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로서의 명예와 자긍심 엷어졌다”…‘살아있는 권력’ 손 댄 검사들
입력 2019.08.01 (17:41)
수정 2019.08.0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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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우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사법연수원 31기)이 오늘(1일)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대구지검 안동지청장으로 발령 난 지 하루 만입니다. 주 부장검사의 사의 표명이 주목받는 건, 그가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의 주무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주 부장검사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를 통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댄 겁니다.
김 전 장관 등이 기소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 재판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주 부장검사는 안동으로 발령 났습니다. '특수통'들이 도맡는다는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을 마친 뒤 안동지청장으로 옮기는 것은 '좌천'이다, '그 정도면 그래도 괜찮다'는 상반되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공교롭게도, 재판이 열리는 서울을 오가기가 상대적으로 불편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한 법조계 인사는 "KTX가 안 다니는 안동으로 발령낸 것은 '사실상 공소유지를 하지 말라는 뜻'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주 부장검사는 오늘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사직 인사를 올리면서, 공개적으로 검찰 조직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습니다. "'정도를 걷고 원칙에 충실하면 결국 저의 진정성을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 '능력과 실적, 조직 내 신망에 따라 인사가 이루어진다는 신뢰', '검사로서의 명예와 자긍심'이 엷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검찰 간부들이 최근 사의를 표명했지만, 검찰 조직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건 주 부장검사가 처음입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이끌어온 소감도 밝혔습니다. "지난 1년간 '환경부 사건' 등을 수사하면서, 수많은 법리 검토와 토의, 이견의 조율을 거쳤고, 의견이 계속 충돌할 때는 검찰총장의 정당한 지휘권 행사를 통해 결론을 냈다"고 설명했습니다. "수사 결과는 여러모로 부족했습니다만, 검찰 내의 '투명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통해 수사를 이끌고 가 '지휘라인과 수사팀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을 냈다'는 점에서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정치색이 전혀 없는 평범한 검사입니다"
주 부장검사는 이 글에서 자신을 두고 "정치색이 전혀 없는 평범한 검사"라고 했습니다. "아는 정치인도 없고, 그 흔한 고교 동문 선배 정치인도 한 명 없습니다. 정치적 언동을 한 적도 없고 검찰국에서 발령을 내 어쩔 수 없이 청와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을 뿐입니다. '환경부 사건'을 수사함과 동시에 '세월호 특위 조사방해 사건'의 공소유지를 전담하였고, 일이 주어지면 검사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주 부장검사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파견된 경력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주 부장검사가 '우병우 사단'이라며,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정치색 없는 평범한 검사'라는 주 부장검사의 얘기는 이에 대한 해명인 셈입니다.
주 부장검사는 그러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특별히 언급했습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동일한 강도와 절차로, 같은 기준에 따라 수사와 처분을 할 때 검찰의 '정치적'중립이 지켜질 수 있다고 믿고 소신껏 수사하였으며, 피의사실 공표 등 인권침해가 없도록 각별히 유의하였다는 점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여권(與圈)'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고 소신껏 수사했을 뿐인데, 이 때문에 '좌천'된다면 앞으로 '정치적 중립'을 어떻게 지키겠느냐는 이야기로 해석됩니다.
'살아있는 권력' 손댄 부장검사도, 차장검사도, 지검장도 줄줄이 사의
여권(與圈) 인물이 연루된 의혹을 수사한 뒤 옷을 벗은 건 주 부장검사뿐만이 아닙니다. 주진우 부장검사 직속상관인 권순철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사법연수원 25기)도 어제 서울고검으로 발령이 나자 곧바로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권 차장검사는 어제 '이프로스'에 사의를 표명하면서 "인사는 메시지라고 한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주 부장검사와 권 차장검사의 상관, 한찬식 서울동부지검장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명된 뒤 일찍이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재경 지검(서울동·남·서·북부지검) 차장검사 가운데 이번에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사람은 권순철 동부지검 차장검사, 김범기 서울남부지검 2차장검사(사법연수원 26기)뿐입니다. 권 차장검사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김 차장검사는 손혜원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 수사를 이끌었습니다. 우연이 아니라는 '뒷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서울동부지검의 수사에 대해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김은경 전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대통령 인사권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청와대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환경부 수사가 한창일 당시, 한 현직 부장검사는 "서울동부지검 수사에 대해 여당 쪽에서 '인사 때 두고 보자'고들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추측'과 '해석'일 뿐이지만, 이런 '추측'과 '정황'이 그럴듯해 보이는 상황인 것은 사실입니다.
