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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훈의 시사본부] 한국인 1호 특허 ‘말총모자’가 독립운동의 자금줄이었다?
입력 2019.08.19 (16:34) 수정 2019.08.19 (17:43) 오태훈의 시사본부
- 한국인 1호 특허 낸 정인호 선생은 교육자, 기업가 그리고 독립운동가
- ‘결국 독립 운동도 돈이다, 돈이 없으면 독립운동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모자 개발
- 말총으로 현대적인 모자를 만들어 한국인 최초로 발명 특허권을 받아
- 한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까지 수출해 독립운동 자금 지원하고 산업발전에도 기여
- 신문광고도 내, 당시 단발령으로 갓쓰던 남성들이 모자를 써야해 필수품으로 자리 잡아
- 안타깝게도 원 제품 없어... 말총모자 가지고 계신 분의 제보 기다려
- 우리나라는 지식재산 분야의 세계적 강국, 세계 특허 출원 인구 대비 비중 가장 높아
- 미국, EU, 일본, 중국과 함께 5대 강국, 한국어가 국제특허청 공용어로 쓰이기도

■ 프로그램명 : 오태훈의 시사본부
■ 코너명 : 시사본부 이슈
■ 방송시간 : 8월 19일(월요일) 12:20~14:00 KBS 1라디오
■ 출연자 : 박원주 특허청장



▷ 오태훈 : 광복절을 앞뒀던 지난 13일 대전 현충원에서는 조금 특별한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한국인 1호 특허를 낸 정인호 선생을 기리기 위해서 특허청에서 추모식을 열었다고 하는데 이 1호 특허의 수입이 당시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우리 특허와 1호 특허 그리고 이것의 독립운동과의 관계. 저희가 그래서 좀 연결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원주 특허청장 연결해서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박원주 : 안녕하세요. 박원주입니다. 반갑습니다.

▷ 오태훈 : 반갑습니다. 우리나라 한국인으로 처음으로 특허를 낸 분이 독립운동가고 이분이 정인호 선생이라는 분인데 어떤 분이셨는지 좀 소개해 주세요.

▶ 박원주 : 이분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조선 말에 관료를 시작해서 일제시대에는 교육자, 출판사업자, 기업가 그리고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신 분입니다. 1869년에 경기도의 양주에서 태어나셨어요. 조선시대에 궁내부의 감중관이라는 직책에 계셨는데 1895년에 명성황후께서 시해당하시지 않습니까? 그때 벼슬을 버리고 독립협회에 참여하십니다. 그리고 1898년에는 매일신문 발행에도 관여하셔서 일제에 항거하셨고요. 그리고 1899년에 경북 청도군수가 되시는데 4개월 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오세요. 그래서 바로 서울로 오셔서 흥인학교를 만드셔서 청소년 교육에 역할을 하십니다. 그리고 1903년에는 러시아 남진정책에 반대하시다가 감옥에 가세요. 그때 영국에서 공사와 선교사들이 도와줘서 중국으로 망명하셔서 상해의 중서대학에서 4년 동안 공부를 하셨고요. 돌아오셔서는 출판사를 만드십니다. 묵호서림이라는 출판사인데 거기서 초등대한역사와 같은 책을 간행하셨어요. 그런데 이때도 이 책이 배포 금지 도서가 되는 바람에 다시 감옥에 가십니다. 이렇게 여러 방면으로 독립을 위해서 애쓰시던 분인데 궁극적으로 깨달으신 것은 결국 독립운동도 돈이다. 돈이 없으면 독립운동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시면서 그 당시 우리 갓 만들던 재료 있지 않습니까? 말총이요.

▷ 오태훈 : 갓이요, 갓?

▶ 박원주 : 네, 맞습니다.

▷ 오태훈 : 쓰는 갓?

▶ 박원주 : 네, 맞습니다. 그 말총을 가지고 현대적인 모자를 만들어서 돈을 벌자고 생각을 하세요. 그래서 한국인 최초로 발명 특허권을 받게 되시죠. 그리고 이 특허권으로 제품을 만드셔서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까지 수출을 하셔서 결국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시고 우리 산업 발전에도 기여하셨던 어떤 진정한 애국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 오태훈 : 그러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모자고 당시는 갓.

