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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전시회 출품 작가는 얼마를 받을까?
입력 2019.10.18 (17:04) 취재K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작품을 전시하면 작가는 그 대가로 얼마를 받을까요?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뽑은 올해의 작가에 선정된 그룹 '믹스라이스'의 양철모 작가가 던진 질문입니다. 5개월 동안 작품을 전시하는 대가로 미술관이 제시한 총액은 41,250원. 따라서 위 질문에 대한 답은 '하루 250원'입니다. 어떻게 이런 황당한 금액이 나올 수 있을까요?

양철모 작가는 최근 미술관으로부터 전시 참여 제안을 받았습니다. 개관 50주년을 맞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우리 현대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대형 전시입니다. 작가는 당연히 전시 참여 대가가 얼마인지 물었습니다. 미술관 측은 이미 완성된 작품을 다시 출품하는 것이니 대가는 없다고 했답니다. 작가가 항의하자 이런 답변이 이메일로 왔다고 합니다.

"전시 전체 작가비는 5만 원 X 165일= 825만 원입니다. 참여작가 개별로 배분되는 지급비는 2백 명으로 나누었을 때 41,250원입니다."

얼핏 보면 작가 한 명이 하루에 4만 원 정도를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시 전체에 책정된 비용이 825만 원이고, 참여하는 작가가 2백 명이니 한 명에게 돌아가는 금액이 4만 원이라는 얘기입니다. 하루가 아니라 전시기간 165일에 해당하는 금액인 것이죠. 4만 원을 165일로 나누면 하루 250원이 되는 겁니다. 양철모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 50주년 전시를 하면서 대가를 안 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진 것인데, 돌아온 답변에 어이가 없어서 참여 제안을 거절했다"고 말했습니다.

전시 참여를 거절한 이후 미술관이 보내온 초청장을 들어 보이는 ‘믹스라이스’ 양철모 작가전시 참여를 거절한 이후 미술관이 보내온 초청장을 들어 보이는 ‘믹스라이스’ 양철모 작가

양 작가가 거절한 전시는 현재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전시에 참여한 다른 작가들은 어떨까. 익명을 요구한 어느 작가는 "작품 여러 점을 전시에 출품했지만, 대가가 얼마인지는 물어보지도 않았고 얼마를 준다고 알려주지도 않았다"면서 "그래도 얼마쯤은 주겠죠?"라고 기자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래서 미술관이 다른 작가에게 안내한 금액이 하루 250원 수준이라고 하자, 전화기 너머에서 크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250원을 받느니 차라리 한 푼도 안 받고, 돈에 신경 안 쓰는 순수한 작가로 남는 게 낫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루 250원은 어떻게 나온 금액일까?…"가이드라인일 뿐"

미술관이 작가에게 4만 원을 제시하며 언급한 계산법이 있습니다. 이 계산법은 미술관이 아닌 문화체육관광부가 만든 것으로 올해 3월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를 고시하면서 안내한 내용입니다. 아래 사진이 당시 설명자료의 일부입니다.

문체부가 만든 ‘미술창작 대가기준(안)’. 제목 아래 ‘전시기관이 자체 기준으로 지급해도 관계없음’이라는 설명이 보인다.(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실 제공)문체부가 만든 ‘미술창작 대가기준(안)’. 제목 아래 ‘전시기관이 자체 기준으로 지급해도 관계없음’이라는 설명이 보인다.(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실 제공)

여기에 보이는 '작가비'라는 용어는 미술가가 전시를 위해 새로 제작한 작품이 아니라 기존의 작품을 출품했을 때 지급하는 비용으로 '작품 대여료'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작가비 산출산식'을 보면 1일 기준금액을 5만 원으로 하고 전시일수를 곱해 총액을 구한 다음, 이것을 참여한 작가의 수로 나누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참여 작가가 많든 적든 기준금액이 5만 원으로 정해져 있다는 겁니다. 개관 50주년 전시처럼 작가 2백 명이 참여하는 대형 전시는 극히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0명 안팎의 작가가 참여하는 통상적인 기획전이라고 해도 위에 나온 공식대로라면 작가 1명이 하루 만 원을 받기도 쉽지 않습니다.

