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대통령은 일왕 즉위식에 가고…상왕은 한국에 오고

입력 2019.08.20 (09:00) 수정 2019.08.2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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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리브 더 킹'이라는 만화가 있다.

사실 만화보다는 영화가 더 유명하다. 김래원이 주연해 지난 6월 개봉한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이라는 영화의 원작이 원래 이 웹툰이다.

내용은 이렇다.

목포 조폭 두목이 있는데, 이 사람이 이러저러한 인연과 필연으로 정치에 뛰어들게 되고 대통령에 도전한다는 간략하게 말하면 그런 스토리다. 황당한 이야기지만 그 전개 과정이 강력한 캐릭터와 함께 꽤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이 만화를 보면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일본에 관련된 스토리가 꽤 길게 다뤄진다. 조폭 출신인 주인공에 대해 역시 야쿠자 출신인 일본 정치계의 거물이 관심을 갖게 되면서 국회 의원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초청하게 되고 여러 사건 사고를 거쳐 극적으로 일왕까지 만나게 되는데...여기에 흥미로운 포인트가 하나 첨가된다.

주인공이 일본에 가게 됐다는 걸 알게 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그를 찾아 마음의 한을 풀어 달라고 부탁하고, 주인공이 일왕을 만난 궁전에서 이를 요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아키히토 전 일왕을 똑 닮은 만화 속 인물이 제안한 것이 '비공식적 사과'였다. 일왕이 가족과 함께 나란히 서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위로의 말을 전하는 모습을 주인공이 휴대전화로 촬영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께 보여드리는 식의 해법이었다. 물론 만화 속에서 할머니는 영상을 보며 일왕의 사과에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그저 만화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도쿄 특파원으로서 3년간, 일본에서 공부할 때까지 포함하면 2012년부터 한일 관계의 격한 흐름, 온갖 다사다난함을 봐왔던 필자로서는 '신선'하다는 느낌도 강하게 다가오는 한 장면이었다.

다시금 꺼내 드는 '일왕'의 방한 문제

필자는 2016년 도쿄 특파원으로 온 직후 아키히토 일왕이 퇴위 의사를 밝혔을 당시 '일왕 퇴위 소식, 열도가 경악'이라는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한일 관계를 고려할 때 일왕의 방한 문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일왕가는 백제계의 후손"이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던 인물이고 최근에는 '한일 반가사유상' 전을 따로 찾아 관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전장으로 내몰렸던 남태평양의 섬을 찾아 사과의 뜻을 표하기도 한 만큼 한국을 방문한다면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하나의 분기점이 마련될 수도 있다.
외교는 딱딱하고 형식적으로도 이뤄지지만, 부드럽게 접근하는 방법도 있다. 우리 국민감정을 어떻게 다독이며 어떤 식으로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 위정자들에게 남은 숙제다.(2016.7.14 '일왕 퇴위' 소식, 열도가 경악)"

이후로 우리 정치권에서 몇 차례 일왕의 방한이 화두로 올랐지만, 사실 우리 측의 의도와 관계없이 일본 측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필자는 "[특파원리포트]지일파 국회의장의 천황 사죄 요구"..일본이 당황하는 이유는?(2019.2.23)'라는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일본 사회의 반응을 분석했다.

"이번 문희상 국회의장의 일왕 사과 발언에 대해 일본 사회는 "왜?"라는 부분에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문 의장이 밝혔듯이 일왕이나 무게 있는 지도자가 위안부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진정으로 사과하면 양국이 과거사의 앙금을 풀어낼 수 있다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가 일본 사회에서는 공감도가 낮은 때문이다."

생각해야 할 부분은 일왕의 존재에 대한 우리와 일본의 극명한 인식차다.

일왕에 대한 한일 양 국민의 근본적 인식차

우리는 '일왕'이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천황'이라는 단어를 고집하듯이 그 존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과는 차원이 다른 의미가 있다.

