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스페셜] 파리에 수백km 지하굴이…어둠의 세계 ‘카타콤’

입력 2019.08.24 (21:55) 수정 2019.08.24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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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에펠탑, 루브르, 노트르담….

세계 관광 도시 1위, 프랑스 파리의 명소들인데요.

이름만 들어도 친숙한 관광지들이 즐비한 이곳에, 정작 파리 토박이들도 잘 모르는 지하 세계가 있다고 합니다.

땅속에 수백 킬로미터나 되는 동굴이 있다는데요,

파리 도심에 어떻게 이런 대규모 지하 굴이 생겨났을까요?

파리의 지하 세계, '카타콤'으로 가보시죠, 양민효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도시, 프랑스 파리...

한해 5천만 관광객이 찾는 낭만의 도시엔 은밀한 지하 세계가 있습니다.

숨겨진 땅속 동굴 '카타콤' 입니다.

파리 시내 한 지하철역 주변, 찻길 옆 맨홀 뚜껑을 열고 지하로 내려갑니다.

손잡이에 매달려 깜깜한 발밑으로 한참 내려간 끝에, 동굴 입구에 다다랐습니다.

좁고 음습한 길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머리 전등 하나에 의존해 암흑 속을 걸어갑니다.

가팔랐다 평평해지는 바닥, 미끄러운 벽에 웅덩이까지, 예측할 수 없는 어둠의 통로는 금방 뭔가 튀어나올 듯 긴장감으로 가득합니다.

카타콤이라 불리는 이 지하 굴은 12세기에서 13세기 사이 생겨났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비롯한 대형 건축 공사가 잇따른 시기, 파리 인근 지상 채석장만으론 석재를 조달하기 힘들자 돌을 땅속에서 캐내기 시작한 겁니다.

각종 다리와 성당을 비롯해 오늘날 파리 거리에 즐비한 대표적 건축 양식인 18세기 오스만식 건물들까지...

주재료인 대리석 등 석회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파리의 지하 채석장은 거대한 거미그물처럼 범위가 확장됐습니다.

[질 토마/역사학자 : "1813년부터 파리 지하에서 채석 작업은 금지된 상태입니다. 건축물들을 짓기 위해 많은 돌들이 필요했죠. 이후 파리가 너무 커지면서 (옛 파리 외곽 지역이던) 채석장 위까지 확장된 겁니다."]

카타콤의 내부 형태는 제각각입니다. 굴이 생겨난 시기, 돌을 채취한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겁니다.

울퉁불퉁한 길이 이어지는데요. 벽을 보면 돌을 떼낸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이곳이 옛날 채석장이었기 때문에 실제 여기서 돌을 채취한 흔적들이 남아있는 거죠.

그때는 품질이 좋은 석회암을 구하기 위해서 이 깊이까지 들어와서 채굴을 했다고 합니다.

땅속 7미터에서 가장 깊게는 27미터.

카타콤 곳곳엔 이 지하 세계를 만들고, 찾아낸 사람들의 흔적도 남아있습니다.

들어온 이래 가장 오래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벽에 1779년이라고 쓰여있는데요. 1779년도에 15번째 만든 벽, '기욤'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쪽엔 사람의 것인지, 동물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뼛조각까지 쌓여있습니다.

실제로 수백 년 동안 채석장에선 붕괴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여기에 18세기 후반, 질병과 대혁명 여파로 파리 묘지들이 포화 상태가 되자 무수한 시신이 지하 채석장으로 옮겨졌습니다.

[가스파르 뒤발/카타콤 탐험가 : "묘지에 시신이 쌓이고 쌓여 전염 위험이 정말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돌을 캐는 지하 채석장에는 자리가 많으니, 묘지를 지하로 옮기자' 라고 결정한 겁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의 지하 무덤인 '카타콤베'에서 따 온 이름, 카타콤에선 여전히 버려진 유골들이 발견됩니다.

현재 관광객에 공개된 지하 묘지는 전체의 100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파리 면적의 10%, 길이 250킬로미터의 지하굴이 거대한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겁니다.

