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③ 억울하고 간절했던 청원인…‘양해’ 반복한 청와대

입력 2019.09.16 (07:02) 수정 2019.09.16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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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만 건 중 112건, 0.03%의 경쟁을 뚫고 선택받은 청원입니다.(8월 31일 기준)
20만 명이라는 문턱을 넘은 청원은 어떤 내용인지, 또 ‘국민이 물으면 답하겠다’고 말했던 청와대는 얼마나 책임 있는 답변을 했는지, 답변받은 청원 112건을 분석해봤습니다.

#억울했고 무서웠고 간절했던 청원인 … ‘처벌’과 ‘보호’ 원했다.

답변을 받은 112건의 청원 내용에서 반복된 표현을 살펴봤습니다. 청원인의 상태나 심경을 드러내는 형용사에서 가장 많이 반복된 단어는 ‘억울하다’, ‘무섭다’ 였습니다.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우리 딸 억울하지 않게 해주세요.”

곰탕집 성추행 사건, 금천구 데이트 폭력 살인사건, 동전 택시기사 사망 사건 등 청원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한 사연은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청원 내용에서는 ‘필요하다’, ‘간절하다’, ‘아프다’는 표현도 자주 반복됐습니다. “관심이 필요하다”며 대중의 지지를 호소하고, “간절히 바란다”며 절박한 심정도 드러냅니다.


“인천 여중생 자살 가해자 강력 처벌 희망”
“김학의 성 접대 관련 피해자 보호수사 촉구.”
가해자에게 엄중한 처벌이 내려지기를….”

청원인들이 원한 건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았던 청원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 처벌과 보호, 수사와 안전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됩니다. 청원인들은 가해자의 처벌과 피해자의 보호, 또 철저한 수사와 안전에 대한 필요성을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 재판 중, 사법권, 권한 밖…한계에 막힌 청와대

20만 명이라는 큰 지지를 받은 각 청원에 대해 청와대는 어떻게 응답했을까요.

청와대의 답변에서는 노력과 지원, 대책 등의 단어가 자주 반복됐습니다. 하지만 한계와 양해라는 단어도 되풀이됐습니다.

주로 삼권분립에 따라 청와대가 관여하기 어렵거나, 재판 중인 사안이므로 답변의 한계를 양해해 달라는 것의 반복이었습니다. '답변의 한계'를 명확히 언급한 답변만 세어봐도 전체 112건 중, 30건에 달합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독립된 헌법 기관입니다. 청원 답변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법관의 인사, 법원 판결 등 사법권 관련 청원으로 답변에 한계가 있다는 점 이해 부탁합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언급하기 어렵다는 점 양해를 부탁합니다.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할 소지가 있어, 답변드리기 어렵다는 점 양해 말씀드립니다.

청와대는 게시판을 통해 청원답변의 한계를 공지하고 있지만, 청와대가 답할 수 없는 청원들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 “책임자가 답한다” 장관급·차관급 나섰다

“20만 이상 추천된 청원에 대해서는 ‘정부 및 청와대 책임자’가 답하겠다”.
청와대는 ‘정부 및 청와대 책임자’가 청원에 대해 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책임자’각 부처 및 기관의 장, 대통령 수석·비서관, 보좌관 등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어떤 책임자가 나왔는지 살펴봤습니다.

청와대의 답변을 받은 1호 청원에는 3명의 답변자가 등장합니다. 민정수석, 소통수석, 사회수석 등 ‘차관급’ 3명이 답변자로 나와 ‘소년법 개정’에 대한 정부 입장과 개선 방향 등을 논의합니다.

2호~4호 답변은 민정수석이 이어갑니다. 낙태죄 폐지, 주취 감형 폐지, 조두순 출소 반대 등을 요구하는 청원에 조국 전 민정수석이 직접 현 제도를 소개하고 법의 한계, 정부의 생각을 전달했습니다.

