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검찰은 행정부”…‘준사법기관 신화’ 깰까?

입력 2019.10.0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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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법무부의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개혁안 마련을 지시했습니다. 이때 문 대통령이 "권력기관일수록 더 강한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면서 한 말이 "검찰은 행정부를 구성하는 정부기관"이라는 말입니다. 검찰은 행정 조직상 법무부의 외청이고 당연히 정부 기관입니다. 너무 당연해서 그런지, 언론은 이 말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의문은 남습니다. 당연한 말을 왜 콕 짚어 한 걸까요? 마치 누군가가 검찰은 행정부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이나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 검찰은 준사법기관?…"의전도 법원과 똑같이"

사실 검찰 조직 안에는 스스로를 행정부의 외청이 아니라 '준사법기관'이라고 여기는 인식이 존재합니다. 검찰과 법원이 동등한 지위에서 사법부의 양대 축을 이룬다는 겁니다.

이런 시각은 의전에서 곧바로 드러납니다. 검찰은 검사장을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같은 차관급이라고 보는데요, 그래서 출퇴근 차량 등 고법 부장판사가 받는 대우를 그대로 검사장에게도 해왔던 겁니다. 법관과 검사 모두 사법고시를 통과한 법조인인데, 법관이 더 잘 난 게 있느냐는 경쟁의식도 은연중에 깔렸습니다. 사실 일반 시민들도 검찰이 사법부인지 행정부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지역을 가든, 검찰청사와 법원 청사가 나란히 서 있는 것도 상징적입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검찰이 행정부라고 했고, 이는 달리 말하면 준사법기관임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검찰 개혁을 이야기할 때, 검찰이 사법부인지 행정부인지가 왜 중요한 걸까요? 문 대통령이 2011년에 쓴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 文 "준사법기관론, 검찰 권한 확대의 보루"

이 책은 문 대통령이 노무현 재단 이사장 시절, 참여정부의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는지를 성찰하며 쓴 책입니다. 문 대통령은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책 초반부에서 준사법기관론을 비판합니다. "검찰의 특별한 권한은 검찰의 특수성을 설명하는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서, 그 이론으로 지목한 게 '준사법기관론'입니다.

문 대통령은 우선 "검사의 결정을 법관의 판결과 동일하게 볼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합니다. "재판이 시작돼야 사건에 개입하는 소극성과 수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법원과 수사개시 여부 및 기소 여부를 적극적, 능동적으로 결정하는 검찰은 본질적인 면에서 다르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준사법기관론을 "검찰 권한 확대의 보루"로 규정합니다. 검사에게 법관과 유사한 지위를 부여해서 "검찰의 정치화나 인권침해 행위에 합법성의 외관, 면죄부를 부여하고, 검사의 결정에 비판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겁니다. "경찰 통제의 기초가 된다"고도 했습니다.

■ '정치적 독립'이냐, '민주적 통제'냐

준사법기관론은 특별한 권한을 정당화할 뿐 아니라, "검찰의 정치적 조직적 독립 주장"으로 발전한다는 게 문 대통령 생각입니다. "법관과 같은 수준의 독립성과 신분 보장을 요구하는 기반"이 된다는 겁니다. 검찰 인사권과 예산권의 독립, 검찰총장 임명 시 현직만을 임명하는 제도가 그 예입니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주장이 매우 위험하다고 봅니다. "한국의 검찰은 이미 충분히 정치화되어 있고 형사 절차상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면서, "만일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포기한다면 검찰은 무소불위의 기관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책에는 "재앙"이라는 표현도 등장합니다. 그러면서 "검찰에게 필요한 것은 중립을 지키는 것이고, 정치권력에 의한 민주적 통제와 외부의 건전한 비판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이렇게 보면 문 대통령이 새삼스레 검찰은 행정부라고 한 것은,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검찰은 고도의 독립성이 우선되는 사법기관이 아니라는 겁니다. 검찰 스스로 준사법기관이라는 신화를 깨고, 개혁 요구를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도 있을 겁니다.

문 대통령은 책에서 더는 검찰을 밀실에서 지휘하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합법적 기구인 법무부가 검찰 견제기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검찰이 행정부라는 걸 전제로 합니다.

■ 참여정부의 '실패' 딛고 검찰 개혁 가능할까?

하지만 검찰과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적 통제'라는 표현에 대한 불신이 있는 듯합니다. 민주적 통제는 허울뿐이고 실제로는 정치권력이 '검찰 수사에 개입'하려는 의도라는 겁니다.

