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최저임금 인상, 난 반대요” 기사님은 왜 반대론자가 됐나?

입력 2019.07.18 (06:06) 수정 2019.07.18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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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KTX 오송역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 12차 전원회의를 취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정부세종청사까지 걸리는 시간은 30분 안팎. 저는 밤늦게까지 이어질 전원회의 현장에서 라이브 방송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정부세종청사에 먼저 준비를 하고 있는 중계차 감독님에게 전화했습니다. "감독님, 오늘 밤늦게 최저임금이 결정될 수도 있어요. 저녁 뉴스에 현장 연결이 있을 것 같으니 참고해 주시고요..."

통화 내내 백미러를 통해 제 얼굴을 흘끗흘끗 쳐다보던 택시기사님이 전화를 끊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꺼냈습니다.

"저는 최저임금 오르는 거 반대입니다."

기사님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습니다. 요즘 경기가 너무 어렵다, 세종시에도 세놓은 가게들이 넘친다, 손님들마다 어렵다고 한다... 기사님은 이런 문제들이 "결국 최저임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계신 듯했습니다. 30분 가까이 경제 걱정, 나라 걱정을 토로하시던 기사님은 "나라가 망할 것 같아서 제가 택시에 저것까지 달고 다니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조수석 앞쪽에서 펄럭거리던 태극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무엇이 이 기사님을 '최저임금 인상 반대론자'로 만든 걸까, 최저임금위원회로 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10년 만에 최저 수준 인상, '속도조절' 예상은 됐지만...

올해 최저임금 논의 과정은 여러모로 예상을 벗어났습니다.
먼저 10년 만의 최저 수준인, 2.87%에 그친 인상률이 그랬습니다.

물론 '최저임금 속도조절'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입니다. 미리 만났던 노동계 위원들 조차도 "솔직히 한 자릿수 인상을 예상한다"고 말했으니까요. 하지만 '최저임금 만 원'을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에서 1988년 최저임금제 도입 이래 3번째로 낮은 인상률이 나오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듯했습니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조차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소 낮게 결정이 났다"며 "약간 놀랍고 아쉽다"라고 말했습니다.

최저임금 결정일도 예상보다 빨랐습니다. 매년 최저임금 결정의 마지노선은 7월 15일 정도입니다. 지난해와 지지난해도 모두 7월 15일, 16일에 결정됐습니다. 그래서 당일까지만 해도 논의가 다음 주까지 이어질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사 최종안 제출과 표결이 전격적으로 이뤄졌고, 예년보다 3~4일 이른 시점에 최저임금이 결정됐습니다.


후폭풍 지속... 최저임금 산정의 근거는?

이렇게 예상치 못했던 과정과 결과에 노동계의 반발이 거셉니다. 지난 15일 민주노총에 이어 17일에는 한국노총 추천 최저임금위원들마저 사퇴를 표명했습니다.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논의 과정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 성격도 강했습니다. 특히 2.87%라는 인상률의 '산출 근거'가 미약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한 최저임금위원은 최저임금 결정 뒤 "사용자위원들은 3%는 도저히 넘기 어렵고, 3% 인상률을 적용한 8,600원 바로 아래에 해당하는 8,590원을 제시했다고 얘기했다"고 말했습니다. 8,590원이라는 금액이 구체적 통계들을 이용해 정밀하게 계산된 수치라기보다, 3% 인상률과 8,600원이라는 금액을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정해 놓고 거기서 10원 빠지는 선으로 '절충'된 안이라는 얘깁니다.

노동계가 내놨지만 부결됐던 최종안 '8,880원 안'에도 통계적 근거가 부족하기는 마찬가집니다. 왜 8,880원이었는가. 한 노동계 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는 2022년까지 최저임금 만 원을 달성하려면 적어도 앞으로 3년간 매년 6.3%씩은 인상해야 한다. 그래서 올해 노동계 안으로 6.3% 인상된 8,880원을 제출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심리적 마지노선'이나 '최저임금 만 원 달성'이라는 정치적인 고려들이 노사 '최종안'의 근거가 된 셈입니다.

최저임금 산정 방식, 본래 취지 살리고 있나

여기서 우리는 이런 최저임금 산정 방식이 제도의 본 취지를 얼마나 살리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저임금법에 의하면 최저임금은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 최저임금을 정할 때는 4가지 결정기준을 참고해 정하도록 규정합니다.


물론 이 네 가지 기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역시 어떤 수치들을 준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값의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에 규정된 내용만으로 통일된 기준을 마련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최저임금 논의의 기본 근거는 이렇게 '법에 정해진 기준'들이 돼야 합니다.

