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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의 최강시사] 최광희 “한국 영화 100년, 사전 검열 폐지가 분기점”
입력 2019.10.23 (16:05) 최경영의 최강시사
- 일제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면서 많은 조선인 감독들 일제 찬양 영화 제작에 동원돼
- 일제 어용영화를 만들다 해방 후, 독립운동 다룬 영화 제작한 감독도 있어
- 유신시대 검열이 심화되면서 영화 통제 심해져
- 검열 시대에 사회부조리 고발한 영화가 ‘바보들의 행진’
- 1996년 사전심의폐지가 한국영화사의 분기점, 이후 광주민주화운동 정면으로 다룬 영화 나온 것
- 지금 한국 영화계는 황금기 속 쇠락기.. 20년 넘게 세대 교체 안되고 있어
- 스크린 독과점, 흥행 양극화가 현재 한국영화의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
- 사회 부조리 고발은 한국 영화의 중요한 흐름, 그 중에서도 ‘오발탄’ 은 수작

■ 프로그램명 : 김경래의 최강시사
■ 코너명 : <수포일러>
■ 방송시간 : 10월 23일(수) 08:30-08:45 KBS 1R 97.3 MHz
■ 진행 : 김경래 (뉴스타파 탐사팀장)
■ 출연 : 최광희 영화평론가



▷ 김경래 : 수요일마다 돌아오는 영화 스포, 김경래의 최강시사 영화 코너 <수포일러> 시간입니다. 최광희 평론가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 최광희 : 안녕하세요?

▷ 김경래 : 정치 얘기를 너무 많이 해서 영화 얘기로 힐링을 해야겠습니다. 올해가 한국 영화 100주년 맞나요?

▶ 최광희 : 맞습니다.

▷ 김경래 : 여러 행사도 있고 그런 리스트도 많이 나오고 그러더라고요, 100대 한국 영화 이래서. 그것부터 좀 여쭤볼게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100년 전 최초의 영화가 뭐예요?

▶ 최광희 : 그게 10월 27일, 1919년 10월 27일.

▷ 김경래 : 며칠 뒤네요.

▶ 최광희 : 예, 며칠 뒤가 정확하게 한국 영화 100년인데요. 그때 종로3가의 단성사에서.

▷ 김경래 : 지금은 없어진 단성사.

▶ 최광희 : ‘의리적 구토’ 혹은 ‘의리적 구투’라고도 불려요.

▷ 김경래 : 그래요?

▶ 최광희 : 어떤 게 더 맞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어요. 구토, 구투 뭐 이렇게 부르는데 그게 일본어식 표현이에요. 원래는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의리적 구토’ 혹은 ‘의리적 구투’는 ‘정의로운 복수’ 이런 뜻입니다.

▷ 김경래 : 아, 구토가 복수라는 뜻이에요?

▶ 최광희 : 복수예요, 원수를 갚는다.

▷ 김경래 : 아, 이게 토한다, 이런 게 아니었어요?

▶ 최광희 : 아닙니다. 오바이트 아니고요.

▷ 김경래 : 그거인 줄 알았는데.

▶ 최광희 : 어떤 구토가 의리...

▷ 김경래 : 그래서 저도 되게 제목이 이상하다, 이거. 포스트 모더니즘인가, 그렇군요.

▶ 최광희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아무튼 ‘의리적 구토’라는 영화가 단성사에서 최초로 상영이 됐는데, 그게 사실은 지금 생각하는 장편 극영화 이런 것이 아니라 풍경을 담아서 뒤에다 배경으로 틀어준 활동사진이에요. 보통 일반적으로 연쇄극이라고 부르는데, 연극과 연극 사이에 보여주는. 그래서 ‘의리적 구토’를 최초의 한국 영화로 봅니다. 그런데 이것을 한국 영화로 보는 이유는 이전에도 물론 식민지 조선에서 영화가 안 만들어진 건 아니에요. 만들어졌는데, 다 일본인들이 만들었어요.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일본인들이. 그런데 ‘의리적 구토’는 김도산이라는 감독이 주연도 하고 또 연출도 하고 또 제작도 하고 그래서 한국인 스태프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조선인 스태프와 배우들로만 구성된 그런 영화라서 최초의 한국 영화라고 평가를 하는 거죠.

▷ 김경래 : 그게 정확히 100년 전 10월 27일에 단성사에서 상영이 됐다, 그런 거네요.

▶ 최광희 :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 많이들 들어보셨겠습니다만 나운규.

▷ 김경래 : 아리랑?

▶ 최광희 : 예, ‘아리랑’이라는 영화가 1920년대에 나와서 소위 말하는 민족 영화의 시초로 봅니다. 그래서 나운규라는 감독도 아주 중요한 영화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고요. 재미있는 것은 일제강점기 말에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면서 많은 조선인 감독들이 소위 말하는 어용영화에 동원됐습니다.

