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토론>1979부마, 기억에서 역사로
입력 2019.10.18 (23:55)
수정 2019.10.2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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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부마민주항쟁이
40년 만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암울한 기억이 이제 떳떳한
역사의 기록으로 거듭나게 됐습니다.
KBS 창원과 부산총국이
공동으로 마련한
특집토론에서 나온
부마항쟁의 과제와 주요 제안들을
조미령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1979년 10월 16일에 시작된
부마민주항쟁,
하지만 열흘 뒤 10·26 사건과
이어진 12·12쿠데타,
이듬해 5·18항쟁의 진상규명에 묻혀
역사적 조명을 받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녹취]정광민/부마항쟁연구소 이사장
"대한민국에서 민주화운동의 진전에서 부마항쟁이라고 하는 것이 분명히 역사적으로 존재했는데도 불구하고 이게 잊혀진 항쟁이되었다 이런 점들이 가슴아팠습니다.""
목숨을 건 마산과 부산 시민들의
처절한 항쟁이었지만,
부마항쟁은 참여자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녹취]이은진 교수/경남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연좌제는 가족 한 사람이 관련이 되면 나머지 사람들도 공직이나 이런 데 들어갈 수가 없어 이 사건 때문에, 낙인 찍힌 사람들은 손가락질 당하고 살아가기가 어렵게 돼 있습니다."
40년 만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지만,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위한
법 개정이 절실합니다.
[녹취]차성환/전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 상임이사
"현행법으로는 금년 연말까지 지금 조사기간이 끝나도록 돼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현재 아직도 우리가 조사하지 못한 많은 사안들이 있는데 조사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든요.
마산과 부산에서
천563명이 연행됐고,
125명이 마산에서 즉결심판을 받았지만,
피해자 신고는 여전히 미미합니다.
[녹취]차성환/전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 상임이사
"한계 때문에 많은 분들이 그 때 피해를 입으시고도 내가 피해자라고 신고를 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것이 제일 안타깝고."
거듭된 민주화운동에서의
부마항쟁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도
새롭게 정리돼야 합니다.
[녹취]옥정애/부마항쟁 참가자
"박정희 군사독재체게가 우리 부마항쟁으로 인해서 무너졌기 때문에 1인 독재체제를 뒤집었다."
KBS 뉴스, 조미령입니다.
부마민주항쟁이
40년 만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암울한 기억이 이제 떳떳한
역사의 기록으로 거듭나게 됐습니다.
KBS 창원과 부산총국이
공동으로 마련한
특집토론에서 나온
부마항쟁의 과제와 주요 제안들을
조미령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1979년 10월 16일에 시작된
부마민주항쟁,
하지만 열흘 뒤 10·26 사건과
이어진 12·12쿠데타,
이듬해 5·18항쟁의 진상규명에 묻혀
역사적 조명을 받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녹취]정광민/부마항쟁연구소 이사장
"대한민국에서 민주화운동의 진전에서 부마항쟁이라고 하는 것이 분명히 역사적으로 존재했는데도 불구하고 이게 잊혀진 항쟁이되었다 이런 점들이 가슴아팠습니다.""
목숨을 건 마산과 부산 시민들의
처절한 항쟁이었지만,
부마항쟁은 참여자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녹취]이은진 교수/경남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연좌제는 가족 한 사람이 관련이 되면 나머지 사람들도 공직이나 이런 데 들어갈 수가 없어 이 사건 때문에, 낙인 찍힌 사람들은 손가락질 당하고 살아가기가 어렵게 돼 있습니다."
40년 만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지만,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위한
법 개정이 절실합니다.
[녹취]차성환/전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 상임이사
"현행법으로는 금년 연말까지 지금 조사기간이 끝나도록 돼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현재 아직도 우리가 조사하지 못한 많은 사안들이 있는데 조사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든요.
마산과 부산에서
천563명이 연행됐고,
125명이 마산에서 즉결심판을 받았지만,
피해자 신고는 여전히 미미합니다.
[녹취]차성환/전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 상임이사
"한계 때문에 많은 분들이 그 때 피해를 입으시고도 내가 피해자라고 신고를 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것이 제일 안타깝고."
거듭된 민주화운동에서의
부마항쟁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도
새롭게 정리돼야 합니다.
[녹취]옥정애/부마항쟁 참가자
"박정희 군사독재체게가 우리 부마항쟁으로 인해서 무너졌기 때문에 1인 독재체제를 뒤집었다."
KBS 뉴스, 조미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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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토론>1979부마, 기억에서 역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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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10-18 23:55:45
- 수정2019-10-21 08:58:09
[앵커멘트]
부마민주항쟁이
40년 만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암울한 기억이 이제 떳떳한
역사의 기록으로 거듭나게 됐습니다.
KBS 창원과 부산총국이
공동으로 마련한
특집토론에서 나온
부마항쟁의 과제와 주요 제안들을
조미령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1979년 10월 16일에 시작된
부마민주항쟁,
하지만 열흘 뒤 10·26 사건과
이어진 12·12쿠데타,
이듬해 5·18항쟁의 진상규명에 묻혀
역사적 조명을 받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녹취]정광민/부마항쟁연구소 이사장
"대한민국에서 민주화운동의 진전에서 부마항쟁이라고 하는 것이 분명히 역사적으로 존재했는데도 불구하고 이게 잊혀진 항쟁이되었다 이런 점들이 가슴아팠습니다.""
목숨을 건 마산과 부산 시민들의
처절한 항쟁이었지만,
부마항쟁은 참여자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녹취]이은진 교수/경남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연좌제는 가족 한 사람이 관련이 되면 나머지 사람들도 공직이나 이런 데 들어갈 수가 없어 이 사건 때문에, 낙인 찍힌 사람들은 손가락질 당하고 살아가기가 어렵게 돼 있습니다."
40년 만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지만,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위한
법 개정이 절실합니다.
[녹취]차성환/전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 상임이사
"현행법으로는 금년 연말까지 지금 조사기간이 끝나도록 돼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현재 아직도 우리가 조사하지 못한 많은 사안들이 있는데 조사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든요.
마산과 부산에서
천563명이 연행됐고,
125명이 마산에서 즉결심판을 받았지만,
피해자 신고는 여전히 미미합니다.
[녹취]차성환/전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 상임이사
"한계 때문에 많은 분들이 그 때 피해를 입으시고도 내가 피해자라고 신고를 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것이 제일 안타깝고."
거듭된 민주화운동에서의
부마항쟁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도
새롭게 정리돼야 합니다.
[녹취]옥정애/부마항쟁 참가자
"박정희 군사독재체게가 우리 부마항쟁으로 인해서 무너졌기 때문에 1인 독재체제를 뒤집었다."
KBS 뉴스, 조미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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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령 기자 pear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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