좌천 VS 좌천……'국정원 댓글수사팀 좌천' 데자뷔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이번 검찰 간부 인사, 2013년 국정원 댓글수사팀 좌천과 닮았습니다. 2013년 윤석열 당시 댓글수사팀장과 박형철 부팀장은 수사 지휘를 두고 검찰 수뇌부와 갈등을 빚다 한직인 지방 고검으로 좌천됐습니다. 윤 총장은 3년 동안 대구고검과 대전고검을 전전했고, 박 전 부장검사는 대전고검에 이어 부산고검으로 발령 나자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검찰총장이 2016년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으로 발탁되고, 이어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으로 영전하자, 과거 국정원 댓글수사팀 팀원들도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윤 총장과 댓글수사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진재선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0기)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법무부 형사기획과장에 이어 이번 인사에서 검찰의 인사와 예산을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과장에 발탁됐습니다. 김성훈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0기)도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장-공안2부장을 거쳐 대검 공안1과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文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해야"…윤 총장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지난달 25일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청와대든, 정부든, 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시길 바라고, 그렇게 해야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윤 총장은 이에 화답해 취임사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다시 강조했습니다. "형사 법 집행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므로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하고, 사익이나 특정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 "검찰 권력은 특정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는 검찰총장의 말. 이번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그 해석이 '오해일 뿐'이라는 것을 입증하려면, 앞서 했던 그 '말'을 결과로 보여야 할 것입니다.
주 부장검사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를 통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댄 겁니다.
김 전 장관 등이 기소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 재판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주 부장검사는 안동으로 발령 났습니다. '특수통'들이 도맡는다는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을 마친 뒤 안동지청장으로 옮기는 것은 '좌천'이다, '그 정도면 그래도 괜찮다'는 상반되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공교롭게도, 재판이 열리는 서울을 오가기가 상대적으로 불편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한 법조계 인사는 "KTX가 안 다니는 안동으로 발령낸 것은 '사실상 공소유지를 하지 말라는 뜻'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주 부장검사는 오늘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사직 인사를 올리면서, 공개적으로 검찰 조직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습니다. "'정도를 걷고 원칙에 충실하면 결국 저의 진정성을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 '능력과 실적, 조직 내 신망에 따라 인사가 이루어진다는 신뢰', '검사로서의 명예와 자긍심'이 엷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검찰 간부들이 최근 사의를 표명했지만, 검찰 조직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건 주 부장검사가 처음입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이끌어온 소감도 밝혔습니다. "지난 1년간 '환경부 사건' 등을 수사하면서, 수많은 법리 검토와 토의, 이견의 조율을 거쳤고, 의견이 계속 충돌할 때는 검찰총장의 정당한 지휘권 행사를 통해 결론을 냈다"고 설명했습니다. "수사 결과는 여러모로 부족했습니다만, 검찰 내의 '투명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통해 수사를 이끌고 가 '지휘라인과 수사팀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을 냈다'는 점에서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정치색이 전혀 없는 평범한 검사입니다"
주 부장검사는 이 글에서 자신을 두고 "정치색이 전혀 없는 평범한 검사"라고 했습니다. "아는 정치인도 없고, 그 흔한 고교 동문 선배 정치인도 한 명 없습니다. 정치적 언동을 한 적도 없고 검찰국에서 발령을 내 어쩔 수 없이 청와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을 뿐입니다. '환경부 사건'을 수사함과 동시에 '세월호 특위 조사방해 사건'의 공소유지를 전담하였고, 일이 주어지면 검사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주 부장검사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파견된 경력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주 부장검사가 '우병우 사단'이라며,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정치색 없는 평범한 검사'라는 주 부장검사의 얘기는 이에 대한 해명인 셈입니다.
주 부장검사는 그러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특별히 언급했습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동일한 강도와 절차로, 같은 기준에 따라 수사와 처분을 할 때 검찰의 '정치적'중립이 지켜질 수 있다고 믿고 소신껏 수사하였으며, 피의사실 공표 등 인권침해가 없도록 각별히 유의하였다는 점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여권(與圈)'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고 소신껏 수사했을 뿐인데, 이 때문에 '좌천'된다면 앞으로 '정치적 중립'을 어떻게 지키겠느냐는 이야기로 해석됩니다.
