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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는 기간제’…민혁이도 우리도 울었습니다
입력 2019.08.12 (16:03) 취재K
이란 출신 '난민' 소년, 17살 김민혁 군의 아버지는 끝내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지난 8일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민혁 군 아버지에 대한 난민 재심사 결과 '인도적 체류' 결정을 내렸습니다. 1년간의 임시 체류는 허용됐지만, 그마저도 미성년자인 민혁 군을 돌봐야 한다는 점이 이유였습니다.

민혁 군이 성인이 된 뒤에도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민혁 군 말을 빌리면, 그야말로 '기간제 아빠'가 된 겁니다.

■ '차마 쓸 수 없었던 입장문'

나흘 뒤인 오늘(12일), 조금 늦은 입장문이 나왔습니다. 민혁 군과 아주중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구들 30명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입장문이 한 박자 늦은 건, "꿈에서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차마 쓸 수 없었던 입장문"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민혁 군 친구들 마음 속엔 언제나 한 가지 입장문만 있었습니다. '10년의 꿈이 이루어지다', 제목도 멋들어지게 달아놨지만, 이제는 영영 읽어볼 수 없는 입장문이 됐습니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8월까지 15개월, 3년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던 1년 남짓의 시간, 여유를 낼 수 없던 우리의 시간과 싸우고 때로는 부모님의 걱정과 싸우고 또 때로는 우리의 나약함, 이기심과 싸우며 걸어왔던 길, 낭떠러지를 걷는 것 같은 위태로운 길이었기에 행여 우리로 인해 일을 그르칠까 봐 마음 졸이며 지켜왔던 시간들, 물거품처럼 허망하게 부수어진 민혁이와 민혁이 아버님이 10년을 기다려 온 꿈."
(아주중 졸업생 '차마 쓸 수 없었던 입장문을 쓰다' 中)

민혁 군의 아주중학교 친구들은 지난해 5월부터 이들 부자(父子)의 난민 인정을 위해 힘을 보태왔습니다. 릴레이 1인 시위부터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아주중학교 오현록 선생님과 학교 친구들은 항상 민혁 군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줬습니다.

물론 늘 즐거운 일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심사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현실적인 문제들이 닥쳤습니다. 박지민(잠일고 1학년) 군은 "학원도 가야 하고, 학교생활에도 집중해야 하는데 시간을 많이 뺏기다 보니 걱정하시는 부모님들이 많았다"며 "올해 고등학생이 돼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처음 갖고 있던 열정이 흔들리기도 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모인 건, "친구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고맙다는 말도 서로 나누는지 묻자, "친구끼리 오글거리게 그런 말을 하느냐"는 웃음기 섞인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민혁 군 친구들은 지난해 7월 ‘제 친구가 공정한 심사를 받아 난민으로 인정되게 해 주십시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려 3만 1천여 명의 동의를 받았습니다.민혁 군 친구들은 지난해 7월 ‘제 친구가 공정한 심사를 받아 난민으로 인정되게 해 주십시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려 3만 1천여 명의 동의를 받았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똑같은 사유로 난민 신청한 아들과 아버지에게, 아들은 박해의 위험이 있고, 아버지는 박해의 위험이 없다는 판정을 내리다니요. … 우리는 묻고 싶습니다. 우리 국민이 아니면 아무렇게나 짓밟아도 되는지, 그런 사고가 일제가 타민족이라는 이유로 우리 민족을 유린했던 것을 정당화한 생각, 주권을 잃어 난민과 같았던 우리 백성을 위안부로 징용으로 끌고 갔던 것을 합리화한 생각과 다른 생각일 수 있는지, 정말 다른 나라 사람에겐 어떤 부당한 일을 저질러도 다 묵인되는 것인지, 눈감을 수 있는 것인지, 이 불공정을 진정 그대로 두실 것인지."
(아주중 졸업생 '차마 쓸 수 없었던 입장문을 쓰다' 中)

민혁 군은 종교적 이유로 이란으로 돌아가면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지난해 난민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민혁 군 아버지는 2016년 "신앙이 확고하지 않다"는 이유로 난민 불인정 처분을 받았고, 소송에서도 패소했습니다. 이번 재심사에서도 난민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민혁 군은 "제가 난민 인정을 받았고 아빠와 저는 같은 나라에서 온 가족인데, 저한테는 박해가 있고 아빠한테는 박해가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많이 힘들어하신다"며 걱정스러운 마음도 드러냈습니다.

