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참사 8년…“여전히 가해자는 없다”

입력 2019.08.2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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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27일과 28일 이틀간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를 열었습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의 첫 피해자가 알려진 지 8년 만입니다. 너무 늦었지만, 그래서 더 기대가 높았습니다.

청문회에선 주목할 만한 사실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 가해 기업들이 협의체를 구성해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저지한 정황이 공개됐고, 공정거래위원회와 조사 대상 기업들의 유착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지난 2011년까지 군부대와 산하 기관이 확인된 것만 2천 4백여 개에 이르는 가습기 살균제를 구매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특히 SK케미칼 최창원 전 대표이사와 애경산업 채동석 부회장이 처음으로 피해자들을 향해 고개 숙여 사과한 것은 이번 청문회의 큰 성과로 보입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이를 두고 "여전히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말뿐인 사과"라고 비판했습니다.

■ "옆구리 찔러 사과받은 느낌"…배·보상 얘기엔 침묵

 SK케미칼 최창원 전 대표이사(왼쪽)와 애경산업 채동석 부회장(오른쪽)은 지난 27일 청문회장에서 처음으로 피해자들을 향해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SK케미칼 최창원 전 대표이사(왼쪽)와 애경산업 채동석 부회장(오른쪽)은 지난 27일 청문회장에서 처음으로 피해자들을 향해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사과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다 사과가 아니다." SK케미칼 최창원 전 대표이사와 애경산업 채동석 부회장의 사과를 두고 황필규 특조위원이 한 말입니다. 황 위원은 "진실을 밝히고 구체적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재발방지와 피해자 구제 대책을 이야기하는 게 사과"라고 지적했습니다.

최예용 부위원장도 "그동안 두 기업이 피해자에게 사과할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해 이번 청문회가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기대했는데, 옆구리 찔러 사과받은 느낌에 실망스럽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두 기업의 전향적인 피해자 배·보상 방안, 확실한 재발방지 대책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재판이 진행 중이니 결과가 나오면 법적 책임을 지겠다면서도, 청문회장에서 제시된 피해구제 특별법 통과 저지 전략 등에 대해선 보고받지 못했다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들이 여러 번 반복했던 "무겁게 받아들인다", "노력하겠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이 공허하게 느껴진 이유입니다.

2017년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피해자 지원을 확대하는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개정안이 논의되자 별도의 협의체를 구성해 법안 통과 저지를 시도했습니다. 이들은 검찰과 환경부, 공정거래위원회의 동향을 파악해 공유한 것은 물론 야당 정치인과 언론, 김앤장 법률사무소 등을 이용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피해자 김태종 씨는 "기업들이 어떻게 하면 책임을 피할까 궁리하는 것 같다"며 "피해자들에겐 더없이 인색하게 굴면서 애경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김앤장에 준 법률 자문비만 18억 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 "정부가 잘했어야"·"대통령이 이미 사과했다"…망언에 야유 쏟아져

옥시레킷벤키저 박동석 대표이사(왼쪽)는 정부에 책임을 돌리는 발언으로 최예용 부위원장(오른쪽)의 강도 높은 비판을 받았습니다.옥시레킷벤키저 박동석 대표이사(왼쪽)는 정부에 책임을 돌리는 발언으로 최예용 부위원장(오른쪽)의 강도 높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옥시레킷벤키저 박동석 대표이사의 적반하장격 발언도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박 대표는 재차 가습기 살균제 피해 책임을 정부와 SK케미칼 등 다른 제조 업체들에 돌렸습니다.

박 대표는 "1994년 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판매하고 1996년 옥시가 유사 제품을 내놨을 때 정부 기관에서 관리·감독을 철저히 했으면 이런 참사는 없었을 것"이라며 "2016년 옥시가 책임을 인정했을 때 SK케미칼이나 관련 업체들이 배상했다면 피해자의 고통은 현저히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즉각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고 특조위원들도 "가해자 간의 형평만 얘기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정작 옥시레킷벤키저의 외국인 임원들은 청문회에 전원 불출석했습니다. 락스만 나라시만 옥시레킷벤키저 영국 본사 CEO 내정자, 이타사프달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이사, 거라브 제인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이사 등은 앞서 검찰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에도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윤성규 전 환경부 장관의 망언에도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윤 전 장관은 환경부의 책임소재를 묻는 질의에 "현직 대통령인 문재인 대통령께서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는데 거기에 꼬리 붙일 게 뭐 있느냐"고 답했습니다.

방청석에서는 곧바로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조순미 씨는 "윤성규 전 장관의 발언은 피해자를 기만하는 행위"라며 "이런 사람이 국민 세금으로 장관에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황당하다"고 비난했습니다.