문체부가 표준계약서 제도와 대가 기준을 만든 이유는 미술가들이 작품을 전시하고도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그동안 많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익명을 요구한 작가도 "미술관이 전시 제안을 할 때는 기획 의도나 내용을 주로 논의하지, 대가가 얼마인지는 얘기하는 경우가 없어서 나도 묻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미술뿐 아니라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많았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예술가의 비극적인 죽음이 알려지면서 문체부가 대책의 하나로 분야별 표준계약서와 적절한 대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한 겁니다.

이렇게 만든 공식에 따라 '하루 250원'이라는 황당한 결과가 나왔다고 문체부에 문의했습니다. 담당자는 "창작자들이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해 기준을 만든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하면서 "저희들이 만든 기준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이기 때문에 각 전시기관에서 자체 기준으로 지급해도 관계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미술관 측은 250원에 항의하는 작가에게 "문체부에서 만든 기준이기 때문에 저희는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최저임금'과 같은 효과를 내고 있는 셈입니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최저 기준일 뿐 그보다 높은 금액을 줘도(?) 되지만, 현실에서는 '최고임금'이 돼버리는 상황과 같은 것이죠.

"최저 임금도 시간당 8,350원…시대착오적인 제도"

이 문제를 지적해온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국회 문체위)도 최저임금에 빗대 문체부를 비판했습니다. 이 의원은 "최저임금으로만 따져 봐도 시간당 노동력은 8,350원부터 시작한다"면서 "250원이라는 금액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도 모자라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금액"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국정감사를 통해 문체부에 해명을 요구하고 개선안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양철모 작가는 "일정 금액을 작가별로 나누는 방식을 그대로 두려면 하한선이라도 정해서 말도 안 되는 금액이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최근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미술관도 작가들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도우려는 분위기인데, 문체부의 기준이 도리어 이러한 흐름을 막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도 했습니다.

취재가 진행되자 미술관 측은 "올해 도입된 제도라서 이번 전시에 사실상 처음 적용하다 보니 계산식을 무리하게 적용한 것 같다"면서 "작가들과도 협의를 진행해 적절한 금액이 지급될 수 있도록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밝혔습니다. 지적이 나오고 당사자들도 문제를 인정한 만큼 개선안도 곧 나오리라 기대합니다. 미술가들을 지원하겠다고 만든 제도가 도리어 작가에게 모욕감을 주고 전시를 포기하게 만드는 상황이 재연되지 않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도 안 될 것입니다.
  • 미술관 전시회 출품 작가는 얼마를 받을까?
    • 입력 2019-10-18 17:04:09
    취재K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작품을 전시하면 작가는 그 대가로 얼마를 받을까요?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뽑은 올해의 작가에 선정된 그룹 '믹스라이스'의 양철모 작가가 던진 질문입니다. 5개월 동안 작품을 전시하는 대가로 미술관이 제시한 총액은 41,250원. 따라서 위 질문에 대한 답은 '하루 250원'입니다. 어떻게 이런 황당한 금액이 나올 수 있을까요?

양철모 작가는 최근 미술관으로부터 전시 참여 제안을 받았습니다. 개관 50주년을 맞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우리 현대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대형 전시입니다. 작가는 당연히 전시 참여 대가가 얼마인지 물었습니다. 미술관 측은 이미 완성된 작품을 다시 출품하는 것이니 대가는 없다고 했답니다. 작가가 항의하자 이런 답변이 이메일로 왔다고 합니다.

"전시 전체 작가비는 5만 원 X 165일= 825만 원입니다. 참여작가 개별로 배분되는 지급비는 2백 명으로 나누었을 때 41,250원입니다."

얼핏 보면 작가 한 명이 하루에 4만 원 정도를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시 전체에 책정된 비용이 825만 원이고, 참여하는 작가가 2백 명이니 한 명에게 돌아가는 금액이 4만 원이라는 얘기입니다. 하루가 아니라 전시기간 165일에 해당하는 금액인 것이죠. 4만 원을 165일로 나누면 하루 250원이 되는 겁니다. 양철모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 50주년 전시를 하면서 대가를 안 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진 것인데, 돌아온 답변에 어이가 없어서 참여 제안을 거절했다"고 말했습니다.

