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후손이 번영하면 강제동원 배상은 안 받아도 된다?”

입력 2019.08.18 (11:00) 수정 2019.08.1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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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팩트체크팀은 최근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책인 인정 판결과 관련해 두 차례 팩트체크 보도를 를 통해 전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이뤄졌던 전승국과 패전국 간의 조약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한국의 강제동원 청구권이 소멸되었다는 주장을 검증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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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의 대법원 판결 논란(?)이 2005년 노무현 정부 당시 민관공동위원회로, 다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최근엔 다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까지 거슬러 올라간 상황입니다. 방송보도에 충분히 담지 못한 내용을 포함해 관련 팩트체크 종합판을 정리해 봅니다.


■ 미국까지 끌어들인 일본의 '언론 플레이'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에서 시작된 일본의 무역 도발, 그런데 최근엔 "미국이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는 취지의 일본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마이니치신문>은 태평양 전쟁 미군 포로들이 2000년대 초, 일본 기업을 상대로 미국 법원에 강제노동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이 잇따랐다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미국 국무부가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으로 청구권을 포기했다면서, 자국민인 원고 측 청구에 반대되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미국 정부가 최근 한국 대법원 판결 여파로 미군 포로들이 다시 배상 청구에 나설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14일 <요미우리신문>도 미국이 최근 한일 관계를 두고, 일본 정부의 입장에 '이해를 표명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대화하면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을 뒤집는 것은 안 된다"고 설명했는데, 이에 폼페이오 장관이 "알고 있다"고 반응했다는 것입니다.

두 기사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이름, '샌프란시스코 조약'입니다. 한국 대법원에서 태평양 전쟁 배상에 대한 개인 청구권을 인정하게 되면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게 두 기사가 '미국의 입장'이라고 밝힌 내용이죠. 샌프란시스코 조약부터 보겠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원문샌프란시스코 조약 원문

■ '샌프란시스코 조약(Treaty of San Francisco)'이 뭐길래?

태평양전쟁의 패전국 일본과 승전국 '49개 연합국'이 1951년에 맺은 전후 처리를 위한 조약입니다. '대일 강화 조약(Treaty of Peace with Japan)'이라고도 합니다. 이 조약 이후의 전후 질서를 '샌프란시스코 체제'라고 합니다.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이 조약의 주요 의제는 일본의 주권 회복과 일본이 침략했던 나라들에 대한 전쟁 배상 문제였습니다.

전쟁 피해 '개인 청구권'과 관련된 내용은 이 조약의 14조에 있습니다. 14조는 연합국이 일본에 대한 재산권을 어디까지 행사할 수 있는지 규정하면서, 말미에 이렇게 못 박습니다.

"연합국의 모든 배상 청구권과 전쟁 수행 과정에서 일본 및 그 국민이 자행한 어떤 행동으로부터 발생된 연합국 및 그 국민의 다른 청구권, 그리고 점령에 따른 직접적인 군사적 비용에 관한 연합국의 청구권을 포기한다."

"Except as otherwise provided in the present Treaty, the Allied Powers waive all reparations claims of the Allied Powers, other claims of the Allied Powers and theri nationals arising out of any actions taken by Japan and its nationals in the course of the prosecutions of the war, and claims of the Allied Powers for direct military costs of occupation."


태평양전쟁 승전국인 연합국에 속한 49개 국가들과 국민 개인이 향후 일본에 대해 더 이상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정리한 것이죠.

■ 美 법원, 샌프란시스코 조약 14조 근거로 '개인 청구권' 불인정

미국 법원이 자국민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을 기각한 이유도 바로 이 14조 때문입니다. 미국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중 대표적인 것이 '제임스 킹 사건[In re World War II Era Japanese Forced Labor Litigation 114 F. Supp. 2d 939 (N.D. Cal. 2000)]'인데요.

태평양 전쟁에 참여한 미군 병사 제임스 킹이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전범기업에 강제동원된 데 대한 손해 배상을 미국 법원에 청구했는데, 기각됐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일본에 개인 청구권을 더 이상 행사하지 않겠다고 정리했으니, '끝났다'는 게 미국 법원의 판단입니다.

한국 광복군 사진한국 광복군 사진

■ 항일투쟁 지속했지만…'서명국' 되지 못한 한국

미국의 이 판결은 언뜻 보면 우리 나라의 강제동원 피해 소송과 유사해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죠. 왜일까요?

