500여 발과 전략폭격기 120여 대도 이 세 나라에 배치돼있었다. 그러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핵 폐기 비용과 경제 지원'을 약속하며 이들 국가의 비핵화에 발 벗고 나섰다.

핵 폐기 방침 밝히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1991년) 핵 폐기 방침 밝히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1991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비핵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나라는 카자흐스탄이었다. "핵보다 경제"라는 신념이 강했던 누르술탄 대통령은 독립한 해인 1991년 세미팔라딘스크 핵실험장 폐쇄라는 상징적 조치를 단행한 데 이어 바로 이듬해부터 러시아에 핵무기를 반환하기 시작했고, 1993년에는 핵확산금지조약 NPT에 가입했다. 1994년에는 국제원자력기구 IAEA에 가입해 국제사회의 사찰을 수용했다.

구소련 시절, 카자흐스탄에서는 400차례 넘는 핵실험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카자흐스탄 국민들도 핵무기에 강한 거부감을 갖게 됐던 이유다. 지도자의 결단력과 국민 여론에 힘입어 카자흐스탄은 핵무기 반출을 시작한 지 불과 3년 만인 1995년 말 비핵화를 완료했다. 속전속결로 비핵화가 이뤄지면서 서방국가들이 약속했던 지원금이 밀려 들어왔다. 2010년대 중반까지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에 유입된 총 금융자금의 70%인 누적 3천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유치했고 석유산업 기반시설 등에 집중투자해 자원 부국으로서의 발전 기틀을 마련했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서명식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서명식 (1994년)

카자흐스탄은 1994년 미국·영국·러시아와의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를 통해 안전 보장까지 약속받았으며, 독립 이후에도 러시아의 침략을 두려워한 나머지 비핵화에 소극적이었던 우크라이나와 달리 러시아와 군사협정을 맺는 등 가장 위협적인 적국의 보호 아래 들어가는 전략으로 안정을 꾀했다. '러시아로부터의 안전 보장'과 '미국의 경제 지원'을 모두 얻은 누르술탄은 사실상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해 굵직굵직한 개발 정책들을 밀어붙였다.

■ ‘서브프라임’ 위기에 손 내민 중국…‘일대일로’, 반중 정서에 막혀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카자흐스탄 경제에도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였다. 당시 하루가 다르게 국민소득이 증가했던 카자흐스탄은 저금리로 일본 엔화 등 다량의 외화를 차입해 개발 붐을 일으켜 부동산 시장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중앙아시아의 두바이'를 목표로 항구도시 '악타우'를 특별경제구역으로 지정해 대규모 공사를 진행하는 등 외국 자본도 물밀 듯이 들어왔다.

그런데 이런 거침없는 질주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게 됐다. 이후 안정되는듯했던 카자흐스탄 경제는 2014년부터 4년 동안 '유가 쇼크'로 힘을 잃었다. 한때 2,000억 달러를 넘었던 GDP(국내총생산)는 2017년 기준 1,600억 달러를 유지하고 있으며, 12,000달러로 정점을 찍었던 1인당 GDP도 2017년 기준 8,800달러 선에 머물러 있다.

 나자르바예프 국립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누르술탄 대통령과 악수하는 시진핑 주석 (2013년) 나자르바예프 국립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누르술탄 대통령과 악수하는 시진핑 주석 (2013년)

금융위기 이후 고유가 장벽에 막힌 카자흐스탄이 손을 잡은 것은 중국이었다. 시진핑 주석이 일대일로 구상을 처음 밝힌 곳은 2013년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 국립대학이었다. 이듬해인 2014년 누르술탄 대통령은 "중국으로부터 자원 영역이 아닌 분야에서 230억 달러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수십 개의 중국 법인을 현지에 건설하기 위한 비용이었다.