전시 참여를 거절한 이후 미술관이 보내온 초청장을 들어 보이는 ‘믹스라이스’ 양철모 작가전시 참여를 거절한 이후 미술관이 보내온 초청장을 들어 보이는 ‘믹스라이스’ 양철모 작가

양 작가가 거절한 전시는 현재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전시에 참여한 다른 작가들은 어떨까. 익명을 요구한 어느 작가는 "작품 여러 점을 전시에 출품했지만, 대가가 얼마인지는 물어보지도 않았고 얼마를 준다고 알려주지도 않았다"면서 "그래도 얼마쯤은 주겠죠?"라고 기자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래서 미술관이 다른 작가에게 안내한 금액이 하루 250원 수준이라고 하자, 전화기 너머에서 크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250원을 받느니 차라리 한 푼도 안 받고, 돈에 신경 안 쓰는 순수한 작가로 남는 게 낫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루 250원은 어떻게 나온 금액일까?…"가이드라인일 뿐"

미술관이 작가에게 4만 원을 제시하며 언급한 계산법이 있습니다. 이 계산법은 미술관이 아닌 문화체육관광부가 만든 것으로 올해 3월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를 고시하면서 안내한 내용입니다. 아래 사진이 당시 설명자료의 일부입니다.

문체부가 만든 ‘미술창작 대가기준(안)’. 제목 아래 ‘전시기관이 자체 기준으로 지급해도 관계없음’이라는 설명이 보인다.(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실 제공)문체부가 만든 ‘미술창작 대가기준(안)’. 제목 아래 ‘전시기관이 자체 기준으로 지급해도 관계없음’이라는 설명이 보인다.(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실 제공)

여기에 보이는 '작가비'라는 용어는 미술가가 전시를 위해 새로 제작한 작품이 아니라 기존의 작품을 출품했을 때 지급하는 비용으로 '작품 대여료'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작가비 산출산식'을 보면 1일 기준금액을 5만 원으로 하고 전시일수를 곱해 총액을 구한 다음, 이것을 참여한 작가의 수로 나누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참여 작가가 많든 적든 기준금액이 5만 원으로 정해져 있다는 겁니다. 개관 50주년 전시처럼 작가 2백 명이 참여하는 대형 전시는 극히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0명 안팎의 작가가 참여하는 통상적인 기획전이라고 해도 위에 나온 공식대로라면 작가 1명이 하루 만 원을 받기도 쉽지 않습니다.

문체부가 표준계약서 제도와 대가 기준을 만든 이유는 미술가들이 작품을 전시하고도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그동안 많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익명을 요구한 작가도 "미술관이 전시 제안을 할 때는 기획 의도나 내용을 주로 논의하지, 대가가 얼마인지는 얘기하는 경우가 없어서 나도 묻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미술뿐 아니라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많았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예술가의 비극적인 죽음이 알려지면서 문체부가 대책의 하나로 분야별 표준계약서와 적절한 대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한 겁니다.

이렇게 만든 공식에 따라 '하루 250원'이라는 황당한 결과가 나왔다고 문체부에 문의했습니다. 담당자는 "창작자들이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해 기준을 만든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하면서 "저희들이 만든 기준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이기 때문에 각 전시기관에서 자체 기준으로 지급해도 관계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미술관 측은 250원에 항의하는 작가에게 "문체부에서 만든 기준이기 때문에 저희는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최저임금'과 같은 효과를 내고 있는 셈입니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최저 기준일 뿐 그보다 높은 금액을 줘도(?) 되지만, 현실에서는 '최고임금'이 돼버리는 상황과 같은 것이죠.

"최저 임금도 시간당 8,350원…시대착오적인 제도"

이 문제를 지적해온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국회 문체위)도 최저임금에 빗대 문체부를 비판했습니다. 이 의원은 "최저임금으로만 따져 봐도 시간당 노동력은 8,350원부터 시작한다"면서 "250원이라는 금액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도 모자라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금액"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국정감사를 통해 문체부에 해명을 요구하고 개선안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양철모 작가는 "일정 금액을 작가별로 나누는 방식을 그대로 두려면 하한선이라도 정해서 말도 안 되는 금액이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최근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미술관도 작가들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도우려는 분위기인데, 문체부의 기준이 도리어 이러한 흐름을 막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도 했습니다.

취재가 진행되자 미술관 측은 "올해 도입된 제도라서 이번 전시에 사실상 처음 적용하다 보니 계산식을 무리하게 적용한 것 같다"면서 "작가들과도 협의를 진행해 적절한 금액이 지급될 수 있도록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밝혔습니다. 지적이 나오고 당사자들도 문제를 인정한 만큼 개선안도 곧 나오리라 기대합니다. 미술가들을 지원하겠다고 만든 제도가 도리어 작가에게 모욕감을 주고 전시를 포기하게 만드는 상황이 재연되지 않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도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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