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송환법 철회한 홍콩 행정장관, ‘캐리람’은 누구?

입력 2019.09.04 (19:28) 수정 2019.09.04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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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람 홍콩 행정장관이 "송환법' 공식 철회를 결정했다는 소식이 보도되면서 홍콩사태가 진정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홍콩시민들이 시위를 멈출지 아니면 남은 요구사항을 관철시킬지 두고 봐야 하지만, 캐리람 장관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감은 극에 달해있다. 캐리람은 어떤 인물이길래 사태를 이 지경으로 끌고 오고 최악의 홍콩분열을 가져온 것일까?

캐리람은 홍콩 완차이 출생으로 홍콩대학교를 졸업한 뒤 학생 시절에는 학생운동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 홍콩 행정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으며, 런던 캠브리지대학에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캠브리지 대학 연수 중 캐리람은 중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슬하에 있는 두 명의 아이들 중 한 명은 남편과 영국 국적으로 있으며, 또 다른 아이 한 명은 중국 본토에서 살고 있다.

캐리람은 2004년 런던에 있는 홍콩경제무역사무소장에 지명됐고, 2007년에는 홍콩 개발국장으로 임명돼 영국 식민 통치를 상징하는 건축물 '퀸스피어' 철거작업을 진두지휘했다.

■ 캐리람, 2014년 홍콩민주화시위 강제진압

캐리람이 세계 언론에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 때부터이다. 그는 행정장관에 이은 홍콩의 2인자 자리인 정무 사장으로서 홍콩 민주화 시위를 강경진압하면서 중국 당국의 눈에 들게 된다.

2014년 10월 홍콩민주화시위2014년 10월 홍콩민주화시위

당시 시위대는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후보를 친중국 인사로 제한한 중앙 정부에 반발해 우산 혁명을 일으켰고, 금융중심지 센트럴을 점령하며 79일 동안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캐리람은 시위대를 강제 해산한 뒤 학생지도자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는데, 학생들의 행정장관 선출 방식 재검토 요구를 단칼에 거부했다.

그리고 2017년 행정장관 선거에 본인이 나서게 된다. 친중파 정치인인 캐리람은 2017년 3월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전체 선거인단 1,194표 가운데 777표를 얻어 당선되며 홍콩의 5대 행정장관이자 최초의 여성행정장관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미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를 강경진압하며 중국 정부에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은 터라 행정장관 당선은 예견된 일이었다.

■ 홍콩의 분열 치유하겠다던 캐리람, 하지만…

캐리람은 2017년 7월 행정장관 수락연설에서 "우리의 보금자리인 홍콩은 심각한 불화로 고통을 받고 있고, 수많은 좌절을 맛봐야 했다.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이런 분열을 치유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첫 일성은 분열의 치유였지만, 홍콩 역사상 가장 큰 분열이 그의 재임 기간에 일어나고야 말았다.

캐리람은 그동안 정치 투쟁에서 물러남이 없었고, 이런 자세가 그녀에게 '굿 파이터'라는 별명을 가져다줬다고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행정장관 재직 중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을 반대하는 홍콩시민들의 생각을 캐리람은 제대로 읽지 못했다. 아니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방법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것을 그대로 밀어붙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을 꺾어버렸다.

지난 2일 홍콩 ‘송환법’철회 요구 집회지난 2일 홍콩 ‘송환법’철회 요구 집회

홍콩 시위가 극한으로 치달았던 지난달 13일, 캐리람 행정장관은 홍콩국제공항 점거시위를 비난하면서 "시위대가 과연 홍콩의 모든 것을 멸망으로 이끌 심연으로 밀어 넣을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누가 홍콩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억누르고 홍콩을 심연으로 밀어 넣었는지 홍콩 시민들은 묻고 있다.