미국 법원이 미군 병사 개인의 청구권 기각 이유로 밝힌 샌프란시스코 조약 14조가 우리나라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는 태평양전쟁 당시 광복군 활동 등 연합국 편에 서 있었는데도, 샌프란시스코 조약 당사자인 '승전국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당시 일본과는 무관했던 폴란드 등 무려 49개 나라들이 서명국에 이름을 올렸는데, 한국은 없었습니다.

배경 설명을 좀 덧붙이자면,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초안에는 한국이 서명국에 이름을 올렸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미국) 국무부는 제6차 초안(1949.12.29)에 한국을 협상국 및 서명국 명단에 올렸다. 이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전제로 '한국의 위신'에 따른 미국의 전략적 고려였다."

"1949년 12월 29일 미국 국무부가 초안과 함께 작성한 '일본과의 평화조약 초안에 대한 논평'도 한국이 수십 년간의 항일 저항, 전투 기록이 있다며 강화조약 서명국이 돼야 하는 이유를 적었다" (<독도 1947>, 정병준 저, 돌베개, 2010)

하지만 조약 초안이 뒤집히고, 한국의 교전국 지위는 최종 박탈됐습니다. 당시 일본 요시다 시게루 내각이 한국이 승전국에 이름을 올리면 일본 내 한국민들이 재산권 행사를 할 것을 우려하면서 미국 측에 집요하게 한국을 배제하라고 요구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어쨌든 냉전체제 돌입 후 공산주의 진영에 대한 대항이 급선무였던 미국은 '미-일 안보동맹'을 체결하기 위해 일본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결국 한국을 서명국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전쟁 후 미국을 포함한 49개 나라들은 일본으로부터 유형 무형의 전쟁 피해 배상을 받았습니다. '승전국'의 자격이었습니다. 그 이후 배상을 '포기'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14조는 승전국에 포함되지 못한 우리와는 무관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서명하는 요시다 시게루 전 日총리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서명하는 요시다 시게루 전 日총리

■ '식민지'에 적용되는 샌프란시스코 조약 4조…결국 "알아서 처리하라"

우리와 같은 식민지 국가들의 재산권 문제는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로 정리됩니다.

"일본의 통치로부터 이탈된 지역의 재산권 등 청구권 문제는 해당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특별약정으로 처리한다"

"(a) Subject to the provisions of paragraph (b) of this Article, the disposition of property of Japan and of its nationals in the areas referred to in Article 2, and their claims, including debts, against the authorities presently administering such areas and the residents (including juridical persons) thereof, and the disposition in Japan of property of such authorities and residents, and of claims, including ; debts, of such authorities and residents against. Japan and its nationals, shall be the subject of special arrangements between Japan and such authorities. The property of any of the Allied Powers or its nationals in the areas referred to in Article 2 shall, in so far as this has not already been done, be returned by the ad ministering authority in the condition in which it now exists."


식민지였던 우리와 일본은 '따로' 약정을 맺어 처리하라고 정리한 것입니다. 이 조항이 이후 1965년 체결한 한일 기본조약의 근거가 됩니다.


■ '샌프란 조약'→1965 한일조약→2018 대법원 판결

1965년 박정희 정권이 일본과 한일 기본조약을 맺기까지 협상 기간이 10년 넘게 지지부진했던 것은 일제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배상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은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버텼고, 결국 박정희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배상 책임'이라는 명시적인 표현을 끝내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 문제가 한일협정으로도 정리되지 않은 채 수십 년이 흘러 우리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개인 소송이 시작됐고, 지난해 마침내 대법원은 이들의 개인 청구권을 최종 인정했습니다.

