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1시간 만에 바뀐 ‘규제→관리’…日 NHK는 왜 그랬나?

입력 2019.07.2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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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이사회 2일째…수출 규제를 둘러싸고 일한 쌍방 주장" (24일 오전 11시 27분)
"WTO 이사회 2일째…수출 관리를 둘러싸고 일한 쌍방 주장" (24일 오전 17시 55분)

일본 공영방송 NHK 뉴스 홈페이지에 오른 기사 제목입니다. 차이를 아시겠나요? 비슷한 기사인데 제목이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에서 '관리'로 바뀌어 있습니다. 기사 본문도 마찬가지였죠. NHK가 이렇게 쓰기 시작한 건 어제(24일) 정오 무렵입니다. 한국을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려는 일본 조치에 대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반박 기자회견 소식을 전하면서 "일본 측에 수출 관리 철회를 요청하는 의견을 보냈다"고 보도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배경을 짐작게 하는 건 이번 규제 조치의 주무부처인 일본 경제산업성의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장관입니다. 그는 어제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조금 전, 경제산업성 현관에서 NHK가 카메라를 향해 한국 측 의견서에 대해 코멘트를 요구했기 때문에 '정밀 조사 중'이라고 답했다. 딱 좋은 기회라서 NHK는 '수출 규제'라는 단어를 쓰지 말고 이번 조치의 정확한 표현으로 전문가 세계에서도 쓰이는 '수출 관리'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도로 쓰일까?"

이 트윗은 25일 낮 1시 반 현재, 1만 5천여 건이 리트윗됐고, 3만 4천여 건의 '좋아요'를 받았습니다. "국민에게서 수신료를 받아 '정당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공영방송으로서 자격이 없다", "지금 NHK에 전화해서 '한국 주장만 전하려면 한국 국민으로부터 수신료를 받으라'고 항의했다'는 댓글도 줄줄이 달렸습니다. 결과만 보고 보면 "보도로 쓰일까"했던 세코 장관의 궁금증은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확인됐습니다.

세코 장관이 NHK에 압력을 가한 이유는 뻔해 보입니다. '언어 선점'이란 말이 있죠. 주로 정치권에서 쓰는 표현인데, '용어를 포장하는 기술이 바로 정치력 확장의 핵심'이란 뜻입니다. 예컨대 대부업체들은 '외상카드' '빚카드'나 다름없은 카드를 '신용카드'라 이름 붙였습니다. '외상', '빚'이란 부정 의미를 '신용'이란 긍정 의미로 포장한 거죠. 용어 사용의 기술은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한국에 대한 부당한 '수출 규제'를 정당한 '수출 관리' 프레임으로 전환해 일본 국민들이 '본질'을 보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이겠죠.


세코 장관의 타깃은 이제 다른 언론사로 옮겨갈 태세입니다. 트윗에 각 언론사 기사 제목을 '일일 보고 형태'로 정리해 올리고 있습니다. 극우 성향인 산케이신문은 애초부터 '수출 관리'란 용어를 주로 썼습니다. '수출 규제'로 써 오던 요미우리신문은 어느 때부턴가 '수출 관리'로 표현을 슬쩍 바꿨습니다. 이제 공영방송 NHK도 이탈했습니다. 일본의 6대 신문 매체 가운데 25일 현재, '수출 규제'를 고수하는 곳은 아사히와 마이니치, 니혼게이자이, 도쿄 등 4개 신문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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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1시간 만에 바뀐 ‘규제→관리’…日 NHK는 왜 그랬나?
    • 입력 2019-07-25 14:39:07
    특파원 리포트
"WTO 이사회 2일째…수출 규제를 둘러싸고 일한 쌍방 주장" (24일 오전 11시 27분)
"WTO 이사회 2일째…수출 관리를 둘러싸고 일한 쌍방 주장" (24일 오전 17시 55분)

일본 공영방송 NHK 뉴스 홈페이지에 오른 기사 제목입니다. 차이를 아시겠나요? 비슷한 기사인데 제목이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에서 '관리'로 바뀌어 있습니다. 기사 본문도 마찬가지였죠. NHK가 이렇게 쓰기 시작한 건 어제(24일) 정오 무렵입니다. 한국을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려는 일본 조치에 대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반박 기자회견 소식을 전하면서 "일본 측에 수출 관리 철회를 요청하는 의견을 보냈다"고 보도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배경을 짐작게 하는 건 이번 규제 조치의 주무부처인 일본 경제산업성의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장관입니다. 그는 어제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조금 전, 경제산업성 현관에서 NHK가 카메라를 향해 한국 측 의견서에 대해 코멘트를 요구했기 때문에 '정밀 조사 중'이라고 답했다. 딱 좋은 기회라서 NHK는 '수출 규제'라는 단어를 쓰지 말고 이번 조치의 정확한 표현으로 전문가 세계에서도 쓰이는 '수출 관리'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도로 쓰일까?"

이 트윗은 25일 낮 1시 반 현재, 1만 5천여 건이 리트윗됐고, 3만 4천여 건의 '좋아요'를 받았습니다. "국민에게서 수신료를 받아 '정당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공영방송으로서 자격이 없다", "지금 NHK에 전화해서 '한국 주장만 전하려면 한국 국민으로부터 수신료를 받으라'고 항의했다'는 댓글도 줄줄이 달렸습니다. 결과만 보고 보면 "보도로 쓰일까"했던 세코 장관의 궁금증은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확인됐습니다.

세코 장관이 NHK에 압력을 가한 이유는 뻔해 보입니다. '언어 선점'이란 말이 있죠. 주로 정치권에서 쓰는 표현인데, '용어를 포장하는 기술이 바로 정치력 확장의 핵심'이란 뜻입니다. 예컨대 대부업체들은 '외상카드' '빚카드'나 다름없은 카드를 '신용카드'라 이름 붙였습니다. '외상', '빚'이란 부정 의미를 '신용'이란 긍정 의미로 포장한 거죠. 용어 사용의 기술은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한국에 대한 부당한 '수출 규제'를 정당한 '수출 관리' 프레임으로 전환해 일본 국민들이 '본질'을 보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이겠죠.


세코 장관의 타깃은 이제 다른 언론사로 옮겨갈 태세입니다. 트윗에 각 언론사 기사 제목을 '일일 보고 형태'로 정리해 올리고 있습니다. 극우 성향인 산케이신문은 애초부터 '수출 관리'란 용어를 주로 썼습니다. '수출 규제'로 써 오던 요미우리신문은 어느 때부턴가 '수출 관리'로 표현을 슬쩍 바꿨습니다. 이제 공영방송 NHK도 이탈했습니다. 일본의 6대 신문 매체 가운데 25일 현재, '수출 규제'를 고수하는 곳은 아사히와 마이니치, 니혼게이자이, 도쿄 등 4개 신문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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