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② ‘주인 없는 돈’을 잡아라…R&D 브로커 기승

입력 2019.09.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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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개발비 5조 풀린다"...브로커 시장 들썩

특별법까지 만들며 20년 동안 애지중지 키워온 소재·부품 산업이 일본의 수출 규제 한방에 맥없이 흔들리자, 정부는 앞으로 5년 동안 소재·부품 연구개발에 5조 원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예년에 비하면 배 가까이 늘어난 금액인데요. 시장의 반응은 뜨겁습니다. 일단 연구개발 예산은 대출과 달라서 상환할 필요가 없어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받을 수만 있다면 좋은 그야말로 알짜 국책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부 연구개발비를 따내기 위해서는 준비할 서류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사업계획서와 신용상태동의서, 연구시설 심의서 등 최종 통과까지 모두 8가지 서류를 제출해야 합니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 처음 도전하는 중소기업들은 헤매기 십상입니다. 때문에 국가 연구개발비를 대신 따준다는 중개업체, 브로커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착수금 50만 원, 서류작성비 50만 원, 성공보수 6%"

실제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접 취재했습니다.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한 연구개발비 브로커 업체를 찾았습니다. 낡은 상가건물의 좁은 복도를 지나자 한 사무실이 나타났는데요. 30대로 보이는 젊은 대표는 올해에만 국책사업 5억 원어치를 따냈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서류 작성부터 현장실사 발표자료까지 대신 작성해주고, 면접에서 점수를 딸 수 있게 연습도 시켜준다고 말했습니다. 비용을 문의하자 '착수금이 50만 원, 서류작성비가 50만 원, 최종 선정되면 전체 연구개발비의 6%를 달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연구개발비 1억 원을 받았을 경우, 이 브로커에게 돌아가는 돈만 700만 원에 달합니다.


가짜 연구소 만드는 방법도 알려줍니다. 창고 등 회사 안의 빈 공간을 연구소로 등록하고, 실사를 나올 때만 직원들이 그곳에서 근무하면 된다는 건데요. 4년제 대학 이공계를 졸업한 직원을 연구원으로 이름을 올리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연구개발비로 직원 월급도 줄 수 있으니 기업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입니다.

서울의 다른 중개 업체를 찾았습니다. 대표라는 사람은 자신이 중소벤처기업부의 연구개발 선정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연구개발비를 딸 수 있게 서류를 꾸며주는 중개업자가 심사까지 한다는 얘깁니다. 이 업자는 심사 과정에서 자신의 고객을 만난 적은 없지만 업계가 워낙 좁기 때문에 위원들이 아는 업체가 심사에 들어오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말했습니다. 업자는 "심사 끝내고 저희끼리 '쟤 내가 아는 후배네. 이번에 별거 없으니 이 업체 한 번 밀어줍시다.' 이렇게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영향력을 설명했습니다.


국가 연구개발비 시장이 5조 원대로 커지자 보험 설계사들까지 뛰어들었습니다. 보험 설계사들이 주로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에서는 '법인 영업 특강' 고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4회에 150만 원에 달하는 고액 강의인데요. 자세히 살펴보니 국가 연구개발비를 받는 방법 등 중소기업 컨설팅과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이렇게 배운 기법은 보험 영업에 활용되는데요. 실제로 취재진이 접촉한 한 보험 설계사는 연구개발비 지원 서류를 대신 꾸며주는 대가로 '10년에 3억 원 상당의 저축성 보험을 들거나, 월 100만 원을 내는 보장성 보험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른바 '꺾기' 영업을 하는 겁니다.

