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중국 최고 지도자는 왜 장수하는가?

입력 2019.07.2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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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지도자 vs 천안문 학살자, 리펑(李鵬) 전 총리 사망

리펑(李鵬) 중국 전 총리가 지난 22일 숨졌다. 1928년생 향년 91세다. 1988년부터 1998년 3월까지 국무원 총리, 또 2003년까지 우리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지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92년 수교 당시 총리였고, 1994년에는 중국 총리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중국 국영 통신사 신화사는 리펑 전 총리 부고 기사에서 "그의 죽음은 당과 국가의 중대한 손실이다."라고 애도했다. 그리고 리펑 전 총리의 일생은 "혁명의 일생, 전투의 일생, 인민을 위해 봉사한 일생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1989년 혁명 난동을 진압한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였다고 추켜세웠다.


1989년 혁명 난동 진압한 탁월한 지도자. 이 말은 현재의 중국 지도부가 리펑 전 총리에게 부여한 최고의 명예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리펑 전 총리가 죽어서도 지우지 못한 업보다. 1989년 혁명 난동 진압은 천안문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 리펑 총리는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한 자오쯔양(趙紫陽, 1919~2005)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맞서 강경 진압을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시위대를 해산했지만, 수천 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래서 그에게 따라 붙은 또 다른 수식어는 '천안문 학살자'다. 천안문 시위 지도부 중 한 명으로 지금은 미국에 사는 왕단(王丹)은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페이스북에 "리펑은 6.4 천안문 학살자이자 망나니였다"고 혹평했다.

리펑 전 총리는 2003년 3월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끝으로 정치 일선에서 떠났다. 당시 나이가 75세. 은퇴 뒤에도 16년을 장수했다. 호평뿐 아니라, 학살자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91세까지 살았으니, 천수를 누렸다는 말을 들을 법 하다. 그런데 이처럼 천수를 누린 중국 최고 지도자는 리펑 전 총리만이 아니다.


장수하는 중국 최고 지도자 .. 4명 중 1명, 90세 이상 장수

위 사진은 노년에도 수영을 즐겼던 덩샤오핑 전 주석의 모습이다. 1904년 쓰촨성 출생 덩샤오핑은 93세이던 1997년 숨졌다. 마오쩌둥은 1976년 9월 9일 83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당시 중국인의 평균 수명이 60대였던 점을 고려하면 마오쩌둥 주석 역시 장수한 셈이다.

현재 93세인 장쩌민 전 주석은 아직도 생존해 있고, 같은 시기 총리를 역임한 주룽지 전 총리도 벌써 나이가 91세다. 후임인 후진타오 전 주석과 원자바오 전 총리는 1942년 동년 생으로 77세다. 전임 최고 지도자들에 비하면 아직은 젊은 축에 낀다. 지난해 기준 중국인의 평균 수명은 77세다. 남자들은 보통 이보다 3~4살 더 적다. 대체로 중국 최고 지도자들은 중국 국민들보다 훨씬 장수하는 셈이다.

이는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비교한 연구결과에서도 입증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가 지난해 하버드대 페어뱅크 중국연구소 설립 6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하버드대학 중국 특강, HARVARD The China Questions>을 보면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아루나브 고지 하버드대 교수는 일반적으로 지도자급 정치인이 대중들보다 오래 사는 경향이 있지만, 중국 지도자는 특히 평균 수명이 더 길다고 분석했다.

고지 교수는 중국 지도자는 63.8%가 80세 이상까지 살았다면서 이는 미국보다 10% 높은 수치라고 밝혔다. 또 90세 이상까지 산 지도자도 중국은 4명 중 1명꼴이지만, 미국은 6명 중 1명, 인도는 8명 중 1명, 구소련은 10명 중 1명도 채 안 되는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지도자 오전 간식, 흰목이버섯 연자 수프중국 지도자 오전 간식, 흰목이버섯 연자 수프

중국 지도자 '영양 책임자'가 공개한 식단

중국 지도자들이 이처럼 장수하는 비결은 뭘까? 이는 중국에서도 비상한 관심거리다. 2013년과 2015년 중국 매체의 한 인터뷰 기사에 중국 국민들은 폭발적 반응을 나타냈다. 다름 아닌 중국 국가지도자들의 건강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베이징 군구(軍區) 총의원 영양 책임자, 리루이펀(李瑞芬) 박사의 인터뷰가 실렸기 때문이다.

리루이펀이 공개한 국가 지도자들의 영양 식단을 보자. 지도자들은 주로 잡곡과 채소류로 된 25~30가지 정도의 음식재료로 차린 요리(多餐)를 매일 소식(小食)한다. 고기는 다리 4개(돼지, 소, 양)보다 다리 2개(닭, 오리)가 더 낫고, 이보다는 다리가 없는 것(어류)이 더 좋다. 조리법도 튀기거나 볶지 않고, 대부분 찌거나 삶고, 뜸을 들인다.