자, 이제 판단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요미우리와 마이니치신문의 내용처럼, 우리 대법원이 일본 강제동원 개인 청구권을 인정한 것이 전후 '샌프란시스코 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당시 우리나라가 승전국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역설적으로 승전국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일분에 대한 개인 청구권을 포기하기로 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미국 법원의 개인 청구권 기각 판결도 우리와 무관한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마이니치신문의 내용처럼 한국 대법원 판결의 여파로 미군 포로들이 다시 배상 청구에 나설 수 있을까요? 소송을 할 수는 있겠지만, 승소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판례법'이라고도 불리는 영미법의 체계에서 판례가 갖는 의미는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 체계에서보다 훨씬 큽니다. 앞서 소개한 '제임스 킹 판결'처럼, 전후 질서를 규정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근거로 청구권 기각을 한 판례가 남아 있는 한, 당시 미군 포로들이 대 일본 배상 청구에서 승소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 "왜 우리는 미국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나?"…韓·美 단순 비교의 함정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지난달 일제 강제동원 배상에 대한 우리 대법원 판결이 잘못됐다는 취지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A4용지 26장 분량의 이 글 끝 부분, "미국에서도 (우리 나라와) 유사한 사안에 대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배척한 사례가 있다"면서 '제임스킹 판결'을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판결문 내용 일부를 인용합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원고들이 받은 고통에 대한 보상이 부정되었고, 전쟁 포로였던 사람들과 헤아릴 수 없는 전쟁 생존자들도 그러하지만, 그들 자신과 그들의 후손들이 자유롭고 더 평화로운 세계에서 살아가는 무한한 포상은 그러한 빚을 갚을 만한 것이다"라는 내용입니다. 우리와 미국의 다른 점은 생략한 채, 미국 재판부가 그럴 듯하게 덧붙인 내용을 인용한 겁니다. 김 판사는 '(우리와) 유사한 미국의 판례'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선우정 조선일보 사회부장은 지난 7일 자신의 칼럼에 김 판사가 인용한 제임스 킹 판결과 글을 인용하면서 "선대의 고난은 후대의 번영으로 충분히 보상됐다"고 재해석합니다. 그러면서 "한·일 현대사에 잘 들어맞는 명구(名句)라고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두 글 모두 "우리는 왜 미국처럼 과거사를 '쿨(cool)하게' 정리 못 하고 후대의 번영으로 나아가지 못하냐"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 한국과 미국의 '전쟁 청구권' 근거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데도 "유사하다""잘 들어맞는다"며 소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단순 비교는 명백한 오류입니다.

이와 관련해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미국의 경우와 달리 우리나라에서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국내법적 지위를 갖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또 "샌프란시스코 조약 이후 맺어진 1965년 한일 기본조약에서 '배상 책임'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은 것이 최근 한일 갈등의 근본 문제이며, 현 한일관계를 미국 사례와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김민웅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승전국 전쟁 배상 포기를 전제로 하고 성립했다는 사실을 부정한 채 미국 법원 판결의 태평양전쟁 피해자 소송 기각을 한일현대사의 모델처럼 내세우고 있다"면서, "승전국과 패전국의 관계에서 생겨난 문제와 식민 지배의 불법적 피해를 해결하는 문제를 동일한 차원에 놓고 보았다는 역사적 사유의 붕괴가 이 논리에 담겨 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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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후손이 번영하면 강제동원 배상은 안 받아도 된다?”
    • 입력 2019-08-18 11:00:48
    • 수정2019-08-18 11:01:01
    취재후·사건후
KBS 팩트체크팀은 최근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책인 인정 판결과 관련해 두 차례 팩트체크 보도를 를 통해 전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이뤄졌던 전승국과 패전국 간의 조약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한국의 강제동원 청구권이 소멸되었다는 주장을 검증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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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naver.com/main/read.nhn?oid=056&aid=0010731740&sid1=100&mode=LSD&mid=shm


2018년의 대법원 판결 논란(?)이 2005년 노무현 정부 당시 민관공동위원회로, 다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최근엔 다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까지 거슬러 올라간 상황입니다. 방송보도에 충분히 담지 못한 내용을 포함해 관련 팩트체크 종합판을 정리해 봅니다.


■ 미국까지 끌어들인 일본의 '언론 플레이'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에서 시작된 일본의 무역 도발, 그런데 최근엔 "미국이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는 취지의 일본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마이니치신문>은 태평양 전쟁 미군 포로들이 2000년대 초, 일본 기업을 상대로 미국 법원에 강제노동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이 잇따랐다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미국 국무부가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으로 청구권을 포기했다면서, 자국민인 원고 측 청구에 반대되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미국 정부가 최근 한국 대법원 판결 여파로 미군 포로들이 다시 배상 청구에 나설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14일 <요미우리신문>도 미국이 최근 한일 관계를 두고, 일본 정부의 입장에 '이해를 표명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대화하면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을 뒤집는 것은 안 된다"고 설명했는데, 이에 폼페이오 장관이 "알고 있다"고 반응했다는 것입니다.

두 기사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이름, '샌프란시스코 조약'입니다. 한국 대법원에서 태평양 전쟁 배상에 대한 개인 청구권을 인정하게 되면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게 두 기사가 '미국의 입장'이라고 밝힌 내용이죠. 샌프란시스코 조약부터 보겠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원문
■ '샌프란시스코 조약(Treaty of San Francisco)'이 뭐길래?