▶ 박원주 : 그렇죠.

▷ 오태훈 : 이것이 이제 말꼬리, 말총으로 만드는 것인데.

▶ 박원주 : 맞습니다.

▷ 오태훈 : 어떤 내용으로 특허를 받으신 거예요?

▶ 박원주 : 아까 중국 상하이에 4년 동안 계셨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때 외국인들이 중절모를 쓰는 걸 보신 거예요. 그래서 저 모자를 좀 더 좋은 재질의 제품으로 만들어서 팔면 돈을 벌지 않겠느냐고 생각을 하셨고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전통 갓이 말총으로 만드니까 이것을 접목해서 더 튼튼하고 실용성 있는 모자를 만들자, 세계인의 머리에 말총모자를 씌우고 말겠다 뭐 이런 각오를 다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셔서 말총모자에 대한 연구개발을 하시고 그래서 1907년에는 본격적으로 생산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공장까지 만들어서 일본, 중국, 미국으로 수출을 하시죠. 당시 상황을 소설가 이광복 선생이 약간 말씀을 하셨는데 말총모자가 인기를 끄니까 당시 한국에 있던 일본인들이 유사품을 만들어서 팔더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 오태훈 : 유사품을?

▶ 박원주 : 네, 그래서 선생님이 말총모자 유사품을 막아내고 시장을 지키기 위해서 특허를 냈을 것으로 저희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여러 사료를 모아봤는데 대형으로 신문 광고도 많이 내셨고요. 또 큰 인기를 끈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그때 을미개혁 때문에 남성들 머리를 다 잘랐지 않습니까? 단발령이 내려져서. 그러다 보니까 갓을 쓰던 남성분들이 모자를 써야 하니까 이게 필수품이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이 그 당시에 신문에 비둘기 형상의 등록상표도 썼거든요.

▷ 오태훈 : 등록상표?

▶ 박원주 : 네, 그래서 특허만이 아니라 등록상표까지 포함하는 지식재산을 전부 다 활용해서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셨던 그런 분입니다.

▷ 오태훈 : 한국인 1호 특허라고 제가 소개를 드렸는데.

▶ 박원주 : 1호 특허.

▷ 오태훈 : 이때가 일제강점기였잖아요.

▶ 박원주 : 맞습니다.

▷ 오태훈 : 그런데 이때도 특허 제도가 있었나요? 어떻습니까.

▶ 박원주 : 불행하게도 그때 우리나라는 특허 제도가 없었죠. 없었고 그래서 1908년에 일본 통감부에서 한국 특허령을 발표합니다. 그래서 이 특허령이 한일 합방 때까지 약 2년 동안 쓰였는데 그때 등록을 하신 것이 정인호 선생의 특허고 그 2년 기간 동안 등록된 특허가 전부 합쳐서 275건이에요. 그중에서 한국인이 특허를 낸 게 2개고 그 2개 다 이 정인호 선생의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할 것이 1882년에 그 40년 전에 고종황제께 지석영 선생이 상소문을 올립니다. 거기서 정부기관을 만들어서 새로운 기계를 만들거나 발명한 사람한테 전매권을 줘야 한다고 건의를 하거든요.

▷ 오태훈 : 그야말로 특허네요?

▶ 박원주 : 그렇죠. 고종황제도 참 잘했다고 칭찬하면서 시행하라고 지시를 하셨는데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시행이 안 돼요. 만약 그때 특허 제도가 시행됐다면 일본 통감부보다 40년 앞서서 우리 스스로 현대적 특허 제도를 도입할 수 있었을 거고요. 심지어는 일본 본국보다도 우리 특허 제도 도입이 더 빨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오태훈 : 한국인 1호 특허와 관련해서 박원주 특허청장과 함께 말씀 나누고 있는데요. 청취자 송문방 님이 존경해야 할 분입니다. 독립에 기여한 분들에 대해 좀 더 정확하고 자세히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종무 님 그 시절에 특허권이라니 대단합니다라는 의견도 보내주고 계시는데 이 1호 특허로 얻은 수입이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였다고 하셨는데 당시 특허로 받은 수입이 얼마나 됐을까요?