점심과 저녁 사이, 그러니까 오전 10시와 오후 3시 무렵 간식도 챙겨 먹는다. 리루이펀 박사가 예로 든 간식을 보면 오전에 흰목이버섯 연자 수프를 먹었다면 오후에는 요구르트 반 컵과 견과류 몇 알을 챙겨 먹는 식이다. 견과류는 단백질이 풍부해서 암이나 심뇌혈관 질환 예방에 좋다고 한다. 그리고 술을 마시기 전에 비타민 B를 보충하기 위해 잡곡과 살코기, 견과류 등을 먹는다고 한다.


최고 장수 비결은 '은퇴 뒤에도 영향력 유지'

이런 영양 식단도 물론 장수 비결일 것이다. 그러나 하버드대 아루나브 고지 교수는 중국 지도자들의 장수 비결로 중국의 독특한 정치 체제를 꼽았다. 중국 정치의 핵심 중 핵심인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재임 시 큰 잘못을 범하지 않는 한 후임을 지명하거나, 추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중국 당-정-군 수뇌부들이 1년에 한 번 피서를 겸해 여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는 은퇴한 최고 지도자들도 원로 자격으로 참석한다. 이 자리에서 원로들은 중요한 정책 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특히 인사 문제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고지 교수는 이처럼 은퇴 뒤에도 후계자들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고, 정책 집행에서도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시스템, 이것을 중국 지도자들의 장수 비결로 꼽았다. 한마디로 은퇴 뒤에도 최고 지도자로서 예우를 받고 자존감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장수 비결이라는 거다. 고지 교수는 중국의 이런 독특한 정치 체제는 지위 고하·세대를 불문하고, 당이나 국가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을 유발하는 역할도 한다고 분석했다.

리펑 전 총리도 2017년 베이다이허 회의에 참석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회의는 빠르면 다음 주 열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에다 홍콩 시위, 화웨이 사태, 이란 원유 수입에 따른 기업 제재, 신장 위구르 인권 탄압 논란. 바람 잘 날 없는 중국이다. 절대 권력자의 모습을 한 시진핑 주석이 원로들로부터 다시 한 번 절대 신임을 얻을 수 있을까? 원로들은 그들의 자존감을 어떻게 지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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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26 07:01:20
    특파원 리포트
탁월한 지도자 vs 천안문 학살자, 리펑(李鵬) 전 총리 사망

리펑(李鵬) 중국 전 총리가 지난 22일 숨졌다. 1928년생 향년 91세다. 1988년부터 1998년 3월까지 국무원 총리, 또 2003년까지 우리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지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92년 수교 당시 총리였고, 1994년에는 중국 총리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중국 국영 통신사 신화사는 리펑 전 총리 부고 기사에서 "그의 죽음은 당과 국가의 중대한 손실이다."라고 애도했다. 그리고 리펑 전 총리의 일생은 "혁명의 일생, 전투의 일생, 인민을 위해 봉사한 일생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1989년 혁명 난동을 진압한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였다고 추켜세웠다.


1989년 혁명 난동 진압한 탁월한 지도자. 이 말은 현재의 중국 지도부가 리펑 전 총리에게 부여한 최고의 명예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리펑 전 총리가 죽어서도 지우지 못한 업보다. 1989년 혁명 난동 진압은 천안문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 리펑 총리는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한 자오쯔양(趙紫陽, 1919~2005)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맞서 강경 진압을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시위대를 해산했지만, 수천 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래서 그에게 따라 붙은 또 다른 수식어는 '천안문 학살자'다. 천안문 시위 지도부 중 한 명으로 지금은 미국에 사는 왕단(王丹)은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페이스북에 "리펑은 6.4 천안문 학살자이자 망나니였다"고 혹평했다.

리펑 전 총리는 2003년 3월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끝으로 정치 일선에서 떠났다. 당시 나이가 75세. 은퇴 뒤에도 16년을 장수했다. 호평뿐 아니라, 학살자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91세까지 살았으니, 천수를 누렸다는 말을 들을 법 하다. 그런데 이처럼 천수를 누린 중국 최고 지도자는 리펑 전 총리만이 아니다.


장수하는 중국 최고 지도자 .. 4명 중 1명, 90세 이상 장수

위 사진은 노년에도 수영을 즐겼던 덩샤오핑 전 주석의 모습이다. 1904년 쓰촨성 출생 덩샤오핑은 93세이던 1997년 숨졌다. 마오쩌둥은 1976년 9월 9일 83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당시 중국인의 평균 수명이 60대였던 점을 고려하면 마오쩌둥 주석 역시 장수한 셈이다.

