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모두가 용 될 필요 없다”던 조국, 자녀는 용으로 키우려 했나?

입력 2019.08.2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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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OS Gene Polymorphisms in Perinatal Hypoxic-Ischemic Encephalopathy(출산 전후 허혈성 저산소뇌병증에서 혈관내피 산화질소 합성효소 유전자의 다형성)》. 제목부터 생소한 논문 한 편이 정치권을 발칵 뒤집었습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고등학생이던 지난 2008년 단국대 의대 연구소에서 2주 가량 인턴을 한 뒤 이듬해 대한병리학회에 제출했다는 논문입니다.

조 후보자의 딸은 이 논문의 제1 저자였습니다. 통상 논문에서 가장 많은 기여를 한 연구자가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립니다.

조 후보자의 딸이 과연 논문에 제1 저자로 이름을 올릴 만큼 기여를 했을까.

해당 논문에서 실험은 모두 73차례에 걸쳐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채취된 정상 신생아 54명과 HIE 환아 37명의 혈액 시료를 사용해 이뤄졌습니다. 단 2주간 인턴으로 참여한 조 후보자의 딸이 이 같은 실험을 주도했다고 보기엔 어렵습니다.

이 논문을 주도한 단국대 의대 교수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해외 대학을 가려고 한다기에 선의로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제1 저자로 하기엔) 지나친 면이 있었지만, 열심히 참여한 게 기특해서 1 저자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교수는 또 “가이드라인을 잘 몰랐고, 그때는 지금처럼 그런 것들(저자 기준)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건 아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후 조 후보자의 딸은 고려대학교 수시 전형에 응시하며, 자기소개서에서 이 논문 작성 실적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 후보자 측은 “멀리까지 매일 오가며 프로젝트의 실험에 적극 참여하여 경험한 실험 과정 등을 영어로 완성하는데 기여하는 등 노력한 끝에 다른 참여자들과 함께 6~7페이지짜리 영어논문을 완성하였고, 해당 교수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이 과정에 “후보자나 후보자의 배우자가 관여한 바는 전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한마디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외고 학부모들 '스펙 품앗이'로 인턴…과거 발언과도 배치

조 후보자 딸이 참여한 인턴십은 당시 재학 중인 00외고가 운영한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학교와 전문가인 학부형이 협력하여 학생들의 전문성 함양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단국대 측도 입장문을 통해 “조 후보자 딸이 참여했다는 인턴 프로그램은 대학병원 차원의 공식 프로그램이 아닌 교원 개인이 진행한 비공식 프로그램”이라고 밝혔습니다.

조금 거칠게 얘기하면,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직으로 활동하는 '잘 나가는' 외고 학부모들이 서로 자녀들을 인턴으로 받아주며 대학 지원에 필요한 경력을 채워주는 ‘스펙 품앗이’였던 겁니다.

조 후보자 딸이 외고 학생이 아니었다면 학부모가 운영하는 폐쇄적이고 사적인 인턴십에 참여할 수 있었을지, 단지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전문학회 제출 논문의 제1 저자로 등재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이런 조 후보자 딸의 입시용 스펙 쌓기 활동은 조 후보자 자신이 평소 해온 주장과도 배치됩니다.

조 후보자는 지난 2007년 한 신문 칼럼을 통해 “유명 특목고는 비평준화 시절 입시 명문 고교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이런 사교육의 혜택은 대부분 상위 계층에 속하는 학생들이 누리고 있다"고 썼습니다.

또 “특목고·자사고 등은 원래 취지에 따라 운영되도록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특목고를 다니는 자신의 딸이 학부모가 운영하는 폐쇄적 인턴십에 참여해 자신이 기여한 것보다 과분한 성과(논문 제1저자 등재)를 누리고, 외국어 전공자 배출이라는 외고 취지와 달리 이후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사실과는 분명 거리가 있는 발언입니다.