지난 8월 자신이 '선택권이 있다면 사퇴하고싶다'는 발언을 한 비공개회동 녹취가 공개된 이후 '사퇴는 없다'고 일축해온 캐리람 장관의 향후 거취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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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국 송환법 철회한 홍콩 행정장관, ‘캐리람’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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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9-09-04 19:32:13
    취재K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이 "송환법' 공식 철회를 결정했다는 소식이 보도되면서 홍콩사태가 진정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홍콩시민들이 시위를 멈출지 아니면 남은 요구사항을 관철시킬지 두고 봐야 하지만, 캐리람 장관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감은 극에 달해있다. 캐리람은 어떤 인물이길래 사태를 이 지경으로 끌고 오고 최악의 홍콩분열을 가져온 것일까? 캐리람은 홍콩 완차이 출생으로 홍콩대학교를 졸업한 뒤 학생 시절에는 학생운동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 홍콩 행정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으며, 런던 캠브리지대학에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캠브리지 대학 연수 중 캐리람은 중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슬하에 있는 두 명의 아이들 중 한 명은 남편과 영국 국적으로 있으며, 또 다른 아이 한 명은 중국 본토에서 살고 있다. 캐리람은 2004년 런던에 있는 홍콩경제무역사무소장에 지명됐고, 2007년에는 홍콩 개발국장으로 임명돼 영국 식민 통치를 상징하는 건축물 '퀸스피어' 철거작업을 진두지휘했다. ■ 캐리람, 2014년 홍콩민주화시위 강제진압 캐리람이 세계 언론에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 때부터이다. 그는 행정장관에 이은 홍콩의 2인자 자리인 정무 사장으로서 홍콩 민주화 시위를 강경진압하면서 중국 당국의 눈에 들게 된다. 2014년 10월 홍콩민주화시위 당시 시위대는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후보를 친중국 인사로 제한한 중앙 정부에 반발해 우산 혁명을 일으켰고, 금융중심지 센트럴을 점령하며 79일 동안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캐리람은 시위대를 강제 해산한 뒤 학생지도자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는데, 학생들의 행정장관 선출 방식 재검토 요구를 단칼에 거부했다. 그리고 2017년 행정장관 선거에 본인이 나서게 된다. 친중파 정치인인 캐리람은 2017년 3월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전체 선거인단 1,194표 가운데 777표를 얻어 당선되며 홍콩의 5대 행정장관이자 최초의 여성행정장관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미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를 강경진압하며 중국 정부에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은 터라 행정장관 당선은 예견된 일이었다. ■ 홍콩의 분열 치유하겠다던 캐리람, 하지만… 캐리람은 2017년 7월 행정장관 수락연설에서 "우리의 보금자리인 홍콩은 심각한 불화로 고통을 받고 있고, 수많은 좌절을 맛봐야 했다.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이런 분열을 치유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첫 일성은 분열의 치유였지만, 홍콩 역사상 가장 큰 분열이 그의 재임 기간에 일어나고야 말았다. 캐리람은 그동안 정치 투쟁에서 물러남이 없었고, 이런 자세가 그녀에게 '굿 파이터'라는 별명을 가져다줬다고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행정장관 재직 중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을 반대하는 홍콩시민들의 생각을 캐리람은 제대로 읽지 못했다. 아니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방법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것을 그대로 밀어붙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을 꺾어버렸다. 지난 2일 홍콩 ‘송환법’철회 요구 집회 홍콩 시위가 극한으로 치달았던 지난달 13일, 캐리람 행정장관은 홍콩국제공항 점거시위를 비난하면서 "시위대가 과연 홍콩의 모든 것을 멸망으로 이끌 심연으로 밀어 넣을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누가 홍콩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억누르고 홍콩을 심연으로 밀어 넣었는지 홍콩 시민들은 묻고 있다. 지난 8월 자신이 '선택권이 있다면 사퇴하고싶다'는 발언을 한 비공개회동 녹취가 공개된 이후 '사퇴는 없다'고 일축해온 캐리람 장관의 향후 거취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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