▶ 박원주 : 불행하게도 매출에 대한 기록은 저희가 없습니다. 다만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짐작이 가능한데요. 단발령 때문에 일단 말총모자 수요가 많았을 것이라는 건 분명하고요. 또 많은 양을 해외로 수출했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대단한 돈을 벌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중국에는 홍콩과 상하이의 중국 상인들을 통해서 수출을 했고 미국에는 재미독립운동가들이 역할을 해서 수출을 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훨씬 인기가 많아서 수출 물량도 미국이 더 많았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면 아주 작은 기업가는 전혀 아니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 오태훈 : 그러면 이 1호 특허 이후에도 특허라든가 발명과 관련된 일을 이 정인호 선생이 하셨나요?

▶ 박원주 : 하셨죠. 1928년까지 말총 토시, 그러니까 팔토시, 말총 핸드백, 말총 담배갑 같은 제품을 만들어서 모두 특허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1938년에는 조선미술전람회에 말총 쿠션도 출품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디자인 쪽에 남다른 조예가 있었던 분으로 보이고요. 이 정 선생님은 말총 제품으로 민족기업을 일으켜서 산업 진흥을 하셨고 또 일평생 독립운동을 하셨던 정말 훌륭한 우리 애국자입니다.

▷ 오태훈 : 혹시 정인호 선생께서 만드신 이런 모자라든가 여러 가지 제품들 특허청에서 보관하고 있습니까?

▶ 박원주 : 안타깝게도 원제품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번에 추모식을 하기 전에 이 말총모자의 진품을 찾고 싶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했었습니다. 뭐 동묘, 황학동, 장한평, 모자박물관 다 가봤는데 아직 못 찾았어요. 찾아진다면 대전의 특허청에 발명의전당이 있거든요. 거기에 전시해 두고 우리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일반인들께도 좀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래서 특허청 SNS 채널에서도 지금 제보를 받고 있는데요. 혹시 가지고 계신 분이나 말총모자를 알고 계신 분들이 제보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오태훈 : 그러면 방송 듣고 이게 당시에 제작된 말총으로 된 무언가 제품인 것 같다고 하면 특허청으로 연락드리면 될까요?

▶ 박원주 : 그렇습니다. 저희가 디자인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진품인지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 오태훈 : 한국인 1호 특허는 일본 제도에 따른 것이었는데 그러면 우리나라 특허법에 따른 1호 특허는 누가 어떻게 등록한 겁니까?

▶ 박원주 : 우리는 1946년에 특허원이 생기고 그해 10월에 미군정법령 91호로 대한민국 최초의 특허법이 만들어집니다. 그 법에 의해 등록된 1호 특허는 1948년이 유화염료제조법이라는 특허가 등록됩니다. 이 특허 출원인은 중앙공업연구소 소장이고요. 발명하신 분은 이범순, 김찬구 두 분입니다. 이 발명 특허는 뭐냐 하면 당시에 면직공업이 발전했었는데 이 면직공업에 쓰이는 염료를 더 낮은 생산비로 빠르게 생산하도록 하는 특허입니다. 굉장히 용도가 좋았을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 오태훈 : 우리나라에 특허 제도 도입한 이후에 지금 특허청에 등록된 특허는 몇 건이나 되는지도 궁금하거든요.

▶ 박원주 : 그러니까 방금 말씀드린 1946년 대한민국 특허법 제정 이후의 특허가 보면 올해 약 200만호째 특허 등록이 곧 될 겁니다.

▷ 오태훈 : 200만호?

▶ 박원주 : 네, 그리고 매년 20만 건씩 특허가 출원되어서 그중에 한 절반 정도가 등록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특허 유효기간이 지나거나 중간에 보기한 분들을 제외하고 권리가 유지되고 있는 특허는 지금 현재 약 103만 건 정도 됩니다.