지난 2012년 정치인들의 논문 표절 행태를 비판한 조 후보자의 SNS 글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조 후보자는 “직업적 학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논문 수준은 다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도 논문의 기본은 갖추어야 한다. 학계가 반성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도 잠을 줄이며 한 자 한 자 논문을 쓰고 있는 대학원생들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조 후보자의 딸이 제1 저자로 이름을 올린 논문 역시 이면엔 2년여에 걸쳐 백 개가 넘는 샘플을 채취하고 70여 차례의 실험을 했던 다른 대학원생들의 노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잠을 줄이며 한 개 한 개 샘플을 모으고 실험을 거듭했을 대학원생들은 ‘2주간 열심히 해서 기특하다’는 이유로 지도교수 자녀의 친구가 제1 저자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모두가 용이 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했지만…

고교 시절 병리학회 등재 논문 제1 저자가 될 정도로 총기가 가득했던 조 후보자 딸은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막상 의학전문대학원에선 유급에 유급을 거듭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교수로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조 후보자 딸이 학업을 포기할까봐 걱정돼 장학금을 줬다는 게 지도교수의 해명이었고, 조 후보자 측도 관련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유가 어찌 됐든, 조 후보자의 딸은 의전원에서 다른 학생들에 비해 다소 높은 관심과 지원을 받은 셈이 됐습니다.

조 후보자는 지난 2012년 3월 자신 SNS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우리는 ‘개천에서 용 났다'류의 일화를 좋아한다. 그러나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하고 '10 대 90 사회'가 되면서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확률은 극히 줄었다.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용이 되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하늘의 구름 쳐다보며 ‘출혈 경쟁’하지 말고 예쁘고 따뜻한 개천 만드는 데 힘을 쏟자!”


지금 조 후보자를 향하는 비난의 초점은 '모두가 용이 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내 아이만큼은 용으로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편법이나 특혜는 없었느냐'는 지점일 겁니다.

조 후보자 딸 관련 논란에 여당 의원들은 곤혹스러움을 표시하면서도 “법을 어긴 건 아니지 않으냐”, “주어진 틀 내에서 있는 제도를 잘 활용한 것일 뿐”이라며 애써 논란을 축소하려는 모습이었습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남의 자식은 (스펙 관리하면) 안돼도 내 자식은 된다는 사고의 결정판"이라고 비판했고, 바른미래당은 "하루가 멀다 하고 페이스북을 일삼던 손가락 정치가 왜 본인 문제 앞에선 '정지 상태'냐"고 꼬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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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심야심] “모두가 용 될 필요 없다”던 조국, 자녀는 용으로 키우려 했나?
    • 입력 2019-08-20 19:10:53
    여심야심
《eNOS Gene Polymorphisms in Perinatal Hypoxic-Ischemic Encephalopathy(출산 전후 허혈성 저산소뇌병증에서 혈관내피 산화질소 합성효소 유전자의 다형성)》. 제목부터 생소한 논문 한 편이 정치권을 발칵 뒤집었습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고등학생이던 지난 2008년 단국대 의대 연구소에서 2주 가량 인턴을 한 뒤 이듬해 대한병리학회에 제출했다는 논문입니다.

조 후보자의 딸은 이 논문의 제1 저자였습니다. 통상 논문에서 가장 많은 기여를 한 연구자가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립니다.

조 후보자의 딸이 과연 논문에 제1 저자로 이름을 올릴 만큼 기여를 했을까.

해당 논문에서 실험은 모두 73차례에 걸쳐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채취된 정상 신생아 54명과 HIE 환아 37명의 혈액 시료를 사용해 이뤄졌습니다. 단 2주간 인턴으로 참여한 조 후보자의 딸이 이 같은 실험을 주도했다고 보기엔 어렵습니다.

이 논문을 주도한 단국대 의대 교수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해외 대학을 가려고 한다기에 선의로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제1 저자로 하기엔) 지나친 면이 있었지만, 열심히 참여한 게 기특해서 1 저자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교수는 또 “가이드라인을 잘 몰랐고, 그때는 지금처럼 그런 것들(저자 기준)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건 아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후 조 후보자의 딸은 고려대학교 수시 전형에 응시하며, 자기소개서에서 이 논문 작성 실적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 후보자 측은 “멀리까지 매일 오가며 프로젝트의 실험에 적극 참여하여 경험한 실험 과정 등을 영어로 완성하는데 기여하는 등 노력한 끝에 다른 참여자들과 함께 6~7페이지짜리 영어논문을 완성하였고, 해당 교수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이 과정에 “후보자나 후보자의 배우자가 관여한 바는 전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한마디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외고 학부모들 '스펙 품앗이'로 인턴…과거 발언과도 배치

조 후보자 딸이 참여한 인턴십은 당시 재학 중인 00외고가 운영한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학교와 전문가인 학부형이 협력하여 학생들의 전문성 함양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단국대 측도 입장문을 통해 “조 후보자 딸이 참여했다는 인턴 프로그램은 대학병원 차원의 공식 프로그램이 아닌 교원 개인이 진행한 비공식 프로그램”이라고 밝혔습니다.

