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방위비 5배 올려달라’…韓 “이번엔 안 참아”

입력 2019.08.14 (10:03) 수정 2019.08.14 (10:1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방위비 10억 달러를 받아내는 게 아파트 월세 수금보다 쉬웠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이 논란입니다. 이보다 앞서서는 "한국이 방위비를 더 내기로 합의했다"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아직 협상은 시작도 안 했는데 말이죠. 심지어 한국도 미국도 아직 협상팀조차 꾸려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미국이어도...' 국내 여론 부글부글

'방위비 분담금'처럼 민감한 사안을 협상 상대국과 아무런 조율 없이, 그것도 공식석상에서 불쑥불쑥 말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이만저만 결례가 아닙니다. 미국 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일고 있지만, 지금 우리 국민과 정부가 느끼는 반감과 황당함 정도는 아닐 겁니다.

오죽하면 "한국을 동맹으로 생각하면 이럴 수는 없다"며 보수층에서조차 유례 없이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반미 여론이 높아질까 우려된다는 얘기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일까요? 정치권도 전에 없이 비장합니다.

"지난번엔 참았는데 이번엔 안 참는다"

우상호 의원우상호 의원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서 한 말입니다. "제가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조야에 꼭 알려주고 싶어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라고 덧붙인 것을 보면, 충동적인 말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안 참습니다"라고 단언해 올해 방위비 분담금 비준 동의가 쉽지 않을 것을 예고했습니다. '방위비 분담금' 집행은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백승주 의원백승주 의원

여당뿐만이 아닙니다. 현 정부의 안보 정책에 불만이 많은 제1야당도 이 사안에서만큼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국방위 간사인 백승주 의원은 한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태평양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아시아·태평양전략을 추진하는 데 한국이 엄청난 기여를 해왔기 때문에, '상호 윈윈'해온 것이지 미국이 일방적으로 한국을 도와줬다? 그건 아닙니다"라고 강변했습니다.

이어 "트럼프가 국내 선거용으로 어떤 허풍을 떨어도 합리적 수준에서 조정돼야 되고, 우리 국회에서 그렇게 통제를 할 겁니다"라며 강경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안 내겠다는 게 아니라, 기여한 만큼 주겠다는 것"

주한미군은 우리에게 포기하기 어려운 안보 자산입니다. 그런데 한국도 그만큼 미국이 포기하기 어려운 지정학적·전략적 가치를 가집니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힘과 전략적 우위를 유지하고 G2로 무섭게 떠오른 중국을 견제하려면, 미일 동맹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다른 국가들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안 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기여한 만큼, 합리적 수준에서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무턱대고 총액 얼마를 증액해달라고 하지 말고, 주한미군을 운용하는 데 있어 어디서 얼마만큼 필요한지 잘 따져서 분담하자는 겁니다.

'유효기간 1년 안 돼' , '총액 말고 항목별'

미국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오른쪽)와 현존 최강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 (사진 출처 : EPA=연합뉴스)미국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오른쪽)와 현존 최강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 (사진 출처 : EPA=연합뉴스)

정부는 우선 올해부터 1년 단위로 단축된 협상 기간을 3~5년으로 되돌리자고 요구할 계획입니다. 지난 협상에서 8.2% 인상해 올해 처음으로 1조 원 넘는 분담금을 내놨는데, 불과 4개 만에 또 '증액'을 놓고 씨름하게 생겼으니 매년 이럴 순 없다는 겁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항목별로 필요액을 따지자는 겁니다. 지금처럼 1조 390억 원을 내주면서, 국회에서조차 사용내역을 확인하고 감시하지 못하는 기형적 상태를 국민들이 더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웃 나라 일본은 진작부터 주일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항목별로 계산해 협상해왔습니다. 우리는 주둔 부대의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지만, 일본은 부지 비용도 분담금에 포함돼 나눠 부담해왔습니다.

'막무가내' 트럼프를 넘어라…미국 협상팀도 '진땀'

트럼프 미국 대통령트럼프 미국 대통령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지난해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참여했던 미국 측 당국자들이 '트럼프 리스크'를 제일 힘들어했다는 후문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입니다. 밤새 협상해 양측이 합의문 초안까지 만들고 헤어졌는데,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이 안 된대. 우리도 어쩔 수 없어. 이해해줘'라며 판을 엎은 게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합니다. 미국 측이 난감한 얼굴로 트럼프 대통령 얼굴이 1면에 찍힌 '워싱턴포스트(WP)'를 들어 보였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이러는 걸까요? 트럼프 대통령이 쓴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만의 성공적인 거래기술로 "협상하고자 하는 바를 기정사실화한 다음 압박하라", "예상치 못한 패로 판을 흔들어라" 등을 밝혀 놓았습니다.

트럼프 저서 ‘거래의 기술’ (사진 출처 : AP=연합뉴스)트럼프 저서 ‘거래의 기술’ (사진 출처 : AP=연합뉴스)

'이미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올려주기로 합의했다'라고 증액을 기정사실화해버린 다음 압박하고, 종잡을 수 없는 계산법으로 어느 장단에 맞춰 대응 논리를 짜야할 지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맞아 떨어지지 않나요?

