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일본업체 담합 조사하고도 제재 포기한 까닭

입력 2019.10.23 (10:41) 수정 2019.10.2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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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점화플러그를 제조하는 일본 자동차 부품업체의 담합 제재를 추진했지만, 처분 시한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 바뀌면서 제재를 포기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오늘(23일) 공정위에 따르면 공정위 전원회의는 지난달 3일 '덴소, 일본특수도업 등 2개 점화플러그 제조·판매 사업자의 부당한 공동행위' 사건에 대해 심의절차를 종료한다는 내용의 의결서를 보냈습니다.

두 회사가 담합으로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것은 맞지만, 고발·과징금·시정명령·경고 등 법이 정한 처벌은 하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들은 2002~2003년쯤 전 세계 점화플러그 시장에서 특정 엔진별 제품에 대한 '상권'을 존중하기로 합의하고 2005년부터 2012년까지 GM 본사와 한국GM이 발주한 3건, 현대·기아차 1건의 입찰에서 사전에 합의된 견적가를 내거나, 아예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물량을 나눠 가졌습니다.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리고 검찰에 고발할 수 있는 사건이지만 공정위가 스스로 손발을 묶은 것은 처분 시효 때문입니다.

공정위 사무처는 지난해 8월 두 회사를 제재하자는 의견의 심사보고서를 전원회의에 상정했는데, 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는 판단이었습니다.

2012년 개정된 공정거래법은 담합사건의 처분시효를 '위반행위 종료일로부터 7년'으로 두고 있습니다. 여기에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할 경우 현장조사를 나간 날로부터 5년까지 처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자진신고로 조사가 개시된 사건은 신고서를 제출한 날을 조사개시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로 판결한 사건을 대법원이 지난 2월 확정하면서 공정위 전원회의는 이 사건의 조사개시일이 덴소가 자진신고서를 제출한 2012년 5월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개정 법령 시행 한 달 전에 자진신고서가 제출돼 '조사 개시일로부터 5년'이라는 이전 조항을 적용할 수밖에 없고, 처분시한은 2017년 5월에 이미 종료됐다는 것입니다.

공정위 사무처는 내부 규칙에 따라 자진신고서 접수 이후 ‘최초 자료제출을 요청하거나 현장조사에 착수한 날’을 조사개시일로 정하고 처분시한이 남았다고 봤지만, 심의 과정에서 다른 사건에 대한 판결이 반대로 나오면서 전원회의가 이를 뒤집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장조사일을 조사개시일로 보던 기존 판례와 반대의 판결이 나왔고, 공정위 상고에 대해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내렸다"며 "전원회의에서 제재를 강행했을 때 추후 행정소송에서 지면 소송비용과 과징금 반환에 따른 이자 등 손실이 더 크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에서는 해외기업의 카르텔 사건에 대한 공정위의 사건처리가 느리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난 2017년 공정위는 덴소, 현담 등 일본계 자동차 부품업체 3개사의 담합을 적발해 37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공소시효를 넘겨 처리하는 바람에 검찰에 고발하지 못했습니다.

국제 담합사건의 경우 미국·유럽연합(EU) 등 주요국 경쟁당국과 공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과정에서 공정위가 보통 다른 경쟁당국의 처분을 뒤따르고 있습니다.

공정위는 처분시한 문제로 제재하지 못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내부 규칙을 법원 판례에 맞게 개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현재 처리 중인 사건 중에서는 이같이 자진신고에 따른 조사개시일 변경 때문에 제재를 포기해야 하는 사례는 없다고 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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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정위, 일본업체 담합 조사하고도 제재 포기한 까닭
    • 입력 2019-10-23 10:41:23
    • 수정2019-10-23 10:59:16
    경제
공정거래위원회가 점화플러그를 제조하는 일본 자동차 부품업체의 담합 제재를 추진했지만, 처분 시한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 바뀌면서 제재를 포기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오늘(23일) 공정위에 따르면 공정위 전원회의는 지난달 3일 '덴소, 일본특수도업 등 2개 점화플러그 제조·판매 사업자의 부당한 공동행위' 사건에 대해 심의절차를 종료한다는 내용의 의결서를 보냈습니다.

두 회사가 담합으로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것은 맞지만, 고발·과징금·시정명령·경고 등 법이 정한 처벌은 하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들은 2002~2003년쯤 전 세계 점화플러그 시장에서 특정 엔진별 제품에 대한 '상권'을 존중하기로 합의하고 2005년부터 2012년까지 GM 본사와 한국GM이 발주한 3건, 현대·기아차 1건의 입찰에서 사전에 합의된 견적가를 내거나, 아예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물량을 나눠 가졌습니다.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리고 검찰에 고발할 수 있는 사건이지만 공정위가 스스로 손발을 묶은 것은 처분 시효 때문입니다.

공정위 사무처는 지난해 8월 두 회사를 제재하자는 의견의 심사보고서를 전원회의에 상정했는데, 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는 판단이었습니다.

2012년 개정된 공정거래법은 담합사건의 처분시효를 '위반행위 종료일로부터 7년'으로 두고 있습니다. 여기에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할 경우 현장조사를 나간 날로부터 5년까지 처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자진신고로 조사가 개시된 사건은 신고서를 제출한 날을 조사개시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로 판결한 사건을 대법원이 지난 2월 확정하면서 공정위 전원회의는 이 사건의 조사개시일이 덴소가 자진신고서를 제출한 2012년 5월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개정 법령 시행 한 달 전에 자진신고서가 제출돼 '조사 개시일로부터 5년'이라는 이전 조항을 적용할 수밖에 없고, 처분시한은 2017년 5월에 이미 종료됐다는 것입니다.

공정위 사무처는 내부 규칙에 따라 자진신고서 접수 이후 ‘최초 자료제출을 요청하거나 현장조사에 착수한 날’을 조사개시일로 정하고 처분시한이 남았다고 봤지만, 심의 과정에서 다른 사건에 대한 판결이 반대로 나오면서 전원회의가 이를 뒤집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장조사일을 조사개시일로 보던 기존 판례와 반대의 판결이 나왔고, 공정위 상고에 대해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내렸다"며 "전원회의에서 제재를 강행했을 때 추후 행정소송에서 지면 소송비용과 과징금 반환에 따른 이자 등 손실이 더 크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에서는 해외기업의 카르텔 사건에 대한 공정위의 사건처리가 느리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난 2017년 공정위는 덴소, 현담 등 일본계 자동차 부품업체 3개사의 담합을 적발해 37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공소시효를 넘겨 처리하는 바람에 검찰에 고발하지 못했습니다.

국제 담합사건의 경우 미국·유럽연합(EU) 등 주요국 경쟁당국과 공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과정에서 공정위가 보통 다른 경쟁당국의 처분을 뒤따르고 있습니다.

공정위는 처분시한 문제로 제재하지 못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내부 규칙을 법원 판례에 맞게 개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현재 처리 중인 사건 중에서는 이같이 자진신고에 따른 조사개시일 변경 때문에 제재를 포기해야 하는 사례는 없다고 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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