▷ 오태훈 : 유효기간은 얼마나 되는 거예요? 한 번 특허 받으면.

▶ 박원주 : 20년이죠.

▷ 오태훈 : 20년이요?

▶ 박원주 : 네, 그렇죠.

▷ 오태훈 : 우리 특허 제도의 수준이라든가 위상은 지금 세계와 비교해 봤을 때 어느 정도로 평가가 됩니까?

▶ 박원주 : 많은 국민들이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특허를 비롯한 지식재산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강국입니다.

▷ 오태훈 : 그래요?

▶ 박원주 : 네, 우리 특허 출원 건수가 연간 20만 건인데 이게 국민 1인당 기준으로 따진다면, 국민 숫자로 따진다면 매년 250명의 국민 중에 한 분이 특허를 내는 겁니다. 다른 나라는 한 1만 명 중에 1명 될까요? 세계 특허 출원 인구 대비 비중이 제일 높고요. 특허 출원량도 세계 4위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미국, EU, 일본,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특허 대국이라서 IP5라고 하는데 지식재산 5대 강국에 들어가서 함께 국제지식재산 질서를 형성하는 나라가 되어 있다. 또 우리나라 국제 특허 출원 건수도 세계 5위고 한국어도 또 PCT의 공용어로, 국제특허청의 공용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역량을 기반으로 지난 6월에는 인천 송도에서 저희가 IP5 특허청장회의 의장국 역할을 했고요. 아주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에는, 그러니까 8월 16일인데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캄보디아 산업수공예부장관과 제가 특허 인정 협력에 대한 양해각서를 서명했습니다. 그런데 이거는 우리나라 특허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거든요. 다른 나라 정부가 한국 특허를 형식만 봐서 자기 나라 특허로 인정해 주기로 한 겁니다. 이게 우리나라가 얼마나 지식재산 선진국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을 합니다.

▷ 오태훈 :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발명하게 되어서 특허를 내잖아요.

▶ 박원주 : 그렇죠.

▷ 오태훈 : 그러면 이거는 우리나라에서 내는 게 세계적으로도 다 통용이 되는 겁니까? 아니면 국제 특허가 따로 있는 겁니까?

▶ 박원주 : 국제 특허가 따로 있습니다만 한국에 특허를 냄으로써 다른 나라에서 특허를 못 내게 하는 효과는 가질 수 있습니다.

▷ 오태훈 : 그래요?

▶ 박원주 : 네.

▷ 오태훈 : 앞으로 특허 제도가 더 발전하고 또 기술개발을 좀 촉진하는 역할로 작용했으면 좋겠는데 특허청에 계신 분으로서 좀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 박원주 : 사실은 우리가 옛날에 노동력으로 성장을 해 왔고 우리는 천연자원이 부족한 나라 아닙니까? 자본도 별로 없고요. 그런데 우리 노동력이 이제 고령화 되고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우리 경제 성장을 위해서 유일한 요소는 지식재산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특허청 입장에서는 전 세계의 특허를 나름 분석을 해서 산업 분야별로 미래 선도 전략도 제시해 나가고 있고 또 기업과 연구소들이 좋은 특허를 가지고 경제 발전에 기여하도록 계속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특허를 더 많이 보호해 줘서 국민들이 더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특허로 내도록 해드리고 또 특허를 가지고 따로 돈이 없더라도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지식재산 담보를 활성화한다든가 시장을 만드는 노력을 해서 우리나라 성장 잠재력이 혁신을 바탕으로 끌어져나가고 또 혁신 성장, 일자리 창출이 되도록 도와드리는 겁니다. 그것을 위해 지금 특허청의 조직이나 역할을 계속 변화시키고 있고 또 최선을 다해서 국가 발전에 기여하도록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 오태훈 : 우리 특허가 좋은 게 많으면 많을수록 해외에서 로열티도 많이 받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 박원주 : 당연합니다.

