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판결을?…‘AI 판사’ 논란

입력 2019.08.10 (21:46) 수정 2019.08.10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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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인간 판사보다 AI가 빠르고 공정할 것 같다.

이런 이유로 AI 판사를 도입하자는 주장들이 전세계적으로 나오고 있는데요.

아예 정부 차원에서 재판에 AI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한 나라가 있습니다.

북유럽 발트해의 소국 에스토니아인데요.

AI 판사 도입을 둘러싼 논란의 현장을 홍석우 순회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발트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800여 년 역사의 아름다운 구 시가지로 유명합니다.

탈린은 중세 시대에 무역항으로 번성했습니다. 정부 주도의 4차 산업 혁명으로 에스토니아가 다시 번성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습니다.

["자유! 자유! 자유!"]

1991년 구 소련에서 독립한 나라.

그러나 당시 낙후된 분위기는 이제 박물관 수장고에서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크리스티안 사하로프/1989년생/큐레이터 : "형제들은 저에게 옛 소비에트 시절 얘기를 해주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VCR이라는 놀라운 기계가 들어왔다는 이야기 같은 거죠."]

에스토니아는 1992년 학교에서 컴퓨터 코딩 교육을 도입하는 등 급진적 디지털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2005년엔 세계 최초로 인터넷 전자투표를 도입했고, 올해의 경우 투표자의 절반 가량이 간편한 전자 투표를 이용했습니다.

[프리트 빈켈/에스토니아 선거관리위원회 : "특히 유권자가 해외에 있을 경우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가야 했는데, 지금은 어디에서든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투표소에 가지 않고도 노트북에 전자주민증을 인식시킨 뒤 정부의 투표 사이트로 들어가는 방식입니다.

여전히 반대 입장인 이들도 있지만, 도입 10여 년이 지난 만큼 안정 궤도에 접어들었다는 평갑니다.

[프리트 빈켈/에스토니아 선거관리위원회 :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회의적입니다. 주로 보안 문제 때문입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이어 전자주민증에 전국민의 각종 정보를 담는 '빅데이터'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국민의 의료와 세금, 부동산, 사업, 재판 기록 등을 99% 디지털화한 것입니다.

[토비야스 코흐/e-에스토니아 브리핑센터 : "국민들이 일상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당국이 편리하게 제공하고 있습니다.그리고 미래에는 이런 작업을 AI가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현직 총리의 부동산 보유현황 등 공직자들의 정보도 공평하고 손쉽게 확인할 수 있고, 향후 첨단 AI 산업 육성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야로슬라프 타브겐/저널리스트 : "'빅브라더'가 당신을 감시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현재까지 에스토니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에스토니아가 올해 인공지능 판사 도입을 선언한 건 이러한 전국민 '빅데이터'가 구축됐기 때문입니다.

28살의 '빅데이터' 전문가 오토 벨스베르그가 정부 책임자입니다.

[오토 벨스베르그/에스토니아 경제 통신부 데이터 책임자 : "판사봉을 휘두르는 방식은 아닙니다. (소액 재판은) 이미 반자동화되어 있는데, 이것을 좀 더 많이 자동화하려는 겁니다. 우선 올해 말 시작할 계획입니다."]

전국민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판사에 이어 인공지능 의사까지 개발한다는 야심찬 계획인데요.

실제로 AI가 재판에 활용될 법원에 가봤습니다.

새로 생긴 탈린 지방법원입니다.

현재 이곳의 민사 재판은 100% 종이없이 전자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AI 판사가 등장할 곳은 원고와 피고석만 있는 단촐한 민사 소액배상 법정.

7천 유로, 우리 돈으로 약 천만 원 미만의 비교적 간단한 재판에 우선 도입됩니다.

AI 판사가 기존 판례 등 자료를 분석해 배상액을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칼레 늘바크/회사원 : "흥미로운 아이디어입니다. 법률 시스템은 구조가 잘 잡혀 있기 때문에 로봇이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하는 시민들도 있습니다.

[타트야나 호테옌코바/자영업 : "사람과 관련된 일을 다루는 판사는 인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로봇이 분석은 잘하겠지만, 다양한 상황을 폭넓게 보는 시각이 필요한 문제니까요."]

법 전문가들은 인간의 '판단' 영역에 AI가 개입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입장입니다.

[타넬 케르키마/탈린 공대 로스쿨 학장 : "실제 소송에선 서로 다른 이해당사자들이 경쟁하듯 증거를 제시하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언쟁을 벌입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로봇이 그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에스토니아가 실험적인 AI 판사를 도입할 수 있는 건 한반도 5분의 1크기, 인구 130만 명인 작은 나라이다 보니 가능한 것이라는 시선이 적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따라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토마스 호크만/탈린 공과대 로스쿨교수 : "(한국이나 독일의) 공공부문에선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AI를) 의사결정 등에 사용하기에 여러 제한이 있다고 봅니다."]

에스토니아 법원에서도 800년 역사의 정의의 여신상은 사람의 공정한 판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판단을 이제 로봇이 대신할 수 있을까?

[타넬 케르키마/탈린 공대 로스쿨 학장 : "물론 우리가 이 알고리즘(AI 판사)에 대해서 테스트는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사용했을 때는 성공할 지 실패할 지 모릅니다."]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AI 판사가 솔로몬처럼 지혜로운 판관이 될 수 있을지, 판결만큼은 사람의 영역이라는 결론에 이를지 그 첫 실험대가 눈 앞에 다가왔습니다.