▷ 김경래 : 징병을 찬성한다거나 이런 쪽으로요.

▶ 최광희 :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최인규라는 감독이 있었는데, 그분이 만든 영화들 가운데 ‘신풍의 아들’, 신풍이라는 게 가미카제 특공대죠. 그리고 ‘태양의 아이들’ 태양이라는 것은 일본의 천왕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일본의 천왕을 찬양하고 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에 나갈 것을 독려하는 그런 영화들을 많이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 어용영화를 만들던 최인규 감독이 1945년 8월 15일에 해방되기 직전까지 그런 어용영화를 만들다가 해방이 된 얼마 뒤 ‘자유만세’라고 하는 영화를 개봉했는데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대단히 기회주의적이죠.

▷ 김경래 : 거의 꺼삐딴 리 이런 거네요.

▶ 최광희 : 그래서 그런 것을 보면 우리 조상들한테 배우지 말아야 될, 그렇게 살면 안 되죠. 어쨌든 뒤늦게라도 뉘우친 것 같긴 합니다만 어쨌든 뒤에서는 계속 독립영화를 찍었습니다. 그러다가 6.25 때 월북됐죠. 납북됐죠, 납북.

▷ 김경래 : 이게 100년이라면 그렇게 긴 역사는 아닌데 그 사이에도 굉장히 우여곡절이 있었군요, 한국 영화사가. 지금 100년을 돌아보면 할 얘기는 많겠지만 청취자분들이 관심 있는 것은 영화일 거예요, 영화. 어떤 영화가 100년 동안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느냐, 이런 것들이 가장 관심이 있을 텐데 최광희 평론가가 뽑은 100개를 얘기할 수 없으니까 한 5개 정도, TOP5? 어떤 영화가 있습니까?

▶ 최광희 : 그러니까 시대별로 한번 제가 말씀을 드릴게요. 일단 1950년대 영화들은 사실 크게 평가할 만한 작품이 없고요. 물론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영화들이 있습니다. ‘자유부인’.

▷ 김경래 : 아, 그게 50년대예요?

▶ 최광희 : 네, 1956년, 1957년 그 무렵에 나왔는데 좀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해서 대단히 시끄러웠습니다.

▷ 김경래 : 그게 뭐 춤바람 나고 이런 내용이잖아요.

▶ 최광희 : 네, 춤바람 난 유부녀 얘기예요. ‘자유부인’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영화의 질적인 면에서 TOP5를 고른다면 1960년대 초반에 김기영 감독의 ‘하녀’라는 작품이 나오죠. 나중에 임상수 감독이 이 작품을 전도연 씨 주연으로 리메이크를 했는데 그 작품이 상당한 그 당시 시대를 비춰봤을 때도 굉장히 웰메이드한 스릴러 작품이에요.

▷ 김경래 : 이거는 가끔 볼 수도 있고 지금 IPTV 이런 데서 볼 수 있는 거죠.

▶ 최광희 :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서도 보실 수 있고요.

▷ 김경래 : 아, 그래요? 저작권이 지난 모양이죠?

▶ 최광희 : 예, 그리고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이라는 작품이 비슷한 시점에 나왔는데요. 이 작품은 분단 이후에 갈 길을 뭐라고 할까요? 방향성을 상실한 대한민국 사회를 은유하고 있는 ‘오발탄’이라고 한 말 자체가 잘못 쏜 총알이라는 뜻이죠. 그래서 대한민국 사회 자체가 잘못 쏜 총알이다라고 하는 그런 문제의식을 담아내고 있는 아주 수작입니다.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이고요.

▷ 김경래 : 이건 못 봤는데 한번 봐야겠네요. 이것도 쉽게 볼 수 있나요?

▶ 최광희 : 그렇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 들어서는 유신시대가 들어가잖아요. 유신시대로 넘어서면서 굉장히 검열도 심화되고 강력한 영화 통제 정책이 이루어진 가운데 창작자들이 대단히 억압받는 시대였어요. 그런데 그런 와중에서도 은근하게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영화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영화가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작품입니다. 1975년에 나온 작품이고요. 그리고 1980년대 들어가면 배창호라는 걸출한 감독이 또 등장하죠. 이 감독이 만든 ‘고래사냥’ 이 작품은 흥행에서도 상당히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 김경래 : 저도 어릴 때 봤던 기억이 나요. 어린애가 보면 안 되는 장면들도 있는데, 어릴 때 봤어요, 이거.

▶ 최광희 : 김수철 씨가...

▷ 김경래 : 맞아요, 안성기 씨하고.

▶ 최광희 : 같이 품바타령도 부르면서 유랑을 하는 이미숙 씨를 고향으로 데려가주는 그런 여정을 담은 로드무비예요. ‘고래사냥’이라는 작품도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고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두었고요. 이러고 1990년대로 넘어오면 1987년 6월항쟁의 성과로 어느 정도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보하게 되지 않습니까?

