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민근 씨 빈소에는 보라색 꽃과 핫도그가 있었습니다

입력 2019.08.27 (17:46) 수정 2019.08.27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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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근 씨가, 덕분에 행복하고 보람되게 (기부)프로젝트가 마무리될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어제(26일) 오후 KBS 취재진에게 문자로 온 감사 인사입니다. 지난 18일 KBS <뉴스9>를 통해 소개해드린 대장암 4기 장민근 씨의 지인이 보낸 문자였습니다. 문자에는 민근 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도 담겨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서른아홉의 나이로 지난 일요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보도가 나간 지 불과 일주일 뒤였습니다.

[연관기사] 말기 암환자가 소아 암환자에게 전한 1,000명의 마음

삶의 마지막 문턱에서도 기사를 쓴 기자와 KBS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던 그였습니다. "민근 씨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아내 이혜민 씨는 말합니다. 게다가 아픈 와중에도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기부 행사를 기획하고 실제 실천했습니다.

빈소엔 보라색 꽃과 핫도그..민근 씨의 '웃는' 장례식

오늘(27일) 오전, 장민근 씨 빈소가 꾸려진 병원을 찾았습니다. 풍경은 여느 장례식장과 사뭇 달랐습니다. 흰 국화가 아닌 보라색 꽃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아내 혜민 씨는 "남편이 장례식에 쓰일 꽃과 음악, 음식까지 전부 준비해 두고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생전 장민근 씨가 좋아하던 보라색 꽃으로 꾸려진 빈소생전 장민근 씨가 좋아하던 보라색 꽃으로 꾸려진 빈소

그런데 민근 씨 빈소에는 장례식장에선 보기 드문 음식들이 있었습니다. 핫도그, 아이스크림, 컵라면 등입니다. 또, 그곳에는 디즈니 만화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아이들도 맛있는 걸 먹으며 재밌어할 장례식, 모두가 웃으며 즐기는 장례식을 민근 씨가 기획했기 때문입니다. 이 덕분일까요. 그의 장례식에 온 이들은 눈물보다는 웃음을 머금고 민근 씨의 영정사진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1명의 아이라도 살린다면"..1,000명의 마음을 모은 민근 씨

민근 씨가 대장암 판정을 받은 건 지난 2017년 8월. 이후 2년 가까이 수술과 재발, 항암 치료의 고비를 넘기며 지내왔습니다. 그런 민근 씨에게 지난 4월, 아프고 나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자신의 남은 삶을 아픈 아이들을 위해 바치는 일이었습니다.

'1인, 1만 원 기부 운동'은 그렇게 탄생했고, 그는 1,000명에게서 1만 원씩 받아 1천만 원을 소아암 환우에게 전달하리란 목표를 세우고, 치료 중이던 병원을 나와 지인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손을 잡고 기획 취지를 설명했고, 기부를 받았습니다. 지난 6월 1일 시작한 기부 운동은 단 55일 만인 지난 7월 25일에 목표액 천만 원을 달성했습니다.

1호 수여자 다은이 아버지 "저도 도우며 살 겁니다"

이 기부금의 1호 수혜자는 올해 11살로 급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소아암 환자 다은이였습니다. 지난 6일, 다은이는 민근 씨가 입원한 병실로 찾아왔습니다. 이 기부금 전달 행사를 위해 민근 씨는 전날부터 수혈을 받으며 기력을 회복하고 있었습니다.

병실 앞에 도착한 다은이는 30분 가까이 안으로 들어서길 망설였습니다. "아픈 아저씨를 만나면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들어간 병실에서, 다은이는 너무나 말라버린 민근 씨를 보고 결국 눈물을 쏟았습니다. 민근씨는 오히려 웃으면서 "서로 울지 말자"며 다은이를 달랬습니다. 그리고는 "1,000명의 다은이 팬들이 모았다"며 기부금을 전했고, "다은이가 할 일은 건강하고 힘들 때마다 힘내는 일"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민근 씨의 마음에 감동한 다은이 아버지도 민근 씨를 마주하고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은이 아버지는 "아프신 분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며 "저도 이제부터 남을 도우며 살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6일, 병실에서 만난 장민근 씨와 다은이지난 6일, 병실에서 만난 장민근 씨와 다은이

민근 씨의 발인은 내일(28일) 오전 6시입니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고인(故人)의 뜻에 따라 수목장으로 치러질 예정입니다.