태평양전쟁의 패전국 일본과 승전국 '49개 연합국'이 1951년에 맺은 전후 처리를 위한 조약입니다. '대일 강화 조약(Treaty of Peace with Japan)'이라고도 합니다. 이 조약 이후의 전후 질서를 '샌프란시스코 체제'라고 합니다.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이 조약의 주요 의제는 일본의 주권 회복과 일본이 침략했던 나라들에 대한 전쟁 배상 문제였습니다.

전쟁 피해 '개인 청구권'과 관련된 내용은 이 조약의 14조에 있습니다. 14조는 연합국이 일본에 대한 재산권을 어디까지 행사할 수 있는지 규정하면서, 말미에 이렇게 못 박습니다.

"연합국의 모든 배상 청구권과 전쟁 수행 과정에서 일본 및 그 국민이 자행한 어떤 행동으로부터 발생된 연합국 및 그 국민의 다른 청구권, 그리고 점령에 따른 직접적인 군사적 비용에 관한 연합국의 청구권을 포기한다."

"Except as otherwise provided in the present Treaty, the Allied Powers waive all reparations claims of the Allied Powers, other claims of the Allied Powers and theri nationals arising out of any actions taken by Japan and its nationals in the course of the prosecutions of the war, and claims of the Allied Powers for direct military costs of occupation."


태평양전쟁 승전국인 연합국에 속한 49개 국가들과 국민 개인이 향후 일본에 대해 더 이상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정리한 것이죠.

■ 美 법원, 샌프란시스코 조약 14조 근거로 '개인 청구권' 불인정

미국 법원이 자국민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을 기각한 이유도 바로 이 14조 때문입니다. 미국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중 대표적인 것이 '제임스 킹 사건[In re World War II Era Japanese Forced Labor Litigation 114 F. Supp. 2d 939 (N.D. Cal. 2000)]'인데요.

태평양 전쟁에 참여한 미군 병사 제임스 킹이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전범기업에 강제동원된 데 대한 손해 배상을 미국 법원에 청구했는데, 기각됐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일본에 개인 청구권을 더 이상 행사하지 않겠다고 정리했으니, '끝났다'는 게 미국 법원의 판단입니다.

한국 광복군 사진
■ 항일투쟁 지속했지만…'서명국' 되지 못한 한국

미국의 이 판결은 언뜻 보면 우리 나라의 강제동원 피해 소송과 유사해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죠. 왜일까요?

미국 법원이 미군 병사 개인의 청구권 기각 이유로 밝힌 샌프란시스코 조약 14조가 우리나라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는 태평양전쟁 당시 광복군 활동 등 연합국 편에 서 있었는데도, 샌프란시스코 조약 당사자인 '승전국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당시 일본과는 무관했던 폴란드 등 무려 49개 나라들이 서명국에 이름을 올렸는데, 한국은 없었습니다.

배경 설명을 좀 덧붙이자면,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초안에는 한국이 서명국에 이름을 올렸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미국) 국무부는 제6차 초안(1949.12.29)에 한국을 협상국 및 서명국 명단에 올렸다. 이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전제로 '한국의 위신'에 따른 미국의 전략적 고려였다."

"1949년 12월 29일 미국 국무부가 초안과 함께 작성한 '일본과의 평화조약 초안에 대한 논평'도 한국이 수십 년간의 항일 저항, 전투 기록이 있다며 강화조약 서명국이 돼야 하는 이유를 적었다" (<독도 1947>, 정병준 저, 돌베개, 2010)

하지만 조약 초안이 뒤집히고, 한국의 교전국 지위는 최종 박탈됐습니다. 당시 일본 요시다 시게루 내각이 한국이 승전국에 이름을 올리면 일본 내 한국민들이 재산권 행사를 할 것을 우려하면서 미국 측에 집요하게 한국을 배제하라고 요구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어쨌든 냉전체제 돌입 후 공산주의 진영에 대한 대항이 급선무였던 미국은 '미-일 안보동맹'을 체결하기 위해 일본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결국 한국을 서명국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전쟁 후 미국을 포함한 49개 나라들은 일본으로부터 유형 무형의 전쟁 피해 배상을 받았습니다. '승전국'의 자격이었습니다. 그 이후 배상을 '포기'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14조는 승전국에 포함되지 못한 우리와는 무관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서명하는 요시다 시게루 전 日총리
■ '식민지'에 적용되는 샌프란시스코 조약 4조…결국 "알아서 처리하라"

우리와 같은 식민지 국가들의 재산권 문제는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로 정리됩니다.