일본 국민 전체를 전쟁의 광기에 몰아넣은 것도 곧 당시 '살아 있는 신'이라 일컬어지는 '왕'의 존재가 기여한 바가 컸고, 전후 미군에 의해 '신'의 존재에서 내려왔지만, 아직도 도쿄 한복판에 자리한 메이지 신궁은 '메이지 일왕'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로서 일본인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종전 이후 일왕이 정치에는 일절 관여할 수 없게 됐지만 그 후 일왕은 정치적 역할자보다는 일본 국민의 마음을 보듬는 종교적 지도자로서 그 근본적 영향력은 지속되는 듯하다.

그러한 일왕이기에 그의 움직임 자체가 갖는 의미는 일본 사회 내에서 훨씬 더 큰 상징성을 갖게 된다. 일본의 한 정부 관계자는 필자를 만나, "한국에서 오라고 해서 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순서가 바뀌었어요. 한국은 일왕이 옴으로써 과거사에 대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시작점으로 보는 것 같지만, 천황(일왕)이 한국에 가려면 한일 사이가 가장 관계가 좋아지고, 자연스럽게 한국에 가도 아무런 부담이 안되는 때일 겁니다" 라고 말했다.

우리는 한일 관계를 풀어갈 하나의 방편으로 일왕의 방한을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일왕이 한국에 올 수 있는 때는 일본적 관점에서 보면 한일 관계에 극히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돼 모든 역사적 과제를 푸는 대단원의 막 정도가 되어야 가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일왕 즉위식...한일 관계를 풀어 갈 수 있는 분기점

나루히토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나루히토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

그럼 여기서 이야기의 방향을 잠깐 틀어보자.

지난달 초 일본이 수출 규제를 시작해 한일 관계가 본격 경색 국면에 들어갈 당시 윤상현 국회 외통위원장은 나가미네 주한 일본 대사를 만난다. 여기서 윤 위원장은 올해 안에 한국에서 특사를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피력했는데, 돌아온 답에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나가미네 대사가 "일왕 즉위(10월 22일) 전까지 특사를 파견해야 한국도 축하 사절단을 보낼 수 있다”는 취지로 답을 했다는 게 윤 위원장의 말이다.

일본 내에서 새 일왕의 즉위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갖는다. 연호를 사용하는 나라로서 30년 만에 왕이 바뀌고 새 시대를 연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해진다. 195개국에서 정상 등 2,500여 명의 외교사절이 올 정도로 일본에서는 그 어떤 행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국가적 의미를 갖는 날이다. 주한 일본 대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일왕 즉위식은 한일 관계에서 하나의 결정적 분기점이 될 수도 있음은 이 때문이다.

일본 사회에서 일왕은 현재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쟁 가능한 국가를 지향하는 '아베 총리'와는 사실상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8.15 일본의 종전일 기념사만 봐도 일왕이 과거에 대한 반성과 평화를 염원했다면, 아베 총리는 과거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었다.

그런 점을 살핀다면, 일왕의 즉위식에 참석하겠다는 점을 전격적으로 먼저 밝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한일 관계의 현재 흐름 속에 뭔가 좋아진다면 문 대통령이 참석하고 그게 아니라면 총리 정도를 보내 '즉위식 외교'를 갈음한다는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식이다.

그보다는 우리가 먼저 대승적으로 '아베' 총리와 일본 현 정부가 어떤 치졸한 행태를 보인다 하더라도, 한국을 적대시한다 하더라도, 그들과는 다른 별개의 평화 상징으로서 일왕 즉위식에 문 대통령이 참석하겠다는 뜻을 대내외에 밝히고 일본의 대응을 끌어내는 어찌 보면 거꾸로 된 대응 순서이다.