▷ 오태훈 :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특허청의 박원주 청장과 함께 말씀 나눴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박원주 : 감사합니다.
  • [오태훈의 시사본부] 한국인 1호 특허 ‘말총모자’가 독립운동의 자금줄이었다?
    • 입력 2019-08-19 16:34:16
    • 수정2019-08-19 17:43:14
    오태훈의 시사본부
- 한국인 1호 특허 낸 정인호 선생은 교육자, 기업가 그리고 독립운동가
- ‘결국 독립 운동도 돈이다, 돈이 없으면 독립운동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모자 개발
- 말총으로 현대적인 모자를 만들어 한국인 최초로 발명 특허권을 받아
- 한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까지 수출해 독립운동 자금 지원하고 산업발전에도 기여
- 신문광고도 내, 당시 단발령으로 갓쓰던 남성들이 모자를 써야해 필수품으로 자리 잡아
- 안타깝게도 원 제품 없어... 말총모자 가지고 계신 분의 제보 기다려
- 우리나라는 지식재산 분야의 세계적 강국, 세계 특허 출원 인구 대비 비중 가장 높아
- 미국, EU, 일본, 중국과 함께 5대 강국, 한국어가 국제특허청 공용어로 쓰이기도

■ 프로그램명 : 오태훈의 시사본부
■ 코너명 : 시사본부 이슈
■ 방송시간 : 8월 19일(월요일) 12:20~14:00 KBS 1라디오
■ 출연자 : 박원주 특허청장



▷ 오태훈 : 광복절을 앞뒀던 지난 13일 대전 현충원에서는 조금 특별한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한국인 1호 특허를 낸 정인호 선생을 기리기 위해서 특허청에서 추모식을 열었다고 하는데 이 1호 특허의 수입이 당시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우리 특허와 1호 특허 그리고 이것의 독립운동과의 관계. 저희가 그래서 좀 연결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원주 특허청장 연결해서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박원주 : 안녕하세요. 박원주입니다. 반갑습니다.

▷ 오태훈 : 반갑습니다. 우리나라 한국인으로 처음으로 특허를 낸 분이 독립운동가고 이분이 정인호 선생이라는 분인데 어떤 분이셨는지 좀 소개해 주세요.

▶ 박원주 : 이분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조선 말에 관료를 시작해서 일제시대에는 교육자, 출판사업자, 기업가 그리고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신 분입니다. 1869년에 경기도의 양주에서 태어나셨어요. 조선시대에 궁내부의 감중관이라는 직책에 계셨는데 1895년에 명성황후께서 시해당하시지 않습니까? 그때 벼슬을 버리고 독립협회에 참여하십니다. 그리고 1898년에는 매일신문 발행에도 관여하셔서 일제에 항거하셨고요. 그리고 1899년에 경북 청도군수가 되시는데 4개월 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오세요. 그래서 바로 서울로 오셔서 흥인학교를 만드셔서 청소년 교육에 역할을 하십니다. 그리고 1903년에는 러시아 남진정책에 반대하시다가 감옥에 가세요. 그때 영국에서 공사와 선교사들이 도와줘서 중국으로 망명하셔서 상해의 중서대학에서 4년 동안 공부를 하셨고요. 돌아오셔서는 출판사를 만드십니다. 묵호서림이라는 출판사인데 거기서 초등대한역사와 같은 책을 간행하셨어요. 그런데 이때도 이 책이 배포 금지 도서가 되는 바람에 다시 감옥에 가십니다. 이렇게 여러 방면으로 독립을 위해서 애쓰시던 분인데 궁극적으로 깨달으신 것은 결국 독립운동도 돈이다. 돈이 없으면 독립운동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시면서 그 당시 우리 갓 만들던 재료 있지 않습니까? 말총이요.

▷ 오태훈 : 갓이요, 갓?

▶ 박원주 : 네, 맞습니다.

▷ 오태훈 : 쓰는 갓?

▶ 박원주 : 네, 맞습니다. 그 말총을 가지고 현대적인 모자를 만들어서 돈을 벌자고 생각을 하세요. 그래서 한국인 최초로 발명 특허권을 받게 되시죠. 그리고 이 특허권으로 제품을 만드셔서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까지 수출을 하셔서 결국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시고 우리 산업 발전에도 기여하셨던 어떤 진정한 애국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 오태훈 : 그러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모자고 당시는 갓.