지하 세계, 카타콤은 파리 시민들의 일상 공간에 숨어있습니다.

가정집 바로 주변에 있는 폐쇄된 기찻길입니다.

이 철로를 따라 터널 안으로 들어가면 카타콤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는데요 한 번 가보겠습니다.

좁고 더러운 통로를 지나면 낙서로 가득한 벽에, 무릎까지 물이 들어찬 곳도 있습니다.

'카타필' 즉 카타콤을 찾는 마니아들을 부르는 말까지 생겨났고, 취재하는 동안 이들을 마주쳤습니다.

[아민/카타필 : "(카타콤 영화를 보고)전문가와 함께 내려오기 시작했어요. 매일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카타필들에겐 성지 같은 곳이죠."]

카타필들은 카타콤의 숨겨진 루트를 찾아내고, 그들만의 지도를 만듭니다.

하지만 정확한 위치 등 정보를 공유하는 건 금지, 서로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있습니다.

[카타필 : "얘는 해골 문신이 있는데 카타필들은 실명이 아니라 가명을 사용한다. (문신이) 내 이미지처럼 됐다.지하에서 우리를 대표하는 로고 같은 거다."]

카타콤은 비밀스러운 탐험지이자, 독특한 파티 장소가 됐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치거나 실종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마약과 테러 등 범죄 우려도 큽니다.

1950년대부터 출입을 금지하고, 경찰 전담팀이 정기 순찰을 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카타콤에 매료된 사람들은 오히려 이곳을 개방하고, 문화유산으로 공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카타콤 탐험가 : "카타콤은 과거를 증언해주는 유산이다. 지하에 과거 지상의 길 이름이 새겨져서 지금은 바뀐 길 이름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는 파리의 100년, 200년 전 모습을 보는 거다."]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 파리... 그 이면에 숨겨진 어둠의 지하 세계, 카타콤이 언젠가 또 다른 관광 명소가 될 지도 지켜볼 일입니다.

파리에서 양민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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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스페셜] 파리에 수백km 지하굴이…어둠의 세계 ‘카타콤’
    • 입력 2019-08-24 22:07:04
    • 수정2019-08-24 22:32:46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앵커]

에펠탑, 루브르, 노트르담….

세계 관광 도시 1위, 프랑스 파리의 명소들인데요.

이름만 들어도 친숙한 관광지들이 즐비한 이곳에, 정작 파리 토박이들도 잘 모르는 지하 세계가 있다고 합니다.

땅속에 수백 킬로미터나 되는 동굴이 있다는데요,

파리 도심에 어떻게 이런 대규모 지하 굴이 생겨났을까요?

파리의 지하 세계, '카타콤'으로 가보시죠, 양민효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도시, 프랑스 파리...

한해 5천만 관광객이 찾는 낭만의 도시엔 은밀한 지하 세계가 있습니다.

숨겨진 땅속 동굴 '카타콤' 입니다.

파리 시내 한 지하철역 주변, 찻길 옆 맨홀 뚜껑을 열고 지하로 내려갑니다.

손잡이에 매달려 깜깜한 발밑으로 한참 내려간 끝에, 동굴 입구에 다다랐습니다.

좁고 음습한 길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머리 전등 하나에 의존해 암흑 속을 걸어갑니다.

가팔랐다 평평해지는 바닥, 미끄러운 벽에 웅덩이까지, 예측할 수 없는 어둠의 통로는 금방 뭔가 튀어나올 듯 긴장감으로 가득합니다.

카타콤이라 불리는 이 지하 굴은 12세기에서 13세기 사이 생겨났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비롯한 대형 건축 공사가 잇따른 시기, 파리 인근 지상 채석장만으론 석재를 조달하기 힘들자 돌을 땅속에서 캐내기 시작한 겁니다.

각종 다리와 성당을 비롯해 오늘날 파리 거리에 즐비한 대표적 건축 양식인 18세기 오스만식 건물들까지...

주재료인 대리석 등 석회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파리의 지하 채석장은 거대한 거미그물처럼 범위가 확장됐습니다.

