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쓸모] 한국영화, 여성감독들이 달린다

입력 2019.09.19 (08:42) 수정 2019.09.1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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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영화를 통해 우리 삶의 가치를 찾아보는 시간 '영화의 쓸모' 순서입니다.

최근 우리 극장가에서 여성 감독의 작품들이 잇따라 주목받고 있습니다.

범죄액션과 같은 특정 장르 편중이 심한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고 하는데요 송형국 기자와 함께 이야기나눠보겠습니다.

송 기자, 생각해보면 한국영화계에도 변영주 감독, 임순례 감독, 이런 훌륭한 여성 감독들이 있어왔는데요 최근에 젊은 여성 감독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고요.

[기자]

예 최근 1~2년 사이에 특히 두드러진 흐름인데요 주로 80년대 출생의 30대 여성 감독들이 속속 장편 데뷔작을 내놓고 있고 부쩍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 상업영화의 대열에서는 경찰이나 조폭, 아니면 전쟁 영화, 아니면 규모 있는 코미디 영화들 위주로 인기를 모아온 게 사실이었잖습니까.

그러다보니까 장르 편식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아왔는데 최근에 등장한 여성 감독들이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는 쉽게 보지 못했던 시선과 감성을 스크린에 투영하면서 한국영화에 새 기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화면 보시겠습니다.

지난달 개봉해 관객 8만 명을 모은 영화 '벌새'입니다.

저예산 영화로서 기대 이상의 성적이고요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를 비롯해서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 25개 상을 휩쓸었습니다.

국내에선 지금 '벌새단'이라는 팬클럽이 만들어져서 N차관람, 즉 다회차 관람 흐름을 이어가고 있고, 팬들이 자체 포스터를 제작하고 응원메시지를 보내는 등 팬덤 현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김보라/'벌새' 감독 : "(관객들의) 손편지를 하나하나 읽게 됐는데 그때 제가 정말 많이 눈물이 나더라고요. 관객분들이 일기 같이 써주신 편지를 보면서 너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꼈던 거 같아요."]

1994년을 살아가는 한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아파하고 사랑하는 이야기를 포장되지 않은, 아주 정직한 방식으로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요.

관객들 사이에서 이렇게 열성적인 지지층이 생겨나는 건 그만큼 지금까지 보고 싶었지만 보지 못했던 이야기와 감성을 스크린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관람 후기가 많습니다.

이밖에도 2015년 '우리들'이라는 영화 이후 현재 개봉 중인 '우리집'으로 호응을 얻고 있는 윤가은 감독은 '윤가은 동네 유니버스'라는 명칭이 나올 정도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젊은 여성감독으로 주목받고 있고.

지난해 '미쓰백'의 팬덤 현상을 전후로 '소공녀'와 '영주', '어른도감', '보희와 녹양' 등 여성감독의 작품들이 최근 1~2년 사이 한국영화계에 조용한 파도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앵커]

네,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영화들, 말씀하신 대로 지금까지 우리가 극장에서 자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영화들에 더 목말랐던 관객들이 많은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드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굳이 여성영화, 남성영화, 이렇게 구분할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제가 1년에 영화를 한 200편 정도 보는데요, 그중에 90% 이상은 남성이 연출한 영화였고요.

최근 주목받은 여성 감독의 작품들을 보면 남성의 시선으로는 도저히 짚어내기 힘든 지점들을 찾아내서 보여주시니까 남성으로서 잘 몰랐던 걸 알게 되기도 하고요 서로를 이해하는 데 한결 도움이 되는 거 같습니다.

다음주에도 여성 감독이 연출한 한국영화 2편이 나란히 개봉하는데요 이어서 화면 보시겠습니다.

다년간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 결국 포기하고 30대에 접어든 자영이 주인공입니다.

["나이 서른에 아무 것도 안하겠다고. 너땜에 내가 죽겠다."]

공과금 내기도 힘겨운 처지,

["지나갈게요~"]

어느 날 전문적으로 달리기를 하는 또래 여성의 모습에서 나도 달리고 싶다는 자신 안의 열망을 봅니다.

앞서 마주친 여성과 금세 마음을 나누는 친구 사이가 되고,

["달리다가 힘들면 내 뒤에 바짝 붙어서 뛰어. 내 기를 빼먹는다 생각하고. 그럼 훨씬 덜 힘들어."]

물론 운동을 한다고 해서 생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고 이후 예상치 못한 극적 반전도 관객들은 보게 되는데요

이 영화가 무엇보다 좋은 점은 여성들이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외모를 가꾸는 문제를 떠나서, 주인공이 몸을 단련하면서 오직 자신의 근육세포 하나하나를 살피는 느낌, 그래서 자기 몸을 스스로 가뿐하게 컨트롤할 수 있게 되는 느낌, 결국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호흡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감정을 기분 좋게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고요.

이 과정에서 달리기 친구뿐 아니라 어머니, 여동생, 동료들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감정의 교류를 예민하게 짚어주는 작품입니다.

이와 함께 개봉하는 이 작품은 국가인권위원회 제작 지원작입니다.

병원 간호사를 주인공으로 유쾌한 코미디가 펼쳐지는데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치던 일상의 편견이나 선입견을 재치있게 꼬집어주는 작품이어서 역시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추천작입니다.

[앵커]

네 여성의 시선으로 본 색다른 작품들, 앞으로 더 자주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가 듭니다.