하지만 최근의 최저임금 논의에는 이 기본을 지키려는 노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올해 심사도 마찬가집니다. 심의가 본격 시작됐을 때, 사측은 내년 최저임금의 최초 제안으로 8천 원을, 노측은 만 원을 제시했습니다. 십 원 단위조차 없이 깔끔하게 떨어진 '8천 원 안'과 '만 원 안'에 어떤 '과학적인 근거'가 있었을까요? 목표 금액이 미리 정해진다면, 계산은 얼마든지 끼워 맞춰질 수 있습니다. 올해 노사 양측이 고심 끝에 제출했다는 각자의 '최종안'은 이런 의혹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최저임금의 '최종 결정' 과정도 비과학적이기는 마찬가집니다. 노사가 각각 저마다의 안을 내지만, 최저임금의 최종 결정권은 공익위원들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공익위원들은 정부가 선임한 인물들인 만큼, 정부의 정책방향을 충실히 반영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이끌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본말이 전도된 논의 과정이 이어지면서, 최종 결론에 대한 설득력은 떨어지고 한쪽의 반발을 부르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최저임금은 이론의 여지 없이, '정치적 판단'의 결과물이 된 겁니다.


"최저임금은 정치적 계산의 결과물?"... 제도 도입 취지 살려야

제가 탔던 택시기사님이 최저임금의 극렬 반대론자가 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최저임금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 정치적인 계산만 고려됐을 것이다"라는 생각. 어쩌면 진실에 가까울 이 오해가 퍼지는 동안, 인터넷 댓글 창은 '최저임금 인상 반대론자'와 '찬성론자'의 싸움터가 됐습니다. 그리고 진짜 최저임금을 받아야 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무시됐습니다.

다시, 최저임금의 본래 취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최저임금법 1조는 최저임금법의 목적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하고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논의 과정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할 질문들도 이런 것일 겁니다. '현재의 최저임금은 이 목적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수준인가', '최저임금 산정 과정은 법에 정해진 기준들을 잘 따르고 있는가'. 불필요한 오해나 과열된 논쟁들을 최소화하고, 제도의 도입 취지를 되살리기 위해 기본에 다시 집중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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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최저임금 인상, 난 반대요” 기사님은 왜 반대론자가 됐나?
    • 입력 2019-07-18 06:06:09
    • 수정2019-07-18 07:52:15
    취재후·사건후
지난 11일, KTX 오송역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 12차 전원회의를 취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정부세종청사까지 걸리는 시간은 30분 안팎. 저는 밤늦게까지 이어질 전원회의 현장에서 라이브 방송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정부세종청사에 먼저 준비를 하고 있는 중계차 감독님에게 전화했습니다. "감독님, 오늘 밤늦게 최저임금이 결정될 수도 있어요. 저녁 뉴스에 현장 연결이 있을 것 같으니 참고해 주시고요..."

통화 내내 백미러를 통해 제 얼굴을 흘끗흘끗 쳐다보던 택시기사님이 전화를 끊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꺼냈습니다.

"저는 최저임금 오르는 거 반대입니다."

기사님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습니다. 요즘 경기가 너무 어렵다, 세종시에도 세놓은 가게들이 넘친다, 손님들마다 어렵다고 한다... 기사님은 이런 문제들이 "결국 최저임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계신 듯했습니다. 30분 가까이 경제 걱정, 나라 걱정을 토로하시던 기사님은 "나라가 망할 것 같아서 제가 택시에 저것까지 달고 다니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조수석 앞쪽에서 펄럭거리던 태극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무엇이 이 기사님을 '최저임금 인상 반대론자'로 만든 걸까, 최저임금위원회로 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10년 만에 최저 수준 인상, '속도조절' 예상은 됐지만...

올해 최저임금 논의 과정은 여러모로 예상을 벗어났습니다.
먼저 10년 만의 최저 수준인, 2.87%에 그친 인상률이 그랬습니다.

물론 '최저임금 속도조절'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입니다. 미리 만났던 노동계 위원들 조차도 "솔직히 한 자릿수 인상을 예상한다"고 말했으니까요. 하지만 '최저임금 만 원'을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에서 1988년 최저임금제 도입 이래 3번째로 낮은 인상률이 나오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듯했습니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조차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소 낮게 결정이 났다"며 "약간 놀랍고 아쉽다"라고 말했습니다.