조국 장관 수사 이후 정부여당의 검찰 개혁 요구가 거세지자, 한 현직 검사는 내부망을 통해 윤석열 총장에게 글을 올렸습니다. "힘센 쪽에 붙어 편한 길을 가시지 그러셨느냐" "(임명권자의) 의중을 헤아려 눈치껏 수사했으면 역적 취급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부여당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건데, 검찰개혁 요구가 순수하지 않다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야권의 반발도 거셉니다. 문 대통령이 검찰권 행사가 절제돼야 한다고 하자, 즉각 "사법 쿠데타" "조국 엄호 투쟁" "노골적인 검찰 겁박"이란 비난을 냈습니다.

민주적 통제 시도가 검찰에 대한 '압박'으로 비춰지던 상황은 참여정부 때도 있었습니다. 검찰 개혁 차원에서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고자 했지만, 대검 중수부의 '2002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결국 중수부를 폐지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대선 자금 수사는 국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저서 <운명>(2011)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합니다.

대검 중수부 폐지는 검찰의 탈(脫)정치, 정치중립을 위한 상당히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정치중립의 요구 때문에 손을 대지 못했다. 검찰을 정치검찰로 만드는데 가장 큰 작용을 하는 것이 대검 중수부다.유일하게 직접 수사기능을 갖고 있는 게 중수부다. 거기서 대검의 정치성과 정치편향성이 저절로 생기게 된다.(중략)
중수부 폐지를 본격 논의하기 전에 대선자금 수사가 있었다. 그 수사를 중수부가 했다. 대통령이나 청와대는 검찰이 정권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수사할 수 있게 보장해줬다. 이 수사로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대단히 높은 신뢰를 받게 됐다. 그 바람에 중수부 폐지론이 희석됐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중수부 폐지를 추진하게 되면 마치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보복 같은 인상을 줄 소지가 컸다. 그 시기를 놓치니 다음 계기를 잡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이 책에서 "정치권력은 검찰을 정권의 목적에 활용하려는 욕망을 스스로 절제하고, 검찰 스스로 정권의 눈치 보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치권력과 검찰, 각각의 몫이 있다는 겁니다. 참여정부의 실패 경험이 이번 검찰개혁에는 어떻게 반영될지 지켜볼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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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 “검찰은 행정부”…‘준사법기관 신화’ 깰까?
    • 입력 2019-10-02 17: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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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법무부의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개혁안 마련을 지시했습니다. 이때 문 대통령이 "권력기관일수록 더 강한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면서 한 말이 "검찰은 행정부를 구성하는 정부기관"이라는 말입니다. 검찰은 행정 조직상 법무부의 외청이고 당연히 정부 기관입니다. 너무 당연해서 그런지, 언론은 이 말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의문은 남습니다. 당연한 말을 왜 콕 짚어 한 걸까요? 마치 누군가가 검찰은 행정부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이나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 검찰은 준사법기관?…"의전도 법원과 똑같이"

사실 검찰 조직 안에는 스스로를 행정부의 외청이 아니라 '준사법기관'이라고 여기는 인식이 존재합니다. 검찰과 법원이 동등한 지위에서 사법부의 양대 축을 이룬다는 겁니다.

이런 시각은 의전에서 곧바로 드러납니다. 검찰은 검사장을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같은 차관급이라고 보는데요, 그래서 출퇴근 차량 등 고법 부장판사가 받는 대우를 그대로 검사장에게도 해왔던 겁니다. 법관과 검사 모두 사법고시를 통과한 법조인인데, 법관이 더 잘 난 게 있느냐는 경쟁의식도 은연중에 깔렸습니다. 사실 일반 시민들도 검찰이 사법부인지 행정부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지역을 가든, 검찰청사와 법원 청사가 나란히 서 있는 것도 상징적입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검찰이 행정부라고 했고, 이는 달리 말하면 준사법기관임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검찰 개혁을 이야기할 때, 검찰이 사법부인지 행정부인지가 왜 중요한 걸까요? 문 대통령이 2011년에 쓴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 文 "준사법기관론, 검찰 권한 확대의 보루"

이 책은 문 대통령이 노무현 재단 이사장 시절, 참여정부의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는지를 성찰하며 쓴 책입니다. 문 대통령은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책 초반부에서 준사법기관론을 비판합니다. "검찰의 특별한 권한은 검찰의 특수성을 설명하는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서, 그 이론으로 지목한 게 '준사법기관론'입니다.