해당 부처 장관도 소환됩니다. 권역외상센터 지원 확대를 요구한 5호 청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접 답변자로 나와 처우 개선을 약속했습니다.

청원 답변자로 장관이 나선 건 18회, 차관급이 답한 건 총 22회입니다. 청와대의 약속대로 ‘책임자’가 나와 답을 한 것입니다.

# 늘어나는 ‘나 홀로 답변’ 흔들리는 초심?


하지만 이런 청와대의 초심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1호 답변에서 3명의 책임자가 출연했던 것과 달리, 청원 답변자 수는 평균 2명에서 1.7명, 최근에는 1.1명으로 줄었습니다. 답변자 혼자 나와 답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인데, 문제는 홀로 나온 답변자가 누구냐는 겁니다.

여기서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의 역할 변화가 눈에 띕니다. 오픈 초기 진행자 역할을 하던 디지털소통센터장은 최근 정부 부처 책임자를 대신해 답변하는 비율이 늘었습니다.

디지털소통센터장의 ‘나 홀로 답변’은 전체 112개 중 28건입니다. 오픈 이후 지난해까지 69건의 답변 중 11건(15.9%)이 센터장 홀로 답한 데 반해, 올해는 43건 중 17건(39.5%)으로 최근 부쩍 늘어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청와대가 약속한 '책임자의 답변'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9월 발표된 3개의 청원답변 중 2개는 디지털소통센터장 홀로 답했습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청원 주무 비서실이므로 원칙에서 어긋나지 않는다”면서도 “하나의 청원에 여러 부처의 현안이 겹쳐있는 경우가 많아 한 곳의 담당자만 나오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말합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여러 한계에도 문재인 정부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난 2년의 데이터로 본 국민청원, 청와대의 '직접 소통' 의지에 국민들은 어떤 평가를 할까요.

[연관 기사]
[국민청원]① ‘도배’ 줄이고 문턱 높인 시즌2, ‘정당해산’에 화력 집중
[국민청원]② ‘정치개혁’ 뜨겁지만, ‘인권·성평등’ 큰 울림


데이터 분석 : 정한진 팀장, 윤지희
데이터 시각화 : 임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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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청원]③ 억울하고 간절했던 청원인…‘양해’ 반복한 청와대
    • 입력 2019-09-16 07:02:11
    • 수정2019-09-16 07:3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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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만 건 중 112건, 0.03%의 경쟁을 뚫고 선택받은 청원입니다.(8월 31일 기준)
20만 명이라는 문턱을 넘은 청원은 어떤 내용인지, 또 ‘국민이 물으면 답하겠다’고 말했던 청와대는 얼마나 책임 있는 답변을 했는지, 답변받은 청원 112건을 분석해봤습니다.

#억울했고 무서웠고 간절했던 청원인 … ‘처벌’과 ‘보호’ 원했다.

답변을 받은 112건의 청원 내용에서 반복된 표현을 살펴봤습니다. 청원인의 상태나 심경을 드러내는 형용사에서 가장 많이 반복된 단어는 ‘억울하다’, ‘무섭다’ 였습니다.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우리 딸 억울하지 않게 해주세요.”

곰탕집 성추행 사건, 금천구 데이트 폭력 살인사건, 동전 택시기사 사망 사건 등 청원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한 사연은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청원 내용에서는 ‘필요하다’, ‘간절하다’, ‘아프다’는 표현도 자주 반복됐습니다. “관심이 필요하다”며 대중의 지지를 호소하고, “간절히 바란다”며 절박한 심정도 드러냅니다.


“인천 여중생 자살 가해자 강력 처벌 희망”
“김학의 성 접대 관련 피해자 보호수사 촉구.”
가해자에게 엄중한 처벌이 내려지기를….”

청원인들이 원한 건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았던 청원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 처벌과 보호, 수사와 안전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됩니다. 청원인들은 가해자의 처벌과 피해자의 보호, 또 철저한 수사와 안전에 대한 필요성을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 재판 중, 사법권, 권한 밖…한계에 막힌 청와대

20만 명이라는 큰 지지를 받은 각 청원에 대해 청와대는 어떻게 응답했을까요.