이후 2017년까지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으로 카자흐스탄에 400억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이런 움직임은 카자흐스탄 국민의 반중국 정서를 자극해 철권통치자인 누르술탄조차 중국 카드를 내려놓는 계기가 됐다. 누르술탄은 2016년 외국인에게 토지 임대를 최고 25년까지 허용하려 했지만 '중국화의 서막'이라는 거센 반발에 직면했고 대규모 시위까지 일어나자 방침을 철회했다.

카자흐스탄의 주류인 카자흐족은 19세기 조공을 강요하던 청나라를 피해 러시아의 지배를 선택했을 정도로 반중 정서가 강했다. 현지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카자흐스탄 국민들은 '중국에 나라가 먹힐지 모른다'는 거부감이 상당하다"며 자국의 정서를 전했다.

■ ‘영국 시스템’ 선진 금융 일으켜 ‘제2의 도약’ 꿈꾼다

석유와 천연가스 관련 산업이 전체 생산 규모의 60% 가까이 차지하는 카자흐스탄은 제조업 기반도 취약하다. 한때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물류 허브'를 꿈꾸기도 했지만, 내륙국이라는 한계로 이마저 포기했다. 그래서 지금 야심 차게 공들이고 있는 분야가 금융 산업이다.

‘아스타나 국제 금융센터’ 전경 ‘아스타나 국제 금융센터’ 전경

2015년 나자르바예프의 지시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아스타나 국제금융센터(AIFC)가 수도 누르술탄에 둥지를 틀었다. '중앙아시아의 홍콩·싱가포르'를 표방하는 AIFC는 국제적 수준의 금융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외국 기업이나 투자자들에게 파격적인 세제 혜택 등을 지원한다. 하지만 투자 유치를 위한 다양한 지원책이나, 지난해부터 매년 개최되는 국제 포럼·압도적인 건축물 등이 주는 화려함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모든 금융 서비스에 '영국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었다.

‘아스타나 파이낸스 데이’ 포럼 프레스센터‘아스타나 파이낸스 데이’ 포럼 프레스센터

AIFC에 가입한 법인이나 개인 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자체 법원과 중재 센터까지 두고 있으며 모든 조정 절차는 철저히 영국법에 기초한다. 대통령이 임명권을 갖는 법원장과 판사, 중재위 핵심 간부 대부분이 영국인이다. 영국 시스템 도입에는 센터의 뼈대를 선진적으로 구축하는 의미를 넘어 국제 정세를 활용한 함의까지 담겨있다.

러시아 매체 '디에스'는 "영국법에 따라 중재 법원을 출범시켜 만든 아스타나의 작전은 중앙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붕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AIFC에 대한 강한 경계심을 보였다. 카자흐스탄의 전통적인 우방은 러시아이다. 하지만 누르술탄 대통령은 카자흐스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대국들과 이른바 '균형 외교'를 해온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서양과 동양의 가교'를 자처하며 유럽·중동 국가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 균형외교도 ‘친미’로 탈바꿈?…긴장한 러시아

그런데 누르술탄식 균형외교에 최근 들어 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러시아 매체 '노뷔테니'는 지난해 4월, '나자르바예프가 러시아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카자흐스탄이 미국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카자흐스탄이 자국에 미군 기지를 건설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했다. 노뷔테니는 "나자르바예프는 매우 실용적이고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라면서 "그는 러시아가 향후 미국으로부터 받을 타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으로 믿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카자흐스탄-미국 정상회담 (지난해 1월)카자흐스탄-미국 정상회담 (지난해 1월)

또 다른 매체인 디에스가 AIFC를 비판한 것도 발단은 미군기지 문제였다. 디에스는 노뷔테니 보도로 문제가 불거질 당시 "누르술탄이 미군 화물 수송을 위해 카스피해에 있는 '악타우'와 '쿠릭' 항구 사용을 허가하는 의정서에 서명했다. 그가 미국을 방문한 직후 협정의 진전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매체들이 전한 '카자흐스탄 내 미군기지 건설' 명목은 '아프가니스탄 재건 지원'이었다.

