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와 ‘백마’…남북 관계는 지금

입력 2019.10.18 (08:07) 수정 2019.10.1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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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남미에서 축구는 흔히 '전쟁'에 비유됩니다.

국가대표팀 경기는 물론 클럽 대항전에도 수만 명의 관중이 몰려듭니다.

관중들의 함성은 대체로 소음 수치, 데시벨이 100을 넘습니다.

록밴드의 공연을 가까이서 들을 때와 비슷한 수칩니다.

북한과 월드컵 예선을 치르고 온 우리 대표팀 입에서도 전쟁이란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관중도, 응원도 없는 경기였지만 북한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는 마치 전쟁 같았다고 털어놨습니다.

[최영일/선수단장 : "전쟁 치르듯이 경기한 것 같습니다. 지지 않으려는 북한 선수들의 눈빛이 살아있었습니다.]

험난했던 남북 대결이 경기 이틀 만에 베일을 벗었습니다.

북한 축구협회가 6분 짜리 하이라이트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화면은 4대3 비율, 선수들 식별이 어려울 만큼 화질은 떨어졌지만, 관중이 없던 탓인지 소리는 크게 들렸습니다.

경기 초반부터 남북 선수들이 거칠게 충돌하며 몸싸움 직전까지 가는 일촉즉발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손흥민은 집중 견제를 받으며 여러 차례 경기장에 쓰러졌습니다.

이런 위협적인 분위기 속에 우리 선수들은 경기 전반 단 한 개의 유효 슈팅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후반 26분 황희찬과 김문환이 연이어 슈팅을 날렸지만 골키퍼에 모두 막혔습니다.

두 팀이 경고 두 장씩, 모두 4장의 옐로카드를 주고 받으며 경기는 0대0 득점없이 끝났습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는 남북이 비긴 것이 여러 사람 목숨을 살렸다는 해석을 내놨습니다.

"북한 축구 실무자들이 김 위원장의 권위를 보호하는 동시에 자신들 목숨도 지키고, 대한민국 선수들도 살린 격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북측의 삼엄한 경계는 경기장 밖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선수들은 경기나 훈련 등 공식 일정 외에는 속소인 평양호텔에만 머물러야 했습니다.

식사도 호텔 내에서 해결했습니다.

고기와 해산물을 좀 챙겨갔는데, 사전 신고를 안 했단 이유로 평양에 갖고 가진 못했습니다.

[손흥민/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그쪽 선수들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고, 또 거칠게 반응했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심한 욕설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저도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보신 것처럼, 이번 평양 월드컵 예선전은 싸늘해진 남북 관계의 단면을 전 세계에 확인시켰습니다.

"가장 비밀스러운 월드컵 경기" "텅 빈 관중 앞에서 열린 기이한, 혹은 기괴한 경기" 이번 경기를 지켜본 외신들 반응입니다.

하지만 정작 북한 매체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축구에 대해선 조용합니다.

경기 다음날 대대적으로 보도된 건, 백마 탄 김정은 위원장의 사진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눈 덮인 백두산 정상을 달리는 모습, 소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에서 홀로 생각에 잠긴 듯한 사진도 있습니다.

김정은 뒤로 동생인 김여정 제1부부장도 보입니다.

이 둘의 말에만 별이 달려있습니다.

[北 조선중앙TV : "백두산에서 최고 영도자께서 이번에 걸으신 군마 행군길은 우리 혁명사에서 진폭이 큰 의의를 가지는 사변으로 됩니다."]

백마, 저 유명한 이육사의 시 광야의 소재가 됐었죠,

내친 김에 시 한 구절을 인용해 볼까요?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런 초인의 이미지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다만 북한에서 백마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백두혈통의 상징입니다.

김정은은 중요한 정치적 결단을 앞두고 백두산을 찾곤 했습니다.

2013년 2월 백두산에 오른 뒤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했고, 2017년 12월 이 곳을 방문한 직후에는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 대화에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백마까지 등장했으니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대화와 관련해 모종의 결심을 한 것 아니냐 여러 예측들이 나옵니다.

김정은은 현지에서 “미국이 강요해 온 고통은 인민의 분노로 변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홍민/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 "북미협상에 대한 실질적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에 협상 결렬의 책임을 전가하는 대내 결속용 발언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텅 빈 김일성 경기장에 오버랩 된 '백마 탄 김정은'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연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친절한 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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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와 ‘백마’…남북 관계는 지금
    • 입력 2019-10-18 08:09:20
    • 수정2019-10-18 09:5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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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남미에서 축구는 흔히 '전쟁'에 비유됩니다.

