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기숙사 쫓겨나 총장 리조트로 간 베트남 학생들

입력 2019.09.26 (14:24) 수정 2019.09.2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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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기준에 미달한 총장 아들을 교수로 채용했다 논란이 된 제주관광대학교가 이번엔 총장 소유 리조트에 베트남 학생들을 기숙시킨 뒤 2억 원이 넘는 교비를 지급했다 뒤늦게 반환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한국에 온 베트남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기숙사에서 쫓겨나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학교 기숙사에서 쫓겨난 70여 명의 베트남 학생들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의 한 숙박시설. 주변에 편의시설조차 보이지 않는 이곳에 지난해 제주관광대학 베트남 어학연수생 70여 명이 단체로 기숙했습니다. 해당 리조트는 제주관광대학교와 8.5km 떨어진 곳으로 걸어서 2시간, 차량으로 10여 분 거리에 있습니다.

이 학생들은 한 학기(6개월 기준)당 300만 원 넘는 학비를 내고 한국에 왔습니다. 제주에 오기 전 학교 기숙사에 살기로 했지만, 한 달도 채 안 돼 이곳으로 옮겨진 겁니다.

베트남 어학연수생 A 씨는 대학 측 베트남 관리자로부터 "중국 학생들이 많이 오니 나가야 한다고 들었다"며 "리조트에 머문 동안 마치 감옥같은 생활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베트남 학생 B 씨는 "베트남 학생들이 기숙사를 더럽게 산다고 했다…(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는데"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학교 측과 베트남 학생들이 맺은 계약서에는 학비와 기숙사 비용이 포함돼 있지만, 학생들은 제대로 된 영문도 모른 채 사실상 외곽지로 쫓겨났습니다. 이후 학교생활은 괴로움의 연속이었다고 합니다.

오전과 오후 각 한차례 대학 버스가 학교와 리조트를 운행했지만, 아르바이트나 학교 밖 활동을 한 뒤에는 늦은 밤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리조트까지 가로등 하나 없는 800m 거리를 걸어 다녀야 했고, 주변엔 편의 시설은 없었습니다.
밥도 공동시설에서 스스로 해먹어야 했습니다. 참지 못한 학생들이 학교 측에 기숙사를 옮겨 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학생 모집 부서와 기숙사 모집 부서 간 소통이 부족해 벌어진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2017년 4명이던 베트남 어학연수생이 지난해 184명으로 급증했는데, 이에 대해 부서 간 소통이 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학생들을 학교 주변 리조트로 옮기게 됐다는 겁니다.

학교 측은 리조트를 기숙사로 이용할 수 없다는 걸 몰랐다면서도 "다만 기숙사 규정에 따라 학사 과정 학생들이 기숙사에 우선 입주할 수 있는 규정이 있어 문제 될 게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학교 주변에 많은 학생을 한 번에 입주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학교 측에서 총장에게 건의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학생들은 한국에 오고 나서야 기숙사 규정 등이 담긴 입학 설명서 안내받았고, 이마저도 모두 한국어로 돼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교내 기숙사 학생이 늘어날 경우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 있다는 규정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베트남 학생 머물던 리조트, 알고 보니 총장 소유 리조트

KBS 취재 결과 총장 일가가 소유한 해당 리조트는 농어촌정비법에 따라 승인받은 관광농원 숙박시설이었습니다. 애초에 기숙사로 이용할 수 없었던 곳이었습니다.

특히 해당 리조트의 건축물대장과 등기부 등본 등을 확인한 결과 해당 리조트는 이 대학 김성규 총장과 두 자녀 소유로 확인됐습니다. 학교 소유가 아닌 총장 일가의 숙박시설이었던 겁니다.


대학 측은 지난해 1월 24일 이 리조트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임대료는 보증금 1억 원에 연세 5,000만 원. 이 돈은 모두 대학교 교비로 충당됐습니다. 또 총장 일가가 소유한 리조트에 6,500만 원 상당의 교비가 수리비 명목 등으로 투입됐습니다. 2억 원이 넘는 대학 교비가 임대료와 수리비 명목으로 총장에게 지급된 겁니다.

