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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 진상규명의 걸림돌은?
입력 2019.10.18 (10:41) 930뉴스(광주)
[앵커멘트]

여순과 4.3을 견줘 보며 여순사건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기획보도 순섭니다.

어제 지역사회가 결집하고 언론과 문화예술의 힘이 더해진 4.3의 노력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오늘은 여순사건 진상규명이 왜 4.3처럼 이뤄지지 못하는지, 걸림돌은 무엇인지 양창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2017년 발의된 여순 특별법안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을 담은 검토 보고서.



당시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한 기록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여순사건에 동조한 이들은 '무고하지 않다'는 전제가 깔린 겁니다.



정부 수립 전 민간인들이 주도한 4.3과 달리 이승만 정부가 세워진 뒤 군인 항명으로 촉발된 여순사건에는 늘 '반란'의 꼬리표가 따라다닙니다.



<박찬식/4.3 연구가>

"4.3과 달리 발발 시기하고 진압의 시기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반공 체제를 강화해 나가는 그 중심에 여순이 있습니다.

계속 이러한 반공 이데올로기 구도 속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어떤 과거사보다도 강하게 덧씌워진 이념의 굴레.



5.18과 4.3이 수면 위로 떠오른 80년대 후반 이후에도 유족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한 이유입니다.



이 때문에 국민 열 명 가운데 네 명은 여순사건을 아예 모르는 상태입니다.



<황순경/여순사건 여수유족회장>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당시) 혹시나 또 불이익을 당할까 싶어서 신청을 못한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정말 숨을 크게 쉬지도 못하고 어디가서 말도, 내가 여순사건 희생자 유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 없는..."



50주년을 맞은 90년대 후반부터 여순사건 진상규명 노력이 계속됐지만

여수와 순천, 광양·보성·고흥·구례로 피해 지역이 넓게 흩어진 탓에 힘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추념 행사조차 오랫동안 순천과 여수에서 따로 열리고 있습니다.



섬 공동체가 결집해 4.3 진상규명을 밀고 나갔던 제주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지역의 목소리가 한 데 모이지 못한 상황에서 그동안 여순사건의 해결을 위한 정치권과 자치단체의 노력은

꾸준하게, 또 진정성 있게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주철희/여순사건 연구자>

"그 지역이 이 사건들을 인식하는 것이 달랐다고 보는 겁니다.

제주는 공동체가 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였던 반면 우리 지역은 공동체가 분열돼 있었다."



민간 중심의 노력으로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와 도 조례 제정, 재심 개시 등의 성과를 낸 여순사건 진상규명 운동.



하지만 끊임없는 이념 논쟁 속 지역의 힘이 분열되면서 특별법 등 제도적 해결이 난항을 겪으며 가시밭길을 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 '여순' 진상규명의 걸림돌은?
    • 입력 2019-10-18 10:41:24
    930뉴스(광주)
[앵커멘트]

여순과 4.3을 견줘 보며 여순사건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기획보도 순섭니다.

어제 지역사회가 결집하고 언론과 문화예술의 힘이 더해진 4.3의 노력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오늘은 여순사건 진상규명이 왜 4.3처럼 이뤄지지 못하는지, 걸림돌은 무엇인지 양창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2017년 발의된 여순 특별법안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을 담은 검토 보고서.



당시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한 기록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여순사건에 동조한 이들은 '무고하지 않다'는 전제가 깔린 겁니다.



정부 수립 전 민간인들이 주도한 4.3과 달리 이승만 정부가 세워진 뒤 군인 항명으로 촉발된 여순사건에는 늘 '반란'의 꼬리표가 따라다닙니다.



<박찬식/4.3 연구가>

"4.3과 달리 발발 시기하고 진압의 시기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반공 체제를 강화해 나가는 그 중심에 여순이 있습니다.

계속 이러한 반공 이데올로기 구도 속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어떤 과거사보다도 강하게 덧씌워진 이념의 굴레.



5.18과 4.3이 수면 위로 떠오른 80년대 후반 이후에도 유족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한 이유입니다.



이 때문에 국민 열 명 가운데 네 명은 여순사건을 아예 모르는 상태입니다.



<황순경/여순사건 여수유족회장>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당시) 혹시나 또 불이익을 당할까 싶어서 신청을 못한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정말 숨을 크게 쉬지도 못하고 어디가서 말도, 내가 여순사건 희생자 유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 없는..."



50주년을 맞은 90년대 후반부터 여순사건 진상규명 노력이 계속됐지만

여수와 순천, 광양·보성·고흥·구례로 피해 지역이 넓게 흩어진 탓에 힘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추념 행사조차 오랫동안 순천과 여수에서 따로 열리고 있습니다.



섬 공동체가 결집해 4.3 진상규명을 밀고 나갔던 제주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지역의 목소리가 한 데 모이지 못한 상황에서 그동안 여순사건의 해결을 위한 정치권과 자치단체의 노력은

꾸준하게, 또 진정성 있게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주철희/여순사건 연구자>

"그 지역이 이 사건들을 인식하는 것이 달랐다고 보는 겁니다.

제주는 공동체가 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였던 반면 우리 지역은 공동체가 분열돼 있었다."



민간 중심의 노력으로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와 도 조례 제정, 재심 개시 등의 성과를 낸 여순사건 진상규명 운동.



하지만 끊임없는 이념 논쟁 속 지역의 힘이 분열되면서 특별법 등 제도적 해결이 난항을 겪으며 가시밭길을 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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