"일본의 통치로부터 이탈된 지역의 재산권 등 청구권 문제는 해당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특별약정으로 처리한다"

"(a) Subject to the provisions of paragraph (b) of this Article, the disposition of property of Japan and of its nationals in the areas referred to in Article 2, and their claims, including debts, against the authorities presently administering such areas and the residents (including juridical persons) thereof, and the disposition in Japan of property of such authorities and residents, and of claims, including ; debts, of such authorities and residents against. Japan and its nationals, shall be the subject of special arrangements between Japan and such authorities. The property of any of the Allied Powers or its nationals in the areas referred to in Article 2 shall, in so far as this has not already been done, be returned by the ad ministering authority in the condition in which it now exists."


식민지였던 우리와 일본은 '따로' 약정을 맺어 처리하라고 정리한 것입니다. 이 조항이 이후 1965년 체결한 한일 기본조약의 근거가 됩니다.


■ '샌프란 조약'→1965 한일조약→2018 대법원 판결

1965년 박정희 정권이 일본과 한일 기본조약을 맺기까지 협상 기간이 10년 넘게 지지부진했던 것은 일제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배상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은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버텼고, 결국 박정희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배상 책임'이라는 명시적인 표현을 끝내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 문제가 한일협정으로도 정리되지 않은 채 수십 년이 흘러 우리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개인 소송이 시작됐고, 지난해 마침내 대법원은 이들의 개인 청구권을 최종 인정했습니다.

자, 이제 판단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요미우리와 마이니치신문의 내용처럼, 우리 대법원이 일본 강제동원 개인 청구권을 인정한 것이 전후 '샌프란시스코 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당시 우리나라가 승전국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역설적으로 승전국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일분에 대한 개인 청구권을 포기하기로 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미국 법원의 개인 청구권 기각 판결도 우리와 무관한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마이니치신문의 내용처럼 한국 대법원 판결의 여파로 미군 포로들이 다시 배상 청구에 나설 수 있을까요? 소송을 할 수는 있겠지만, 승소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판례법'이라고도 불리는 영미법의 체계에서 판례가 갖는 의미는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 체계에서보다 훨씬 큽니다. 앞서 소개한 '제임스 킹 판결'처럼, 전후 질서를 규정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근거로 청구권 기각을 한 판례가 남아 있는 한, 당시 미군 포로들이 대 일본 배상 청구에서 승소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 "왜 우리는 미국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나?"…韓·美 단순 비교의 함정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지난달 일제 강제동원 배상에 대한 우리 대법원 판결이 잘못됐다는 취지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A4용지 26장 분량의 이 글 끝 부분, "미국에서도 (우리 나라와) 유사한 사안에 대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배척한 사례가 있다"면서 '제임스킹 판결'을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판결문 내용 일부를 인용합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원고들이 받은 고통에 대한 보상이 부정되었고, 전쟁 포로였던 사람들과 헤아릴 수 없는 전쟁 생존자들도 그러하지만, 그들 자신과 그들의 후손들이 자유롭고 더 평화로운 세계에서 살아가는 무한한 포상은 그러한 빚을 갚을 만한 것이다"라는 내용입니다. 우리와 미국의 다른 점은 생략한 채, 미국 재판부가 그럴 듯하게 덧붙인 내용을 인용한 겁니다. 김 판사는 '(우리와) 유사한 미국의 판례'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선우정 조선일보 사회부장은 지난 7일 자신의 칼럼에 김 판사가 인용한 제임스 킹 판결과 글을 인용하면서 "선대의 고난은 후대의 번영으로 충분히 보상됐다"고 재해석합니다. 그러면서 "한·일 현대사에 잘 들어맞는 명구(名句)라고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두 글 모두 "우리는 왜 미국처럼 과거사를 '쿨(cool)하게' 정리 못 하고 후대의 번영으로 나아가지 못하냐"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 한국과 미국의 '전쟁 청구권' 근거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데도 "유사하다""잘 들어맞는다"며 소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단순 비교는 명백한 오류입니다.

이와 관련해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미국의 경우와 달리 우리나라에서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국내법적 지위를 갖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또 "샌프란시스코 조약 이후 맺어진 1965년 한일 기본조약에서 '배상 책임'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은 것이 최근 한일 갈등의 근본 문제이며, 현 한일관계를 미국 사례와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김민웅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승전국 전쟁 배상 포기를 전제로 하고 성립했다는 사실을 부정한 채 미국 법원 판결의 태평양전쟁 피해자 소송 기각을 한일현대사의 모델처럼 내세우고 있다"면서, "승전국과 패전국의 관계에서 생겨난 문제와 식민 지배의 불법적 피해를 해결하는 문제를 동일한 차원에 놓고 보았다는 역사적 사유의 붕괴가 이 논리에 담겨 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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