학교 측은 베트남 학생들의 기숙을 위해 냉장고와 인덕션, 식기와 도배, 잠금장치 등을 설치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러한 기숙 사실은 지난해 제주도감사위원회 감사에서 적발됐습니다. 제주도감사위 관계자는 당시 현장 상황에 대해 "쓰레기가 나뒹굴고 청소가 안 돼 있었다. 들개도 왔다 갔다 했다"며 "외국에서 온 분들이 사정도 모를 텐데 위생이나 안전상 기숙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현장에서 즉각 이주 조치했다"고 밝혔습니다.


제주관광대학은 감사 지적 이후인 지난해 10월 제주시 내 원룸을 구해 베트남 학생들을 모두 이주시켰습니다.

김 총장은 지난 7월이 돼서야 보증금 1억 원과 수리비 6,500만 원을 뒤늦게 학교에 반환했습니다. 연세 5,000만 원은 날짜로 계산한 뒤, 학생들의 머물렀던 이용료 3,750만 원을 제외한 1,250만 원만 학교에 반환했습니다.

제주시 농정과는 해당 리조트에 대해 "사업장 미신고 등 불법 운영에 대해 현재 시정명령을 보냈고, 미이행 시 시정 조치 후 사업정지나 사업장을 폐쇄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총장 공식 인터뷰 거절 "공사구분에 세심함이 부족했다"

취재진은 김 총장에게 수차례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김 총장은 서면 답변을 통해 "대학이 교외 숙소를 마련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우선 급한 마음에 리조트를 빌려줬던 것"이라며 "학생들이 처한 현실만을 직시하다 보니 공사구분에 있어 세심함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는 입장을 전해왔습니다. 또 사적 이득을 취할 목적이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리조트에 머물렀던 베트남 어학연수생 70여 명 가운데 현재 학교에 남아 있는 학생은 절반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학생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학교로 적을 옮겼고, 일부 학생은 무단으로 제주를 이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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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기숙사 쫓겨나 총장 리조트로 간 베트남 학생들
    • 입력 2019-09-26 14:24:44
    • 수정2019-09-26 14:24:50
    취재후·사건후
임용기준에 미달한 총장 아들을 교수로 채용했다 논란이 된 제주관광대학교가 이번엔 총장 소유 리조트에 베트남 학생들을 기숙시킨 뒤 2억 원이 넘는 교비를 지급했다 뒤늦게 반환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한국에 온 베트남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기숙사에서 쫓겨나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학교 기숙사에서 쫓겨난 70여 명의 베트남 학생들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의 한 숙박시설. 주변에 편의시설조차 보이지 않는 이곳에 지난해 제주관광대학 베트남 어학연수생 70여 명이 단체로 기숙했습니다. 해당 리조트는 제주관광대학교와 8.5km 떨어진 곳으로 걸어서 2시간, 차량으로 10여 분 거리에 있습니다.

이 학생들은 한 학기(6개월 기준)당 300만 원 넘는 학비를 내고 한국에 왔습니다. 제주에 오기 전 학교 기숙사에 살기로 했지만, 한 달도 채 안 돼 이곳으로 옮겨진 겁니다.

베트남 어학연수생 A 씨는 대학 측 베트남 관리자로부터 "중국 학생들이 많이 오니 나가야 한다고 들었다"며 "리조트에 머문 동안 마치 감옥같은 생활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베트남 학생 B 씨는 "베트남 학생들이 기숙사를 더럽게 산다고 했다…(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는데"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학교 측과 베트남 학생들이 맺은 계약서에는 학비와 기숙사 비용이 포함돼 있지만, 학생들은 제대로 된 영문도 모른 채 사실상 외곽지로 쫓겨났습니다. 이후 학교생활은 괴로움의 연속이었다고 합니다.