▷ 김경래 : 표현의 자유도 어느 정도 생겼고요.

▶ 최광희 : 표현의 자유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1996년 헌법재판소에서 공윤, 공연윤리위원회라는 곳에서 영화를 사전 심의를 했거든요, 사실상의 검열이죠. 그런데 이것을 표현의 자유를 해친다고 그래서 위헌 판결을 내렸습니다.

▷ 김경래 : 1996년도예요? 얼마 되지도 않았네요.

▶ 최광희 : 네, 그래서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검열이 사라진 건 1996년 이후입니다. 그래서 한국 영화사는 1996년을 분기점으로 해서 전과 뒤로 나뉜다고 보면 돼요.

▷ 김경래 : 그러면 1996년 분기점으로 굉장히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나요?

▶ 최광희 : 굉장히 많이 쏟아져 나왔죠. 그러니까 뭐 한국 사회에 대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 그런 문제제기들 이런 것들이 영화를 통해서 많이 만들어졌는데 그래서 1990년대 이후에 걸작들이 많이 나왔죠. ‘박하사탕’이라든가.

▷ 김경래 : 이창동 감독.

▶ 최광희 :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라든가 아니면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그때 당시로 봤을 때는 상당히 파격적인 설정이었죠, 앞서 ‘쉬리’라는 작품도 그렇고. 남북관계를 냉전적 시각에서 좀 벗어나서 바라보는 그런 영화들이 많이 또 나왔고 앞서 소개된 ‘박하사탕’ 혹은 그 앞에 장선우 감독의 꽃잎처럼 우리 한국 현대사의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그런 영화들이 탄생하기 시작했죠.

▷ 김경래 : 그러면 지금 말씀하신 게 한 6개 되네요, 벌써. 그렇죠?

▶ 최광희 : 그렇습니다.

▷ 김경래 : ‘하녀’, ‘오발탄’, ‘바보들의 행진’, ‘고래행진’, ‘박하사탕’, ‘꽃잎’ 뭐 이 정도. 지금 말씀하신 게 본인이 생각하셨을 때 영화사적 의미도 있겠지만 한국 영화사의 걸출한 작품들이라고 보시는 거죠?

▶ 최광희 : 이외에도 상당히 많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러니까 영화 창작자들이 또 앞서 말씀드린 최인규 감독처럼 시류에 순응하는 그런 감독들이 있었는가 하면 저항하는 감독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항하면 바로바로 억압이 들어오죠.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바보들의 행진’이에요. ‘바보들의 행진’에서 이 바보는 그 시대의 일반 국민들이 아니라 박 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 김경래 : 그래요?

▶ 최광희 : 그러니까 그 시대의 정권, 정치 세력 혹은 권력자들을 비꼬는 그런 은유적인 표현인데, 공무원들이 그러니까 검열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거기까지는 눈치를 못 챘어요. 그래서 그냥 제목 그대로 ‘바보들의 행진’이 나왔는데 왜냐하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이 대학생들인데 정말 바보 같거든요. 그래서 아, 얘네들을 바보들이라고 부르는구나라고 생각을 한 거죠. 그런데 영화 속에서 아주 의미심장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주인공들이 대학 캠퍼스의 교실에서 막 세태를 성토하는 이 세태 부조리를 성토하는 자유가 주어지지 않은 세태, 이런 것들에 대해서 불만을 드러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장면이 유신 반대 시위 장면이 원래는 들어갔어요, 그것을 넣어요, 하길종 감독이. 그런데 그때 그거 당연히 검열에서 잘렸겠죠.

▷ 김경래 : 당연히 삭제됐겠죠.

▶ 최광희 : 당연히 검열에서 삭제되니까 거기다가 뜬금없이 대학 체육대회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너무 이상한 거죠. 그래서 당시에 아마 영화를 보신 분들은 이게 도대체 뭐냐, 이렇게 생각하신 분들도 계셨을 거예요. ‘바보들의 행진’뿐만 아니라 1970년대, 1980년대에 한국 영화를 보시는 분들은 아마도 그때 당시에는 어떻게 도대체 영화가 말이 안 되느냐, 이렇게? 이렇게 생각하셨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공무원들이 그냥 잘라버려요, 중간중간에 그냥 진짜 가위로 싹둑싹둑 필름을 잘라버리기 때문에 영화가 말이 안 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 김경래 : 굉장히 예술적으로 느껴지는, 이게 무슨 소리지?

▶ 최광희 : 누가 보면 실험 영화인 줄 알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라 공무원들이 그냥 임의로 자기들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자른 것입니다.

▷ 김경래 : 하길종 감독이 굉장히 천재 감독이다, 막 이렇게 했는데, 영화는 몇 개 못 찍었죠?