▶ 박원주 : 그렇죠.

▷ 오태훈 : 이것이 이제 말꼬리, 말총으로 만드는 것인데.

▶ 박원주 : 맞습니다.

▷ 오태훈 : 어떤 내용으로 특허를 받으신 거예요?

▶ 박원주 : 아까 중국 상하이에 4년 동안 계셨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때 외국인들이 중절모를 쓰는 걸 보신 거예요. 그래서 저 모자를 좀 더 좋은 재질의 제품으로 만들어서 팔면 돈을 벌지 않겠느냐고 생각을 하셨고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전통 갓이 말총으로 만드니까 이것을 접목해서 더 튼튼하고 실용성 있는 모자를 만들자, 세계인의 머리에 말총모자를 씌우고 말겠다 뭐 이런 각오를 다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셔서 말총모자에 대한 연구개발을 하시고 그래서 1907년에는 본격적으로 생산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공장까지 만들어서 일본, 중국, 미국으로 수출을 하시죠. 당시 상황을 소설가 이광복 선생이 약간 말씀을 하셨는데 말총모자가 인기를 끄니까 당시 한국에 있던 일본인들이 유사품을 만들어서 팔더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 오태훈 : 유사품을?

▶ 박원주 : 네, 그래서 선생님이 말총모자 유사품을 막아내고 시장을 지키기 위해서 특허를 냈을 것으로 저희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여러 사료를 모아봤는데 대형으로 신문 광고도 많이 내셨고요. 또 큰 인기를 끈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그때 을미개혁 때문에 남성들 머리를 다 잘랐지 않습니까? 단발령이 내려져서. 그러다 보니까 갓을 쓰던 남성분들이 모자를 써야 하니까 이게 필수품이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이 그 당시에 신문에 비둘기 형상의 등록상표도 썼거든요.

▷ 오태훈 : 등록상표?

▶ 박원주 : 네, 그래서 특허만이 아니라 등록상표까지 포함하는 지식재산을 전부 다 활용해서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셨던 그런 분입니다.

▷ 오태훈 : 한국인 1호 특허라고 제가 소개를 드렸는데.

▶ 박원주 : 1호 특허.

▷ 오태훈 : 이때가 일제강점기였잖아요.

▶ 박원주 : 맞습니다.

▷ 오태훈 : 그런데 이때도 특허 제도가 있었나요? 어떻습니까.

▶ 박원주 : 불행하게도 그때 우리나라는 특허 제도가 없었죠. 없었고 그래서 1908년에 일본 통감부에서 한국 특허령을 발표합니다. 그래서 이 특허령이 한일 합방 때까지 약 2년 동안 쓰였는데 그때 등록을 하신 것이 정인호 선생의 특허고 그 2년 기간 동안 등록된 특허가 전부 합쳐서 275건이에요. 그중에서 한국인이 특허를 낸 게 2개고 그 2개 다 이 정인호 선생의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할 것이 1882년에 그 40년 전에 고종황제께 지석영 선생이 상소문을 올립니다. 거기서 정부기관을 만들어서 새로운 기계를 만들거나 발명한 사람한테 전매권을 줘야 한다고 건의를 하거든요.

▷ 오태훈 : 그야말로 특허네요?

▶ 박원주 : 그렇죠. 고종황제도 참 잘했다고 칭찬하면서 시행하라고 지시를 하셨는데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시행이 안 돼요. 만약 그때 특허 제도가 시행됐다면 일본 통감부보다 40년 앞서서 우리 스스로 현대적 특허 제도를 도입할 수 있었을 거고요. 심지어는 일본 본국보다도 우리 특허 제도 도입이 더 빨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오태훈 : 한국인 1호 특허와 관련해서 박원주 특허청장과 함께 말씀 나누고 있는데요. 청취자 송문방 님이 존경해야 할 분입니다. 독립에 기여한 분들에 대해 좀 더 정확하고 자세히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종무 님 그 시절에 특허권이라니 대단합니다라는 의견도 보내주고 계시는데 이 1호 특허로 얻은 수입이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였다고 하셨는데 당시 특허로 받은 수입이 얼마나 됐을까요?

