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결렬에 ‘ICBM 카드’ 꺼내든 北…대화 재개는 언제?

입력 2019.10.1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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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렸던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결렬된 뒤 벌써 닷새가 지났습니다. 결렬 당시 2주 뒤 협상을 재개하자는 스웨덴 정부의 제안을 미국은 받아들였지만, 북한은 거절했습니다. 이후 북한과 미국 사이에 협상 재개를 위한 대화가 오가는 징후는 아직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오히려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협상 결렬 뒤 북한이 입을 열 때마다 빼놓지 않는 단어가 있습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입니다. 북미 실무협상에 나섰던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협상 결렬 직후 성명에서 "우리의 핵시험과 ICBM 시험발사 중지가 계속 유지되는가 그렇지 않으면 되살리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입장에 달려있다"고 말하더니, 이어 8일에는 과거 갖가지 ICBM 시험발사 장면들을 넣은 새 기록영화가 조선중앙TV에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ICBM 시험발사 장면이 포함된 기록영화 ‘자력으로 승리 떨쳐온 빛나는 역사’북한의 ICBM 시험발사 장면이 포함된 기록영화 ‘자력으로 승리 떨쳐온 빛나는 역사’

어제(10일)는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국의 최근 ICBM 시험발사를 비난하며 "우리도 같은 수준에서 맞대응해줄 수 있지만, 시기상조로 판단해 자제할 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 성명은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 6개 나라가 북한의 지난 2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를 비난하며 낸 규탄 성명에 대한 반박 차원이었습니다.

사실 이번 유럽 6개국의 성명은 안보리 15개국이 입장을 취합해 발표하는 의장 성명이나 언론 성명보다는 수위가 낮은 것입니다. 당사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한국이 입장 표명을 자제한 게 영향을 줬다는 분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국이 성명을 낸 유럽 6개국을 '사주'했다며 거칠게 나온 것입니다.

ICBM 카드 흔드는 이유는? '트럼프가 나서야!'

사거리가 최소 5,500km에 달하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명백히 미국을 겨냥해 개발된 무기입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의 대화가 이뤄지기 전인 2017년 북한은 화성-12호, 14호, 15호를 잇달아 시험 발사했지만, 첫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해 4월 스스로 핵시험과 ICBM 시험발사 중지를 약속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도 이를 자신의 최고 업적으로 여기고 재선 카드로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이 ICBM 카드를 다시 흔들기 시작한 이유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메시지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미국이 북한의 마음에 드는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지 않을 경우 언제라도 ICBM을 시험 발사해 재선 가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신호라는 겁니다. 실무진이 참여한 협상을 결렬시킨 뒤, 북한이 다시 한번 미국 정상이 직접 나서 결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실무협상에서 미국이 들고 온 협상안, 즉 '창의적 아이디어'를 거부했습니다. 미국 측의 협상안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미국 언론들은 섬유와 석탄 수출 제재의 유예 등을 미국이 제시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경제제재 전반을 완화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수출 일부 품목에 대해서만 한시적 제재 보류를 제안했을 거라는 겁니다. 지난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안보리 대북 제재 11건 중 북한 경제에 직접 관련되는 5건에 대한 광범위한 해제를 요구했던 북한으로서는 만족스럽지 않았을 거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이에 더해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 중단,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인근 전개 금지 등 안전보장 방안을 마련해줄 것도 미국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협상 결렬에 '무반응'...워싱턴 외교가엔 회의론

북미 실무협상 결렬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탄핵 소용돌이에 휘말린 데다 미국의 시리아 철군 논란, 중국과의 고위급 무역 협상 등 초대형 현안이 쌓여있는 탓도 있겠지만, 기대했던 협상이 결렬된 만큼 다음 행보를 숙고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일단 대화의 끈을 이어가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ICBM을 언급한 어제(10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에 대해서도 북한의 도발 자제와 지속적 대화 참여를 요구하며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협상에 계속 관여해야 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고 자유아시아방송은 전했습니다.

하지만 실무협상 결렬의 파장은 워싱턴 외교가로 번지고 있습니다. 강력한 대북제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다시금 높아지고 있는 겁니다.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한 행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핵 유지를 원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북미 정상 회담으로 돌파구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정상 간 합의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섣불리 제재를 완화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미국이 "북한의 SLBM 시험 발사에 대한 (유럽국가들의) 규탄에 동참했어야 한다"며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아직 북미 대화의 판이 깨지지 않은 만큼 트럼프 행정부가 공개적으로 북한과 대립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되지만, 실무협상 결렬 이후 워싱턴 조야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

새 회담 시한 '연말'로 잡은 북한..."미국 정치 이벤트 고려"