[질 토마/역사학자 : "1813년부터 파리 지하에서 채석 작업은 금지된 상태입니다. 건축물들을 짓기 위해 많은 돌들이 필요했죠. 이후 파리가 너무 커지면서 (옛 파리 외곽 지역이던) 채석장 위까지 확장된 겁니다."]

카타콤의 내부 형태는 제각각입니다. 굴이 생겨난 시기, 돌을 채취한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겁니다.

울퉁불퉁한 길이 이어지는데요. 벽을 보면 돌을 떼낸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이곳이 옛날 채석장이었기 때문에 실제 여기서 돌을 채취한 흔적들이 남아있는 거죠.

그때는 품질이 좋은 석회암을 구하기 위해서 이 깊이까지 들어와서 채굴을 했다고 합니다.

땅속 7미터에서 가장 깊게는 27미터.

카타콤 곳곳엔 이 지하 세계를 만들고, 찾아낸 사람들의 흔적도 남아있습니다.

들어온 이래 가장 오래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벽에 1779년이라고 쓰여있는데요. 1779년도에 15번째 만든 벽, '기욤'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쪽엔 사람의 것인지, 동물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뼛조각까지 쌓여있습니다.

실제로 수백 년 동안 채석장에선 붕괴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여기에 18세기 후반, 질병과 대혁명 여파로 파리 묘지들이 포화 상태가 되자 무수한 시신이 지하 채석장으로 옮겨졌습니다.

[가스파르 뒤발/카타콤 탐험가 : "묘지에 시신이 쌓이고 쌓여 전염 위험이 정말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돌을 캐는 지하 채석장에는 자리가 많으니, 묘지를 지하로 옮기자' 라고 결정한 겁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의 지하 무덤인 '카타콤베'에서 따 온 이름, 카타콤에선 여전히 버려진 유골들이 발견됩니다.

현재 관광객에 공개된 지하 묘지는 전체의 100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파리 면적의 10%, 길이 250킬로미터의 지하굴이 거대한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겁니다.

지하 세계, 카타콤은 파리 시민들의 일상 공간에 숨어있습니다.

가정집 바로 주변에 있는 폐쇄된 기찻길입니다.

이 철로를 따라 터널 안으로 들어가면 카타콤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는데요 한 번 가보겠습니다.

좁고 더러운 통로를 지나면 낙서로 가득한 벽에, 무릎까지 물이 들어찬 곳도 있습니다.

'카타필' 즉 카타콤을 찾는 마니아들을 부르는 말까지 생겨났고, 취재하는 동안 이들을 마주쳤습니다.

[아민/카타필 : "(카타콤 영화를 보고)전문가와 함께 내려오기 시작했어요. 매일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카타필들에겐 성지 같은 곳이죠."]

카타필들은 카타콤의 숨겨진 루트를 찾아내고, 그들만의 지도를 만듭니다.

하지만 정확한 위치 등 정보를 공유하는 건 금지, 서로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있습니다.

[카타필 : "얘는 해골 문신이 있는데 카타필들은 실명이 아니라 가명을 사용한다. (문신이) 내 이미지처럼 됐다.지하에서 우리를 대표하는 로고 같은 거다."]

카타콤은 비밀스러운 탐험지이자, 독특한 파티 장소가 됐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치거나 실종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마약과 테러 등 범죄 우려도 큽니다.

1950년대부터 출입을 금지하고, 경찰 전담팀이 정기 순찰을 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카타콤에 매료된 사람들은 오히려 이곳을 개방하고, 문화유산으로 공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카타콤 탐험가 : "카타콤은 과거를 증언해주는 유산이다. 지하에 과거 지상의 길 이름이 새겨져서 지금은 바뀐 길 이름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는 파리의 100년, 200년 전 모습을 보는 거다."]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 파리... 그 이면에 숨겨진 어둠의 지하 세계, 카타콤이 언젠가 또 다른 관광 명소가 될 지도 지켜볼 일입니다.

파리에서 양민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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