문 대통령은 우선 "검사의 결정을 법관의 판결과 동일하게 볼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합니다. "재판이 시작돼야 사건에 개입하는 소극성과 수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법원과 수사개시 여부 및 기소 여부를 적극적, 능동적으로 결정하는 검찰은 본질적인 면에서 다르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준사법기관론을 "검찰 권한 확대의 보루"로 규정합니다. 검사에게 법관과 유사한 지위를 부여해서 "검찰의 정치화나 인권침해 행위에 합법성의 외관, 면죄부를 부여하고, 검사의 결정에 비판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겁니다. "경찰 통제의 기초가 된다"고도 했습니다.

■ '정치적 독립'이냐, '민주적 통제'냐

준사법기관론은 특별한 권한을 정당화할 뿐 아니라, "검찰의 정치적 조직적 독립 주장"으로 발전한다는 게 문 대통령 생각입니다. "법관과 같은 수준의 독립성과 신분 보장을 요구하는 기반"이 된다는 겁니다. 검찰 인사권과 예산권의 독립, 검찰총장 임명 시 현직만을 임명하는 제도가 그 예입니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주장이 매우 위험하다고 봅니다. "한국의 검찰은 이미 충분히 정치화되어 있고 형사 절차상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면서, "만일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포기한다면 검찰은 무소불위의 기관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책에는 "재앙"이라는 표현도 등장합니다. 그러면서 "검찰에게 필요한 것은 중립을 지키는 것이고, 정치권력에 의한 민주적 통제와 외부의 건전한 비판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이렇게 보면 문 대통령이 새삼스레 검찰은 행정부라고 한 것은,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검찰은 고도의 독립성이 우선되는 사법기관이 아니라는 겁니다. 검찰 스스로 준사법기관이라는 신화를 깨고, 개혁 요구를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도 있을 겁니다.

문 대통령은 책에서 더는 검찰을 밀실에서 지휘하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합법적 기구인 법무부가 검찰 견제기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검찰이 행정부라는 걸 전제로 합니다.

■ 참여정부의 '실패' 딛고 검찰 개혁 가능할까?

하지만 검찰과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적 통제'라는 표현에 대한 불신이 있는 듯합니다. 민주적 통제는 허울뿐이고 실제로는 정치권력이 '검찰 수사에 개입'하려는 의도라는 겁니다.

조국 장관 수사 이후 정부여당의 검찰 개혁 요구가 거세지자, 한 현직 검사는 내부망을 통해 윤석열 총장에게 글을 올렸습니다. "힘센 쪽에 붙어 편한 길을 가시지 그러셨느냐" "(임명권자의) 의중을 헤아려 눈치껏 수사했으면 역적 취급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부여당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건데, 검찰개혁 요구가 순수하지 않다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야권의 반발도 거셉니다. 문 대통령이 검찰권 행사가 절제돼야 한다고 하자, 즉각 "사법 쿠데타" "조국 엄호 투쟁" "노골적인 검찰 겁박"이란 비난을 냈습니다.

민주적 통제 시도가 검찰에 대한 '압박'으로 비춰지던 상황은 참여정부 때도 있었습니다. 검찰 개혁 차원에서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고자 했지만, 대검 중수부의 '2002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결국 중수부를 폐지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대선 자금 수사는 국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저서 <운명>(2011)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합니다.

대검 중수부 폐지는 검찰의 탈(脫)정치, 정치중립을 위한 상당히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정치중립의 요구 때문에 손을 대지 못했다. 검찰을 정치검찰로 만드는데 가장 큰 작용을 하는 것이 대검 중수부다.유일하게 직접 수사기능을 갖고 있는 게 중수부다. 거기서 대검의 정치성과 정치편향성이 저절로 생기게 된다.(중략)
중수부 폐지를 본격 논의하기 전에 대선자금 수사가 있었다. 그 수사를 중수부가 했다. 대통령이나 청와대는 검찰이 정권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수사할 수 있게 보장해줬다. 이 수사로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대단히 높은 신뢰를 받게 됐다. 그 바람에 중수부 폐지론이 희석됐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중수부 폐지를 추진하게 되면 마치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보복 같은 인상을 줄 소지가 컸다. 그 시기를 놓치니 다음 계기를 잡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이 책에서 "정치권력은 검찰을 정권의 목적에 활용하려는 욕망을 스스로 절제하고, 검찰 스스로 정권의 눈치 보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치권력과 검찰, 각각의 몫이 있다는 겁니다. 참여정부의 실패 경험이 이번 검찰개혁에는 어떻게 반영될지 지켜볼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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