오전과 오후 각 한차례 대학 버스가 학교와 리조트를 운행했지만, 아르바이트나 학교 밖 활동을 한 뒤에는 늦은 밤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리조트까지 가로등 하나 없는 800m 거리를 걸어 다녀야 했고, 주변엔 편의 시설은 없었습니다.
밥도 공동시설에서 스스로 해먹어야 했습니다. 참지 못한 학생들이 학교 측에 기숙사를 옮겨 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학생 모집 부서와 기숙사 모집 부서 간 소통이 부족해 벌어진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2017년 4명이던 베트남 어학연수생이 지난해 184명으로 급증했는데, 이에 대해 부서 간 소통이 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학생들을 학교 주변 리조트로 옮기게 됐다는 겁니다.

학교 측은 리조트를 기숙사로 이용할 수 없다는 걸 몰랐다면서도 "다만 기숙사 규정에 따라 학사 과정 학생들이 기숙사에 우선 입주할 수 있는 규정이 있어 문제 될 게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학교 주변에 많은 학생을 한 번에 입주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학교 측에서 총장에게 건의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학생들은 한국에 오고 나서야 기숙사 규정 등이 담긴 입학 설명서 안내받았고, 이마저도 모두 한국어로 돼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교내 기숙사 학생이 늘어날 경우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 있다는 규정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베트남 학생 머물던 리조트, 알고 보니 총장 소유 리조트

KBS 취재 결과 총장 일가가 소유한 해당 리조트는 농어촌정비법에 따라 승인받은 관광농원 숙박시설이었습니다. 애초에 기숙사로 이용할 수 없었던 곳이었습니다.

특히 해당 리조트의 건축물대장과 등기부 등본 등을 확인한 결과 해당 리조트는 이 대학 김성규 총장과 두 자녀 소유로 확인됐습니다. 학교 소유가 아닌 총장 일가의 숙박시설이었던 겁니다.


대학 측은 지난해 1월 24일 이 리조트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임대료는 보증금 1억 원에 연세 5,000만 원. 이 돈은 모두 대학교 교비로 충당됐습니다. 또 총장 일가가 소유한 리조트에 6,500만 원 상당의 교비가 수리비 명목 등으로 투입됐습니다. 2억 원이 넘는 대학 교비가 임대료와 수리비 명목으로 총장에게 지급된 겁니다.

학교 측은 베트남 학생들의 기숙을 위해 냉장고와 인덕션, 식기와 도배, 잠금장치 등을 설치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러한 기숙 사실은 지난해 제주도감사위원회 감사에서 적발됐습니다. 제주도감사위 관계자는 당시 현장 상황에 대해 "쓰레기가 나뒹굴고 청소가 안 돼 있었다. 들개도 왔다 갔다 했다"며 "외국에서 온 분들이 사정도 모를 텐데 위생이나 안전상 기숙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현장에서 즉각 이주 조치했다"고 밝혔습니다.


제주관광대학은 감사 지적 이후인 지난해 10월 제주시 내 원룸을 구해 베트남 학생들을 모두 이주시켰습니다.

김 총장은 지난 7월이 돼서야 보증금 1억 원과 수리비 6,500만 원을 뒤늦게 학교에 반환했습니다. 연세 5,000만 원은 날짜로 계산한 뒤, 학생들의 머물렀던 이용료 3,750만 원을 제외한 1,250만 원만 학교에 반환했습니다.

제주시 농정과는 해당 리조트에 대해 "사업장 미신고 등 불법 운영에 대해 현재 시정명령을 보냈고, 미이행 시 시정 조치 후 사업정지나 사업장을 폐쇄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총장 공식 인터뷰 거절 "공사구분에 세심함이 부족했다"

취재진은 김 총장에게 수차례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김 총장은 서면 답변을 통해 "대학이 교외 숙소를 마련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우선 급한 마음에 리조트를 빌려줬던 것"이라며 "학생들이 처한 현실만을 직시하다 보니 공사구분에 있어 세심함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는 입장을 전해왔습니다. 또 사적 이득을 취할 목적이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리조트에 머물렀던 베트남 어학연수생 70여 명 가운데 현재 학교에 남아 있는 학생은 절반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학생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학교로 적을 옮겼고, 일부 학생은 무단으로 제주를 이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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