국익 건 전쟁 … "국민 관심이 최고의 협상 카드"

지난 방위비 분담금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한 당국자는 며칠 전, "공무원으로서 매우 가치 있는 경험이었지만, 올해 안 해도 돼 너무 기쁘다. 두 번 할 건 아닌 것 같다"는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면서 직접 해보니, 협상장에서 가장 힘센 카드는 우리 국민의 관심과 감시, 그리고 여론이더라고 전했습니다. 조만간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될 텐데요, 차분히 응원하며 집요하게 지켜보겠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美 ‘방위비 5배 올려달라’…韓 “이번엔 안 참아”
    • 입력 2019-08-14 10:03:08
    • 수정2019-08-14 10:14:13
    취재K
"한국에서 방위비 10억 달러를 받아내는 게 아파트 월세 수금보다 쉬웠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이 논란입니다. 이보다 앞서서는 "한국이 방위비를 더 내기로 합의했다"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아직 협상은 시작도 안 했는데 말이죠. 심지어 한국도 미국도 아직 협상팀조차 꾸려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미국이어도...' 국내 여론 부글부글

'방위비 분담금'처럼 민감한 사안을 협상 상대국과 아무런 조율 없이, 그것도 공식석상에서 불쑥불쑥 말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이만저만 결례가 아닙니다. 미국 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일고 있지만, 지금 우리 국민과 정부가 느끼는 반감과 황당함 정도는 아닐 겁니다.

오죽하면 "한국을 동맹으로 생각하면 이럴 수는 없다"며 보수층에서조차 유례 없이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반미 여론이 높아질까 우려된다는 얘기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일까요? 정치권도 전에 없이 비장합니다.

"지난번엔 참았는데 이번엔 안 참는다"

우상호 의원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서 한 말입니다. "제가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조야에 꼭 알려주고 싶어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라고 덧붙인 것을 보면, 충동적인 말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안 참습니다"라고 단언해 올해 방위비 분담금 비준 동의가 쉽지 않을 것을 예고했습니다. '방위비 분담금' 집행은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백승주 의원
여당뿐만이 아닙니다. 현 정부의 안보 정책에 불만이 많은 제1야당도 이 사안에서만큼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국방위 간사인 백승주 의원은 한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태평양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아시아·태평양전략을 추진하는 데 한국이 엄청난 기여를 해왔기 때문에, '상호 윈윈'해온 것이지 미국이 일방적으로 한국을 도와줬다? 그건 아닙니다"라고 강변했습니다.

이어 "트럼프가 국내 선거용으로 어떤 허풍을 떨어도 합리적 수준에서 조정돼야 되고, 우리 국회에서 그렇게 통제를 할 겁니다"라며 강경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안 내겠다는 게 아니라, 기여한 만큼 주겠다는 것"

주한미군은 우리에게 포기하기 어려운 안보 자산입니다. 그런데 한국도 그만큼 미국이 포기하기 어려운 지정학적·전략적 가치를 가집니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힘과 전략적 우위를 유지하고 G2로 무섭게 떠오른 중국을 견제하려면, 미일 동맹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다른 국가들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안 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기여한 만큼, 합리적 수준에서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무턱대고 총액 얼마를 증액해달라고 하지 말고, 주한미군을 운용하는 데 있어 어디서 얼마만큼 필요한지 잘 따져서 분담하자는 겁니다.

'유효기간 1년 안 돼' , '총액 말고 항목별'

미국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오른쪽)와 현존 최강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 (사진 출처 : EPA=연합뉴스)
정부는 우선 올해부터 1년 단위로 단축된 협상 기간을 3~5년으로 되돌리자고 요구할 계획입니다. 지난 협상에서 8.2% 인상해 올해 처음으로 1조 원 넘는 분담금을 내놨는데, 불과 4개 만에 또 '증액'을 놓고 씨름하게 생겼으니 매년 이럴 순 없다는 겁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항목별로 필요액을 따지자는 겁니다. 지금처럼 1조 390억 원을 내주면서, 국회에서조차 사용내역을 확인하고 감시하지 못하는 기형적 상태를 국민들이 더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웃 나라 일본은 진작부터 주일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항목별로 계산해 협상해왔습니다. 우리는 주둔 부대의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지만, 일본은 부지 비용도 분담금에 포함돼 나눠 부담해왔습니다.

'막무가내' 트럼프를 넘어라…미국 협상팀도 '진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지난해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참여했던 미국 측 당국자들이 '트럼프 리스크'를 제일 힘들어했다는 후문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입니다. 밤새 협상해 양측이 합의문 초안까지 만들고 헤어졌는데,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이 안 된대. 우리도 어쩔 수 없어. 이해해줘'라며 판을 엎은 게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합니다. 미국 측이 난감한 얼굴로 트럼프 대통령 얼굴이 1면에 찍힌 '워싱턴포스트(WP)'를 들어 보였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이러는 걸까요? 트럼프 대통령이 쓴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만의 성공적인 거래기술로 "협상하고자 하는 바를 기정사실화한 다음 압박하라", "예상치 못한 패로 판을 흔들어라" 등을 밝혀 놓았습니다.

트럼프 저서 ‘거래의 기술’ (사진 출처 : AP=연합뉴스)
'이미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올려주기로 합의했다'라고 증액을 기정사실화해버린 다음 압박하고, 종잡을 수 없는 계산법으로 어느 장단에 맞춰 대응 논리를 짜야할 지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맞아 떨어지지 않나요?

국익 건 전쟁 … "국민 관심이 최고의 협상 카드"

지난 방위비 분담금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한 당국자는 며칠 전, "공무원으로서 매우 가치 있는 경험이었지만, 올해 안 해도 돼 너무 기쁘다. 두 번 할 건 아닌 것 같다"는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면서 직접 해보니, 협상장에서 가장 힘센 카드는 우리 국민의 관심과 감시, 그리고 여론이더라고 전했습니다. 조만간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될 텐데요, 차분히 응원하며 집요하게 지켜보겠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