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을 어찌하리오…그래서 더 애틋한 청산 비경

입력 2019.10.24 (07: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금강산 관광은 이제 어디로 가는 걸까요. 설마 설마 했던 우려가 정말 현실이 되는 걸까요. 어제 갑작스럽게 전해진 북한의 보도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금강산 관광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발언을 전한 어제 <노동신문>의 문장들은 몹시도 사나웠습니다.

"건축물들이 민족성이라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범벅식"
"무슨 피해지역의 가설막이나 격리병동처럼 들어앉혀 놓았다"
"건축미학적으로 심히 낙후할뿐 아니라"
"그것마저 관리가 되지 않아 남루하기 그지없다"

남과 북을 이어주는 여러 교류의 끈 가운데 그나마도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금강산 관광이 이대로 기약 없이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는 분들도 많고요. 다른 건 몰라도 금강산 관광만큼은 다시 열리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그만큼 컸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 기대가 좌절된 것인지 아닌지 정부 당국은 상황 파악에 분주합니다.

조광기 ‘금강산’, 98×131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9조광기 ‘금강산’, 98×131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9

금강산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었으니…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딘지 묻는다면 모르긴 몰라도 1위는 '금강산'일 겁니다. 운이 좋아 금강산을 유람하는 복을 누린 이들이 남긴 그림이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죠.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 조선시대 실경산수화>에 선보인 그림 가운데서도 금강산 그림의 비중이 단연 높았습니다.

언제 다시 가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그리움을 낳고, 그 그리움이 커지면 기억을 더듬어 그림으로 옮기고, 그렇게 완성된 그림을 붙여놓고 또 그리워하고… 산 중의 산 금강산은 옛사람들에게 그런 존재였을 겁니다. 그 뒤로 기나긴 일제강점기, 그리고 6·25전쟁에 이은 분단으로 인해 우리 미술에서 금강산은 '강제로 잊힌' 존재로 남았습니다. 금강산 관광이 열리기 전까지는요.

황창배, 사석원 등 몇몇 화가가 금강산을 직접 답사하고 그림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금강산을 본격적으로 그린 화가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현장 답사'라는 작업의 필요조건이 충족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최근 일련의 금강산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서양화가 조광기 화백의 작업에 주목하게 됩니다.

조광기 ‘금강산 접선봉’, 45×52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9조광기 ‘금강산 접선봉’, 45×52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9

조광기 화백은 '쪽빛의 화가'입니다. 백두대간 굽이굽이 그의 발길과 눈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죠. 어느 날, 어느 순간, 눈이 시리도록 부신 쪽빛에 매료된 뒤부터 화가는 오로지 쪽빛으로만 화폭을 물들였습니다. 온통 쪽빛으로 물든 조광기 화백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같은 푸른색이라도 화가에 따라 그 느낌이 참 다르다는 걸 알게 됩니다.

쪽빛에 애틋함을 담아 산을 어루만지다

화가는 저 쪽빛에 애틋함을 한가득 담아 산을 어루만지듯 색을 입혔습니다. 그래서 특유의 결, 깊이감이 느껴지죠. 그림 속 산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산의 '초상'을 그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고고하면서도 어딘지 갈라지고 굴곡진 바위의 형상은 마치 손금처럼, 주름처럼 긴 세월을 견뎌낸 존재의 숭고함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조광기 ‘해금강’, 52×45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9조광기 ‘해금강’, 52×45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9

그런가 하면 '산의 얼굴'에 깃든 고고한 기품 속에서 왠지 모를 쓸쓸함도 묻어 나옵니다. 기암괴석 위주로 그려낸 산의 골격은 당당하고 우람한 모습이지만, 마치 그 속에 보이지 않게 깃들어 있는 숱한 뭇 생명을 헤아려보라는 듯이 말이죠. 그래서 좋은 그림은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를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녔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내가 진정 그려내고자 하는 것은 늘 인간이다. 혼탁한 세상에서 오염되고 상실되어가는 인간성의 회복을 꿈꾸며 천지자연과 하나 되는 인간을 담고 싶다. 꽃이 나비를 부르고, 나비는 사랑을 전하고, 풀은 동물을 불러 씨앗을 땅에 전한다. 자연에서의 모든 생산과 탄생은 순리의 교감을 통해 얻어진다. 이것이 순리이며 상생을 갈구하는 내 사색의 그릇이다." - 작가 노트에서

열정적으로 그림에 몰두하는 화가답게 출품작 26점이 모두 올해 완성한 신작들입니다. 백두대간 구석구석이 화폭에 담겨 있지만, 이번 전시에선 단연 금강산 그림이 주류를 이루고 있죠. 언제쯤 금강산에 다시 가볼 수 있을지 기약 없는 현실을 불현듯 마주하고 나니 화가가 쪽빛으로 그려낸 금강산이 더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조광기 ‘만물상’, 19×33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9조광기 ‘만물상’, 19×33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9

■전시정보
제목: 조광기 초대전 <청산사유: 자연에게 길을 묻다>
기간: 2019년 10월 30일까지
장소: 서울시 양천구 구구갤러리
작품: 회화 26점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금강산을 어찌하리오…그래서 더 애틋한 청산 비경
    • 입력 2019-10-24 07:00:31
    취재K
금강산 관광은 이제 어디로 가는 걸까요. 설마 설마 했던 우려가 정말 현실이 되는 걸까요. 어제 갑작스럽게 전해진 북한의 보도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금강산 관광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발언을 전한 어제 <노동신문>의 문장들은 몹시도 사나웠습니다.

