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앵커의 눈] “임시정부를 파괴하라” 일제의 밀정 공작

입력 2019.08.20 (21:10) 수정 2019.08.20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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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주 이 시간 9시 뉴스에선, 일제강점기 한국인 밀정을 찾아내서 그들의 행적을 보도했습니다.

탐사보도부가 찾아낸 밀정 혐의자만 895명에 달했는데요.

그들의 실명도 공개했습니다.

일본과 중국 기밀문서를 장기간 분석한 결과인데요.

특히 이들 밀정 가운데에는 안중근 의사의 동지, 김좌진 장군의 비서, 의열단장 김원봉의 부하 등 현재 독립유공자로 분류돼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늘(20일) 후속 보도 이어갑니다.

일제의 임시정부 파괴 공작인데요,

일제는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밀정을 동원해 집요하게 임정 붕괴 작전에 돌입합니다.

일제가 어떻게 독립운동가를 밀정으로 포섭했고 그런 밀정들이 얼마나 임정 깊숙이 침투해 있었는지 이세중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일제는 특단의 조치를 내립니다.

독립운동가를 밀정으로 포섭해 임시정부를 안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것, 그 중심에는 우쓰노미야 다로 조선군 사령관이 있었습니다.

우쓰노미야가 우선 포섭한 사람은 당시 독립운동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던 범재 김규흥, 다섯 차례 만난 후 김규흥에게 임시정부를 파괴하라는 밀명을 내립니다.

KBS는 김규흥이 우쓰노미야에 보낸 편지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김규흥의 친필 편지로, 한국에 공개되는 건 처음입니다.

"우쓰노미야 사령관 각하에게."

"임시정부에 200명이 있었지만 대부분 귀국하고 60명만 남았다, 이중 극렬분자는 40명"이라고 보고합니다.

이어 "이들을 회유하기 위해선 2, 30만 엔이 필요하다"며 밀정비를 요청합니다.

김규흥의 친일 논란이 있었지만, 구체적인 밀정 의심 행적이 처음 밝혀진 겁니다.

[배경한/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교수 : "경악스러웠죠.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되나..연구자들의 연구를 기다려야 되지, 조급하게 이쪽이냐 저쪽이냐 이렇게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김규흥은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습니다.

상해 일본 총영사관은 끊임없이 밀정을 생산해 내는 이른바 '밀정 공장'이었습니다.

[쑨커즈/중국 푸단대 사학과 교수 : "이곳은(일본총영사관) 당시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저지하기 위한 지휘소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집요하게 임정 내부에 밀정을 침투시켰고 김구 선생의 경호원까지 밀정으로 포섭했습니다.

세 차례에 걸쳤던 김구 암살 시도.

모든 공작에 일제는 밀정을 동원됐습니다.

[한시준/단국대 사학과 교수 : "김구 선생은 심장 있는 데 관통을 당하고, 독립운동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매수돼서 저격을 하게 됐다."]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가 있기 10년 전부터 지속적인 감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1912년 작성된 일본 기밀문서, 밀정이 된 홍범도의 부하가 밀고한 내용입니다.

"홍범도는 러시아 말을 타고 있다. 완장에는 붉은색 선 두 줄이 둘러져 있고, 견장은 청색이며 '통령감'이라고 적혀있다."

"홍범도가 사는 곳은 혜산진 대안 일리에서 약 30리 떨어진 신약수동이다."

한국에 은밀히 파견된 홍범도 부하들의 구체적인 신상정보까지 낱낱이 담겨있습니다.

밀정은 독립운동을 와해시키려는 일제의 핵심 전략이었습니다.

KBS 뉴스 이세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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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K/앵커의 눈] “임시정부를 파괴하라” 일제의 밀정 공작
    • 입력 2019-08-20 21:13:03
    • 수정2019-08-20 22:31:35
    뉴스 9
[앵커]

지난주 이 시간 9시 뉴스에선, 일제강점기 한국인 밀정을 찾아내서 그들의 행적을 보도했습니다.

탐사보도부가 찾아낸 밀정 혐의자만 895명에 달했는데요.

그들의 실명도 공개했습니다.

일본과 중국 기밀문서를 장기간 분석한 결과인데요.

특히 이들 밀정 가운데에는 안중근 의사의 동지, 김좌진 장군의 비서, 의열단장 김원봉의 부하 등 현재 독립유공자로 분류돼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늘(20일) 후속 보도 이어갑니다.

일제의 임시정부 파괴 공작인데요,

일제는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밀정을 동원해 집요하게 임정 붕괴 작전에 돌입합니다.

일제가 어떻게 독립운동가를 밀정으로 포섭했고 그런 밀정들이 얼마나 임정 깊숙이 침투해 있었는지 이세중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일제는 특단의 조치를 내립니다.

독립운동가를 밀정으로 포섭해 임시정부를 안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것, 그 중심에는 우쓰노미야 다로 조선군 사령관이 있었습니다.

우쓰노미야가 우선 포섭한 사람은 당시 독립운동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던 범재 김규흥, 다섯 차례 만난 후 김규흥에게 임시정부를 파괴하라는 밀명을 내립니다.

KBS는 김규흥이 우쓰노미야에 보낸 편지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김규흥의 친필 편지로, 한국에 공개되는 건 처음입니다.

"우쓰노미야 사령관 각하에게."

"임시정부에 200명이 있었지만 대부분 귀국하고 60명만 남았다, 이중 극렬분자는 40명"이라고 보고합니다.

이어 "이들을 회유하기 위해선 2, 30만 엔이 필요하다"며 밀정비를 요청합니다.

김규흥의 친일 논란이 있었지만, 구체적인 밀정 의심 행적이 처음 밝혀진 겁니다.

[배경한/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교수 : "경악스러웠죠.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되나..연구자들의 연구를 기다려야 되지, 조급하게 이쪽이냐 저쪽이냐 이렇게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김규흥은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습니다.

상해 일본 총영사관은 끊임없이 밀정을 생산해 내는 이른바 '밀정 공장'이었습니다.

[쑨커즈/중국 푸단대 사학과 교수 : "이곳은(일본총영사관) 당시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저지하기 위한 지휘소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집요하게 임정 내부에 밀정을 침투시켰고 김구 선생의 경호원까지 밀정으로 포섭했습니다.

세 차례에 걸쳤던 김구 암살 시도.

모든 공작에 일제는 밀정을 동원됐습니다.

[한시준/단국대 사학과 교수 : "김구 선생은 심장 있는 데 관통을 당하고, 독립운동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매수돼서 저격을 하게 됐다."]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가 있기 10년 전부터 지속적인 감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1912년 작성된 일본 기밀문서, 밀정이 된 홍범도의 부하가 밀고한 내용입니다.

"홍범도는 러시아 말을 타고 있다. 완장에는 붉은색 선 두 줄이 둘러져 있고, 견장은 청색이며 '통령감'이라고 적혀있다."

"홍범도가 사는 곳은 혜산진 대안 일리에서 약 30리 떨어진 신약수동이다."

한국에 은밀히 파견된 홍범도 부하들의 구체적인 신상정보까지 낱낱이 담겨있습니다.

밀정은 독립운동을 와해시키려는 일제의 핵심 전략이었습니다.

KBS 뉴스 이세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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