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30년 기다린 수색…‘화성 실종 초등생’은 어디에

입력 2019.11.09 (10:12) 수정 2019.11.0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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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화성 실종 초등생’ 30년 만에 수색
산·들판 있던 곳에 아파트 생겨
수색 성과 없지만 범위 확대
부실 수사 의혹 등 의문점 많아

10년이면 강산이 한 번 변한다고들 한다. 1989년 7월 화성시 태안읍에서 실종된 초등생 김 모 양은 강산이 세 번 변할 동안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서 어디로 갔는지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김 양 실종이 사람들의 관심사가 된 건 이춘재 자백 이후이다. 화성연쇄살인 10건을 자백한 이춘재는 살인 4건을 더 털어놨는데, 김 양도 포함돼 있었다.

30년 전 김 양을 찾다가 수사 기록에 '가출인'으로 남겨뒀던 경찰은 늦게나마 김 양의 흔적을 찾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시작한 수색은 9일 동안 이뤄졌지만 성과없이 끝났다.


실종 30년…흔적도 없이 변한 화성

경찰에 따르면 이춘재는 김 양을 범행 현장 근처에 김 양 소지품과 함께 유기했다고 진술했다.

매번 강조하는 이야기지만 살인사건과 관련한 이춘재의 진술은 구체적이라고 한다. 경찰이 "그림을 그려서 진술했다"고 표현할 정도다. 김 양 사건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화성이 강산이 변한 것 이상으로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특히 이춘재의 주요 범행 장소였던 화성군 태안읍 일대는 산과 들판이 있던 자리에 대부분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춘재가 김 양을 유기했다고 지목한 장소에도 아파트가 생겼다. 경찰 관계자는 "이춘재를 현장에 데리고 와서 범행 장소를 찾아보면 어떨지 생각을 해봤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지형이 완전히 변해버려서 이춘재가 현장에 와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을 그려 설명할 정도인 이춘재도 달라진 화성에선 범행 현장을 찾기 어려울 거라는 얘기다.


레이더로 샅샅이 수색…성과는 없어

이춘재가 지목한 아파트를 수색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게다가 30년 전 김 양의 소지품을 발견했던 경찰이 진술한 발견 장소는 이춘재가 말한 장소와 100m 정도 떨어져 있다. 경찰이 짚은 장소는 도로의 경계 지점이라고 한다.

애초 경찰은 장소를 최대한 특정한 뒤 수색에 나서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30년 동안 김 양의 행방을 몰랐던 가족들의 마음은 달랐다. 한시라도 빨리 수색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게 당연했다.

경찰은 가족들의 마음을 고려해 지난 1일부터 이춘재가 진술한 범행 장소 인근 근린공원의 나지막한 언덕을 수색했다.

수색에는 지표투과 레이더(GPR)가 동원됐다. 이 장비는 초광대역(UWB) 전자기파를 발사해 최대 3m 아래의 내부 구조물을 탐지하는 비파괴탐사기구다.

경찰은 수색 장소를 흰색 줄로 구역을 나눈 뒤 지표투과 레이더와 금속탐지기로 일일이 점검하는 방식으로 수색을 진행했다. 특이사항이 있으면 삽 등으로 땅을 파고 무엇이 있는지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동물의 뼈 등이 발견됐다"며 특이사항은 없다고 설명했다.


수색 범위 확대…다음 주면 끝날 듯

수색 장소인 근린공원 언덕에는 가운데 계단이 있는데, 경찰은 지난 일주일 동안에는 계단 오른쪽을 수색했다.

어제(8일)부터는 계단 왼쪽도 수색했다. 왼쪽 수색도 오른쪽과 마찬가지로 지표투과 레이더와 금속 탐지기가 활용된다.

새롭게 수색한 장소는 화성연쇄살인 9차 사건 피해자가 발견된 곳이다. 1989년 7월 김 양이 실종됐고, 같은 해 12월 김 양의 소지품이 발견됐는데 9차 사건은 이로부터 11개월 후인 1990년 11월 발생했다.

이때 김 양 소지품 발견 지점과 멀지 않은 곳에서 9차 사건 피해자가 발견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 양 사건과 화성 사건과의 연관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 양은 어디에…책임은 누가?