▶ 최광희 : 요절하셨죠.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파 영화감독이에요.

▷ 김경래 : 최초의.

▶ 최광희 : 1970년대 초에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하고 돌아왔는데 1970년대 초에 미국의 영화 문화는 황금기입니다, 황금기. 뉴아메리칸 시네마라고 하는 새로운 사조가 탄생을 하면서 여러분들 잘 아시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지옥의 묵시록’이라든가 ‘대부’ 같은 영화들 아니면 마틴 스코세이지 이런 대단한 감독들이 막 출연했던 시기예요. 그래서 미국의 아주 영화 황금기를 경험하고 돌아온 하길종 감독으로서는 영화 선진국에서 배워온 기법이라든가 문제의식, 이런 것들을 영화에다 담아내려고 노력을 했는데 이놈의 나라가 도와주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 김경래 : 영화를 너무 전의적으로 만들어주고 잘라서 그렇죠?

▶ 최광희 : 그렇습니다. 그리고 하길종 감독의 다른 작품 ‘화분’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그 영화를 보면 약간 독재자를 은유하는 듯한 인물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이 사는 집 이름이 푸른집.

▷ 김경래 : 청와대.

▶ 최광희 : 그런 식으로 우회해서 비꼬는 거죠.

▷ 김경래 : 그러니까 탄압받죠. 그런데 이제 이런 어떤 1996년도를 기점으로 해서 한국 영화가 굉장히 발전하고 산업적으로도 많이 성장하고 상이 다는 아니지만 각종 상에서 최근에는 ‘기생충’이 칸에서 그랑프리도 받고 황금종려상도 받고. 그런데 지금 상황을 영화사적으로 보면 뭐라고 할까요? 황금기라고 봐야 되나요, 침체기라고 봐야 되나요? 딱 잘라서 얘기하기는 힘들겠죠. 어떻습니까, 지금 상황은?

▶ 최광희 : 그러니까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전체적으로는 황금기에 속하는데, 크게 봤을 때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황금기에 속하는데,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그 황금기 중에 쇠락기죠.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게 한국 영화의 아주 고질적인 문제가 양극화 문제 아니겠습니까? 흥행 양극화, 스크린 독과점 이런 구조적인 문제들이 아직 해결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떤 영화, 그러니까 한두 편의 영화만 빛을 보고 나머지 영화들은 싹 흥행에서 고배를 마시는 악순환이 반복이 되고 있고 새로운 재능들이 배출되고 있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도 사실은 검열 폐지 이후에 등장한 신예입니다. 검열 폐지 이후에 아주 많은 재능 있는 감독도 홍상수, 김기덕, 이창동, 박찬욱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거든요. 이 사람들이 아직까지 창작 활동을 하고 있고 그분들의 대를 이어서 뒤를 이을 후세대의 재능들이 새로 발굴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게 한국 영화의 문제점입니다.

▷ 김경래 : 한 20년 넘게 아직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제 할 얘기는 많겠지만 산업적인 얘기, 이런 얘기는 다음에 한 번 더하도록 하고요. 제가 궁금한 것은 최광희 평론가님이 뽑은 최고의 한국 영화는 뭘까? 이게 좀 궁금합니다. 지금 말씀하신 영화에 있나요?

▶ 최광희 : 있습니다.

▷ 김경래 : 그래요? 뭘까요?

▶ 최광희 : 제가 뽑은 최고의 한국 영화는 지금의 시각에서는 조금 조악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입니다.

▷ 김경래 : 그래요?

▶ 최광희 : 이게 왜냐하면 한국 영화의 아주 중요한 흐름이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리얼리즘 영화, 사실주의적 전통이거든요. 그런데 이런 전통의 거의 출발점이다. 이렇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오발탄’이라는 영화가 한국 영화 역사상 차지하는 그런 위상이라고 할까요? 이것은 대단하고 사실상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라는 영화도 바로 ‘오발탄’의 적자다, 이렇게 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김경래 : 이어지는 어떤 흐름이 있다?

▶ 최광희 : 그 흐름을 계승하고 있는 그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죠.

▷ 김경래 : 시간 나실 때 최광희 평론가 말씀을 참고로 해서 ‘오발탄’, 쉽게 보실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렇죠? IPTV나 이런 것으로?

▶ 최광희 : IPTV가 아니라 요즘에는 유튜브를 많이 보시는데.

▷ 김경래 : 아, 유튜브에 올라와 있나요?

▶ 최광희 : 예, 유튜브에 그냥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 김경래 : 그래요? 한번 찾아서 보시면 좋겠네요, 주말이나. 한국 영화가 100년이 됐다고 합니다. 오는 주말은 한국 영화와 함께. 감사합니다.

▶ 최광희 : 고맙습니다.

