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영식 신부와 민주화 주역들
입력 2019.10.22 (23:57)
수정 2019.10.2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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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경남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불렸던 고 김영식 신부의
장례미사가 어제(21일)
양덕성당에서 치뤄졌는데요.
1980년대 민주화의 주역들이
김 신부의 민주화에 공헌한
추억을 되새기며,
추모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배수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향년 70세에 선종한
고 김영식 신부를 추모하는
장례미사에 수백 명의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추모객 가운데는
1987년 6월 항쟁 당시
마산.창원에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고 김영식 신부가
경찰에 쫓겨 마산교구청으로
피신한 민주화 운동 학생들을
보살핀 고마운 인연 때문입니다.
[인터뷰]박재혁/경남 6월 항쟁 기념사업회 이사장
"교구청으로 많이 피신했죠. 그러면 전경들이 잡으려다가도 신부님이 많이 저지하고..."
1987년부터 불붙기 시작한
경남의 노동운동에도
김 신부의 너른 품은 큰 힘이 됐습니다.
[인터뷰]백남해 신부
"김영식 신부님이 여성 노동자를 보호하고,또 물질적인 지원 등을 해서
노조를 결성하도록 크게 도와주고는
하셨습니다."
김 신부는 심지어
지명수배를 받은 민주화운동 학생에게
피난처와 생활비까지 챙겨주는
대부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김정광/창원대 총학생회 간부(1987년)
수배가 떨어지면 저희가 피신하도록
공소나 지인의 집을 소개해 주시고....
[인터뷰]김영만/ 열린사회 희망연대 상임고문(1987년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들이 수배되거나 쫓겨 다닐 때 김영식 신부님은 다 안아서
피신도 시키고 잠도 재워 주는...
민주화에 대한 헌신으로
건전한 시민운동의 밑거름을 뿌린
고 김영식 신부.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민주화운동 인사들은
추모사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영식 신부의 도움을 받은
이를 중심으로 장학회 결성 등
추모사업을 통해
그의 민주화에 대한 헌신을
오래도록 기억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KBS뉴스 배수영입니다.
경남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불렸던 고 김영식 신부의
장례미사가 어제(21일)
양덕성당에서 치뤄졌는데요.
1980년대 민주화의 주역들이
김 신부의 민주화에 공헌한
추억을 되새기며,
추모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배수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향년 70세에 선종한
고 김영식 신부를 추모하는
장례미사에 수백 명의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추모객 가운데는
1987년 6월 항쟁 당시
마산.창원에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고 김영식 신부가
경찰에 쫓겨 마산교구청으로
피신한 민주화 운동 학생들을
보살핀 고마운 인연 때문입니다.
[인터뷰]박재혁/경남 6월 항쟁 기념사업회 이사장
"교구청으로 많이 피신했죠. 그러면 전경들이 잡으려다가도 신부님이 많이 저지하고..."
1987년부터 불붙기 시작한
경남의 노동운동에도
김 신부의 너른 품은 큰 힘이 됐습니다.
[인터뷰]백남해 신부
"김영식 신부님이 여성 노동자를 보호하고,또 물질적인 지원 등을 해서
노조를 결성하도록 크게 도와주고는
하셨습니다."
김 신부는 심지어
지명수배를 받은 민주화운동 학생에게
피난처와 생활비까지 챙겨주는
대부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김정광/창원대 총학생회 간부(1987년)
수배가 떨어지면 저희가 피신하도록
공소나 지인의 집을 소개해 주시고....
[인터뷰]김영만/ 열린사회 희망연대 상임고문(1987년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들이 수배되거나 쫓겨 다닐 때 김영식 신부님은 다 안아서
피신도 시키고 잠도 재워 주는...
민주화에 대한 헌신으로
건전한 시민운동의 밑거름을 뿌린
고 김영식 신부.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민주화운동 인사들은
추모사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영식 신부의 도움을 받은
이를 중심으로 장학회 결성 등
추모사업을 통해
그의 민주화에 대한 헌신을
오래도록 기억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KBS뉴스 배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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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영식 신부와 민주화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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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10-22 23:57:41
- 수정2019-10-23 08:58:19
[앵커멘트]
경남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불렸던 고 김영식 신부의
장례미사가 어제(21일)
양덕성당에서 치뤄졌는데요.
1980년대 민주화의 주역들이
김 신부의 민주화에 공헌한
추억을 되새기며,
추모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배수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향년 70세에 선종한
고 김영식 신부를 추모하는
장례미사에 수백 명의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추모객 가운데는
1987년 6월 항쟁 당시
마산.창원에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고 김영식 신부가
경찰에 쫓겨 마산교구청으로
피신한 민주화 운동 학생들을
보살핀 고마운 인연 때문입니다.
[인터뷰]박재혁/경남 6월 항쟁 기념사업회 이사장
"교구청으로 많이 피신했죠. 그러면 전경들이 잡으려다가도 신부님이 많이 저지하고..."
1987년부터 불붙기 시작한
경남의 노동운동에도
김 신부의 너른 품은 큰 힘이 됐습니다.
[인터뷰]백남해 신부
"김영식 신부님이 여성 노동자를 보호하고,또 물질적인 지원 등을 해서
노조를 결성하도록 크게 도와주고는
하셨습니다."
김 신부는 심지어
지명수배를 받은 민주화운동 학생에게
피난처와 생활비까지 챙겨주는
대부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김정광/창원대 총학생회 간부(1987년)
수배가 떨어지면 저희가 피신하도록
공소나 지인의 집을 소개해 주시고....
[인터뷰]김영만/ 열린사회 희망연대 상임고문(1987년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들이 수배되거나 쫓겨 다닐 때 김영식 신부님은 다 안아서
피신도 시키고 잠도 재워 주는...
민주화에 대한 헌신으로
건전한 시민운동의 밑거름을 뿌린
고 김영식 신부.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민주화운동 인사들은
추모사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영식 신부의 도움을 받은
이를 중심으로 장학회 결성 등
추모사업을 통해
그의 민주화에 대한 헌신을
오래도록 기억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KBS뉴스 배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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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영 기자 sooyou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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