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의 한 시민이 정부기관이 운영하는 앱에 보낸 제보 사진입니다. 캄캄한 밤 하늘 아래 춘천 명동의 닭갈비 골목 입구 모습이 보이고, 도로를 지나는 차의 모습도 보입니다. 시민은 대체 무엇을 제보하려던 걸까요?
제보의 목적은 다름 아닌 '날씨'였습니다. 위 사진은 기상청이 운용하는 '날씨제보 앱'에 실제 제보된 사진입니다.
해당 앱은 2014년 3월 개발됐습니다. 국민에게 직접 기상 현상이 담긴 사진을 제보받아, 이를 토대로 양질의 예보를 생산하겠다는 취지로 개발한 앱입니다.
문제는 이 앱이 애초의 취지를 잘 살리고 있냐는 점입니다. 애초에 기상 현상을 알아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날씨 제보 앱인데, 위의 사례같은 경우 사진으로 날씨 정보를 전혀 확인할 수 없습니다.
■“기상청입니까, 이벤트 회사입니까?"
날씨제보 앱을 더 면밀히 들여다 봤습니다. 앱을 켜자마자 이벤트를 알리는 알림창이 뜹니다. 명목은 '단풍 이벤트'. 공지에 따르면, 이벤트에 참여한 63명의 시민은 무작위 추첨을 통해 2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게 됩니다.
현재 진행 중인 단풍 이벤트를 포함해, 날씨제보 앱 이벤트는 올해만 9번 열렸습니다. 보통 이벤트가 한 달 정도 지속되는 점을 고려하면, 연중 내내 이벤트가 열리고 있는 셈입니다.
이 때문에 7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기상청입니까, 이벤트 회사입니까?"라는 웃지 못할 질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환노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의 질문이었습니다. 기상청이 이 앱을 운영하며, 연중 과도하게 이벤트를 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겁니다.
날씨제보 앱에서 조회 수 상위 순위를 기록하고 있는 제보 사진들 (출처 : 기상청 날씨제보 앱)
잦은 이벤트라도, 양질의 제보가 들어온다면 의미가 있을텐데 그조차 아니었습니다. 기상 현상을 알아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날씨 제보 앱인데, 정작 날씨정보가 담긴 사진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날씨제보 앱에서 최다 조회 수를 기록한 사진들을 보면 나무나 꽃, 뱀이나 나비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상당수입니다. 이 정도면 날씨를 간접적으로나마 유추할 수 있으니 다행인 걸까요? 하늘인지, 컴퓨터 화면인지 알 수 없는 오묘한 사진을 장난처럼 보내온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해 첫눈 이벤트에 당첨된 날씨 제보 사진 (출처 :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실)
이벤트에 당첨된 사진은 좀 다를까 싶었는데, 아니었습니다. 위 사진은 지난해 겨울, 첫눈 이벤트 당첨 사진입니다. 첫눈 사진은 도통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파트 단지와 젖은 것으로 유추되는 도로의 모습만 확인될 뿐이었습니다.
■날씨 제보 앱, 예보 향상에 도움 될까?
효용성의 측면에서도 문제가 제기됩니다. 특보나 예보 향상을 위해 앱을 유지하는 것인데, 실제 제보 앱을 통해 받은 사진이 특보나 예보의 정확도를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현재 전국 대부분 지역에는 자동 기상관측장비가 설치돼 있습니다. 과거 자동관측장비가 설치되지 않은 때라면, 시민들의 날씨 제보가 유효하겠지만, 현재로선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의견입니다. 실제 날씨 제보 앱에서는 강원과 서울, 경북, 충청도 지역의 시민들이 제보한 사진이 다수 보였습니다. 이 지역들은 대부분 기상관측장비가 설치돼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자동관측장비에서 기상 정보가 전송되고 있는 만큼, 제보 사진은 실제보다 한 발 느리거나 부정확해 오히려 혼돈을 줄 수도 있습니다.
국정감사에서 김종석 기상청장은 이같은 지적에 "사람의 눈으로 관측해오던 기상 현상을 자동관측장비로 받아본 뒤, 주변의 기상 현상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어려워졌다"면서 "날씨 앱을 통해 국민께 직접 현실의 기상 상황을 제보받자는 취지였다"고 말했습니다.
■이벤트 비용만 수천만 원…"이벤트용 날씨 제보 앱 폐지해야"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금까지 날씨 제보 앱의 이벤트 비용으로 들어간 국민 세금은 최근 3년간 2천 3백여만 원입니다. 또 매년 유지관리비로 9백만 원이 소요되고 있습니다.
날씨제보 앱의 이벤트 횟수와 연간 조회 수 (출처 :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실)
이벤트 비용을 들여가며, 유지해오고 있는 앱치고 조회 수와 제보 건수도 낮습니다. 2014년 앱이 출시된 뒤부터 하루 평균 10건에서 15건의 제보 수를 유지하다, 이마저도 2016년엔 하루 평균 3건 정도로 급락했습니다. 기상청이 이벤트를 열게 된 시점도 이때부터입니다. 실제로 일 년 내내 이벤트를 열자, 제보 건수도 10배가량 늘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하루 40~60여 건의 제보 건수에 평균 조회 수는 60회 남짓에 그칩니다.