▷ 김경래 : 최광희 영화평론가였습니다.
  • [김경래의 최강시사] 최광희 “한국 영화 100년, 사전 검열 폐지가 분기점”
    • 입력 2019-10-23 16:05:37
    최경영의 최강시사
- 일제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면서 많은 조선인 감독들 일제 찬양 영화 제작에 동원돼
- 일제 어용영화를 만들다 해방 후, 독립운동 다룬 영화 제작한 감독도 있어
- 유신시대 검열이 심화되면서 영화 통제 심해져
- 검열 시대에 사회부조리 고발한 영화가 ‘바보들의 행진’
- 1996년 사전심의폐지가 한국영화사의 분기점, 이후 광주민주화운동 정면으로 다룬 영화 나온 것
- 지금 한국 영화계는 황금기 속 쇠락기.. 20년 넘게 세대 교체 안되고 있어
- 스크린 독과점, 흥행 양극화가 현재 한국영화의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
- 사회 부조리 고발은 한국 영화의 중요한 흐름, 그 중에서도 ‘오발탄’ 은 수작

■ 프로그램명 : 김경래의 최강시사
■ 코너명 : <수포일러>
■ 방송시간 : 10월 23일(수) 08:30-08:45 KBS 1R 97.3 MHz
■ 진행 : 김경래 (뉴스타파 탐사팀장)
■ 출연 : 최광희 영화평론가



▷ 김경래 : 수요일마다 돌아오는 영화 스포, 김경래의 최강시사 영화 코너 <수포일러> 시간입니다. 최광희 평론가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 최광희 : 안녕하세요?

▷ 김경래 : 정치 얘기를 너무 많이 해서 영화 얘기로 힐링을 해야겠습니다. 올해가 한국 영화 100주년 맞나요?

▶ 최광희 : 맞습니다.

▷ 김경래 : 여러 행사도 있고 그런 리스트도 많이 나오고 그러더라고요, 100대 한국 영화 이래서. 그것부터 좀 여쭤볼게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100년 전 최초의 영화가 뭐예요?

▶ 최광희 : 그게 10월 27일, 1919년 10월 27일.

▷ 김경래 : 며칠 뒤네요.

▶ 최광희 : 예, 며칠 뒤가 정확하게 한국 영화 100년인데요. 그때 종로3가의 단성사에서.

▷ 김경래 : 지금은 없어진 단성사.

▶ 최광희 : ‘의리적 구토’ 혹은 ‘의리적 구투’라고도 불려요.

▷ 김경래 : 그래요?

▶ 최광희 : 어떤 게 더 맞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어요. 구토, 구투 뭐 이렇게 부르는데 그게 일본어식 표현이에요. 원래는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의리적 구토’ 혹은 ‘의리적 구투’는 ‘정의로운 복수’ 이런 뜻입니다.

▷ 김경래 : 아, 구토가 복수라는 뜻이에요?

▶ 최광희 : 복수예요, 원수를 갚는다.

▷ 김경래 : 아, 이게 토한다, 이런 게 아니었어요?

▶ 최광희 : 아닙니다. 오바이트 아니고요.

▷ 김경래 : 그거인 줄 알았는데.

▶ 최광희 : 어떤 구토가 의리...

▷ 김경래 : 그래서 저도 되게 제목이 이상하다, 이거. 포스트 모더니즘인가, 그렇군요.

▶ 최광희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아무튼 ‘의리적 구토’라는 영화가 단성사에서 최초로 상영이 됐는데, 그게 사실은 지금 생각하는 장편 극영화 이런 것이 아니라 풍경을 담아서 뒤에다 배경으로 틀어준 활동사진이에요. 보통 일반적으로 연쇄극이라고 부르는데, 연극과 연극 사이에 보여주는. 그래서 ‘의리적 구토’를 최초의 한국 영화로 봅니다. 그런데 이것을 한국 영화로 보는 이유는 이전에도 물론 식민지 조선에서 영화가 안 만들어진 건 아니에요. 만들어졌는데, 다 일본인들이 만들었어요.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일본인들이. 그런데 ‘의리적 구토’는 김도산이라는 감독이 주연도 하고 또 연출도 하고 또 제작도 하고 그래서 한국인 스태프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조선인 스태프와 배우들로만 구성된 그런 영화라서 최초의 한국 영화라고 평가를 하는 거죠.

▷ 김경래 : 그게 정확히 100년 전 10월 27일에 단성사에서 상영이 됐다, 그런 거네요.

▶ 최광희 :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 많이들 들어보셨겠습니다만 나운규.

▷ 김경래 : 아리랑?

▶ 최광희 : 예, ‘아리랑’이라는 영화가 1920년대에 나와서 소위 말하는 민족 영화의 시초로 봅니다. 그래서 나운규라는 감독도 아주 중요한 영화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고요. 재미있는 것은 일제강점기 말에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면서 많은 조선인 감독들이 소위 말하는 어용영화에 동원됐습니다.

