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의 영웅’ 이순신의 진짜 얼굴은?

입력 2019.09.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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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세 배우가 있습니다. 공통점이 있죠. 이순신 장군을 연기했다는 겁니다. 이순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는 김명민입니다. 2004년 9월 4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이듬해 8월 28일 마지막 방송까지 무려 104부작에 이르는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통해 매주 주말마다 안방 시청자들을 만났으니까요. 이순신이 곧 김명민이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죠. 실제로 드라마는 배우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누가 이순신 장군 역할을 맡느냐 하는 점은 늘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명량>에서는 최민식이 선택을 받았고, 5부작 드라마 <임진왜란 1592>에는 최수종이 등장하죠. 자, 그렇다면 세 배우 가운데 어느 쪽이 이순신 장군의 실제 모습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 질문을 좀 달리해보죠. 어느 배우가 이순신 장군의 실제 모습과 가장 닮았기를 바라시나요?

이순신의 얼굴로 추정되는 무인 초상화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무인 초상화 (송영달 소장)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무인 초상화 (송영달 소장)

얼마 전에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라는 흥미로운 주장과 함께 언론에 소개돼 화제를 모은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1919년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아와 다양한 인물화와 풍속화를 그린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의 작품입니다. 이 그림의 존재를 국내에 처음 알린 건 재미교포인 송영달 미국 이스트캐롤라이나대학 명예교수가 2012년에 펴낸 《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라는 책이었습니다.


키스 전문 연구자이자 수집가이기도 한 송 교수는 책 말미에 수록한 엘리자베스 키스 작품 목록에 '청포를 입은 무관 Man in Blue'이란 제목으로 아주 작은 사진을 실어 놓았습니다. 자세한 설명이 없는 걸 보면 그 무렵에는 그림에 관한 기본 정보와 사진 정도만 확보했던 걸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올해 7월에 이 그림이 다시 언론에 등장합니다. 그림 속 인물이 이순신 장군으로 추정된다는 내용과 함께 말이죠.

[연관기사] 거북선 앞 무인…이순신 초상 복원 실마리 찾았다

이 그림을 면밀히 검토한 뒤 이순신 장군의 초상으로 보는 유력한 근거를 제시한 사람은 이순신 연구가 박종평 씨입니다. 당시에 보도된 내용을 다시 정리해 봅니다. 첫째, 생전에 이순신 초상을 직접 봤다고 증언한 근대 한국화가 청전 이상범 화백의 그림과 비교할 때 구도와 자세 등이 거의 유사하다. 둘째, 배경에 그려진 거북선은 조선시대의 다른 초상화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셋째, 마르고 야윈 얼굴이 역사적 사실에 더 부합한다.

우리가 원하는 얼굴 vs 실제에 가까운 얼굴

여기서 우리가 '그랬으면 하는' 이순신 장군의 얼굴과 '실제에 더 가까운' 이순신 장군의 얼굴이 서로 충돌합니다. 현충사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표준영정에서 보이는 근엄하면서도 수려하고 당당한 문인(文人)의 모습은 이순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지배적 이미지'로 이미 굳어져 있죠. 이 이미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논리는 간단합니다. 《난중일기》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봤다면 저 얼굴이 이순신일 수는 없다는 겁니다.

초상화라는 것이 뭔가요. 한 인물의 생애와 업적을 역사적인 사실에 가장 부합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던가요. 임진왜란 내내 이순신 장군은 육체적으로 숱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난중일기》를 읽어보면 하루가 멀다하고 아파서 앓아누웠다는 내용이 나오죠. 전쟁통에 잘 먹고 잘 자면서 건강하게 지냈을까요. 의식주조차 제대로 충족되지 못한 병사들이 죽어나가는 전장에서 장군이라고 달랐을까요.


자, 이런 관점에서 다시 두 초상화를 나란히 놓고 봅니다. 어느 쪽이 이순신 장군의 진짜 얼굴에 가깝다고 생각하시나요?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정말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를 직접 보고 그대로 옮겨 그렸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위에 소개해드린 여러 근거들을 종합해볼 때 적어도 표준영정에 담긴 얼굴이 아니라 바로 저 초상화 속 얼굴이 이순신 장군의 실제 모습에 더 가깝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이 뉴스가 나간 뒤 어느 분이 아주 흥미로운 정보를 제게 알려주셨습니다. 《평양책방》이란 책에 북한에서 그린 이순신 초상화가 실려 있다는 내용이었죠. 그 즉시 구해다가 확인해보니 지난해 7월에 서울도서관에서 같은 제목의 전시회가 열렸고, 이 책은 그 전시회 출품작을 모은 자료집이더군요. 해방 이후 월북한 예술가들이 1950, 60년대에 북한에서 발표한 책 250여 권을 소개한 귀중한 책이었습니다.