문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일왕 즉위식' 참석을 제안하자

일본의 지성인 와다 하루키 교수가 필자에게 이야기했던 한일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일본인의 마음을 설득할 수 있는 메시지를 줘야 일본의 양심 세력과 한국이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상통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문 대통령이 즉위식에 참석하고, 한국이 일본 전체를 미워하고 적대시하는 게 아니며, 과거 식민지 지배의 원인 제공자이기도 했던 일왕이지만 현재와 미래의 평화를 위해 '일왕' 즉위식에 대통령이 기꺼이 참여해 한일이 함께 가는 길을 찾겠다는 확실한 우리의 의지를 일본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외교라는 것이 서로 간에 사전 조율이 있고, 특히 한 나라의 정상이 움직이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지만, 우리가 즉위식에 참석하겠다는 의지를 먼저 밝힌다면 일본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설령 일본 정부가 이를 기꺼워하지 않더라도, 한국 대통령의 즉위식 참석과 축하는 많은 일본 국민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의 성숙함을 보여줄 기회가 될 수 있다.

아키히토 상왕이 한국에 오고

아키히토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아키히토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

그리고 나서 앞서 만화에서 아이디어를 줬던 것처럼 굳이 공식적인 일왕의 방문이 아니더라도 이제 왕위에서 물러난 아키히토 상왕이 비공식적으로라도 한국을 찾는다면 이는 한일 관계에 큰 역사적 사건이 될 수 있다.

현재 아키히토 상왕의 건강 상태가 그리 좋지 않고, 부인 또한 유방암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살아생전에 풀어야 할 과제라는 인식이 그에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일 수 있다.

군국주의 향수에 젖어 있는 아베 총리에게는 상왕의 한국 방문 자체가 싫을 테지만 이를 대놓고 막을 명분 자체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문 대통령의 일왕 즉위식 참여에서부터 찾을 수도 있다. 대통령의 초청도 생각할 수 있다.

"외교는 딱딱하고 형식적으로도 이뤄지지만, 부드럽게 접근하는 방법도 있다." 3년 전에 기사에 썼던 말이다. 일본 정부가 치졸하다면 우리는 더 대승적으로, 아베 내각이 한일 관계를 국내 정치와 개헌 등에 이용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더 평화적으로 다가가, 일본 국민과 아베 내각을 분리해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향이 있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혔듯 우리는 언제든 손을 내밀 준비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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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대통령은 일왕 즉위식에 가고…상왕은 한국에 오고
    • 입력 2019-08-20 09:00:13
    • 수정2019-08-20 13:33:00
    특파원 리포트
'롱 리브 더 킹'이라는 만화가 있다.

사실 만화보다는 영화가 더 유명하다. 김래원이 주연해 지난 6월 개봉한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이라는 영화의 원작이 원래 이 웹툰이다.

내용은 이렇다.

목포 조폭 두목이 있는데, 이 사람이 이러저러한 인연과 필연으로 정치에 뛰어들게 되고 대통령에 도전한다는 간략하게 말하면 그런 스토리다. 황당한 이야기지만 그 전개 과정이 강력한 캐릭터와 함께 꽤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이 만화를 보면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일본에 관련된 스토리가 꽤 길게 다뤄진다. 조폭 출신인 주인공에 대해 역시 야쿠자 출신인 일본 정치계의 거물이 관심을 갖게 되면서 국회 의원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초청하게 되고 여러 사건 사고를 거쳐 극적으로 일왕까지 만나게 되는데...여기에 흥미로운 포인트가 하나 첨가된다.

주인공이 일본에 가게 됐다는 걸 알게 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그를 찾아 마음의 한을 풀어 달라고 부탁하고, 주인공이 일왕을 만난 궁전에서 이를 요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아키히토 전 일왕을 똑 닮은 만화 속 인물이 제안한 것이 '비공식적 사과'였다. 일왕이 가족과 함께 나란히 서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위로의 말을 전하는 모습을 주인공이 휴대전화로 촬영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께 보여드리는 식의 해법이었다. 물론 만화 속에서 할머니는 영상을 보며 일왕의 사과에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그저 만화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도쿄 특파원으로서 3년간, 일본에서 공부할 때까지 포함하면 2012년부터 한일 관계의 격한 흐름, 온갖 다사다난함을 봐왔던 필자로서는 '신선'하다는 느낌도 강하게 다가오는 한 장면이었다.