탈린에서 홍석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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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공지능이 판결을?…‘AI 판사’ 논란
    • 입력 2019-08-10 21:53:03
    • 수정2019-08-10 22: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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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인간 판사보다 AI가 빠르고 공정할 것 같다.

이런 이유로 AI 판사를 도입하자는 주장들이 전세계적으로 나오고 있는데요.

아예 정부 차원에서 재판에 AI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한 나라가 있습니다.

북유럽 발트해의 소국 에스토니아인데요.

AI 판사 도입을 둘러싼 논란의 현장을 홍석우 순회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발트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800여 년 역사의 아름다운 구 시가지로 유명합니다.

탈린은 중세 시대에 무역항으로 번성했습니다. 정부 주도의 4차 산업 혁명으로 에스토니아가 다시 번성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습니다.

["자유! 자유! 자유!"]

1991년 구 소련에서 독립한 나라.

그러나 당시 낙후된 분위기는 이제 박물관 수장고에서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크리스티안 사하로프/1989년생/큐레이터 : "형제들은 저에게 옛 소비에트 시절 얘기를 해주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VCR이라는 놀라운 기계가 들어왔다는 이야기 같은 거죠."]

에스토니아는 1992년 학교에서 컴퓨터 코딩 교육을 도입하는 등 급진적 디지털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2005년엔 세계 최초로 인터넷 전자투표를 도입했고, 올해의 경우 투표자의 절반 가량이 간편한 전자 투표를 이용했습니다.

[프리트 빈켈/에스토니아 선거관리위원회 : "특히 유권자가 해외에 있을 경우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가야 했는데, 지금은 어디에서든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투표소에 가지 않고도 노트북에 전자주민증을 인식시킨 뒤 정부의 투표 사이트로 들어가는 방식입니다.

여전히 반대 입장인 이들도 있지만, 도입 10여 년이 지난 만큼 안정 궤도에 접어들었다는 평갑니다.

[프리트 빈켈/에스토니아 선거관리위원회 :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회의적입니다. 주로 보안 문제 때문입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이어 전자주민증에 전국민의 각종 정보를 담는 '빅데이터'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국민의 의료와 세금, 부동산, 사업, 재판 기록 등을 99% 디지털화한 것입니다.

[토비야스 코흐/e-에스토니아 브리핑센터 : "국민들이 일상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당국이 편리하게 제공하고 있습니다.그리고 미래에는 이런 작업을 AI가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현직 총리의 부동산 보유현황 등 공직자들의 정보도 공평하고 손쉽게 확인할 수 있고, 향후 첨단 AI 산업 육성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야로슬라프 타브겐/저널리스트 : "'빅브라더'가 당신을 감시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현재까지 에스토니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에스토니아가 올해 인공지능 판사 도입을 선언한 건 이러한 전국민 '빅데이터'가 구축됐기 때문입니다.

28살의 '빅데이터' 전문가 오토 벨스베르그가 정부 책임자입니다.

[오토 벨스베르그/에스토니아 경제 통신부 데이터 책임자 : "판사봉을 휘두르는 방식은 아닙니다. (소액 재판은) 이미 반자동화되어 있는데, 이것을 좀 더 많이 자동화하려는 겁니다. 우선 올해 말 시작할 계획입니다."]

전국민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판사에 이어 인공지능 의사까지 개발한다는 야심찬 계획인데요.

실제로 AI가 재판에 활용될 법원에 가봤습니다.

새로 생긴 탈린 지방법원입니다.

현재 이곳의 민사 재판은 100% 종이없이 전자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AI 판사가 등장할 곳은 원고와 피고석만 있는 단촐한 민사 소액배상 법정.

7천 유로, 우리 돈으로 약 천만 원 미만의 비교적 간단한 재판에 우선 도입됩니다.

AI 판사가 기존 판례 등 자료를 분석해 배상액을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칼레 늘바크/회사원 : "흥미로운 아이디어입니다. 법률 시스템은 구조가 잘 잡혀 있기 때문에 로봇이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하는 시민들도 있습니다.

[타트야나 호테옌코바/자영업 : "사람과 관련된 일을 다루는 판사는 인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로봇이 분석은 잘하겠지만, 다양한 상황을 폭넓게 보는 시각이 필요한 문제니까요."]

법 전문가들은 인간의 '판단' 영역에 AI가 개입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입장입니다.

[타넬 케르키마/탈린 공대 로스쿨 학장 : "실제 소송에선 서로 다른 이해당사자들이 경쟁하듯 증거를 제시하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언쟁을 벌입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로봇이 그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에스토니아가 실험적인 AI 판사를 도입할 수 있는 건 한반도 5분의 1크기, 인구 130만 명인 작은 나라이다 보니 가능한 것이라는 시선이 적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따라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토마스 호크만/탈린 공과대 로스쿨교수 : "(한국이나 독일의) 공공부문에선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AI를) 의사결정 등에 사용하기에 여러 제한이 있다고 봅니다."]

에스토니아 법원에서도 800년 역사의 정의의 여신상은 사람의 공정한 판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판단을 이제 로봇이 대신할 수 있을까?

[타넬 케르키마/탈린 공대 로스쿨 학장 : "물론 우리가 이 알고리즘(AI 판사)에 대해서 테스트는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사용했을 때는 성공할 지 실패할 지 모릅니다."]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AI 판사가 솔로몬처럼 지혜로운 판관이 될 수 있을지, 판결만큼은 사람의 영역이라는 결론에 이를지 그 첫 실험대가 눈 앞에 다가왔습니다.

탈린에서 홍석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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