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닦고 돌아온 박해미 “무대가 제 종교에요”

입력 2019.08.29 (16:33) 수정 2019.08.2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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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 이후 잠시 대중과 거리를 뒀던 배우 겸 연출가 박해미(55)가 돌아왔다. 그가 가장 빛나는 일, 가장 사랑하는 일인 뮤지컬을 통해서다.

박해미는 29일 종로구 대학로 원패스아트홀에서 창작 뮤지컬 '쏘 왓'(So What) 제작발표회를 열었다.

그는 "어렵게 팀이 구성됐고 이렇게 무대에 올라가게 됐다.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많이 누르고 참았던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해미는 지난해 깊은 어둠을 지났다. 남편이 음주 교통사고를 내 뮤지컬 단원들이 숨졌고, 올해는 남편과 갈라섰다. 이후 무대에서 박해미를 다시 만나긴 어려웠다. 출연 중이던 뮤지컬 '오! 캐롤'을 마지막으로 강의하던 학교에도 사표를 냈다. "수입원이 한 푼도 없던 상황"이라고 지난날을 회고했다.

그는 "늪에 빠져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 있었다. 1년간 죄인 아닌 죄인으로서 자숙했다"며 "겉으로는 밝게 웃어도 속은 달랐다. 누군가 내가 웃는 모습을 보더니 울더라.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데 입은 웃고 있으니 그랬나 보다"라고 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결국 무대였다. 1984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데뷔한 박해미는 평생을 무대에서 살았다. 1997년에는 해미뮤지컬컴퍼니를 세워 제작가 겸 연출가로서 '키스 앤 메이크업', '아이두 아이두', '뉴 하이파이브' 등을 무대에 올렸다. 지난해 사고가 터지기 직전까지도 '키스 앤 메이크업'을 공연 중이었다.

"무대에서 조명이 암전됐다가 켜질 때 살아 숨 쉬는 걸, 심장이 뛰는 걸 느껴요. 그 힘이 제겐 종교에요. 제가 할 일은 결국 이것이라고 정리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개막하는 '쏘 왓'은 독일 극작가 프랑크 베데킨트(1864∼1918)의 대표작 '사춘기'를 각색한 뮤지컬이다. 박해미가 기획·제작하고 총감독했다. 성(性)에 눈뜨기 시작한 청소년들의 불안과 이를 억압하려는 성인들의 권위 의식의 대립을 그렸다.

인물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는 '랩'이다. 그동안 장르 융합을 내걸었지만, 이질적 결과물로 공감을 얻는 데 실패한 작품이 태반이었다. 다행히 '쏘 왓'은 울분에 찬 10대들의 외침을 랩에 효과적으로 실어낸다.

박해미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우리 사회 성 문제가 참 불안했기에 교본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젊은 청춘의 저항이 랩 뮤지컬과 잘 어울리겠더라"고 설명했다.

'제이큐'라는 예명으로 래퍼로 활동 중인 이종원 음악감독은 "랩으로 풀어가야 하는 장면이 많아서 배우들에게 랩 오디션을 따로 봤다. 실력 출중한 분들과 함께 작업해 즐거웠다"고 말했다.

'쏘 왓'에는 박해미의 아들인 황성재(19) 군도 배우로 출연한다. 올해 명지대 뮤지컬학과에 입학한 황 군은 "폐를 끼치지 않도록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공정한 오디션을 거쳐 발탁됐지만, 감독이 어머니라는 이유로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고 했다.

박해미는 "아들이 '엄마, 악플이 많이 있어'라고 하길래 '배우 자식이니까 원죄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 무대에서 열심히 보여주면 돼'라고 말해줬다"고 전했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110㎏에 육박하던 아들이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되면서 몇 개월 만에 40㎏을 뺐다. 독하게 하더라"라며 "어젯밤 무대 감독님과 극장에 남아 땀 흘리며 망치질하는 아들을 보니 참 고마웠다. '너랑 내가 뭔들 못하겠니' 싶었다"고 했다.

박해미는 제작발표회에 이어 인근 카페로 자리를 옮겨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일찍이 백발이었던 그는 지난해 사건 이후 따로 염색하지 않고 머리를 내버려 뒀다고 한다. 금빛이 살짝 도는 백발이 산뜻했다.

"염색 안 하니까 참 좋더라고요. 너무 행복해요. 그래도 너무 희면 할머니 같아 보일까 봐, 엊그제 미용실 가서 살짝 다듬기만 했어요."

박해미는 9월엔 뮤지컬 '위 윌 록 유' 연습을 시작한다. KBS 드라마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 촬영도 코앞에 뒀다. 어두운 터널을 헤치고 나온 그가 저녁 공연을 준비해야 한다며 일어섰다. 바삐 옮기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뿐해 보였다.