이른 실무회담 재개를 원한 미국과 달리, 북한은 새 회담의 시한을 '연말'로 공언했습니다. 이르면 이달 말로 예상되는 미국 하원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표결과 내년 2월엔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다는 점 등 미국의 정치 이벤트 시점을 계산한 것으로 보입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은 12월이 가기 전에 실무협상 재개를 통해 미국의 변화된 입장을 확인하려 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선 일정에서 북한이 변수가 될 수 있음을 과시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적당한 시기는 12월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다음 달 쯤 물리적으로 실무협상이 재개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북미 양쪽 모두 새 실무협상에서 제시할 초안을 재정비해야 하기 때문에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외교가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조만간 중국과의 논의를 위해 방중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북중 수교 70주년인 6일은 이미 지났고, 6.25 전쟁 당시 중국의 참전을 기념하는 25일 항미원조기념일을 맞아 단둥을 찾을 거라는 건데,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항미원조기념일에 북한 지도자가 방중한 적이 없는데다 관련 징후에 대해서도 들어본 바 없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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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1 18:07:03
    취재K
지난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렸던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결렬된 뒤 벌써 닷새가 지났습니다. 결렬 당시 2주 뒤 협상을 재개하자는 스웨덴 정부의 제안을 미국은 받아들였지만, 북한은 거절했습니다. 이후 북한과 미국 사이에 협상 재개를 위한 대화가 오가는 징후는 아직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오히려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협상 결렬 뒤 북한이 입을 열 때마다 빼놓지 않는 단어가 있습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입니다. 북미 실무협상에 나섰던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협상 결렬 직후 성명에서 "우리의 핵시험과 ICBM 시험발사 중지가 계속 유지되는가 그렇지 않으면 되살리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입장에 달려있다"고 말하더니, 이어 8일에는 과거 갖가지 ICBM 시험발사 장면들을 넣은 새 기록영화가 조선중앙TV에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ICBM 시험발사 장면이 포함된 기록영화 ‘자력으로 승리 떨쳐온 빛나는 역사’
어제(10일)는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국의 최근 ICBM 시험발사를 비난하며 "우리도 같은 수준에서 맞대응해줄 수 있지만, 시기상조로 판단해 자제할 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 성명은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 6개 나라가 북한의 지난 2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를 비난하며 낸 규탄 성명에 대한 반박 차원이었습니다.

사실 이번 유럽 6개국의 성명은 안보리 15개국이 입장을 취합해 발표하는 의장 성명이나 언론 성명보다는 수위가 낮은 것입니다. 당사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한국이 입장 표명을 자제한 게 영향을 줬다는 분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국이 성명을 낸 유럽 6개국을 '사주'했다며 거칠게 나온 것입니다.

ICBM 카드 흔드는 이유는? '트럼프가 나서야!'

사거리가 최소 5,500km에 달하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명백히 미국을 겨냥해 개발된 무기입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의 대화가 이뤄지기 전인 2017년 북한은 화성-12호, 14호, 15호를 잇달아 시험 발사했지만, 첫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해 4월 스스로 핵시험과 ICBM 시험발사 중지를 약속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도 이를 자신의 최고 업적으로 여기고 재선 카드로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이 ICBM 카드를 다시 흔들기 시작한 이유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메시지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미국이 북한의 마음에 드는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지 않을 경우 언제라도 ICBM을 시험 발사해 재선 가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신호라는 겁니다. 실무진이 참여한 협상을 결렬시킨 뒤, 북한이 다시 한번 미국 정상이 직접 나서 결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실무협상에서 미국이 들고 온 협상안, 즉 '창의적 아이디어'를 거부했습니다. 미국 측의 협상안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미국 언론들은 섬유와 석탄 수출 제재의 유예 등을 미국이 제시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경제제재 전반을 완화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수출 일부 품목에 대해서만 한시적 제재 보류를 제안했을 거라는 겁니다. 지난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안보리 대북 제재 11건 중 북한 경제에 직접 관련되는 5건에 대한 광범위한 해제를 요구했던 북한으로서는 만족스럽지 않았을 거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이에 더해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 중단,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인근 전개 금지 등 안전보장 방안을 마련해줄 것도 미국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협상 결렬에 '무반응'...워싱턴 외교가엔 회의론

북미 실무협상 결렬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탄핵 소용돌이에 휘말린 데다 미국의 시리아 철군 논란, 중국과의 고위급 무역 협상 등 초대형 현안이 쌓여있는 탓도 있겠지만, 기대했던 협상이 결렬된 만큼 다음 행보를 숙고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일단 대화의 끈을 이어가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ICBM을 언급한 어제(10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에 대해서도 북한의 도발 자제와 지속적 대화 참여를 요구하며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협상에 계속 관여해야 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고 자유아시아방송은 전했습니다.

하지만 실무협상 결렬의 파장은 워싱턴 외교가로 번지고 있습니다. 강력한 대북제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다시금 높아지고 있는 겁니다.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한 행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핵 유지를 원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북미 정상 회담으로 돌파구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정상 간 합의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섣불리 제재를 완화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미국이 "북한의 SLBM 시험 발사에 대한 (유럽국가들의) 규탄에 동참했어야 한다"며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아직 북미 대화의 판이 깨지지 않은 만큼 트럼프 행정부가 공개적으로 북한과 대립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되지만, 실무협상 결렬 이후 워싱턴 조야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
새 회담 시한 '연말'로 잡은 북한..."미국 정치 이벤트 고려"

이른 실무회담 재개를 원한 미국과 달리, 북한은 새 회담의 시한을 '연말'로 공언했습니다. 이르면 이달 말로 예상되는 미국 하원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표결과 내년 2월엔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다는 점 등 미국의 정치 이벤트 시점을 계산한 것으로 보입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은 12월이 가기 전에 실무협상 재개를 통해 미국의 변화된 입장을 확인하려 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선 일정에서 북한이 변수가 될 수 있음을 과시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적당한 시기는 12월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다음 달 쯤 물리적으로 실무협상이 재개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북미 양쪽 모두 새 실무협상에서 제시할 초안을 재정비해야 하기 때문에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외교가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조만간 중국과의 논의를 위해 방중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북중 수교 70주년인 6일은 이미 지났고, 6.25 전쟁 당시 중국의 참전을 기념하는 25일 항미원조기념일을 맞아 단둥을 찾을 거라는 건데,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항미원조기념일에 북한 지도자가 방중한 적이 없는데다 관련 징후에 대해서도 들어본 바 없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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