■중기부 중개업체 14곳 경찰 수사 의뢰...처벌 기준 없어

사실 이런 연구개발비 브로커가 하루 이틀의 문제는 아닙니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는 브로커와 업체 14곳을 적발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는데요. 대부분 여전히 영업하고 있습니다. 처벌 기준이 없기 때문인데요. 국가 자격증인 '경영지도자'가 우선 국책사업 컨설팅을 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의 법안은 지난 2016년 발의됐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경영지도사를 제외한 컨설팅 업체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반발도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기준이라고 할 만한 것은 중소벤처기업부가 2017년 발표한 '불법 브로커 판정 기준 및 제재'가 있습니다. ▲신청서류 허위 작성 ▲자금 지원 대가로 보험상품 가입 유도하고 보험사를 통해 수수료를 받는 경우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 사칭 ▲정책 자금 지원을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한 뒤 실패 시 수수료를 반환하지 않는 경우 등을 불법 브로커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형법상의 사기죄 등으로 처벌해야 하기 때문에 처벌까지 가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대폭 늘어난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둘러싼 시장의 반응을 알아봤습니다. 이제부터는 우리나라 국가 연구개발 사업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코리아 R&D 패러독스'...뭐가 문제길래?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 연구개발, R&D 사업을 조롱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코리아 R&D 패러독스>라는 말입니다.

한해 20조 원이 넘는 예산을 국가 R&D에 쏟아 붓는데 왜 이런 조롱을 당하는 걸까요? 바로 90%가 넘는다는 R&D 성공률이 실제 사업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조롱하는 겁니다.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은 대전 항공우주연구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국가가 출연한 연구소의 연구과제 성공률이 무려 99.5%에 달합니다. 저는 이 수치가 자랑스럽지 않습니다."

정말 놀라운 성과입니다. 99.5% 그런데 대통령은 왜 자랑스럽지 않다고 했을까요?

■90% 넘는 R&D 성공률...사업화 성공은 20%?

바로 100%에 육박하는 R&D 성공률의 이면에 사업화 성공률 20%라는 초라한 성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과 비교해 볼까요?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가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31개 국가와 비교한 자료를 보면 영국은 70.7%, 미국은 69.3%라는 수치가 있습니다. 이게 뭐냐면 R&D 성공률이 아니라 R&D가 사업화까지 성공한 비율입니다. 일본만 해도 사업화 성공률은 54.1%입니다. 우리나라와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돈 때문일까요? 올해 정부 R&D 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20조 원을 넘었습니다. 내년에는 24조 원이 넘습니다.


■ 쓰는 돈은 1위…효율은 27위 수준

OECD 국가 가운데에서도 R&D에 쓰는 돈은 GDP 대비 1,2위 정도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효율성을 봤더니 고작 27위. 바닥 수준입니다. 한 마디로 목돈 들여 푼돈 건졌다는 얘기죠. 자세히 들여다보면요. 우리나라의 연간 국가 R&D 연구과제는 61,280건 정도입니다. 20조가 투입된다 치면 과제당 3억 2천만 원 정도인데요. 전체 연구과제 중 1억 원 미만의 소규모 사업이 전체 60% 가까이 됩니다. 1억 원 미만의 연구과제 모두를 깎아내리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장기간 그리고 큰 프로젝트는 아니라는 추정은 가능할 겁니다.

특허 문제로 들어가면 근거가 보다 명확해집니다. 우리나라의 특허출원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지식재산 선진국 모임인 IP5(미국, 유럽, 중국, 일본, 한국)의 주요 구성원입니다. 특허청 자료를 보면 지난 2017년 국가별 특허출원량은 한국 21만 2000건, 중국 138만 1000건, 미국은 60만 4000건 인데 경제규모로 비교하면 (국내총생산 10억 달러당 특허 건수) 한국은 86.1건으로 세계 1위. 인구 100명당 출원 건수 3,189건으로 IP5 중 1위입니다.

특허출원 규모가 많이 늘어난 것은 정부의 R&D 규모가 증가했기 때문인데 문제는 특허 품질이 낮다는 겁니다. 특허청이 지난해 발표한 '정부 R&D 특허성과 분석 결과'를 보면 특히 정부 R&D예산의 절반을 사용하는 공공연구기관의 특허는 경제성이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 5년 마다 바뀌는 정권...쉽고 빠른 과제 집중

예산의 절반 가까이는 정부출연연구소나 국공립 연구소에 지원되는데 과제 대부분을 정부가 결정합니다. 정부 연구과제에 치중하는데 5년마다 정권은 바뀌죠. 그러면 정부 정책 방향이 바뀌기 전에 성과를 내야만 이후 예산을 또 받을 수 있습니다. 성과를 입증하는데 특허만 한 것도 없죠. 그래서 성과를 너도나도 특허를 내지만 정작 사용은 안 되고 특허 유지 기간도 짧은 겁니다. 쉽고 짧은 과제, 해야 하는 과제가 아닌 할 수 있는 과제들이 R&D에 몰리고 정작 중요한 과제는 뒷전으로 밀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수출규제 된 반도체 소재...R&D 없어