'쏘 왓' 공연은 대학로 원패스아트홀에서 오픈 런으로 진행된다. 전석 4만원.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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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9 16:33:15
    • 수정2019-08-29 16: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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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 이후 잠시 대중과 거리를 뒀던 배우 겸 연출가 박해미(55)가 돌아왔다. 그가 가장 빛나는 일, 가장 사랑하는 일인 뮤지컬을 통해서다.

박해미는 29일 종로구 대학로 원패스아트홀에서 창작 뮤지컬 '쏘 왓'(So What) 제작발표회를 열었다.

그는 "어렵게 팀이 구성됐고 이렇게 무대에 올라가게 됐다.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많이 누르고 참았던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해미는 지난해 깊은 어둠을 지났다. 남편이 음주 교통사고를 내 뮤지컬 단원들이 숨졌고, 올해는 남편과 갈라섰다. 이후 무대에서 박해미를 다시 만나긴 어려웠다. 출연 중이던 뮤지컬 '오! 캐롤'을 마지막으로 강의하던 학교에도 사표를 냈다. "수입원이 한 푼도 없던 상황"이라고 지난날을 회고했다.

그는 "늪에 빠져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 있었다. 1년간 죄인 아닌 죄인으로서 자숙했다"며 "겉으로는 밝게 웃어도 속은 달랐다. 누군가 내가 웃는 모습을 보더니 울더라.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데 입은 웃고 있으니 그랬나 보다"라고 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결국 무대였다. 1984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데뷔한 박해미는 평생을 무대에서 살았다. 1997년에는 해미뮤지컬컴퍼니를 세워 제작가 겸 연출가로서 '키스 앤 메이크업', '아이두 아이두', '뉴 하이파이브' 등을 무대에 올렸다. 지난해 사고가 터지기 직전까지도 '키스 앤 메이크업'을 공연 중이었다.

"무대에서 조명이 암전됐다가 켜질 때 살아 숨 쉬는 걸, 심장이 뛰는 걸 느껴요. 그 힘이 제겐 종교에요. 제가 할 일은 결국 이것이라고 정리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개막하는 '쏘 왓'은 독일 극작가 프랑크 베데킨트(1864∼1918)의 대표작 '사춘기'를 각색한 뮤지컬이다. 박해미가 기획·제작하고 총감독했다. 성(性)에 눈뜨기 시작한 청소년들의 불안과 이를 억압하려는 성인들의 권위 의식의 대립을 그렸다.

인물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는 '랩'이다. 그동안 장르 융합을 내걸었지만, 이질적 결과물로 공감을 얻는 데 실패한 작품이 태반이었다. 다행히 '쏘 왓'은 울분에 찬 10대들의 외침을 랩에 효과적으로 실어낸다.

박해미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우리 사회 성 문제가 참 불안했기에 교본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젊은 청춘의 저항이 랩 뮤지컬과 잘 어울리겠더라"고 설명했다.

'제이큐'라는 예명으로 래퍼로 활동 중인 이종원 음악감독은 "랩으로 풀어가야 하는 장면이 많아서 배우들에게 랩 오디션을 따로 봤다. 실력 출중한 분들과 함께 작업해 즐거웠다"고 말했다.

'쏘 왓'에는 박해미의 아들인 황성재(19) 군도 배우로 출연한다. 올해 명지대 뮤지컬학과에 입학한 황 군은 "폐를 끼치지 않도록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공정한 오디션을 거쳐 발탁됐지만, 감독이 어머니라는 이유로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고 했다.

박해미는 "아들이 '엄마, 악플이 많이 있어'라고 하길래 '배우 자식이니까 원죄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 무대에서 열심히 보여주면 돼'라고 말해줬다"고 전했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110㎏에 육박하던 아들이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되면서 몇 개월 만에 40㎏을 뺐다. 독하게 하더라"라며 "어젯밤 무대 감독님과 극장에 남아 땀 흘리며 망치질하는 아들을 보니 참 고마웠다. '너랑 내가 뭔들 못하겠니' 싶었다"고 했다.

박해미는 제작발표회에 이어 인근 카페로 자리를 옮겨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일찍이 백발이었던 그는 지난해 사건 이후 따로 염색하지 않고 머리를 내버려 뒀다고 한다. 금빛이 살짝 도는 백발이 산뜻했다.

"염색 안 하니까 참 좋더라고요. 너무 행복해요. 그래도 너무 희면 할머니 같아 보일까 봐, 엊그제 미용실 가서 살짝 다듬기만 했어요."

박해미는 9월엔 뮤지컬 '위 윌 록 유' 연습을 시작한다. KBS 드라마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 촬영도 코앞에 뒀다. 어두운 터널을 헤치고 나온 그가 저녁 공연을 준비해야 한다며 일어섰다. 바삐 옮기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뿐해 보였다.

'쏘 왓' 공연은 대학로 원패스아트홀에서 오픈 런으로 진행된다. 전석 4만원.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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