▷ 김경래 : 징병을 찬성한다거나 이런 쪽으로요.

▶ 최광희 :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최인규라는 감독이 있었는데, 그분이 만든 영화들 가운데 ‘신풍의 아들’, 신풍이라는 게 가미카제 특공대죠. 그리고 ‘태양의 아이들’ 태양이라는 것은 일본의 천왕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일본의 천왕을 찬양하고 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에 나갈 것을 독려하는 그런 영화들을 많이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 어용영화를 만들던 최인규 감독이 1945년 8월 15일에 해방되기 직전까지 그런 어용영화를 만들다가 해방이 된 얼마 뒤 ‘자유만세’라고 하는 영화를 개봉했는데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대단히 기회주의적이죠.

▷ 김경래 : 거의 꺼삐딴 리 이런 거네요.

▶ 최광희 : 그래서 그런 것을 보면 우리 조상들한테 배우지 말아야 될, 그렇게 살면 안 되죠. 어쨌든 뒤늦게라도 뉘우친 것 같긴 합니다만 어쨌든 뒤에서는 계속 독립영화를 찍었습니다. 그러다가 6.25 때 월북됐죠. 납북됐죠, 납북.

▷ 김경래 : 이게 100년이라면 그렇게 긴 역사는 아닌데 그 사이에도 굉장히 우여곡절이 있었군요, 한국 영화사가. 지금 100년을 돌아보면 할 얘기는 많겠지만 청취자분들이 관심 있는 것은 영화일 거예요, 영화. 어떤 영화가 100년 동안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느냐, 이런 것들이 가장 관심이 있을 텐데 최광희 평론가가 뽑은 100개를 얘기할 수 없으니까 한 5개 정도, TOP5? 어떤 영화가 있습니까?

▶ 최광희 : 그러니까 시대별로 한번 제가 말씀을 드릴게요. 일단 1950년대 영화들은 사실 크게 평가할 만한 작품이 없고요. 물론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영화들이 있습니다. ‘자유부인’.

▷ 김경래 : 아, 그게 50년대예요?

▶ 최광희 : 네, 1956년, 1957년 그 무렵에 나왔는데 좀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해서 대단히 시끄러웠습니다.

▷ 김경래 : 그게 뭐 춤바람 나고 이런 내용이잖아요.

▶ 최광희 : 네, 춤바람 난 유부녀 얘기예요. ‘자유부인’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영화의 질적인 면에서 TOP5를 고른다면 1960년대 초반에 김기영 감독의 ‘하녀’라는 작품이 나오죠. 나중에 임상수 감독이 이 작품을 전도연 씨 주연으로 리메이크를 했는데 그 작품이 상당한 그 당시 시대를 비춰봤을 때도 굉장히 웰메이드한 스릴러 작품이에요.

▷ 김경래 : 이거는 가끔 볼 수도 있고 지금 IPTV 이런 데서 볼 수 있는 거죠.

▶ 최광희 :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서도 보실 수 있고요.

▷ 김경래 : 아, 그래요? 저작권이 지난 모양이죠?

▶ 최광희 : 예, 그리고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이라는 작품이 비슷한 시점에 나왔는데요. 이 작품은 분단 이후에 갈 길을 뭐라고 할까요? 방향성을 상실한 대한민국 사회를 은유하고 있는 ‘오발탄’이라고 한 말 자체가 잘못 쏜 총알이라는 뜻이죠. 그래서 대한민국 사회 자체가 잘못 쏜 총알이다라고 하는 그런 문제의식을 담아내고 있는 아주 수작입니다.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이고요.

▷ 김경래 : 이건 못 봤는데 한번 봐야겠네요. 이것도 쉽게 볼 수 있나요?

▶ 최광희 : 그렇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 들어서는 유신시대가 들어가잖아요. 유신시대로 넘어서면서 굉장히 검열도 심화되고 강력한 영화 통제 정책이 이루어진 가운데 창작자들이 대단히 억압받는 시대였어요. 그런데 그런 와중에서도 은근하게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영화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영화가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작품입니다. 1975년에 나온 작품이고요. 그리고 1980년대 들어가면 배창호라는 걸출한 감독이 또 등장하죠. 이 감독이 만든 ‘고래사냥’ 이 작품은 흥행에서도 상당히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 김경래 : 저도 어릴 때 봤던 기억이 나요. 어린애가 보면 안 되는 장면들도 있는데, 어릴 때 봤어요, 이거.

▶ 최광희 : 김수철 씨가...

▷ 김경래 : 맞아요, 안성기 씨하고.

▶ 최광희 : 같이 품바타령도 부르면서 유랑을 하는 이미숙 씨를 고향으로 데려가주는 그런 여정을 담은 로드무비예요. ‘고래사냥’이라는 작품도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고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두었고요. 이러고 1990년대로 넘어오면 1987년 6월항쟁의 성과로 어느 정도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보하게 되지 않습니까?