단적으로 드러나는 예가 있습니다. 정부가 WTO에 제소했죠. 일본의 수출규제로 문제가 된 반도체 관련 3가지 소재입니다. 반도체 기판을 만들 때 쓰는 포토 레지스트(감광액),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에 대한 정부 R&D 예산은 2017년 3월 이후 중단됐습니다. 반도체 세정에 쓰이는 고순도 불화수소(에칭 가스)는 한 번도 정부 R&D 예산이 투입된 적 없습니다. 이 품목들은 일본 수출규제 사태 이후에야 국가 R&D 리스트에 다시 투입됐습니다.

■ 앞으로 닥칠 '특허 전쟁'

이렇게 중요한 원천소재 개발이 뒷전으로 놓이다 보니 앞으로가 더욱 문제입니다.
일본 기업들의 특허 장벽 얘기입니다. 다시 포토 레지스트를 볼까요? 우리 특허청에 6,620여 건의 관련 특허가 등록되어있는데 4,028건, 전체 61%가 일본 기업의 특허입니다. 일본의 독과점 생산 품목인 극자외선(EUV)포토레지스트의 국내 출원 특허는 전체의 70%가 일본 기업들 차지입니다. 고순도 불화수소, 비철금속합금, 세라믹 콘덴서 관련 국내 특허 역시 일본 기업들이 압도적입니다.
 

일본 소재 기업들의 특허는 핵심 기술뿐 아니라 주변 기술까지 싹쓸이하는 게 특징인데요, 이른바 <특허 지도>로 불립니다. 결국, 코리아 R&D 패러독스라는 국제사회 조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국가 R&D 시스템을 점검하는 것. 오랜 기간 준비한 광범위한 특허로 쌓은 일본의 기술 장벽을 회피하면서 우리만의 핵심 특허를 확보하는 것이 이제 남은 숙제입니다.

KBS 탐사보도부 박현 기자(why@kbs.co.kr)
김효신 기자(shiny33@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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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K]② ‘주인 없는 돈’을 잡아라…R&D 브로커 기승
    • 입력 2019-09-13 09:00:22
    탐사K
■"연구개발비 5조 풀린다"...브로커 시장 들썩

특별법까지 만들며 20년 동안 애지중지 키워온 소재·부품 산업이 일본의 수출 규제 한방에 맥없이 흔들리자, 정부는 앞으로 5년 동안 소재·부품 연구개발에 5조 원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예년에 비하면 배 가까이 늘어난 금액인데요. 시장의 반응은 뜨겁습니다. 일단 연구개발 예산은 대출과 달라서 상환할 필요가 없어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받을 수만 있다면 좋은 그야말로 알짜 국책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부 연구개발비를 따내기 위해서는 준비할 서류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사업계획서와 신용상태동의서, 연구시설 심의서 등 최종 통과까지 모두 8가지 서류를 제출해야 합니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 처음 도전하는 중소기업들은 헤매기 십상입니다. 때문에 국가 연구개발비를 대신 따준다는 중개업체, 브로커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착수금 50만 원, 서류작성비 50만 원, 성공보수 6%"

실제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접 취재했습니다.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한 연구개발비 브로커 업체를 찾았습니다. 낡은 상가건물의 좁은 복도를 지나자 한 사무실이 나타났는데요. 30대로 보이는 젊은 대표는 올해에만 국책사업 5억 원어치를 따냈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서류 작성부터 현장실사 발표자료까지 대신 작성해주고, 면접에서 점수를 딸 수 있게 연습도 시켜준다고 말했습니다. 비용을 문의하자 '착수금이 50만 원, 서류작성비가 50만 원, 최종 선정되면 전체 연구개발비의 6%를 달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연구개발비 1억 원을 받았을 경우, 이 브로커에게 돌아가는 돈만 700만 원에 달합니다.


가짜 연구소 만드는 방법도 알려줍니다. 창고 등 회사 안의 빈 공간을 연구소로 등록하고, 실사를 나올 때만 직원들이 그곳에서 근무하면 된다는 건데요. 4년제 대학 이공계를 졸업한 직원을 연구원으로 이름을 올리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연구개발비로 직원 월급도 줄 수 있으니 기업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입니다.