속상해한 건 민혁 군뿐이 아니었습니다. 난민 지위 불인정 결과가 나온 뒤 민혁 군과 아버지, 오현록 선생님과 친구들의 식사 자리에서 선생님은 끝내 눈물을 보였습니다. 박지민 군은 "선생님이 밥 먹다가 너무 많이 우시는데, 마음이 정말 아팠다"며 "그런데 민혁이는 오히려 인도적 체류가 허가된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그렇게 말해줬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8일,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별관에서 김민혁 군의 아버지 A 씨에 대한 난민 재심사 결과 ‘인도적 체류’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지난 8일,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별관에서 김민혁 군의 아버지 A 씨에 대한 난민 재심사 결과 ‘인도적 체류’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2019년 8월 8일은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민혁이가 울고 선생님이 울고 적어도 아주중이 운 날이니까요. 친구를 지키고 생명을 지키려 했던 작은 정신 하나가 꺾인 날이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다짐합니다. 그리고 호소합니다. 우리는 힘이 많이 부족하다고, 그럼에도 끝까지 싸울 거라고. 그러니 누가 됐든 우리의 슬픔 곁에 서 함께 해 달라고. 어둠 속에 버려진 이들을 감싸는 빛의 길을 걷자고."
(아주중 졸업생 '차마 쓸 수 없었던 입장문을 쓰다' 中)

■ 생이별 위기의 부자…후반전 뛰겠다는 친구들

민혁 군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막 쉬는 시간이 끝난 것 같아요. 민혁이가 난민 인정받은 게 전반전이라고 한다면, 이제 아버지도 인정받으실 수 있도록 후반전을 열심히 뛰어봐야죠." 지민 군은 친구 민혁 군을 위해서라면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시간과 노력을 쏟아볼 생각입니다.

민혁 군은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몇 년째 하고 있는데, 이제 그만 고마워하고 싶다"며 "이젠 내가 도움이 되는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친구들이 자신을 돕는 일을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더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에, 따뜻한 진심이 묻어났습니다.

난민법 제21조 1항은 심사 통보를 받은 날부터 30일 이내 이의신청, 90일 내 행정소송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민혁 군 아버지는 당국의 결정에 맞서 이의신청을 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계획입니다. 생이별 위기에 놓인 부자의 엇갈린 운명, 끝까지 지켜봐야겠습니다.

※ KBS 제보는 전화 02-781-4444번이나,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 'KBS 제보'를 검색하셔서 친구맺기를 하신 뒤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영상 제보는 보도에 반영되면 사례하겠습니다. KBS 뉴스는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갑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 ‘우리 아빠는 기간제’…민혁이도 우리도 울었습니다
    • 입력 2019-08-12 16:03:23
    취재K
이란 출신 '난민' 소년, 17살 김민혁 군의 아버지는 끝내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지난 8일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민혁 군 아버지에 대한 난민 재심사 결과 '인도적 체류' 결정을 내렸습니다. 1년간의 임시 체류는 허용됐지만, 그마저도 미성년자인 민혁 군을 돌봐야 한다는 점이 이유였습니다.

민혁 군이 성인이 된 뒤에도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민혁 군 말을 빌리면, 그야말로 '기간제 아빠'가 된 겁니다.

■ '차마 쓸 수 없었던 입장문'

나흘 뒤인 오늘(12일), 조금 늦은 입장문이 나왔습니다. 민혁 군과 아주중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구들 30명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입장문이 한 박자 늦은 건, "꿈에서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차마 쓸 수 없었던 입장문"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민혁 군 친구들 마음 속엔 언제나 한 가지 입장문만 있었습니다. '10년의 꿈이 이루어지다', 제목도 멋들어지게 달아놨지만, 이제는 영영 읽어볼 수 없는 입장문이 됐습니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8월까지 15개월, 3년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던 1년 남짓의 시간, 여유를 낼 수 없던 우리의 시간과 싸우고 때로는 부모님의 걱정과 싸우고 또 때로는 우리의 나약함, 이기심과 싸우며 걸어왔던 길, 낭떠러지를 걷는 것 같은 위태로운 길이었기에 행여 우리로 인해 일을 그르칠까 봐 마음 졸이며 지켜왔던 시간들, 물거품처럼 허망하게 부수어진 민혁이와 민혁이 아버님이 10년을 기다려 온 꿈."
(아주중 졸업생 '차마 쓸 수 없었던 입장문을 쓰다' 中)

민혁 군의 아주중학교 친구들은 지난해 5월부터 이들 부자(父子)의 난민 인정을 위해 힘을 보태왔습니다. 릴레이 1인 시위부터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아주중학교 오현록 선생님과 학교 친구들은 항상 민혁 군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줬습니다.

