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생독립운동의 본산 '흥학관'…사적지 계승해야

입력 2019.11.01 (22:19) 수정 2019.11.02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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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광주학생독립운동을
태동시킨 공간
흥학관을 아십니까?

현재는
구시청 사거리로 널리 알려진 곳에
일제강점기부터 50년 넘게 위치해
광주 근대 문화를 싹틔운 공간이자
항일운동의 산실이었는데요,

아쉽게도
현재는 표지판 조차도 없어
역사에서 잊혀지고 있습니다.

김해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90년 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끈
신간회 광주지회가 활동한 곳,
흥학관 입니다.

100여년 전 지어진 흥학관은
1920년 대
각종 신문 발행과 노동운동, 야학 등으로
활발한 독립 운동의 중심지였습니다.

또 광주 최초 권투장과
야구회, 테니스회 등이 들어서
광주 근대 문화의
씨앗을 심기도 했습니다.

[인터뷰]김성 /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광주고보와 광주농고가 결성한 성진회, 그 이후에 생긴 독서회, 광주청년동맹이라는 사회 단체 선배들이 학생들을 지도하기도 했던 공간이기도 합니다."

지난 1969년 철거된
흥학관 터를 찾아가 봤습니다.

5.18 민주광장에서
구시청 사거리에 이르는 길

1930년대 흥학관 부지를 기록한
광주지도와 비교해보니,
도로와 샛길은 그대로지만,
옛터는 필지 형태가 바뀌어
찾아보기 힘듭니다.


일제강점기
조선 독립의 열망이 가득한
청년들이 모였던 흥학관 옛터에는
지금 식당과 술집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흥학관 옛터를 알리는
표지판 하나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흥학관 설립자인 최명구와
그의 아들 최상현이 건립한
양림동 사택도
현재는 '최승효 가옥'으로만
알려졌을 뿐,
독립운동가들의 은둔처였다는
역사적 고증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최기성 / 흥학관 설립자 최명구 증손자
"숨바꼭질하면 찾을 수 없어요.
혹시라도 뭔일 있으면 도망가기 좋은 구조였지 않느냐. (집안 어른들이)
먼 훗날 회상해보니까 독립운동가들이 밤에 와서 조용히 있다 가고 숨어서 있다고 그랬대요."

항일정신을 상징하는
광주학생독립운동 사적지는 7곳.

이 가운데 전남여고 본관을 제외하고
흥학관 등 6곳은 모두 사라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해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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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본산 '흥학관'…사적지 계승해야
    • 입력 2019-11-01 22:19:54
    • 수정2019-11-02 03:41:49
    뉴스9(광주)
[앵커멘트] 광주학생독립운동을 태동시킨 공간 흥학관을 아십니까? 현재는 구시청 사거리로 널리 알려진 곳에 일제강점기부터 50년 넘게 위치해 광주 근대 문화를 싹틔운 공간이자 항일운동의 산실이었는데요, 아쉽게도 현재는 표지판 조차도 없어 역사에서 잊혀지고 있습니다. 김해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90년 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끈 신간회 광주지회가 활동한 곳, 흥학관 입니다. 100여년 전 지어진 흥학관은 1920년 대 각종 신문 발행과 노동운동, 야학 등으로 활발한 독립 운동의 중심지였습니다. 또 광주 최초 권투장과 야구회, 테니스회 등이 들어서 광주 근대 문화의 씨앗을 심기도 했습니다. [인터뷰]김성 /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광주고보와 광주농고가 결성한 성진회, 그 이후에 생긴 독서회, 광주청년동맹이라는 사회 단체 선배들이 학생들을 지도하기도 했던 공간이기도 합니다." 지난 1969년 철거된 흥학관 터를 찾아가 봤습니다. 5.18 민주광장에서 구시청 사거리에 이르는 길 1930년대 흥학관 부지를 기록한 광주지도와 비교해보니, 도로와 샛길은 그대로지만, 옛터는 필지 형태가 바뀌어 찾아보기 힘듭니다. 일제강점기 조선 독립의 열망이 가득한 청년들이 모였던 흥학관 옛터에는 지금 식당과 술집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흥학관 옛터를 알리는 표지판 하나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흥학관 설립자인 최명구와 그의 아들 최상현이 건립한 양림동 사택도 현재는 '최승효 가옥'으로만 알려졌을 뿐, 독립운동가들의 은둔처였다는 역사적 고증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최기성 / 흥학관 설립자 최명구 증손자 "숨바꼭질하면 찾을 수 없어요. 혹시라도 뭔일 있으면 도망가기 좋은 구조였지 않느냐. (집안 어른들이) 먼 훗날 회상해보니까 독립운동가들이 밤에 와서 조용히 있다 가고 숨어서 있다고 그랬대요." 항일정신을 상징하는 광주학생독립운동 사적지는 7곳. 이 가운데 전남여고 본관을 제외하고 흥학관 등 6곳은 모두 사라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해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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