▶ 박원주 : 불행하게도 매출에 대한 기록은 저희가 없습니다. 다만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짐작이 가능한데요. 단발령 때문에 일단 말총모자 수요가 많았을 것이라는 건 분명하고요. 또 많은 양을 해외로 수출했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대단한 돈을 벌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중국에는 홍콩과 상하이의 중국 상인들을 통해서 수출을 했고 미국에는 재미독립운동가들이 역할을 해서 수출을 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훨씬 인기가 많아서 수출 물량도 미국이 더 많았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면 아주 작은 기업가는 전혀 아니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 오태훈 : 그러면 이 1호 특허 이후에도 특허라든가 발명과 관련된 일을 이 정인호 선생이 하셨나요?

▶ 박원주 : 하셨죠. 1928년까지 말총 토시, 그러니까 팔토시, 말총 핸드백, 말총 담배갑 같은 제품을 만들어서 모두 특허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1938년에는 조선미술전람회에 말총 쿠션도 출품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디자인 쪽에 남다른 조예가 있었던 분으로 보이고요. 이 정 선생님은 말총 제품으로 민족기업을 일으켜서 산업 진흥을 하셨고 또 일평생 독립운동을 하셨던 정말 훌륭한 우리 애국자입니다.

▷ 오태훈 : 혹시 정인호 선생께서 만드신 이런 모자라든가 여러 가지 제품들 특허청에서 보관하고 있습니까?

▶ 박원주 : 안타깝게도 원제품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번에 추모식을 하기 전에 이 말총모자의 진품을 찾고 싶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했었습니다. 뭐 동묘, 황학동, 장한평, 모자박물관 다 가봤는데 아직 못 찾았어요. 찾아진다면 대전의 특허청에 발명의전당이 있거든요. 거기에 전시해 두고 우리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일반인들께도 좀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래서 특허청 SNS 채널에서도 지금 제보를 받고 있는데요. 혹시 가지고 계신 분이나 말총모자를 알고 계신 분들이 제보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오태훈 : 그러면 방송 듣고 이게 당시에 제작된 말총으로 된 무언가 제품인 것 같다고 하면 특허청으로 연락드리면 될까요?

▶ 박원주 : 그렇습니다. 저희가 디자인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진품인지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 오태훈 : 한국인 1호 특허는 일본 제도에 따른 것이었는데 그러면 우리나라 특허법에 따른 1호 특허는 누가 어떻게 등록한 겁니까?

▶ 박원주 : 우리는 1946년에 특허원이 생기고 그해 10월에 미군정법령 91호로 대한민국 최초의 특허법이 만들어집니다. 그 법에 의해 등록된 1호 특허는 1948년이 유화염료제조법이라는 특허가 등록됩니다. 이 특허 출원인은 중앙공업연구소 소장이고요. 발명하신 분은 이범순, 김찬구 두 분입니다. 이 발명 특허는 뭐냐 하면 당시에 면직공업이 발전했었는데 이 면직공업에 쓰이는 염료를 더 낮은 생산비로 빠르게 생산하도록 하는 특허입니다. 굉장히 용도가 좋았을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 오태훈 : 우리나라에 특허 제도 도입한 이후에 지금 특허청에 등록된 특허는 몇 건이나 되는지도 궁금하거든요.

▶ 박원주 : 그러니까 방금 말씀드린 1946년 대한민국 특허법 제정 이후의 특허가 보면 올해 약 200만호째 특허 등록이 곧 될 겁니다.

▷ 오태훈 : 200만호?

▶ 박원주 : 네, 그리고 매년 20만 건씩 특허가 출원되어서 그중에 한 절반 정도가 등록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특허 유효기간이 지나거나 중간에 보기한 분들을 제외하고 권리가 유지되고 있는 특허는 지금 현재 약 103만 건 정도 됩니다.