▷ 김경래 : 표현의 자유도 어느 정도 생겼고요.

▶ 최광희 : 표현의 자유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1996년 헌법재판소에서 공윤, 공연윤리위원회라는 곳에서 영화를 사전 심의를 했거든요, 사실상의 검열이죠. 그런데 이것을 표현의 자유를 해친다고 그래서 위헌 판결을 내렸습니다.

▷ 김경래 : 1996년도예요? 얼마 되지도 않았네요.

▶ 최광희 : 네, 그래서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검열이 사라진 건 1996년 이후입니다. 그래서 한국 영화사는 1996년을 분기점으로 해서 전과 뒤로 나뉜다고 보면 돼요.

▷ 김경래 : 그러면 1996년 분기점으로 굉장히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나요?

▶ 최광희 : 굉장히 많이 쏟아져 나왔죠. 그러니까 뭐 한국 사회에 대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 그런 문제제기들 이런 것들이 영화를 통해서 많이 만들어졌는데 그래서 1990년대 이후에 걸작들이 많이 나왔죠. ‘박하사탕’이라든가.

▷ 김경래 : 이창동 감독.

▶ 최광희 :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라든가 아니면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그때 당시로 봤을 때는 상당히 파격적인 설정이었죠, 앞서 ‘쉬리’라는 작품도 그렇고. 남북관계를 냉전적 시각에서 좀 벗어나서 바라보는 그런 영화들이 많이 또 나왔고 앞서 소개된 ‘박하사탕’ 혹은 그 앞에 장선우 감독의 꽃잎처럼 우리 한국 현대사의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그런 영화들이 탄생하기 시작했죠.

▷ 김경래 : 그러면 지금 말씀하신 게 한 6개 되네요, 벌써. 그렇죠?

▶ 최광희 : 그렇습니다.

▷ 김경래 : ‘하녀’, ‘오발탄’, ‘바보들의 행진’, ‘고래행진’, ‘박하사탕’, ‘꽃잎’ 뭐 이 정도. 지금 말씀하신 게 본인이 생각하셨을 때 영화사적 의미도 있겠지만 한국 영화사의 걸출한 작품들이라고 보시는 거죠?

▶ 최광희 : 이외에도 상당히 많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러니까 영화 창작자들이 또 앞서 말씀드린 최인규 감독처럼 시류에 순응하는 그런 감독들이 있었는가 하면 저항하는 감독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항하면 바로바로 억압이 들어오죠.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바보들의 행진’이에요. ‘바보들의 행진’에서 이 바보는 그 시대의 일반 국민들이 아니라 박 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 김경래 : 그래요?

▶ 최광희 : 그러니까 그 시대의 정권, 정치 세력 혹은 권력자들을 비꼬는 그런 은유적인 표현인데, 공무원들이 그러니까 검열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거기까지는 눈치를 못 챘어요. 그래서 그냥 제목 그대로 ‘바보들의 행진’이 나왔는데 왜냐하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이 대학생들인데 정말 바보 같거든요. 그래서 아, 얘네들을 바보들이라고 부르는구나라고 생각을 한 거죠. 그런데 영화 속에서 아주 의미심장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주인공들이 대학 캠퍼스의 교실에서 막 세태를 성토하는 이 세태 부조리를 성토하는 자유가 주어지지 않은 세태, 이런 것들에 대해서 불만을 드러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장면이 유신 반대 시위 장면이 원래는 들어갔어요, 그것을 넣어요, 하길종 감독이. 그런데 그때 그거 당연히 검열에서 잘렸겠죠.

▷ 김경래 : 당연히 삭제됐겠죠.

▶ 최광희 : 당연히 검열에서 삭제되니까 거기다가 뜬금없이 대학 체육대회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너무 이상한 거죠. 그래서 당시에 아마 영화를 보신 분들은 이게 도대체 뭐냐, 이렇게 생각하신 분들도 계셨을 거예요. ‘바보들의 행진’뿐만 아니라 1970년대, 1980년대에 한국 영화를 보시는 분들은 아마도 그때 당시에는 어떻게 도대체 영화가 말이 안 되느냐, 이렇게? 이렇게 생각하셨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공무원들이 그냥 잘라버려요, 중간중간에 그냥 진짜 가위로 싹둑싹둑 필름을 잘라버리기 때문에 영화가 말이 안 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 김경래 : 굉장히 예술적으로 느껴지는, 이게 무슨 소리지?

▶ 최광희 : 누가 보면 실험 영화인 줄 알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라 공무원들이 그냥 임의로 자기들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자른 것입니다.

▷ 김경래 : 하길종 감독이 굉장히 천재 감독이다, 막 이렇게 했는데, 영화는 몇 개 못 찍었죠?