다시금 꺼내 드는 '일왕'의 방한 문제

필자는 2016년 도쿄 특파원으로 온 직후 아키히토 일왕이 퇴위 의사를 밝혔을 당시 '일왕 퇴위 소식, 열도가 경악'이라는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한일 관계를 고려할 때 일왕의 방한 문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일왕가는 백제계의 후손"이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던 인물이고 최근에는 '한일 반가사유상' 전을 따로 찾아 관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전장으로 내몰렸던 남태평양의 섬을 찾아 사과의 뜻을 표하기도 한 만큼 한국을 방문한다면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하나의 분기점이 마련될 수도 있다.
외교는 딱딱하고 형식적으로도 이뤄지지만, 부드럽게 접근하는 방법도 있다. 우리 국민감정을 어떻게 다독이며 어떤 식으로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 위정자들에게 남은 숙제다.(2016.7.14 '일왕 퇴위' 소식, 열도가 경악)"

이후로 우리 정치권에서 몇 차례 일왕의 방한이 화두로 올랐지만, 사실 우리 측의 의도와 관계없이 일본 측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필자는 "[특파원리포트]지일파 국회의장의 천황 사죄 요구"..일본이 당황하는 이유는?(2019.2.23)'라는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일본 사회의 반응을 분석했다.

"이번 문희상 국회의장의 일왕 사과 발언에 대해 일본 사회는 "왜?"라는 부분에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문 의장이 밝혔듯이 일왕이나 무게 있는 지도자가 위안부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진정으로 사과하면 양국이 과거사의 앙금을 풀어낼 수 있다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가 일본 사회에서는 공감도가 낮은 때문이다."

생각해야 할 부분은 일왕의 존재에 대한 우리와 일본의 극명한 인식차다.

일왕에 대한 한일 양 국민의 근본적 인식차

우리는 '일왕'이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천황'이라는 단어를 고집하듯이 그 존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과는 차원이 다른 의미가 있다.

일본 국민 전체를 전쟁의 광기에 몰아넣은 것도 곧 당시 '살아 있는 신'이라 일컬어지는 '왕'의 존재가 기여한 바가 컸고, 전후 미군에 의해 '신'의 존재에서 내려왔지만, 아직도 도쿄 한복판에 자리한 메이지 신궁은 '메이지 일왕'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로서 일본인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종전 이후 일왕이 정치에는 일절 관여할 수 없게 됐지만 그 후 일왕은 정치적 역할자보다는 일본 국민의 마음을 보듬는 종교적 지도자로서 그 근본적 영향력은 지속되는 듯하다.

그러한 일왕이기에 그의 움직임 자체가 갖는 의미는 일본 사회 내에서 훨씬 더 큰 상징성을 갖게 된다. 일본의 한 정부 관계자는 필자를 만나, "한국에서 오라고 해서 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순서가 바뀌었어요. 한국은 일왕이 옴으로써 과거사에 대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시작점으로 보는 것 같지만, 천황(일왕)이 한국에 가려면 한일 사이가 가장 관계가 좋아지고, 자연스럽게 한국에 가도 아무런 부담이 안되는 때일 겁니다" 라고 말했다.

우리는 한일 관계를 풀어갈 하나의 방편으로 일왕의 방한을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일왕이 한국에 올 수 있는 때는 일본적 관점에서 보면 한일 관계에 극히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돼 모든 역사적 과제를 푸는 대단원의 막 정도가 되어야 가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일왕 즉위식...한일 관계를 풀어 갈 수 있는 분기점

나루히토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
그럼 여기서 이야기의 방향을 잠깐 틀어보자.

지난달 초 일본이 수출 규제를 시작해 한일 관계가 본격 경색 국면에 들어갈 당시 윤상현 국회 외통위원장은 나가미네 주한 일본 대사를 만난다. 여기서 윤 위원장은 올해 안에 한국에서 특사를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피력했는데, 돌아온 답에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나가미네 대사가 "일왕 즉위(10월 22일) 전까지 특사를 파견해야 한국도 축하 사절단을 보낼 수 있다”는 취지로 답을 했다는 게 윤 위원장의 말이다.