국가대표팀 경기는 물론 클럽 대항전에도 수만 명의 관중이 몰려듭니다.

관중들의 함성은 대체로 소음 수치, 데시벨이 100을 넘습니다.

록밴드의 공연을 가까이서 들을 때와 비슷한 수칩니다.

북한과 월드컵 예선을 치르고 온 우리 대표팀 입에서도 전쟁이란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관중도, 응원도 없는 경기였지만 북한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는 마치 전쟁 같았다고 털어놨습니다.

[최영일/선수단장 : "전쟁 치르듯이 경기한 것 같습니다. 지지 않으려는 북한 선수들의 눈빛이 살아있었습니다.]

험난했던 남북 대결이 경기 이틀 만에 베일을 벗었습니다.

북한 축구협회가 6분 짜리 하이라이트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화면은 4대3 비율, 선수들 식별이 어려울 만큼 화질은 떨어졌지만, 관중이 없던 탓인지 소리는 크게 들렸습니다.

경기 초반부터 남북 선수들이 거칠게 충돌하며 몸싸움 직전까지 가는 일촉즉발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손흥민은 집중 견제를 받으며 여러 차례 경기장에 쓰러졌습니다.

이런 위협적인 분위기 속에 우리 선수들은 경기 전반 단 한 개의 유효 슈팅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후반 26분 황희찬과 김문환이 연이어 슈팅을 날렸지만 골키퍼에 모두 막혔습니다.

두 팀이 경고 두 장씩, 모두 4장의 옐로카드를 주고 받으며 경기는 0대0 득점없이 끝났습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는 남북이 비긴 것이 여러 사람 목숨을 살렸다는 해석을 내놨습니다.

"북한 축구 실무자들이 김 위원장의 권위를 보호하는 동시에 자신들 목숨도 지키고, 대한민국 선수들도 살린 격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북측의 삼엄한 경계는 경기장 밖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선수들은 경기나 훈련 등 공식 일정 외에는 속소인 평양호텔에만 머물러야 했습니다.

식사도 호텔 내에서 해결했습니다.

고기와 해산물을 좀 챙겨갔는데, 사전 신고를 안 했단 이유로 평양에 갖고 가진 못했습니다.

[손흥민/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그쪽 선수들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고, 또 거칠게 반응했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심한 욕설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저도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보신 것처럼, 이번 평양 월드컵 예선전은 싸늘해진 남북 관계의 단면을 전 세계에 확인시켰습니다.

"가장 비밀스러운 월드컵 경기" "텅 빈 관중 앞에서 열린 기이한, 혹은 기괴한 경기" 이번 경기를 지켜본 외신들 반응입니다.

하지만 정작 북한 매체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축구에 대해선 조용합니다.

경기 다음날 대대적으로 보도된 건, 백마 탄 김정은 위원장의 사진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눈 덮인 백두산 정상을 달리는 모습, 소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에서 홀로 생각에 잠긴 듯한 사진도 있습니다.

김정은 뒤로 동생인 김여정 제1부부장도 보입니다.

이 둘의 말에만 별이 달려있습니다.

[北 조선중앙TV : "백두산에서 최고 영도자께서 이번에 걸으신 군마 행군길은 우리 혁명사에서 진폭이 큰 의의를 가지는 사변으로 됩니다."]

백마, 저 유명한 이육사의 시 광야의 소재가 됐었죠,

내친 김에 시 한 구절을 인용해 볼까요?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런 초인의 이미지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다만 북한에서 백마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백두혈통의 상징입니다.

김정은은 중요한 정치적 결단을 앞두고 백두산을 찾곤 했습니다.

2013년 2월 백두산에 오른 뒤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했고, 2017년 12월 이 곳을 방문한 직후에는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 대화에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백마까지 등장했으니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대화와 관련해 모종의 결심을 한 것 아니냐 여러 예측들이 나옵니다.

김정은은 현지에서 “미국이 강요해 온 고통은 인민의 분노로 변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홍민/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 "북미협상에 대한 실질적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에 협상 결렬의 책임을 전가하는 대내 결속용 발언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텅 빈 김일성 경기장에 오버랩 된 '백마 탄 김정은'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연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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