피해자들이 바라는 건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피해 배상 대책을 찾는 것입니다. 이번 청문회의 목적도 여기에 있었지만 분명 기대에 미치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늦게라도 회복할 수 없는 고통을 입은 피해자들에 대한 납득할만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와 관계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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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습기 살균제’ 참사 8년…“여전히 가해자는 없다”
    • 입력 2019-08-29 17:39:06
    취재K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27일과 28일 이틀간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를 열었습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의 첫 피해자가 알려진 지 8년 만입니다. 너무 늦었지만, 그래서 더 기대가 높았습니다.

청문회에선 주목할 만한 사실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 가해 기업들이 협의체를 구성해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저지한 정황이 공개됐고, 공정거래위원회와 조사 대상 기업들의 유착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지난 2011년까지 군부대와 산하 기관이 확인된 것만 2천 4백여 개에 이르는 가습기 살균제를 구매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특히 SK케미칼 최창원 전 대표이사와 애경산업 채동석 부회장이 처음으로 피해자들을 향해 고개 숙여 사과한 것은 이번 청문회의 큰 성과로 보입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이를 두고 "여전히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말뿐인 사과"라고 비판했습니다.

■ "옆구리 찔러 사과받은 느낌"…배·보상 얘기엔 침묵

 SK케미칼 최창원 전 대표이사(왼쪽)와 애경산업 채동석 부회장(오른쪽)은 지난 27일 청문회장에서 처음으로 피해자들을 향해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사과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다 사과가 아니다." SK케미칼 최창원 전 대표이사와 애경산업 채동석 부회장의 사과를 두고 황필규 특조위원이 한 말입니다. 황 위원은 "진실을 밝히고 구체적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재발방지와 피해자 구제 대책을 이야기하는 게 사과"라고 지적했습니다.

최예용 부위원장도 "그동안 두 기업이 피해자에게 사과할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해 이번 청문회가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기대했는데, 옆구리 찔러 사과받은 느낌에 실망스럽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두 기업의 전향적인 피해자 배·보상 방안, 확실한 재발방지 대책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재판이 진행 중이니 결과가 나오면 법적 책임을 지겠다면서도, 청문회장에서 제시된 피해구제 특별법 통과 저지 전략 등에 대해선 보고받지 못했다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들이 여러 번 반복했던 "무겁게 받아들인다", "노력하겠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이 공허하게 느껴진 이유입니다.

2017년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피해자 지원을 확대하는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개정안이 논의되자 별도의 협의체를 구성해 법안 통과 저지를 시도했습니다. 이들은 검찰과 환경부, 공정거래위원회의 동향을 파악해 공유한 것은 물론 야당 정치인과 언론, 김앤장 법률사무소 등을 이용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피해자 김태종 씨는 "기업들이 어떻게 하면 책임을 피할까 궁리하는 것 같다"며 "피해자들에겐 더없이 인색하게 굴면서 애경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김앤장에 준 법률 자문비만 18억 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 "정부가 잘했어야"·"대통령이 이미 사과했다"…망언에 야유 쏟아져

옥시레킷벤키저 박동석 대표이사(왼쪽)는 정부에 책임을 돌리는 발언으로 최예용 부위원장(오른쪽)의 강도 높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옥시레킷벤키저 박동석 대표이사의 적반하장격 발언도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박 대표는 재차 가습기 살균제 피해 책임을 정부와 SK케미칼 등 다른 제조 업체들에 돌렸습니다.

박 대표는 "1994년 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판매하고 1996년 옥시가 유사 제품을 내놨을 때 정부 기관에서 관리·감독을 철저히 했으면 이런 참사는 없었을 것"이라며 "2016년 옥시가 책임을 인정했을 때 SK케미칼이나 관련 업체들이 배상했다면 피해자의 고통은 현저히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즉각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고 특조위원들도 "가해자 간의 형평만 얘기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정작 옥시레킷벤키저의 외국인 임원들은 청문회에 전원 불출석했습니다. 락스만 나라시만 옥시레킷벤키저 영국 본사 CEO 내정자, 이타사프달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이사, 거라브 제인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이사 등은 앞서 검찰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에도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윤성규 전 환경부 장관의 망언에도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윤 전 장관은 환경부의 책임소재를 묻는 질의에 "현직 대통령인 문재인 대통령께서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는데 거기에 꼬리 붙일 게 뭐 있느냐"고 답했습니다.

방청석에서는 곧바로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조순미 씨는 "윤성규 전 장관의 발언은 피해자를 기만하는 행위"라며 "이런 사람이 국민 세금으로 장관에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황당하다"고 비난했습니다.

피해자들이 바라는 건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피해 배상 대책을 찾는 것입니다. 이번 청문회의 목적도 여기에 있었지만 분명 기대에 미치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늦게라도 회복할 수 없는 고통을 입은 피해자들에 대한 납득할만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와 관계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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