일본 내에서 새 일왕의 즉위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갖는다. 연호를 사용하는 나라로서 30년 만에 왕이 바뀌고 새 시대를 연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해진다. 195개국에서 정상 등 2,500여 명의 외교사절이 올 정도로 일본에서는 그 어떤 행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국가적 의미를 갖는 날이다. 주한 일본 대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일왕 즉위식은 한일 관계에서 하나의 결정적 분기점이 될 수도 있음은 이 때문이다.

일본 사회에서 일왕은 현재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쟁 가능한 국가를 지향하는 '아베 총리'와는 사실상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8.15 일본의 종전일 기념사만 봐도 일왕이 과거에 대한 반성과 평화를 염원했다면, 아베 총리는 과거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었다.

그런 점을 살핀다면, 일왕의 즉위식에 참석하겠다는 점을 전격적으로 먼저 밝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한일 관계의 현재 흐름 속에 뭔가 좋아진다면 문 대통령이 참석하고 그게 아니라면 총리 정도를 보내 '즉위식 외교'를 갈음한다는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식이다.

그보다는 우리가 먼저 대승적으로 '아베' 총리와 일본 현 정부가 어떤 치졸한 행태를 보인다 하더라도, 한국을 적대시한다 하더라도, 그들과는 다른 별개의 평화 상징으로서 일왕 즉위식에 문 대통령이 참석하겠다는 뜻을 대내외에 밝히고 일본의 대응을 끌어내는 어찌 보면 거꾸로 된 대응 순서이다.

문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일왕 즉위식' 참석을 제안하자

일본의 지성인 와다 하루키 교수가 필자에게 이야기했던 한일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일본인의 마음을 설득할 수 있는 메시지를 줘야 일본의 양심 세력과 한국이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상통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문 대통령이 즉위식에 참석하고, 한국이 일본 전체를 미워하고 적대시하는 게 아니며, 과거 식민지 지배의 원인 제공자이기도 했던 일왕이지만 현재와 미래의 평화를 위해 '일왕' 즉위식에 대통령이 기꺼이 참여해 한일이 함께 가는 길을 찾겠다는 확실한 우리의 의지를 일본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외교라는 것이 서로 간에 사전 조율이 있고, 특히 한 나라의 정상이 움직이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지만, 우리가 즉위식에 참석하겠다는 의지를 먼저 밝힌다면 일본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설령 일본 정부가 이를 기꺼워하지 않더라도, 한국 대통령의 즉위식 참석과 축하는 많은 일본 국민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의 성숙함을 보여줄 기회가 될 수 있다.

아키히토 상왕이 한국에 오고

아키히토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
그리고 나서 앞서 만화에서 아이디어를 줬던 것처럼 굳이 공식적인 일왕의 방문이 아니더라도 이제 왕위에서 물러난 아키히토 상왕이 비공식적으로라도 한국을 찾는다면 이는 한일 관계에 큰 역사적 사건이 될 수 있다.

현재 아키히토 상왕의 건강 상태가 그리 좋지 않고, 부인 또한 유방암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살아생전에 풀어야 할 과제라는 인식이 그에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일 수 있다.

군국주의 향수에 젖어 있는 아베 총리에게는 상왕의 한국 방문 자체가 싫을 테지만 이를 대놓고 막을 명분 자체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문 대통령의 일왕 즉위식 참여에서부터 찾을 수도 있다. 대통령의 초청도 생각할 수 있다.

"외교는 딱딱하고 형식적으로도 이뤄지지만, 부드럽게 접근하는 방법도 있다." 3년 전에 기사에 썼던 말이다. 일본 정부가 치졸하다면 우리는 더 대승적으로, 아베 내각이 한일 관계를 국내 정치와 개헌 등에 이용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더 평화적으로 다가가, 일본 국민과 아베 내각을 분리해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향이 있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혔듯 우리는 언제든 손을 내밀 준비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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