현재 93세인 장쩌민 전 주석은 아직도 생존해 있고, 같은 시기 총리를 역임한 주룽지 전 총리도 벌써 나이가 91세다. 후임인 후진타오 전 주석과 원자바오 전 총리는 1942년 동년 생으로 77세다. 전임 최고 지도자들에 비하면 아직은 젊은 축에 낀다. 지난해 기준 중국인의 평균 수명은 77세다. 남자들은 보통 이보다 3~4살 더 적다. 대체로 중국 최고 지도자들은 중국 국민들보다 훨씬 장수하는 셈이다.

이는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비교한 연구결과에서도 입증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가 지난해 하버드대 페어뱅크 중국연구소 설립 6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하버드대학 중국 특강, HARVARD The China Questions>을 보면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아루나브 고지 하버드대 교수는 일반적으로 지도자급 정치인이 대중들보다 오래 사는 경향이 있지만, 중국 지도자는 특히 평균 수명이 더 길다고 분석했다.

고지 교수는 중국 지도자는 63.8%가 80세 이상까지 살았다면서 이는 미국보다 10% 높은 수치라고 밝혔다. 또 90세 이상까지 산 지도자도 중국은 4명 중 1명꼴이지만, 미국은 6명 중 1명, 인도는 8명 중 1명, 구소련은 10명 중 1명도 채 안 되는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지도자 오전 간식, 흰목이버섯 연자 수프
중국 지도자 '영양 책임자'가 공개한 식단

중국 지도자들이 이처럼 장수하는 비결은 뭘까? 이는 중국에서도 비상한 관심거리다. 2013년과 2015년 중국 매체의 한 인터뷰 기사에 중국 국민들은 폭발적 반응을 나타냈다. 다름 아닌 중국 국가지도자들의 건강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베이징 군구(軍區) 총의원 영양 책임자, 리루이펀(李瑞芬) 박사의 인터뷰가 실렸기 때문이다.

리루이펀이 공개한 국가 지도자들의 영양 식단을 보자. 지도자들은 주로 잡곡과 채소류로 된 25~30가지 정도의 음식재료로 차린 요리(多餐)를 매일 소식(小食)한다. 고기는 다리 4개(돼지, 소, 양)보다 다리 2개(닭, 오리)가 더 낫고, 이보다는 다리가 없는 것(어류)이 더 좋다. 조리법도 튀기거나 볶지 않고, 대부분 찌거나 삶고, 뜸을 들인다.

점심과 저녁 사이, 그러니까 오전 10시와 오후 3시 무렵 간식도 챙겨 먹는다. 리루이펀 박사가 예로 든 간식을 보면 오전에 흰목이버섯 연자 수프를 먹었다면 오후에는 요구르트 반 컵과 견과류 몇 알을 챙겨 먹는 식이다. 견과류는 단백질이 풍부해서 암이나 심뇌혈관 질환 예방에 좋다고 한다. 그리고 술을 마시기 전에 비타민 B를 보충하기 위해 잡곡과 살코기, 견과류 등을 먹는다고 한다.


최고 장수 비결은 '은퇴 뒤에도 영향력 유지'

이런 영양 식단도 물론 장수 비결일 것이다. 그러나 하버드대 아루나브 고지 교수는 중국 지도자들의 장수 비결로 중국의 독특한 정치 체제를 꼽았다. 중국 정치의 핵심 중 핵심인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재임 시 큰 잘못을 범하지 않는 한 후임을 지명하거나, 추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중국 당-정-군 수뇌부들이 1년에 한 번 피서를 겸해 여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는 은퇴한 최고 지도자들도 원로 자격으로 참석한다. 이 자리에서 원로들은 중요한 정책 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특히 인사 문제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고지 교수는 이처럼 은퇴 뒤에도 후계자들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고, 정책 집행에서도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시스템, 이것을 중국 지도자들의 장수 비결로 꼽았다. 한마디로 은퇴 뒤에도 최고 지도자로서 예우를 받고 자존감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장수 비결이라는 거다. 고지 교수는 중국의 이런 독특한 정치 체제는 지위 고하·세대를 불문하고, 당이나 국가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을 유발하는 역할도 한다고 분석했다.

리펑 전 총리도 2017년 베이다이허 회의에 참석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회의는 빠르면 다음 주 열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에다 홍콩 시위, 화웨이 사태, 이란 원유 수입에 따른 기업 제재, 신장 위구르 인권 탄압 논란. 바람 잘 날 없는 중국이다. 절대 권력자의 모습을 한 시진핑 주석이 원로들로부터 다시 한 번 절대 신임을 얻을 수 있을까? 원로들은 그들의 자존감을 어떻게 지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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