▶ 최광희 : 요절하셨죠.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파 영화감독이에요.

▷ 김경래 : 최초의.

▶ 최광희 : 1970년대 초에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하고 돌아왔는데 1970년대 초에 미국의 영화 문화는 황금기입니다, 황금기. 뉴아메리칸 시네마라고 하는 새로운 사조가 탄생을 하면서 여러분들 잘 아시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지옥의 묵시록’이라든가 ‘대부’ 같은 영화들 아니면 마틴 스코세이지 이런 대단한 감독들이 막 출연했던 시기예요. 그래서 미국의 아주 영화 황금기를 경험하고 돌아온 하길종 감독으로서는 영화 선진국에서 배워온 기법이라든가 문제의식, 이런 것들을 영화에다 담아내려고 노력을 했는데 이놈의 나라가 도와주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 김경래 : 영화를 너무 전의적으로 만들어주고 잘라서 그렇죠?

▶ 최광희 : 그렇습니다. 그리고 하길종 감독의 다른 작품 ‘화분’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그 영화를 보면 약간 독재자를 은유하는 듯한 인물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이 사는 집 이름이 푸른집.

▷ 김경래 : 청와대.

▶ 최광희 : 그런 식으로 우회해서 비꼬는 거죠.

▷ 김경래 : 그러니까 탄압받죠. 그런데 이제 이런 어떤 1996년도를 기점으로 해서 한국 영화가 굉장히 발전하고 산업적으로도 많이 성장하고 상이 다는 아니지만 각종 상에서 최근에는 ‘기생충’이 칸에서 그랑프리도 받고 황금종려상도 받고. 그런데 지금 상황을 영화사적으로 보면 뭐라고 할까요? 황금기라고 봐야 되나요, 침체기라고 봐야 되나요? 딱 잘라서 얘기하기는 힘들겠죠. 어떻습니까, 지금 상황은?

▶ 최광희 : 그러니까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전체적으로는 황금기에 속하는데, 크게 봤을 때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황금기에 속하는데,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그 황금기 중에 쇠락기죠.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게 한국 영화의 아주 고질적인 문제가 양극화 문제 아니겠습니까? 흥행 양극화, 스크린 독과점 이런 구조적인 문제들이 아직 해결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떤 영화, 그러니까 한두 편의 영화만 빛을 보고 나머지 영화들은 싹 흥행에서 고배를 마시는 악순환이 반복이 되고 있고 새로운 재능들이 배출되고 있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도 사실은 검열 폐지 이후에 등장한 신예입니다. 검열 폐지 이후에 아주 많은 재능 있는 감독도 홍상수, 김기덕, 이창동, 박찬욱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거든요. 이 사람들이 아직까지 창작 활동을 하고 있고 그분들의 대를 이어서 뒤를 이을 후세대의 재능들이 새로 발굴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게 한국 영화의 문제점입니다.

▷ 김경래 : 한 20년 넘게 아직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제 할 얘기는 많겠지만 산업적인 얘기, 이런 얘기는 다음에 한 번 더하도록 하고요. 제가 궁금한 것은 최광희 평론가님이 뽑은 최고의 한국 영화는 뭘까? 이게 좀 궁금합니다. 지금 말씀하신 영화에 있나요?

▶ 최광희 : 있습니다.

▷ 김경래 : 그래요? 뭘까요?

▶ 최광희 : 제가 뽑은 최고의 한국 영화는 지금의 시각에서는 조금 조악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입니다.

▷ 김경래 : 그래요?

▶ 최광희 : 이게 왜냐하면 한국 영화의 아주 중요한 흐름이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리얼리즘 영화, 사실주의적 전통이거든요. 그런데 이런 전통의 거의 출발점이다. 이렇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오발탄’이라는 영화가 한국 영화 역사상 차지하는 그런 위상이라고 할까요? 이것은 대단하고 사실상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라는 영화도 바로 ‘오발탄’의 적자다, 이렇게 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김경래 : 이어지는 어떤 흐름이 있다?

▶ 최광희 : 그 흐름을 계승하고 있는 그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죠.

▷ 김경래 : 시간 나실 때 최광희 평론가 말씀을 참고로 해서 ‘오발탄’, 쉽게 보실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렇죠? IPTV나 이런 것으로?

▶ 최광희 : IPTV가 아니라 요즘에는 유튜브를 많이 보시는데.

▷ 김경래 : 아, 유튜브에 올라와 있나요?

▶ 최광희 : 예, 유튜브에 그냥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 김경래 : 그래요? 한번 찾아서 보시면 좋겠네요, 주말이나. 한국 영화가 100년이 됐다고 합니다. 오는 주말은 한국 영화와 함께. 감사합니다.

▶ 최광희 : 고맙습니다.

▷ 김경래 : 최광희 영화평론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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