서울의 다른 중개 업체를 찾았습니다. 대표라는 사람은 자신이 중소벤처기업부의 연구개발 선정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연구개발비를 딸 수 있게 서류를 꾸며주는 중개업자가 심사까지 한다는 얘깁니다. 이 업자는 심사 과정에서 자신의 고객을 만난 적은 없지만 업계가 워낙 좁기 때문에 위원들이 아는 업체가 심사에 들어오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말했습니다. 업자는 "심사 끝내고 저희끼리 '쟤 내가 아는 후배네. 이번에 별거 없으니 이 업체 한 번 밀어줍시다.' 이렇게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영향력을 설명했습니다.


국가 연구개발비 시장이 5조 원대로 커지자 보험 설계사들까지 뛰어들었습니다. 보험 설계사들이 주로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에서는 '법인 영업 특강' 고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4회에 150만 원에 달하는 고액 강의인데요. 자세히 살펴보니 국가 연구개발비를 받는 방법 등 중소기업 컨설팅과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이렇게 배운 기법은 보험 영업에 활용되는데요. 실제로 취재진이 접촉한 한 보험 설계사는 연구개발비 지원 서류를 대신 꾸며주는 대가로 '10년에 3억 원 상당의 저축성 보험을 들거나, 월 100만 원을 내는 보장성 보험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른바 '꺾기' 영업을 하는 겁니다.

■중기부 중개업체 14곳 경찰 수사 의뢰...처벌 기준 없어

사실 이런 연구개발비 브로커가 하루 이틀의 문제는 아닙니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는 브로커와 업체 14곳을 적발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는데요. 대부분 여전히 영업하고 있습니다. 처벌 기준이 없기 때문인데요. 국가 자격증인 '경영지도자'가 우선 국책사업 컨설팅을 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의 법안은 지난 2016년 발의됐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경영지도사를 제외한 컨설팅 업체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반발도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기준이라고 할 만한 것은 중소벤처기업부가 2017년 발표한 '불법 브로커 판정 기준 및 제재'가 있습니다. ▲신청서류 허위 작성 ▲자금 지원 대가로 보험상품 가입 유도하고 보험사를 통해 수수료를 받는 경우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 사칭 ▲정책 자금 지원을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한 뒤 실패 시 수수료를 반환하지 않는 경우 등을 불법 브로커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형법상의 사기죄 등으로 처벌해야 하기 때문에 처벌까지 가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대폭 늘어난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둘러싼 시장의 반응을 알아봤습니다. 이제부터는 우리나라 국가 연구개발 사업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코리아 R&D 패러독스'...뭐가 문제길래?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 연구개발, R&D 사업을 조롱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코리아 R&D 패러독스>라는 말입니다.

한해 20조 원이 넘는 예산을 국가 R&D에 쏟아 붓는데 왜 이런 조롱을 당하는 걸까요? 바로 90%가 넘는다는 R&D 성공률이 실제 사업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조롱하는 겁니다.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은 대전 항공우주연구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국가가 출연한 연구소의 연구과제 성공률이 무려 99.5%에 달합니다. 저는 이 수치가 자랑스럽지 않습니다."

정말 놀라운 성과입니다. 99.5% 그런데 대통령은 왜 자랑스럽지 않다고 했을까요?

■90% 넘는 R&D 성공률...사업화 성공은 20%?

바로 100%에 육박하는 R&D 성공률의 이면에 사업화 성공률 20%라는 초라한 성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과 비교해 볼까요?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가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31개 국가와 비교한 자료를 보면 영국은 70.7%, 미국은 69.3%라는 수치가 있습니다. 이게 뭐냐면 R&D 성공률이 아니라 R&D가 사업화까지 성공한 비율입니다. 일본만 해도 사업화 성공률은 54.1%입니다. 우리나라와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돈 때문일까요? 올해 정부 R&D 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20조 원을 넘었습니다. 내년에는 24조 원이 넘습니다.