북한 화가가 그린 이순신 초상화


국내에 남아 있는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는 이순신 연구가 박종평 씨가 자신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yisunsin21)에 여러 차례에 걸쳐 상세하게 소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제작된 이순신 초상화는 알려진 적이 거의 없죠. 《평양책방》에 실린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는 두 점입니다. 하나는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천변풍경>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박태원이 1952년에 북한에서 낸 《리순신장군전》의 삽화입니다.

월북화가 이여성이 그린 이순신 초상화월북화가 이여성이 그린 이순신 초상화

원본을 확인할 길이 없어 도록에 있는 작은 이미지로만 볼 수 있는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월북한 정치인이자 언론인, 화가, 평론가였던 이여성(李如星, 1901~?)이라는 인물입니다. 최근 근대 미술의 거장으로 재평가된 서양화가 이쾌대(李快大, 1913~1965)가 바로 이여성의 막내 동생입니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머리에 전립(戰笠)을 쓴 전형적인 무인의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양 끝이 위로 올라간 눈매까지도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미간에 짙은 주름 두 줄기를 새겨 장군의 결연한 의지를 강조한 점도 눈에 띄고요. 책에 수록된 초상화가 이 그림에서 보듯 얼굴 부분만 그린 것인지, 아니면 더 큰 그림에서 이 부분만 따온 것인지 무척 궁금합니다. 그림 원본이 남아 있다면 참 좋을 텐데요. 그런데 이 그림이 원본일 가능성을 높여주는 또 다른 이순신 초상화가 《평양책방》에 실려 있습니다.

 북한화가 오택경이 그린 이순신 표준영정 북한화가 오택경이 그린 이순신 표준영정

1957년에 북한에서 펴낸 《위인초상화》라는 책에는 우리나라 위인 여덟 분의 표준영정으로 만든 엽서가 실려 있습니다. 이 가운데 이순신 장군도 당연히 포함돼 있습니다. 앞에서 본 이여성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역시 전립에 군복을 입은 모습이죠. 하지만 얼굴은 사뭇 다르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초상화를 그린 사람은 오택경(吳澤慶, 1913~1978)이란 북한 화가입니다. 남북한의 표준영정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뚜렷하게 보입니다.

터무니없이 이런 상상도 해봅니다. 타임머신이라도 있어서 성능 좋은 카메라 들고 과거로 쏜살같이 날아가 장군님의 얼굴을 찍어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맹활약하고 있는 김명민, 최민식, 최수종 세 사람 가운데 누가 이순신 장군의 진짜 얼굴과 가장 가까울까요? 아니, 다음에 장군님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면 과연 어떤 배우가 이순신 역할을 맡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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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세의 영웅’ 이순신의 진짜 얼굴은?
    • 입력 2019-09-30 07:00:35
    취재K
여기 세 배우가 있습니다. 공통점이 있죠. 이순신 장군을 연기했다는 겁니다. 이순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는 김명민입니다. 2004년 9월 4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이듬해 8월 28일 마지막 방송까지 무려 104부작에 이르는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통해 매주 주말마다 안방 시청자들을 만났으니까요. 이순신이 곧 김명민이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죠. 실제로 드라마는 배우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누가 이순신 장군 역할을 맡느냐 하는 점은 늘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명량>에서는 최민식이 선택을 받았고, 5부작 드라마 <임진왜란 1592>에는 최수종이 등장하죠. 자, 그렇다면 세 배우 가운데 어느 쪽이 이순신 장군의 실제 모습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 질문을 좀 달리해보죠. 어느 배우가 이순신 장군의 실제 모습과 가장 닮았기를 바라시나요?

이순신의 얼굴로 추정되는 무인 초상화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무인 초상화 (송영달 소장)
얼마 전에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라는 흥미로운 주장과 함께 언론에 소개돼 화제를 모은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1919년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아와 다양한 인물화와 풍속화를 그린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의 작품입니다. 이 그림의 존재를 국내에 처음 알린 건 재미교포인 송영달 미국 이스트캐롤라이나대학 명예교수가 2012년에 펴낸 《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라는 책이었습니다.


키스 전문 연구자이자 수집가이기도 한 송 교수는 책 말미에 수록한 엘리자베스 키스 작품 목록에 '청포를 입은 무관 Man in Blue'이란 제목으로 아주 작은 사진을 실어 놓았습니다. 자세한 설명이 없는 걸 보면 그 무렵에는 그림에 관한 기본 정보와 사진 정도만 확보했던 걸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올해 7월에 이 그림이 다시 언론에 등장합니다. 그림 속 인물이 이순신 장군으로 추정된다는 내용과 함께 말이죠.

[연관기사] 거북선 앞 무인…이순신 초상 복원 실마리 찾았다

이 그림을 면밀히 검토한 뒤 이순신 장군의 초상으로 보는 유력한 근거를 제시한 사람은 이순신 연구가 박종평 씨입니다. 당시에 보도된 내용을 다시 정리해 봅니다. 첫째, 생전에 이순신 초상을 직접 봤다고 증언한 근대 한국화가 청전 이상범 화백의 그림과 비교할 때 구도와 자세 등이 거의 유사하다. 둘째, 배경에 그려진 거북선은 조선시대의 다른 초상화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셋째, 마르고 야윈 얼굴이 역사적 사실에 더 부합한다.