물론 늘 즐거운 일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심사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현실적인 문제들이 닥쳤습니다. 박지민(잠일고 1학년) 군은 "학원도 가야 하고, 학교생활에도 집중해야 하는데 시간을 많이 뺏기다 보니 걱정하시는 부모님들이 많았다"며 "올해 고등학생이 돼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처음 갖고 있던 열정이 흔들리기도 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모인 건, "친구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고맙다는 말도 서로 나누는지 묻자, "친구끼리 오글거리게 그런 말을 하느냐"는 웃음기 섞인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민혁 군 친구들은 지난해 7월 ‘제 친구가 공정한 심사를 받아 난민으로 인정되게 해 주십시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려 3만 1천여 명의 동의를 받았습니다.민혁 군 친구들은 지난해 7월 ‘제 친구가 공정한 심사를 받아 난민으로 인정되게 해 주십시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려 3만 1천여 명의 동의를 받았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똑같은 사유로 난민 신청한 아들과 아버지에게, 아들은 박해의 위험이 있고, 아버지는 박해의 위험이 없다는 판정을 내리다니요. … 우리는 묻고 싶습니다. 우리 국민이 아니면 아무렇게나 짓밟아도 되는지, 그런 사고가 일제가 타민족이라는 이유로 우리 민족을 유린했던 것을 정당화한 생각, 주권을 잃어 난민과 같았던 우리 백성을 위안부로 징용으로 끌고 갔던 것을 합리화한 생각과 다른 생각일 수 있는지, 정말 다른 나라 사람에겐 어떤 부당한 일을 저질러도 다 묵인되는 것인지, 눈감을 수 있는 것인지, 이 불공정을 진정 그대로 두실 것인지."
(아주중 졸업생 '차마 쓸 수 없었던 입장문을 쓰다' 中)

민혁 군은 종교적 이유로 이란으로 돌아가면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지난해 난민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민혁 군 아버지는 2016년 "신앙이 확고하지 않다"는 이유로 난민 불인정 처분을 받았고, 소송에서도 패소했습니다. 이번 재심사에서도 난민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민혁 군은 "제가 난민 인정을 받았고 아빠와 저는 같은 나라에서 온 가족인데, 저한테는 박해가 있고 아빠한테는 박해가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많이 힘들어하신다"며 걱정스러운 마음도 드러냈습니다.

속상해한 건 민혁 군뿐이 아니었습니다. 난민 지위 불인정 결과가 나온 뒤 민혁 군과 아버지, 오현록 선생님과 친구들의 식사 자리에서 선생님은 끝내 눈물을 보였습니다. 박지민 군은 "선생님이 밥 먹다가 너무 많이 우시는데, 마음이 정말 아팠다"며 "그런데 민혁이는 오히려 인도적 체류가 허가된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그렇게 말해줬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8일,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별관에서 김민혁 군의 아버지 A 씨에 대한 난민 재심사 결과 ‘인도적 체류’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지난 8일,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별관에서 김민혁 군의 아버지 A 씨에 대한 난민 재심사 결과 ‘인도적 체류’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2019년 8월 8일은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민혁이가 울고 선생님이 울고 적어도 아주중이 운 날이니까요. 친구를 지키고 생명을 지키려 했던 작은 정신 하나가 꺾인 날이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다짐합니다. 그리고 호소합니다. 우리는 힘이 많이 부족하다고, 그럼에도 끝까지 싸울 거라고. 그러니 누가 됐든 우리의 슬픔 곁에 서 함께 해 달라고. 어둠 속에 버려진 이들을 감싸는 빛의 길을 걷자고."
(아주중 졸업생 '차마 쓸 수 없었던 입장문을 쓰다' 中)

■ 생이별 위기의 부자…후반전 뛰겠다는 친구들

민혁 군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막 쉬는 시간이 끝난 것 같아요. 민혁이가 난민 인정받은 게 전반전이라고 한다면, 이제 아버지도 인정받으실 수 있도록 후반전을 열심히 뛰어봐야죠." 지민 군은 친구 민혁 군을 위해서라면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시간과 노력을 쏟아볼 생각입니다.

민혁 군은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몇 년째 하고 있는데, 이제 그만 고마워하고 싶다"며 "이젠 내가 도움이 되는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친구들이 자신을 돕는 일을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더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에, 따뜻한 진심이 묻어났습니다.

난민법 제21조 1항은 심사 통보를 받은 날부터 30일 이내 이의신청, 90일 내 행정소송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민혁 군 아버지는 당국의 결정에 맞서 이의신청을 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계획입니다. 생이별 위기에 놓인 부자의 엇갈린 운명, 끝까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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