'살아있는 권력' 손댄 부장검사도, 차장검사도, 지검장도 줄줄이 사의
여권(與圈) 인물이 연루된 의혹을 수사한 뒤 옷을 벗은 건 주 부장검사뿐만이 아닙니다. 주진우 부장검사 직속상관인 권순철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사법연수원 25기)도 어제 서울고검으로 발령이 나자 곧바로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권 차장검사는 어제 '이프로스'에 사의를 표명하면서 "인사는 메시지라고 한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주 부장검사와 권 차장검사의 상관, 한찬식 서울동부지검장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명된 뒤 일찍이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재경 지검(서울동·남·서·북부지검) 차장검사 가운데 이번에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사람은 권순철 동부지검 차장검사, 김범기 서울남부지검 2차장검사(사법연수원 26기)뿐입니다. 권 차장검사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김 차장검사는 손혜원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 수사를 이끌었습니다. 우연이 아니라는 '뒷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서울동부지검의 수사에 대해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김은경 전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대통령 인사권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청와대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환경부 수사가 한창일 당시, 한 현직 부장검사는 "서울동부지검 수사에 대해 여당 쪽에서 '인사 때 두고 보자'고들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추측'과 '해석'일 뿐이지만, 이런 '추측'과 '정황'이 그럴듯해 보이는 상황인 것은 사실입니다.
좌천 VS 좌천……'국정원 댓글수사팀 좌천' 데자뷔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이번 검찰 간부 인사, 2013년 국정원 댓글수사팀 좌천과 닮았습니다. 2013년 윤석열 당시 댓글수사팀장과 박형철 부팀장은 수사 지휘를 두고 검찰 수뇌부와 갈등을 빚다 한직인 지방 고검으로 좌천됐습니다. 윤 총장은 3년 동안 대구고검과 대전고검을 전전했고, 박 전 부장검사는 대전고검에 이어 부산고검으로 발령 나자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검찰총장이 2016년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으로 발탁되고, 이어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으로 영전하자, 과거 국정원 댓글수사팀 팀원들도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윤 총장과 댓글수사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진재선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0기)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법무부 형사기획과장에 이어 이번 인사에서 검찰의 인사와 예산을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과장에 발탁됐습니다. 김성훈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0기)도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장-공안2부장을 거쳐 대검 공안1과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文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해야"…윤 총장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지난달 25일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청와대든, 정부든, 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시길 바라고, 그렇게 해야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윤 총장은 이에 화답해 취임사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다시 강조했습니다. "형사 법 집행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므로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하고, 사익이나 특정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 "검찰 권력은 특정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는 검찰총장의 말. 이번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그 해석이 '오해일 뿐'이라는 것을 입증하려면, 앞서 했던 그 '말'을 결과로 보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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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사로서의 명예와 자긍심 엷어졌다”…‘살아있는 권력’ 손 댄 검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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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8-01 17:41:41
- 수정2019-08-01 18:43:08
주진우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사법연수원 31기)이 오늘(1일)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대구지검 안동지청장으로 발령 난 지 하루 만입니다. 주 부장검사의 사의 표명이 주목받는 건, 그가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의 주무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주 부장검사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를 통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댄 겁니다.
김 전 장관 등이 기소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 재판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주 부장검사는 안동으로 발령 났습니다. '특수통'들이 도맡는다는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을 마친 뒤 안동지청장으로 옮기는 것은 '좌천'이다, '그 정도면 그래도 괜찮다'는 상반되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공교롭게도, 재판이 열리는 서울을 오가기가 상대적으로 불편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한 법조계 인사는 "KTX가 안 다니는 안동으로 발령낸 것은 '사실상 공소유지를 하지 말라는 뜻'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주 부장검사는 오늘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사직 인사를 올리면서, 공개적으로 검찰 조직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습니다. "'정도를 걷고 원칙에 충실하면 결국 저의 진정성을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 '능력과 실적, 조직 내 신망에 따라 인사가 이루어진다는 신뢰', '검사로서의 명예와 자긍심'이 엷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검찰 간부들이 최근 사의를 표명했지만, 검찰 조직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건 주 부장검사가 처음입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이끌어온 소감도 밝혔습니다. "지난 1년간 '환경부 사건' 등을 수사하면서, 수많은 법리 검토와 토의, 이견의 조율을 거쳤고, 의견이 계속 충돌할 때는 검찰총장의 정당한 지휘권 행사를 통해 결론을 냈다"고 설명했습니다. "수사 결과는 여러모로 부족했습니다만, 검찰 내의 '투명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통해 수사를 이끌고 가 '지휘라인과 수사팀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을 냈다'는 점에서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정치색이 전혀 없는 평범한 검사입니다"
주 부장검사는 이 글에서 자신을 두고 "정치색이 전혀 없는 평범한 검사"라고 했습니다. "아는 정치인도 없고, 그 흔한 고교 동문 선배 정치인도 한 명 없습니다. 정치적 언동을 한 적도 없고 검찰국에서 발령을 내 어쩔 수 없이 청와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을 뿐입니다. '환경부 사건'을 수사함과 동시에 '세월호 특위 조사방해 사건'의 공소유지를 전담하였고, 일이 주어지면 검사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주 부장검사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파견된 경력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주 부장검사가 '우병우 사단'이라며,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정치색 없는 평범한 검사'라는 주 부장검사의 얘기는 이에 대한 해명인 셈입니다.