"건축물들이 민족성이라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범벅식"
"무슨 피해지역의 가설막이나 격리병동처럼 들어앉혀 놓았다"
"건축미학적으로 심히 낙후할뿐 아니라"
"그것마저 관리가 되지 않아 남루하기 그지없다"

남과 북을 이어주는 여러 교류의 끈 가운데 그나마도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금강산 관광이 이대로 기약 없이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는 분들도 많고요. 다른 건 몰라도 금강산 관광만큼은 다시 열리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그만큼 컸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 기대가 좌절된 것인지 아닌지 정부 당국은 상황 파악에 분주합니다.

조광기 ‘금강산’, 98×131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9
금강산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었으니…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딘지 묻는다면 모르긴 몰라도 1위는 '금강산'일 겁니다. 운이 좋아 금강산을 유람하는 복을 누린 이들이 남긴 그림이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죠.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 조선시대 실경산수화>에 선보인 그림 가운데서도 금강산 그림의 비중이 단연 높았습니다.

언제 다시 가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그리움을 낳고, 그 그리움이 커지면 기억을 더듬어 그림으로 옮기고, 그렇게 완성된 그림을 붙여놓고 또 그리워하고… 산 중의 산 금강산은 옛사람들에게 그런 존재였을 겁니다. 그 뒤로 기나긴 일제강점기, 그리고 6·25전쟁에 이은 분단으로 인해 우리 미술에서 금강산은 '강제로 잊힌' 존재로 남았습니다. 금강산 관광이 열리기 전까지는요.

황창배, 사석원 등 몇몇 화가가 금강산을 직접 답사하고 그림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금강산을 본격적으로 그린 화가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현장 답사'라는 작업의 필요조건이 충족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최근 일련의 금강산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서양화가 조광기 화백의 작업에 주목하게 됩니다.

조광기 ‘금강산 접선봉’, 45×52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9
조광기 화백은 '쪽빛의 화가'입니다. 백두대간 굽이굽이 그의 발길과 눈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죠. 어느 날, 어느 순간, 눈이 시리도록 부신 쪽빛에 매료된 뒤부터 화가는 오로지 쪽빛으로만 화폭을 물들였습니다. 온통 쪽빛으로 물든 조광기 화백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같은 푸른색이라도 화가에 따라 그 느낌이 참 다르다는 걸 알게 됩니다.

쪽빛에 애틋함을 담아 산을 어루만지다

화가는 저 쪽빛에 애틋함을 한가득 담아 산을 어루만지듯 색을 입혔습니다. 그래서 특유의 결, 깊이감이 느껴지죠. 그림 속 산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산의 '초상'을 그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고고하면서도 어딘지 갈라지고 굴곡진 바위의 형상은 마치 손금처럼, 주름처럼 긴 세월을 견뎌낸 존재의 숭고함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조광기 ‘해금강’, 52×45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9
그런가 하면 '산의 얼굴'에 깃든 고고한 기품 속에서 왠지 모를 쓸쓸함도 묻어 나옵니다. 기암괴석 위주로 그려낸 산의 골격은 당당하고 우람한 모습이지만, 마치 그 속에 보이지 않게 깃들어 있는 숱한 뭇 생명을 헤아려보라는 듯이 말이죠. 그래서 좋은 그림은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를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녔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내가 진정 그려내고자 하는 것은 늘 인간이다. 혼탁한 세상에서 오염되고 상실되어가는 인간성의 회복을 꿈꾸며 천지자연과 하나 되는 인간을 담고 싶다. 꽃이 나비를 부르고, 나비는 사랑을 전하고, 풀은 동물을 불러 씨앗을 땅에 전한다. 자연에서의 모든 생산과 탄생은 순리의 교감을 통해 얻어진다. 이것이 순리이며 상생을 갈구하는 내 사색의 그릇이다." - 작가 노트에서

열정적으로 그림에 몰두하는 화가답게 출품작 26점이 모두 올해 완성한 신작들입니다. 백두대간 구석구석이 화폭에 담겨 있지만, 이번 전시에선 단연 금강산 그림이 주류를 이루고 있죠. 언제쯤 금강산에 다시 가볼 수 있을지 기약 없는 현실을 불현듯 마주하고 나니 화가가 쪽빛으로 그려낸 금강산이 더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조광기 ‘만물상’, 19×33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9
■전시정보
제목: 조광기 초대전 <청산사유: 자연에게 길을 묻다>
기간: 2019년 10월 30일까지
장소: 서울시 양천구 구구갤러리
작품: 회화 26점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