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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탱크맨’ 세상에 알린 사진기자가 남기고 간 말
입력 2019.09.17 (07:00) 수정 2019.09.17 (13:59) 취재K
탱크 행렬을 몸으로 막아선 혈혈단신의 남성.

지난 1989년 6월 5일 중국 베이징에서 '6·4 톈안먼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때 찍힌 사진이다. 이 사진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톈안먼 탱크맨'이란 제목으로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평화의 상징'으로서 전 세계에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재킷과 쇼핑백을 들고서 탱크 행렬로 다가가 행렬의 진행을 계속해서 막아선 이 용감한 남성이 누구인지, 그리고 공안에 의해 잡혀간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중국 당국의 함구 속에 아직까지도 정확히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 순간을 포착한 사진기자와 그 사연만이 알려졌을 뿐이다.


이 결정적 순간을 뷰파인더에 담아낸 주인공은 미국 텍사스 출신의 찰리 콜 기자. 위 사진에서 오른쪽에 안경을 쓴 인물이 콜 기자다. 콜 기자는 지난 1987년 우리나라에서 6월 항쟁 등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에도 이전 3년간 한국에 머무르며 일한 바 있다. (위)

찰리 콜은 '탱크맨' 사진을 세상에 알린 네 명의 사진기자 중 한 명이었고 지난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지난 금요일 알려졌다.

그러면서 그의 용기와 기지 또한 다시 주목받게 됐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 당시 <뉴스위크>지를 위해 베이징의 한 호텔 발코니에서 원격 사진 렌즈를 이용해 '탱크맨' 사진을 찍게 된 그는, 일부러 사진의 왼쪽 아래에 사람의 모습이 오도록 구도를 잡음으로써 사람을 향해서 오는 탱크들의 위용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호텔을 감시 중이던 공안이 곧 들이닥칠 것에 대비해 사진이 찍힌 필름 롤을 사진기로부터 재빨리 빼낸 후 비닐봉지에 싸서 화장실 변기 물탱크 속에 숨겼다. 그리고 빈 필름 롤을 대신 사진기에 끼워두었다.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공안이 그의 방으로 쳐들어왔고 예상대로 필름을 빼앗겼지만, 콜 기자가 지혜를 발휘해 대비한 덕분에 역사적이고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한 사진은 무사히 도쿄의 AP통신 지국으로 보내져 마감에 맞춰 <뉴스위크>지에 보도될 수 있었다.

이 사진으로 콜 기자는 1990년 세계보도사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톈안먼 민주화 시위'가 일어난 지 만 30년이 더 흘렀지만, 아직도 몇 명이 죽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중국 당국은 공식적으로 200명의 민간인과 공안이 사망했다고 밝히고 있고, 목격자들은 희생자가 3,000명은 족히 될 것이라고 추산한다. 콜 기자의 사진이 중국에서 엄격히 금기시되고 있는 건 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이후 '톈안먼 광장'은 세계적인 관광지로 떠올랐지만, 항상 공권력의 엄한 감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콜 기자는 생전에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탱크맨'의 행동이 그 순간을 좌우했다고 밝혔다. 그 순간이 그의 행동을 좌우한 것이 아니었다고.

콜 기자는 또 이런 말도 남겼다. 자신의 "'탱크맨' 사진이 다른 더 많은 용감한 작품들의 빛을 바래게 만든 면이 있다"며 "더 큰 그림과 더 알찬 역사적 기록을 담은 '톈안먼 민주화 운동' 당시 사진들이 많다"고 꾸준히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말도 남겼다.
"우리는 결코 이 놀랍도록 복잡한 이벤트의 단순하고도, 단지 사진 한 장에 담겨 있을 뿐인 관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톈안먼 탱크맨’ 세상에 알린 사진기자가 남기고 간 말
    • 입력 2019-09-17 07:00:51
    • 수정2019-09-17 13:59:54
    취재K
탱크 행렬을 몸으로 막아선 혈혈단신의 남성.

지난 1989년 6월 5일 중국 베이징에서 '6·4 톈안먼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때 찍힌 사진이다. 이 사진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톈안먼 탱크맨'이란 제목으로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평화의 상징'으로서 전 세계에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재킷과 쇼핑백을 들고서 탱크 행렬로 다가가 행렬의 진행을 계속해서 막아선 이 용감한 남성이 누구인지, 그리고 공안에 의해 잡혀간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중국 당국의 함구 속에 아직까지도 정확히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 순간을 포착한 사진기자와 그 사연만이 알려졌을 뿐이다.


이 결정적 순간을 뷰파인더에 담아낸 주인공은 미국 텍사스 출신의 찰리 콜 기자. 위 사진에서 오른쪽에 안경을 쓴 인물이 콜 기자다. 콜 기자는 지난 1987년 우리나라에서 6월 항쟁 등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에도 이전 3년간 한국에 머무르며 일한 바 있다. (위)

찰리 콜은 '탱크맨' 사진을 세상에 알린 네 명의 사진기자 중 한 명이었고 지난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지난 금요일 알려졌다.

그러면서 그의 용기와 기지 또한 다시 주목받게 됐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 당시 <뉴스위크>지를 위해 베이징의 한 호텔 발코니에서 원격 사진 렌즈를 이용해 '탱크맨' 사진을 찍게 된 그는, 일부러 사진의 왼쪽 아래에 사람의 모습이 오도록 구도를 잡음으로써 사람을 향해서 오는 탱크들의 위용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호텔을 감시 중이던 공안이 곧 들이닥칠 것에 대비해 사진이 찍힌 필름 롤을 사진기로부터 재빨리 빼낸 후 비닐봉지에 싸서 화장실 변기 물탱크 속에 숨겼다. 그리고 빈 필름 롤을 대신 사진기에 끼워두었다.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공안이 그의 방으로 쳐들어왔고 예상대로 필름을 빼앗겼지만, 콜 기자가 지혜를 발휘해 대비한 덕분에 역사적이고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한 사진은 무사히 도쿄의 AP통신 지국으로 보내져 마감에 맞춰 <뉴스위크>지에 보도될 수 있었다.

이 사진으로 콜 기자는 1990년 세계보도사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톈안먼 민주화 시위'가 일어난 지 만 30년이 더 흘렀지만, 아직도 몇 명이 죽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중국 당국은 공식적으로 200명의 민간인과 공안이 사망했다고 밝히고 있고, 목격자들은 희생자가 3,000명은 족히 될 것이라고 추산한다. 콜 기자의 사진이 중국에서 엄격히 금기시되고 있는 건 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이후 '톈안먼 광장'은 세계적인 관광지로 떠올랐지만, 항상 공권력의 엄한 감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콜 기자는 생전에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탱크맨'의 행동이 그 순간을 좌우했다고 밝혔다. 그 순간이 그의 행동을 좌우한 것이 아니었다고.

콜 기자는 또 이런 말도 남겼다. 자신의 "'탱크맨' 사진이 다른 더 많은 용감한 작품들의 빛을 바래게 만든 면이 있다"며 "더 큰 그림과 더 알찬 역사적 기록을 담은 '톈안먼 민주화 운동' 당시 사진들이 많다"고 꾸준히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말도 남겼다.
"우리는 결코 이 놀랍도록 복잡한 이벤트의 단순하고도, 단지 사진 한 장에 담겨 있을 뿐인 관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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