디에스는 "아프간 주둔 미군의 기존 물류 공급 경로인 파키스탄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하자 미국이 카자흐스탄을 대안으로 삼았다. 카자흐스탄도 북서 항구를 개방하기 위해 미국과 나토군의 요구에 부응하는 군사기지에 대한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보도했다. 카자흐스탄이 악타우 개발을 위해 미국의 힘을 끌어들였다고 분석한 것이다. 디에스는 "카스피해에 미국인이 존재하는 것은 러시아에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카스피해 주변국에 대한 러시아의 통제를 깨기 위한 시도"라고 주장했다.

카스피해와 인접한 카자흐스탄의 ‘악타우’와 ‘쿠릭’ 항구는 미국으로서 ‘러시아-중국 견제’와 ‘중동 영향력 유지’ 두 가지를 충족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카스피해와 인접한 카자흐스탄의 ‘악타우’와 ‘쿠릭’ 항구는 미국으로서 ‘러시아-중국 견제’와 ‘중동 영향력 유지’ 두 가지를 충족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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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해에는 쿠웨이트 전체 매장량과 맞먹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련 붕괴 직후 11개의 서방국가가 카스피해 유전 개발에 뛰어들었다. 미국도 그중 하나이다. 중국의 경우, 카스피해부터 자국의 서부지역까지 이어지는 송유관을 통해 카자흐스탄으로부터 원유를 공급받고 있다. 하지만 '셰일 혁명'으로 최대 산유국 반열에 오른 미국으로서는 카자흐스탄과의 군사 협력을 자원 확보보다는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30년 대통령직’ 사임했지만…거세지는 ‘민주화’ 요구

카자흐스탄 매체 '텡그리뉴스'는 "미군 기지 건설 주장은 헛소문이며, 카자흐스탄은 아프간 재건을 위한 국제사회 노력 일환으로 '무기가 없는 화물' 이송에만 참여한다"고 반박했다. 정부의 공식 입장을 전한 것이다. 하지만 현지에서 만난 한 전문가는 '미군기지 논란'에 대해 "다른 강대국과도 함께 할 수 있다는 메시지", '영국법을 적용한 AIFC'에 대해서는 "300년 동안 러시아 지배 아래 있었지만 독립국으로서 얼마든지 다른 체제의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누르술탄 대통령은 90년대 외국 자본으로 수도 아스타나(현재 이름: 누르술탄)를 건설할 당시, '왜 멀쩡한 수도(알마티)를 놔두고 쓸데없이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하냐'는 미국에 '러시아에 더 가까이 수도를 지으면 그들을 견제할 수 있어 당신들에게도 좋은 것 아니냐'는 논리로 반발을 무마했다고 한다. 이런 특유의 뚝심으로 카자흐스탄의 발전을 이끈 그는 지난 3월, 30년 가까이 유지했던 대통령직을 내려놨다.

지난달 카자흐스탄 수도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지난달 카자흐스탄 수도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 BBC 보도 링크

하지만 사임 후에도 국정 현안을 관장하고 공식 석상에서 대통령보다 상석에 앉는 등 여전히 일인자로 군림하는 모습이다. 누르술탄이 사임 뒤 후계자로 지명한 토카예프(현 대통령)의 당선이 확실시된 가운데 지난 3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뻔한 결과로 끝났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초, 수도 누르술탄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민주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는 이유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져 수백 명이 체포됐다.

현지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누르술탄이 경제발전을 이룬 것은 높게 평가하지만, 민주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를 존경하지만 존경할 수 없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바뀌었다고 하지만 수도의 관문 공항까지 '누르술탄'으로 간판을 바꿔놓은 것을 보고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재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아온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하지만 오랜 기간, 강대국들의 각축장이었던 나라를 통치하면서 오히려 강대국 간 역학관계를 십분 활용해 실리를 챙겨온 그의 전략은 미국 주도로 세계 질서가 급변하는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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