주 부장검사는 그러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특별히 언급했습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동일한 강도와 절차로, 같은 기준에 따라 수사와 처분을 할 때 검찰의 '정치적'중립이 지켜질 수 있다고 믿고 소신껏 수사하였으며, 피의사실 공표 등 인권침해가 없도록 각별히 유의하였다는 점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여권(與圈)'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고 소신껏 수사했을 뿐인데, 이 때문에 '좌천'된다면 앞으로 '정치적 중립'을 어떻게 지키겠느냐는 이야기로 해석됩니다.
'살아있는 권력' 손댄 부장검사도, 차장검사도, 지검장도 줄줄이 사의
여권(與圈) 인물이 연루된 의혹을 수사한 뒤 옷을 벗은 건 주 부장검사뿐만이 아닙니다. 주진우 부장검사 직속상관인 권순철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사법연수원 25기)도 어제 서울고검으로 발령이 나자 곧바로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권 차장검사는 어제 '이프로스'에 사의를 표명하면서 "인사는 메시지라고 한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주 부장검사와 권 차장검사의 상관, 한찬식 서울동부지검장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명된 뒤 일찍이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재경 지검(서울동·남·서·북부지검) 차장검사 가운데 이번에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사람은 권순철 동부지검 차장검사, 김범기 서울남부지검 2차장검사(사법연수원 26기)뿐입니다. 권 차장검사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김 차장검사는 손혜원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 수사를 이끌었습니다. 우연이 아니라는 '뒷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서울동부지검의 수사에 대해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김은경 전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대통령 인사권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청와대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환경부 수사가 한창일 당시, 한 현직 부장검사는 "서울동부지검 수사에 대해 여당 쪽에서 '인사 때 두고 보자'고들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추측'과 '해석'일 뿐이지만, 이런 '추측'과 '정황'이 그럴듯해 보이는 상황인 것은 사실입니다.
좌천 VS 좌천……'국정원 댓글수사팀 좌천' 데자뷔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이번 검찰 간부 인사, 2013년 국정원 댓글수사팀 좌천과 닮았습니다. 2013년 윤석열 당시 댓글수사팀장과 박형철 부팀장은 수사 지휘를 두고 검찰 수뇌부와 갈등을 빚다 한직인 지방 고검으로 좌천됐습니다. 윤 총장은 3년 동안 대구고검과 대전고검을 전전했고, 박 전 부장검사는 대전고검에 이어 부산고검으로 발령 나자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검찰총장이 2016년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으로 발탁되고, 이어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으로 영전하자, 과거 국정원 댓글수사팀 팀원들도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윤 총장과 댓글수사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진재선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0기)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법무부 형사기획과장에 이어 이번 인사에서 검찰의 인사와 예산을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과장에 발탁됐습니다. 김성훈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0기)도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장-공안2부장을 거쳐 대검 공안1과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文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해야"…윤 총장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지난달 25일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청와대든, 정부든, 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시길 바라고, 그렇게 해야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윤 총장은 이에 화답해 취임사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다시 강조했습니다. "형사 법 집행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므로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하고, 사익이나 특정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 "검찰 권력은 특정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는 검찰총장의 말. 이번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그 해석이 '오해일 뿐'이라는 것을 입증하려면, 앞서 했던 그 '말'을 결과로 보여야 할 것입니다.
주 부장검사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를 통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댄 겁니다.