조금 거칠게 얘기하면,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직으로 활동하는 '잘 나가는' 외고 학부모들이 서로 자녀들을 인턴으로 받아주며 대학 지원에 필요한 경력을 채워주는 ‘스펙 품앗이’였던 겁니다.

조 후보자 딸이 외고 학생이 아니었다면 학부모가 운영하는 폐쇄적이고 사적인 인턴십에 참여할 수 있었을지, 단지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전문학회 제출 논문의 제1 저자로 등재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이런 조 후보자 딸의 입시용 스펙 쌓기 활동은 조 후보자 자신이 평소 해온 주장과도 배치됩니다.

조 후보자는 지난 2007년 한 신문 칼럼을 통해 “유명 특목고는 비평준화 시절 입시 명문 고교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이런 사교육의 혜택은 대부분 상위 계층에 속하는 학생들이 누리고 있다"고 썼습니다.

또 “특목고·자사고 등은 원래 취지에 따라 운영되도록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특목고를 다니는 자신의 딸이 학부모가 운영하는 폐쇄적 인턴십에 참여해 자신이 기여한 것보다 과분한 성과(논문 제1저자 등재)를 누리고, 외국어 전공자 배출이라는 외고 취지와 달리 이후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사실과는 분명 거리가 있는 발언입니다.

지난 2012년 정치인들의 논문 표절 행태를 비판한 조 후보자의 SNS 글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조 후보자는 “직업적 학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논문 수준은 다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도 논문의 기본은 갖추어야 한다. 학계가 반성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도 잠을 줄이며 한 자 한 자 논문을 쓰고 있는 대학원생들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조 후보자의 딸이 제1 저자로 이름을 올린 논문 역시 이면엔 2년여에 걸쳐 백 개가 넘는 샘플을 채취하고 70여 차례의 실험을 했던 다른 대학원생들의 노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잠을 줄이며 한 개 한 개 샘플을 모으고 실험을 거듭했을 대학원생들은 ‘2주간 열심히 해서 기특하다’는 이유로 지도교수 자녀의 친구가 제1 저자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모두가 용이 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했지만…

고교 시절 병리학회 등재 논문 제1 저자가 될 정도로 총기가 가득했던 조 후보자 딸은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막상 의학전문대학원에선 유급에 유급을 거듭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교수로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조 후보자 딸이 학업을 포기할까봐 걱정돼 장학금을 줬다는 게 지도교수의 해명이었고, 조 후보자 측도 관련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유가 어찌 됐든, 조 후보자의 딸은 의전원에서 다른 학생들에 비해 다소 높은 관심과 지원을 받은 셈이 됐습니다.

조 후보자는 지난 2012년 3월 자신 SNS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우리는 ‘개천에서 용 났다'류의 일화를 좋아한다. 그러나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하고 '10 대 90 사회'가 되면서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확률은 극히 줄었다.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용이 되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하늘의 구름 쳐다보며 ‘출혈 경쟁’하지 말고 예쁘고 따뜻한 개천 만드는 데 힘을 쏟자!”


지금 조 후보자를 향하는 비난의 초점은 '모두가 용이 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내 아이만큼은 용으로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편법이나 특혜는 없었느냐'는 지점일 겁니다.

조 후보자 딸 관련 논란에 여당 의원들은 곤혹스러움을 표시하면서도 “법을 어긴 건 아니지 않으냐”, “주어진 틀 내에서 있는 제도를 잘 활용한 것일 뿐”이라며 애써 논란을 축소하려는 모습이었습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남의 자식은 (스펙 관리하면) 안돼도 내 자식은 된다는 사고의 결정판"이라고 비판했고, 바른미래당은 "하루가 멀다 하고 페이스북을 일삼던 손가락 정치가 왜 본인 문제 앞에선 '정지 상태'냐"고 꼬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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