우리가 원하는 얼굴 vs 실제에 가까운 얼굴

여기서 우리가 '그랬으면 하는' 이순신 장군의 얼굴과 '실제에 더 가까운' 이순신 장군의 얼굴이 서로 충돌합니다. 현충사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표준영정에서 보이는 근엄하면서도 수려하고 당당한 문인(文人)의 모습은 이순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지배적 이미지'로 이미 굳어져 있죠. 이 이미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논리는 간단합니다. 《난중일기》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봤다면 저 얼굴이 이순신일 수는 없다는 겁니다.

초상화라는 것이 뭔가요. 한 인물의 생애와 업적을 역사적인 사실에 가장 부합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던가요. 임진왜란 내내 이순신 장군은 육체적으로 숱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난중일기》를 읽어보면 하루가 멀다하고 아파서 앓아누웠다는 내용이 나오죠. 전쟁통에 잘 먹고 잘 자면서 건강하게 지냈을까요. 의식주조차 제대로 충족되지 못한 병사들이 죽어나가는 전장에서 장군이라고 달랐을까요.


자, 이런 관점에서 다시 두 초상화를 나란히 놓고 봅니다. 어느 쪽이 이순신 장군의 진짜 얼굴에 가깝다고 생각하시나요?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정말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를 직접 보고 그대로 옮겨 그렸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위에 소개해드린 여러 근거들을 종합해볼 때 적어도 표준영정에 담긴 얼굴이 아니라 바로 저 초상화 속 얼굴이 이순신 장군의 실제 모습에 더 가깝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이 뉴스가 나간 뒤 어느 분이 아주 흥미로운 정보를 제게 알려주셨습니다. 《평양책방》이란 책에 북한에서 그린 이순신 초상화가 실려 있다는 내용이었죠. 그 즉시 구해다가 확인해보니 지난해 7월에 서울도서관에서 같은 제목의 전시회가 열렸고, 이 책은 그 전시회 출품작을 모은 자료집이더군요. 해방 이후 월북한 예술가들이 1950, 60년대에 북한에서 발표한 책 250여 권을 소개한 귀중한 책이었습니다.

북한 화가가 그린 이순신 초상화


국내에 남아 있는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는 이순신 연구가 박종평 씨가 자신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yisunsin21)에 여러 차례에 걸쳐 상세하게 소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제작된 이순신 초상화는 알려진 적이 거의 없죠. 《평양책방》에 실린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는 두 점입니다. 하나는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천변풍경>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박태원이 1952년에 북한에서 낸 《리순신장군전》의 삽화입니다.

월북화가 이여성이 그린 이순신 초상화
원본을 확인할 길이 없어 도록에 있는 작은 이미지로만 볼 수 있는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월북한 정치인이자 언론인, 화가, 평론가였던 이여성(李如星, 1901~?)이라는 인물입니다. 최근 근대 미술의 거장으로 재평가된 서양화가 이쾌대(李快大, 1913~1965)가 바로 이여성의 막내 동생입니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머리에 전립(戰笠)을 쓴 전형적인 무인의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양 끝이 위로 올라간 눈매까지도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미간에 짙은 주름 두 줄기를 새겨 장군의 결연한 의지를 강조한 점도 눈에 띄고요. 책에 수록된 초상화가 이 그림에서 보듯 얼굴 부분만 그린 것인지, 아니면 더 큰 그림에서 이 부분만 따온 것인지 무척 궁금합니다. 그림 원본이 남아 있다면 참 좋을 텐데요. 그런데 이 그림이 원본일 가능성을 높여주는 또 다른 이순신 초상화가 《평양책방》에 실려 있습니다.

 북한화가 오택경이 그린 이순신 표준영정
1957년에 북한에서 펴낸 《위인초상화》라는 책에는 우리나라 위인 여덟 분의 표준영정으로 만든 엽서가 실려 있습니다. 이 가운데 이순신 장군도 당연히 포함돼 있습니다. 앞에서 본 이여성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역시 전립에 군복을 입은 모습이죠. 하지만 얼굴은 사뭇 다르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초상화를 그린 사람은 오택경(吳澤慶, 1913~1978)이란 북한 화가입니다. 남북한의 표준영정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뚜렷하게 보입니다.

터무니없이 이런 상상도 해봅니다. 타임머신이라도 있어서 성능 좋은 카메라 들고 과거로 쏜살같이 날아가 장군님의 얼굴을 찍어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맹활약하고 있는 김명민, 최민식, 최수종 세 사람 가운데 누가 이순신 장군의 진짜 얼굴과 가장 가까울까요? 아니, 다음에 장군님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면 과연 어떤 배우가 이순신 역할을 맡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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