청와대의 답변에서는 노력과 지원, 대책 등의 단어가 자주 반복됐습니다. 하지만 한계와 양해라는 단어도 되풀이됐습니다.

주로 삼권분립에 따라 청와대가 관여하기 어렵거나, 재판 중인 사안이므로 답변의 한계를 양해해 달라는 것의 반복이었습니다. '답변의 한계'를 명확히 언급한 답변만 세어봐도 전체 112건 중, 30건에 달합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독립된 헌법 기관입니다. 청원 답변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법관의 인사, 법원 판결 등 사법권 관련 청원으로 답변에 한계가 있다는 점 이해 부탁합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언급하기 어렵다는 점 양해를 부탁합니다.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할 소지가 있어, 답변드리기 어렵다는 점 양해 말씀드립니다.

청와대는 게시판을 통해 청원답변의 한계를 공지하고 있지만, 청와대가 답할 수 없는 청원들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 “책임자가 답한다” 장관급·차관급 나섰다

“20만 이상 추천된 청원에 대해서는 ‘정부 및 청와대 책임자’가 답하겠다”.
청와대는 ‘정부 및 청와대 책임자’가 청원에 대해 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책임자’각 부처 및 기관의 장, 대통령 수석·비서관, 보좌관 등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어떤 책임자가 나왔는지 살펴봤습니다.

청와대의 답변을 받은 1호 청원에는 3명의 답변자가 등장합니다. 민정수석, 소통수석, 사회수석 등 ‘차관급’ 3명이 답변자로 나와 ‘소년법 개정’에 대한 정부 입장과 개선 방향 등을 논의합니다.

2호~4호 답변은 민정수석이 이어갑니다. 낙태죄 폐지, 주취 감형 폐지, 조두순 출소 반대 등을 요구하는 청원에 조국 전 민정수석이 직접 현 제도를 소개하고 법의 한계, 정부의 생각을 전달했습니다.

해당 부처 장관도 소환됩니다. 권역외상센터 지원 확대를 요구한 5호 청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접 답변자로 나와 처우 개선을 약속했습니다.

청원 답변자로 장관이 나선 건 18회, 차관급이 답한 건 총 22회입니다. 청와대의 약속대로 ‘책임자’가 나와 답을 한 것입니다.

# 늘어나는 ‘나 홀로 답변’ 흔들리는 초심?


하지만 이런 청와대의 초심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1호 답변에서 3명의 책임자가 출연했던 것과 달리, 청원 답변자 수는 평균 2명에서 1.7명, 최근에는 1.1명으로 줄었습니다. 답변자 혼자 나와 답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인데, 문제는 홀로 나온 답변자가 누구냐는 겁니다.

여기서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의 역할 변화가 눈에 띕니다. 오픈 초기 진행자 역할을 하던 디지털소통센터장은 최근 정부 부처 책임자를 대신해 답변하는 비율이 늘었습니다.

디지털소통센터장의 ‘나 홀로 답변’은 전체 112개 중 28건입니다. 오픈 이후 지난해까지 69건의 답변 중 11건(15.9%)이 센터장 홀로 답한 데 반해, 올해는 43건 중 17건(39.5%)으로 최근 부쩍 늘어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청와대가 약속한 '책임자의 답변'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9월 발표된 3개의 청원답변 중 2개는 디지털소통센터장 홀로 답했습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청원 주무 비서실이므로 원칙에서 어긋나지 않는다”면서도 “하나의 청원에 여러 부처의 현안이 겹쳐있는 경우가 많아 한 곳의 담당자만 나오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말합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여러 한계에도 문재인 정부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난 2년의 데이터로 본 국민청원, 청와대의 '직접 소통' 의지에 국민들은 어떤 평가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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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분석 : 정한진 팀장, 윤지희
데이터 시각화 : 임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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