▷ 오태훈 : 유효기간은 얼마나 되는 거예요? 한 번 특허 받으면.

▶ 박원주 : 20년이죠.

▷ 오태훈 : 20년이요?

▶ 박원주 : 네, 그렇죠.

▷ 오태훈 : 우리 특허 제도의 수준이라든가 위상은 지금 세계와 비교해 봤을 때 어느 정도로 평가가 됩니까?

▶ 박원주 : 많은 국민들이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특허를 비롯한 지식재산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강국입니다.

▷ 오태훈 : 그래요?

▶ 박원주 : 네, 우리 특허 출원 건수가 연간 20만 건인데 이게 국민 1인당 기준으로 따진다면, 국민 숫자로 따진다면 매년 250명의 국민 중에 한 분이 특허를 내는 겁니다. 다른 나라는 한 1만 명 중에 1명 될까요? 세계 특허 출원 인구 대비 비중이 제일 높고요. 특허 출원량도 세계 4위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미국, EU, 일본,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특허 대국이라서 IP5라고 하는데 지식재산 5대 강국에 들어가서 함께 국제지식재산 질서를 형성하는 나라가 되어 있다. 또 우리나라 국제 특허 출원 건수도 세계 5위고 한국어도 또 PCT의 공용어로, 국제특허청의 공용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역량을 기반으로 지난 6월에는 인천 송도에서 저희가 IP5 특허청장회의 의장국 역할을 했고요. 아주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에는, 그러니까 8월 16일인데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캄보디아 산업수공예부장관과 제가 특허 인정 협력에 대한 양해각서를 서명했습니다. 그런데 이거는 우리나라 특허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거든요. 다른 나라 정부가 한국 특허를 형식만 봐서 자기 나라 특허로 인정해 주기로 한 겁니다. 이게 우리나라가 얼마나 지식재산 선진국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을 합니다.

▷ 오태훈 :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발명하게 되어서 특허를 내잖아요.

▶ 박원주 : 그렇죠.

▷ 오태훈 : 그러면 이거는 우리나라에서 내는 게 세계적으로도 다 통용이 되는 겁니까? 아니면 국제 특허가 따로 있는 겁니까?

▶ 박원주 : 국제 특허가 따로 있습니다만 한국에 특허를 냄으로써 다른 나라에서 특허를 못 내게 하는 효과는 가질 수 있습니다.

▷ 오태훈 : 그래요?

▶ 박원주 : 네.

▷ 오태훈 : 앞으로 특허 제도가 더 발전하고 또 기술개발을 좀 촉진하는 역할로 작용했으면 좋겠는데 특허청에 계신 분으로서 좀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 박원주 : 사실은 우리가 옛날에 노동력으로 성장을 해 왔고 우리는 천연자원이 부족한 나라 아닙니까? 자본도 별로 없고요. 그런데 우리 노동력이 이제 고령화 되고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우리 경제 성장을 위해서 유일한 요소는 지식재산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특허청 입장에서는 전 세계의 특허를 나름 분석을 해서 산업 분야별로 미래 선도 전략도 제시해 나가고 있고 또 기업과 연구소들이 좋은 특허를 가지고 경제 발전에 기여하도록 계속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특허를 더 많이 보호해 줘서 국민들이 더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특허로 내도록 해드리고 또 특허를 가지고 따로 돈이 없더라도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지식재산 담보를 활성화한다든가 시장을 만드는 노력을 해서 우리나라 성장 잠재력이 혁신을 바탕으로 끌어져나가고 또 혁신 성장, 일자리 창출이 되도록 도와드리는 겁니다. 그것을 위해 지금 특허청의 조직이나 역할을 계속 변화시키고 있고 또 최선을 다해서 국가 발전에 기여하도록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 오태훈 : 우리 특허가 좋은 게 많으면 많을수록 해외에서 로열티도 많이 받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 박원주 : 당연합니다.

▷ 오태훈 :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특허청의 박원주 청장과 함께 말씀 나눴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박원주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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