최저임금 결정일도 예상보다 빨랐습니다. 매년 최저임금 결정의 마지노선은 7월 15일 정도입니다. 지난해와 지지난해도 모두 7월 15일, 16일에 결정됐습니다. 그래서 당일까지만 해도 논의가 다음 주까지 이어질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사 최종안 제출과 표결이 전격적으로 이뤄졌고, 예년보다 3~4일 이른 시점에 최저임금이 결정됐습니다.


후폭풍 지속... 최저임금 산정의 근거는?

이렇게 예상치 못했던 과정과 결과에 노동계의 반발이 거셉니다. 지난 15일 민주노총에 이어 17일에는 한국노총 추천 최저임금위원들마저 사퇴를 표명했습니다.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논의 과정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 성격도 강했습니다. 특히 2.87%라는 인상률의 '산출 근거'가 미약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한 최저임금위원은 최저임금 결정 뒤 "사용자위원들은 3%는 도저히 넘기 어렵고, 3% 인상률을 적용한 8,600원 바로 아래에 해당하는 8,590원을 제시했다고 얘기했다"고 말했습니다. 8,590원이라는 금액이 구체적 통계들을 이용해 정밀하게 계산된 수치라기보다, 3% 인상률과 8,600원이라는 금액을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정해 놓고 거기서 10원 빠지는 선으로 '절충'된 안이라는 얘깁니다.

노동계가 내놨지만 부결됐던 최종안 '8,880원 안'에도 통계적 근거가 부족하기는 마찬가집니다. 왜 8,880원이었는가. 한 노동계 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는 2022년까지 최저임금 만 원을 달성하려면 적어도 앞으로 3년간 매년 6.3%씩은 인상해야 한다. 그래서 올해 노동계 안으로 6.3% 인상된 8,880원을 제출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심리적 마지노선'이나 '최저임금 만 원 달성'이라는 정치적인 고려들이 노사 '최종안'의 근거가 된 셈입니다.

최저임금 산정 방식, 본래 취지 살리고 있나

여기서 우리는 이런 최저임금 산정 방식이 제도의 본 취지를 얼마나 살리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저임금법에 의하면 최저임금은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 최저임금을 정할 때는 4가지 결정기준을 참고해 정하도록 규정합니다.


물론 이 네 가지 기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역시 어떤 수치들을 준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값의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에 규정된 내용만으로 통일된 기준을 마련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최저임금 논의의 기본 근거는 이렇게 '법에 정해진 기준'들이 돼야 합니다.

하지만 최근의 최저임금 논의에는 이 기본을 지키려는 노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올해 심사도 마찬가집니다. 심의가 본격 시작됐을 때, 사측은 내년 최저임금의 최초 제안으로 8천 원을, 노측은 만 원을 제시했습니다. 십 원 단위조차 없이 깔끔하게 떨어진 '8천 원 안'과 '만 원 안'에 어떤 '과학적인 근거'가 있었을까요? 목표 금액이 미리 정해진다면, 계산은 얼마든지 끼워 맞춰질 수 있습니다. 올해 노사 양측이 고심 끝에 제출했다는 각자의 '최종안'은 이런 의혹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최저임금의 '최종 결정' 과정도 비과학적이기는 마찬가집니다. 노사가 각각 저마다의 안을 내지만, 최저임금의 최종 결정권은 공익위원들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공익위원들은 정부가 선임한 인물들인 만큼, 정부의 정책방향을 충실히 반영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이끌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본말이 전도된 논의 과정이 이어지면서, 최종 결론에 대한 설득력은 떨어지고 한쪽의 반발을 부르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최저임금은 이론의 여지 없이, '정치적 판단'의 결과물이 된 겁니다.


"최저임금은 정치적 계산의 결과물?"... 제도 도입 취지 살려야

제가 탔던 택시기사님이 최저임금의 극렬 반대론자가 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최저임금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 정치적인 계산만 고려됐을 것이다"라는 생각. 어쩌면 진실에 가까울 이 오해가 퍼지는 동안, 인터넷 댓글 창은 '최저임금 인상 반대론자'와 '찬성론자'의 싸움터가 됐습니다. 그리고 진짜 최저임금을 받아야 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무시됐습니다.

다시, 최저임금의 본래 취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최저임금법 1조는 최저임금법의 목적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하고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논의 과정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할 질문들도 이런 것일 겁니다. '현재의 최저임금은 이 목적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수준인가', '최저임금 산정 과정은 법에 정해진 기준들을 잘 따르고 있는가'. 불필요한 오해나 과열된 논쟁들을 최소화하고, 제도의 도입 취지를 되살리기 위해 기본에 다시 집중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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