아내 혜민 씨는 앞으로도 남편의 기부 운동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숨을 거두기 전날까지도 자신과 기부 운동을 논의하던 민근 씨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비록 민근 씨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 기부 운동만큼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서 이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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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7 17:46:54
    • 수정2019-08-27 21:04:12
    취재후·사건후
"민근 씨가, 덕분에 행복하고 보람되게 (기부)프로젝트가 마무리될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어제(26일) 오후 KBS 취재진에게 문자로 온 감사 인사입니다. 지난 18일 KBS <뉴스9>를 통해 소개해드린 대장암 4기 장민근 씨의 지인이 보낸 문자였습니다. 문자에는 민근 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도 담겨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서른아홉의 나이로 지난 일요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보도가 나간 지 불과 일주일 뒤였습니다.

[연관기사] 말기 암환자가 소아 암환자에게 전한 1,000명의 마음

삶의 마지막 문턱에서도 기사를 쓴 기자와 KBS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던 그였습니다. "민근 씨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아내 이혜민 씨는 말합니다. 게다가 아픈 와중에도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기부 행사를 기획하고 실제 실천했습니다.

빈소엔 보라색 꽃과 핫도그..민근 씨의 '웃는' 장례식

오늘(27일) 오전, 장민근 씨 빈소가 꾸려진 병원을 찾았습니다. 풍경은 여느 장례식장과 사뭇 달랐습니다. 흰 국화가 아닌 보라색 꽃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아내 혜민 씨는 "남편이 장례식에 쓰일 꽃과 음악, 음식까지 전부 준비해 두고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생전 장민근 씨가 좋아하던 보라색 꽃으로 꾸려진 빈소
그런데 민근 씨 빈소에는 장례식장에선 보기 드문 음식들이 있었습니다. 핫도그, 아이스크림, 컵라면 등입니다. 또, 그곳에는 디즈니 만화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아이들도 맛있는 걸 먹으며 재밌어할 장례식, 모두가 웃으며 즐기는 장례식을 민근 씨가 기획했기 때문입니다. 이 덕분일까요. 그의 장례식에 온 이들은 눈물보다는 웃음을 머금고 민근 씨의 영정사진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1명의 아이라도 살린다면"..1,000명의 마음을 모은 민근 씨

민근 씨가 대장암 판정을 받은 건 지난 2017년 8월. 이후 2년 가까이 수술과 재발, 항암 치료의 고비를 넘기며 지내왔습니다. 그런 민근 씨에게 지난 4월, 아프고 나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자신의 남은 삶을 아픈 아이들을 위해 바치는 일이었습니다.

'1인, 1만 원 기부 운동'은 그렇게 탄생했고, 그는 1,000명에게서 1만 원씩 받아 1천만 원을 소아암 환우에게 전달하리란 목표를 세우고, 치료 중이던 병원을 나와 지인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손을 잡고 기획 취지를 설명했고, 기부를 받았습니다. 지난 6월 1일 시작한 기부 운동은 단 55일 만인 지난 7월 25일에 목표액 천만 원을 달성했습니다.

1호 수여자 다은이 아버지 "저도 도우며 살 겁니다"

이 기부금의 1호 수혜자는 올해 11살로 급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소아암 환자 다은이였습니다. 지난 6일, 다은이는 민근 씨가 입원한 병실로 찾아왔습니다. 이 기부금 전달 행사를 위해 민근 씨는 전날부터 수혈을 받으며 기력을 회복하고 있었습니다.

병실 앞에 도착한 다은이는 30분 가까이 안으로 들어서길 망설였습니다. "아픈 아저씨를 만나면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들어간 병실에서, 다은이는 너무나 말라버린 민근 씨를 보고 결국 눈물을 쏟았습니다. 민근씨는 오히려 웃으면서 "서로 울지 말자"며 다은이를 달랬습니다. 그리고는 "1,000명의 다은이 팬들이 모았다"며 기부금을 전했고, "다은이가 할 일은 건강하고 힘들 때마다 힘내는 일"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민근 씨의 마음에 감동한 다은이 아버지도 민근 씨를 마주하고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은이 아버지는 "아프신 분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며 "저도 이제부터 남을 도우며 살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6일, 병실에서 만난 장민근 씨와 다은이
민근 씨의 발인은 내일(28일) 오전 6시입니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고인(故人)의 뜻에 따라 수목장으로 치러질 예정입니다.

아내 혜민 씨는 앞으로도 남편의 기부 운동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숨을 거두기 전날까지도 자신과 기부 운동을 논의하던 민근 씨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비록 민근 씨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 기부 운동만큼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서 이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 KBS 제보는 전화 02-781-4444번이나,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 'KBS 제보'를 검색하셔서 친구맺기를 하신 뒤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영상 제보는 보도에 반영되면 사례하겠습니다. KBS 뉴스는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갑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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