송 기자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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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의 쓸모] 한국영화, 여성감독들이 달린다
    • 입력 2019-09-19 08:48:30
    • 수정2019-09-19 17: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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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영화를 통해 우리 삶의 가치를 찾아보는 시간 '영화의 쓸모' 순서입니다.

최근 우리 극장가에서 여성 감독의 작품들이 잇따라 주목받고 있습니다.

범죄액션과 같은 특정 장르 편중이 심한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고 하는데요 송형국 기자와 함께 이야기나눠보겠습니다.

송 기자, 생각해보면 한국영화계에도 변영주 감독, 임순례 감독, 이런 훌륭한 여성 감독들이 있어왔는데요 최근에 젊은 여성 감독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고요.

[기자]

예 최근 1~2년 사이에 특히 두드러진 흐름인데요 주로 80년대 출생의 30대 여성 감독들이 속속 장편 데뷔작을 내놓고 있고 부쩍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 상업영화의 대열에서는 경찰이나 조폭, 아니면 전쟁 영화, 아니면 규모 있는 코미디 영화들 위주로 인기를 모아온 게 사실이었잖습니까.

그러다보니까 장르 편식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아왔는데 최근에 등장한 여성 감독들이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는 쉽게 보지 못했던 시선과 감성을 스크린에 투영하면서 한국영화에 새 기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화면 보시겠습니다.

지난달 개봉해 관객 8만 명을 모은 영화 '벌새'입니다.

저예산 영화로서 기대 이상의 성적이고요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를 비롯해서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 25개 상을 휩쓸었습니다.

국내에선 지금 '벌새단'이라는 팬클럽이 만들어져서 N차관람, 즉 다회차 관람 흐름을 이어가고 있고, 팬들이 자체 포스터를 제작하고 응원메시지를 보내는 등 팬덤 현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김보라/'벌새' 감독 : "(관객들의) 손편지를 하나하나 읽게 됐는데 그때 제가 정말 많이 눈물이 나더라고요. 관객분들이 일기 같이 써주신 편지를 보면서 너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꼈던 거 같아요."]

1994년을 살아가는 한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아파하고 사랑하는 이야기를 포장되지 않은, 아주 정직한 방식으로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요.

관객들 사이에서 이렇게 열성적인 지지층이 생겨나는 건 그만큼 지금까지 보고 싶었지만 보지 못했던 이야기와 감성을 스크린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관람 후기가 많습니다.

이밖에도 2015년 '우리들'이라는 영화 이후 현재 개봉 중인 '우리집'으로 호응을 얻고 있는 윤가은 감독은 '윤가은 동네 유니버스'라는 명칭이 나올 정도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젊은 여성감독으로 주목받고 있고.

지난해 '미쓰백'의 팬덤 현상을 전후로 '소공녀'와 '영주', '어른도감', '보희와 녹양' 등 여성감독의 작품들이 최근 1~2년 사이 한국영화계에 조용한 파도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앵커]

네,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영화들, 말씀하신 대로 지금까지 우리가 극장에서 자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영화들에 더 목말랐던 관객들이 많은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드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굳이 여성영화, 남성영화, 이렇게 구분할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제가 1년에 영화를 한 200편 정도 보는데요, 그중에 90% 이상은 남성이 연출한 영화였고요.

최근 주목받은 여성 감독의 작품들을 보면 남성의 시선으로는 도저히 짚어내기 힘든 지점들을 찾아내서 보여주시니까 남성으로서 잘 몰랐던 걸 알게 되기도 하고요 서로를 이해하는 데 한결 도움이 되는 거 같습니다.

다음주에도 여성 감독이 연출한 한국영화 2편이 나란히 개봉하는데요 이어서 화면 보시겠습니다.

다년간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 결국 포기하고 30대에 접어든 자영이 주인공입니다.

["나이 서른에 아무 것도 안하겠다고. 너땜에 내가 죽겠다."]

공과금 내기도 힘겨운 처지,

["지나갈게요~"]

어느 날 전문적으로 달리기를 하는 또래 여성의 모습에서 나도 달리고 싶다는 자신 안의 열망을 봅니다.

앞서 마주친 여성과 금세 마음을 나누는 친구 사이가 되고,

["달리다가 힘들면 내 뒤에 바짝 붙어서 뛰어. 내 기를 빼먹는다 생각하고. 그럼 훨씬 덜 힘들어."]

물론 운동을 한다고 해서 생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고 이후 예상치 못한 극적 반전도 관객들은 보게 되는데요

이 영화가 무엇보다 좋은 점은 여성들이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외모를 가꾸는 문제를 떠나서, 주인공이 몸을 단련하면서 오직 자신의 근육세포 하나하나를 살피는 느낌, 그래서 자기 몸을 스스로 가뿐하게 컨트롤할 수 있게 되는 느낌, 결국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호흡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감정을 기분 좋게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고요.

이 과정에서 달리기 친구뿐 아니라 어머니, 여동생, 동료들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감정의 교류를 예민하게 짚어주는 작품입니다.

이와 함께 개봉하는 이 작품은 국가인권위원회 제작 지원작입니다.

병원 간호사를 주인공으로 유쾌한 코미디가 펼쳐지는데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치던 일상의 편견이나 선입견을 재치있게 꼬집어주는 작품이어서 역시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추천작입니다.

[앵커]

네 여성의 시선으로 본 색다른 작품들, 앞으로 더 자주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가 듭니다.

송 기자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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