김 전 장관 등이 기소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 재판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주 부장검사는 안동으로 발령 났습니다. '특수통'들이 도맡는다는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을 마친 뒤 안동지청장으로 옮기는 것은 '좌천'이다, '그 정도면 그래도 괜찮다'는 상반되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공교롭게도, 재판이 열리는 서울을 오가기가 상대적으로 불편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한 법조계 인사는 "KTX가 안 다니는 안동으로 발령낸 것은 '사실상 공소유지를 하지 말라는 뜻'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주 부장검사는 오늘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사직 인사를 올리면서, 공개적으로 검찰 조직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습니다. "'정도를 걷고 원칙에 충실하면 결국 저의 진정성을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 '능력과 실적, 조직 내 신망에 따라 인사가 이루어진다는 신뢰', '검사로서의 명예와 자긍심'이 엷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검찰 간부들이 최근 사의를 표명했지만, 검찰 조직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건 주 부장검사가 처음입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이끌어온 소감도 밝혔습니다. "지난 1년간 '환경부 사건' 등을 수사하면서, 수많은 법리 검토와 토의, 이견의 조율을 거쳤고, 의견이 계속 충돌할 때는 검찰총장의 정당한 지휘권 행사를 통해 결론을 냈다"고 설명했습니다. "수사 결과는 여러모로 부족했습니다만, 검찰 내의 '투명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통해 수사를 이끌고 가 '지휘라인과 수사팀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을 냈다'는 점에서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정치색이 전혀 없는 평범한 검사입니다"
주 부장검사는 이 글에서 자신을 두고 "정치색이 전혀 없는 평범한 검사"라고 했습니다. "아는 정치인도 없고, 그 흔한 고교 동문 선배 정치인도 한 명 없습니다. 정치적 언동을 한 적도 없고 검찰국에서 발령을 내 어쩔 수 없이 청와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을 뿐입니다. '환경부 사건'을 수사함과 동시에 '세월호 특위 조사방해 사건'의 공소유지를 전담하였고, 일이 주어지면 검사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주 부장검사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파견된 경력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주 부장검사가 '우병우 사단'이라며,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정치색 없는 평범한 검사'라는 주 부장검사의 얘기는 이에 대한 해명인 셈입니다.
주 부장검사는 그러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특별히 언급했습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동일한 강도와 절차로, 같은 기준에 따라 수사와 처분을 할 때 검찰의 '정치적'중립이 지켜질 수 있다고 믿고 소신껏 수사하였으며, 피의사실 공표 등 인권침해가 없도록 각별히 유의하였다는 점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여권(與圈)'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고 소신껏 수사했을 뿐인데, 이 때문에 '좌천'된다면 앞으로 '정치적 중립'을 어떻게 지키겠느냐는 이야기로 해석됩니다.
'살아있는 권력' 손댄 부장검사도, 차장검사도, 지검장도 줄줄이 사의
여권(與圈) 인물이 연루된 의혹을 수사한 뒤 옷을 벗은 건 주 부장검사뿐만이 아닙니다. 주진우 부장검사 직속상관인 권순철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사법연수원 25기)도 어제 서울고검으로 발령이 나자 곧바로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권 차장검사는 어제 '이프로스'에 사의를 표명하면서 "인사는 메시지라고 한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주 부장검사와 권 차장검사의 상관, 한찬식 서울동부지검장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명된 뒤 일찍이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재경 지검(서울동·남·서·북부지검) 차장검사 가운데 이번에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사람은 권순철 동부지검 차장검사, 김범기 서울남부지검 2차장검사(사법연수원 26기)뿐입니다. 권 차장검사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김 차장검사는 손혜원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 수사를 이끌었습니다. 우연이 아니라는 '뒷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서울동부지검의 수사에 대해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김은경 전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대통령 인사권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청와대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환경부 수사가 한창일 당시, 한 현직 부장검사는 "서울동부지검 수사에 대해 여당 쪽에서 '인사 때 두고 보자'고들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추측'과 '해석'일 뿐이지만, 이런 '추측'과 '정황'이 그럴듯해 보이는 상황인 것은 사실입니다.
좌천 VS 좌천……'국정원 댓글수사팀 좌천' 데자뷔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이번 검찰 간부 인사, 2013년 국정원 댓글수사팀 좌천과 닮았습니다. 2013년 윤석열 당시 댓글수사팀장과 박형철 부팀장은 수사 지휘를 두고 검찰 수뇌부와 갈등을 빚다 한직인 지방 고검으로 좌천됐습니다. 윤 총장은 3년 동안 대구고검과 대전고검을 전전했고, 박 전 부장검사는 대전고검에 이어 부산고검으로 발령 나자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검찰총장이 2016년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으로 발탁되고, 이어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으로 영전하자, 과거 국정원 댓글수사팀 팀원들도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윤 총장과 댓글수사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진재선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0기)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법무부 형사기획과장에 이어 이번 인사에서 검찰의 인사와 예산을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과장에 발탁됐습니다. 김성훈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0기)도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장-공안2부장을 거쳐 대검 공안1과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文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해야"…윤 총장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지난달 25일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청와대든, 정부든, 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시길 바라고, 그렇게 해야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윤 총장은 이에 화답해 취임사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다시 강조했습니다. "형사 법 집행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므로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하고, 사익이나 특정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 "검찰 권력은 특정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는 검찰총장의 말. 이번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그 해석이 '오해일 뿐'이라는 것을 입증하려면, 앞서 했던 그 '말'을 결과로 보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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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 기자 easyne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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