■ 쓰는 돈은 1위…효율은 27위 수준

OECD 국가 가운데에서도 R&D에 쓰는 돈은 GDP 대비 1,2위 정도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효율성을 봤더니 고작 27위. 바닥 수준입니다. 한 마디로 목돈 들여 푼돈 건졌다는 얘기죠. 자세히 들여다보면요. 우리나라의 연간 국가 R&D 연구과제는 61,280건 정도입니다. 20조가 투입된다 치면 과제당 3억 2천만 원 정도인데요. 전체 연구과제 중 1억 원 미만의 소규모 사업이 전체 60% 가까이 됩니다. 1억 원 미만의 연구과제 모두를 깎아내리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장기간 그리고 큰 프로젝트는 아니라는 추정은 가능할 겁니다.

특허 문제로 들어가면 근거가 보다 명확해집니다. 우리나라의 특허출원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지식재산 선진국 모임인 IP5(미국, 유럽, 중국, 일본, 한국)의 주요 구성원입니다. 특허청 자료를 보면 지난 2017년 국가별 특허출원량은 한국 21만 2000건, 중국 138만 1000건, 미국은 60만 4000건 인데 경제규모로 비교하면 (국내총생산 10억 달러당 특허 건수) 한국은 86.1건으로 세계 1위. 인구 100명당 출원 건수 3,189건으로 IP5 중 1위입니다.

특허출원 규모가 많이 늘어난 것은 정부의 R&D 규모가 증가했기 때문인데 문제는 특허 품질이 낮다는 겁니다. 특허청이 지난해 발표한 '정부 R&D 특허성과 분석 결과'를 보면 특히 정부 R&D예산의 절반을 사용하는 공공연구기관의 특허는 경제성이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 5년 마다 바뀌는 정권...쉽고 빠른 과제 집중

예산의 절반 가까이는 정부출연연구소나 국공립 연구소에 지원되는데 과제 대부분을 정부가 결정합니다. 정부 연구과제에 치중하는데 5년마다 정권은 바뀌죠. 그러면 정부 정책 방향이 바뀌기 전에 성과를 내야만 이후 예산을 또 받을 수 있습니다. 성과를 입증하는데 특허만 한 것도 없죠. 그래서 성과를 너도나도 특허를 내지만 정작 사용은 안 되고 특허 유지 기간도 짧은 겁니다. 쉽고 짧은 과제, 해야 하는 과제가 아닌 할 수 있는 과제들이 R&D에 몰리고 정작 중요한 과제는 뒷전으로 밀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수출규제 된 반도체 소재...R&D 없어


단적으로 드러나는 예가 있습니다. 정부가 WTO에 제소했죠. 일본의 수출규제로 문제가 된 반도체 관련 3가지 소재입니다. 반도체 기판을 만들 때 쓰는 포토 레지스트(감광액),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에 대한 정부 R&D 예산은 2017년 3월 이후 중단됐습니다. 반도체 세정에 쓰이는 고순도 불화수소(에칭 가스)는 한 번도 정부 R&D 예산이 투입된 적 없습니다. 이 품목들은 일본 수출규제 사태 이후에야 국가 R&D 리스트에 다시 투입됐습니다.

■ 앞으로 닥칠 '특허 전쟁'

이렇게 중요한 원천소재 개발이 뒷전으로 놓이다 보니 앞으로가 더욱 문제입니다.
일본 기업들의 특허 장벽 얘기입니다. 다시 포토 레지스트를 볼까요? 우리 특허청에 6,620여 건의 관련 특허가 등록되어있는데 4,028건, 전체 61%가 일본 기업의 특허입니다. 일본의 독과점 생산 품목인 극자외선(EUV)포토레지스트의 국내 출원 특허는 전체의 70%가 일본 기업들 차지입니다. 고순도 불화수소, 비철금속합금, 세라믹 콘덴서 관련 국내 특허 역시 일본 기업들이 압도적입니다.
 

일본 소재 기업들의 특허는 핵심 기술뿐 아니라 주변 기술까지 싹쓸이하는 게 특징인데요, 이른바 <특허 지도>로 불립니다. 결국, 코리아 R&D 패러독스라는 국제사회 조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국가 R&D 시스템을 점검하는 것. 오랜 기간 준비한 광범위한 특허로 쌓은 일본의 기술 장벽을 회피하면서 우리만의 핵심 특허를 확보하는 것이 이제 남은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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