한 의원은 이 같은 문제점들을 종합해 볼 때, "애초 취지를 이미 상실하고, 이벤트용 앱으로 전락한 날씨 제보 앱을 적절한 시점에 폐지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김 기상청장은 "날씨 제보 앱을 항목별로 재정비하고, 마일리지 제도를 검토하는 등 이 앱을 전면적으로 검토하겠다"며 "금년 이후에 (한 의원이) 지적한 부분을 수정하고 보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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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상청? 이벤트 회사?…닭갈비 골목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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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10-12 09:00:33
강원도 춘천의 한 시민이 정부기관이 운영하는 앱에 보낸 제보 사진입니다. 캄캄한 밤 하늘 아래 춘천 명동의 닭갈비 골목 입구 모습이 보이고, 도로를 지나는 차의 모습도 보입니다. 시민은 대체 무엇을 제보하려던 걸까요?
제보의 목적은 다름 아닌 '날씨'였습니다. 위 사진은 기상청이 운용하는 '날씨제보 앱'에 실제 제보된 사진입니다.
해당 앱은 2014년 3월 개발됐습니다. 국민에게 직접 기상 현상이 담긴 사진을 제보받아, 이를 토대로 양질의 예보를 생산하겠다는 취지로 개발한 앱입니다.
문제는 이 앱이 애초의 취지를 잘 살리고 있냐는 점입니다. 애초에 기상 현상을 알아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날씨 제보 앱인데, 위의 사례같은 경우 사진으로 날씨 정보를 전혀 확인할 수 없습니다.
■“기상청입니까, 이벤트 회사입니까?"
날씨제보 앱을 더 면밀히 들여다 봤습니다. 앱을 켜자마자 이벤트를 알리는 알림창이 뜹니다. 명목은 '단풍 이벤트'. 공지에 따르면, 이벤트에 참여한 63명의 시민은 무작위 추첨을 통해 2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게 됩니다.
현재 진행 중인 단풍 이벤트를 포함해, 날씨제보 앱 이벤트는 올해만 9번 열렸습니다. 보통 이벤트가 한 달 정도 지속되는 점을 고려하면, 연중 내내 이벤트가 열리고 있는 셈입니다.
이 때문에 7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기상청입니까, 이벤트 회사입니까?"라는 웃지 못할 질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환노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의 질문이었습니다. 기상청이 이 앱을 운영하며, 연중 과도하게 이벤트를 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겁니다.
잦은 이벤트라도, 양질의 제보가 들어온다면 의미가 있을텐데 그조차 아니었습니다. 기상 현상을 알아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날씨 제보 앱인데, 정작 날씨정보가 담긴 사진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날씨제보 앱에서 최다 조회 수를 기록한 사진들을 보면 나무나 꽃, 뱀이나 나비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상당수입니다. 이 정도면 날씨를 간접적으로나마 유추할 수 있으니 다행인 걸까요? 하늘인지, 컴퓨터 화면인지 알 수 없는 오묘한 사진을 장난처럼 보내온 경우도 있습니다.
이벤트에 당첨된 사진은 좀 다를까 싶었는데, 아니었습니다. 위 사진은 지난해 겨울, 첫눈 이벤트 당첨 사진입니다. 첫눈 사진은 도통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파트 단지와 젖은 것으로 유추되는 도로의 모습만 확인될 뿐이었습니다.
■날씨 제보 앱, 예보 향상에 도움 될까?
효용성의 측면에서도 문제가 제기됩니다. 특보나 예보 향상을 위해 앱을 유지하는 것인데, 실제 제보 앱을 통해 받은 사진이 특보나 예보의 정확도를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현재 전국 대부분 지역에는 자동 기상관측장비가 설치돼 있습니다. 과거 자동관측장비가 설치되지 않은 때라면, 시민들의 날씨 제보가 유효하겠지만, 현재로선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의견입니다. 실제 날씨 제보 앱에서는 강원과 서울, 경북, 충청도 지역의 시민들이 제보한 사진이 다수 보였습니다. 이 지역들은 대부분 기상관측장비가 설치돼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자동관측장비에서 기상 정보가 전송되고 있는 만큼, 제보 사진은 실제보다 한 발 느리거나 부정확해 오히려 혼돈을 줄 수도 있습니다.
국정감사에서 김종석 기상청장은 이같은 지적에 "사람의 눈으로 관측해오던 기상 현상을 자동관측장비로 받아본 뒤, 주변의 기상 현상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어려워졌다"면서 "날씨 앱을 통해 국민께 직접 현실의 기상 상황을 제보받자는 취지였다"고 말했습니다.
■이벤트 비용만 수천만 원…"이벤트용 날씨 제보 앱 폐지해야"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금까지 날씨 제보 앱의 이벤트 비용으로 들어간 국민 세금은 최근 3년간 2천 3백여만 원입니다. 또 매년 유지관리비로 9백만 원이 소요되고 있습니다.
이벤트 비용을 들여가며, 유지해오고 있는 앱치고 조회 수와 제보 건수도 낮습니다. 2014년 앱이 출시된 뒤부터 하루 평균 10건에서 15건의 제보 수를 유지하다, 이마저도 2016년엔 하루 평균 3건 정도로 급락했습니다. 기상청이 이벤트를 열게 된 시점도 이때부터입니다. 실제로 일 년 내내 이벤트를 열자, 제보 건수도 10배가량 늘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하루 40~60여 건의 제보 건수에 평균 조회 수는 60회 남짓에 그칩니다.
한 의원은 이 같은 문제점들을 종합해 볼 때, "애초 취지를 이미 상실하고, 이벤트용 앱으로 전락한 날씨 제보 앱을 적절한 시점에 폐지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김 기상청장은 "날씨 제보 앱을 항목별로 재정비하고, 마일리지 제도를 검토하는 등 이 앱을 전면적으로 검토하겠다"며 "금년 이후에 (한 의원이) 지적한 부분을 수정하고 보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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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민 기자 reas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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