최근 경찰이 확인한 30년 전 수사기록에는 김 양이 '가출인'으로 돼 있다. 기록이 왜 이렇게 돼 있는지 당시 수사관계자들에게 물었지만, 기억이 안 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수사하다가 결론을 내지 않고 단순 실종으로 처리하고 끝낸 게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춘재는 김 양 소지품을 버린 장소에 김 양도 함께 유기했다고 자백했다. 소지품을 발견한 경찰이 암매장된 게 아니라 풀숲에 유기된 김 양을 찾지 못했다는 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김 양 가족들은 김 양의 행방은 물론이고 이렇게 많은 의문점이 있는지조차 그동안 알지 못했다. 30년 전 소지품이 발견됐을 때 경찰은 김 양 가족에게 알리지 않아서 가족들은 최근 보도를 접하고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이제 와서 김 양이 어디 있는지 찾는 건 쉽지 않다. 경찰의 김 양 수색은 다음 주 초반이면 끝난다. 경찰은 추가 수색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김 양 찾기가 이대로 끝난다면 실종사건으로 30년이 지난 이 살인사건은 범인을 잡았어도 미제로 남게된다.

강산이 속절없이 세 번이나 변했지만, 김 양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누가 어떻게 이 마음을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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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30년 기다린 수색…‘화성 실종 초등생’은 어디에
    • 입력 2019-11-09 10:12:10
    • 수정2019-11-09 16:34:30
    취재후·사건후
‘화성 실종 초등생’ 30년 만에 수색<br />산·들판 있던 곳에 아파트 생겨<br />수색 성과 없지만 범위 확대<br />부실 수사 의혹 등 의문점 많아
10년이면 강산이 한 번 변한다고들 한다. 1989년 7월 화성시 태안읍에서 실종된 초등생 김 모 양은 강산이 세 번 변할 동안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서 어디로 갔는지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김 양 실종이 사람들의 관심사가 된 건 이춘재 자백 이후이다. 화성연쇄살인 10건을 자백한 이춘재는 살인 4건을 더 털어놨는데, 김 양도 포함돼 있었다.

30년 전 김 양을 찾다가 수사 기록에 '가출인'으로 남겨뒀던 경찰은 늦게나마 김 양의 흔적을 찾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시작한 수색은 9일 동안 이뤄졌지만 성과없이 끝났다.


실종 30년…흔적도 없이 변한 화성

경찰에 따르면 이춘재는 김 양을 범행 현장 근처에 김 양 소지품과 함께 유기했다고 진술했다.

매번 강조하는 이야기지만 살인사건과 관련한 이춘재의 진술은 구체적이라고 한다. 경찰이 "그림을 그려서 진술했다"고 표현할 정도다. 김 양 사건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화성이 강산이 변한 것 이상으로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특히 이춘재의 주요 범행 장소였던 화성군 태안읍 일대는 산과 들판이 있던 자리에 대부분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춘재가 김 양을 유기했다고 지목한 장소에도 아파트가 생겼다. 경찰 관계자는 "이춘재를 현장에 데리고 와서 범행 장소를 찾아보면 어떨지 생각을 해봤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지형이 완전히 변해버려서 이춘재가 현장에 와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을 그려 설명할 정도인 이춘재도 달라진 화성에선 범행 현장을 찾기 어려울 거라는 얘기다.


레이더로 샅샅이 수색…성과는 없어

이춘재가 지목한 아파트를 수색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게다가 30년 전 김 양의 소지품을 발견했던 경찰이 진술한 발견 장소는 이춘재가 말한 장소와 100m 정도 떨어져 있다. 경찰이 짚은 장소는 도로의 경계 지점이라고 한다.

애초 경찰은 장소를 최대한 특정한 뒤 수색에 나서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30년 동안 김 양의 행방을 몰랐던 가족들의 마음은 달랐다. 한시라도 빨리 수색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게 당연했다.

경찰은 가족들의 마음을 고려해 지난 1일부터 이춘재가 진술한 범행 장소 인근 근린공원의 나지막한 언덕을 수색했다.

수색에는 지표투과 레이더(GPR)가 동원됐다. 이 장비는 초광대역(UWB) 전자기파를 발사해 최대 3m 아래의 내부 구조물을 탐지하는 비파괴탐사기구다.

경찰은 수색 장소를 흰색 줄로 구역을 나눈 뒤 지표투과 레이더와 금속탐지기로 일일이 점검하는 방식으로 수색을 진행했다. 특이사항이 있으면 삽 등으로 땅을 파고 무엇이 있는지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동물의 뼈 등이 발견됐다"며 특이사항은 없다고 설명했다.


수색 범위 확대…다음 주면 끝날 듯

수색 장소인 근린공원 언덕에는 가운데 계단이 있는데, 경찰은 지난 일주일 동안에는 계단 오른쪽을 수색했다.

어제(8일)부터는 계단 왼쪽도 수색했다. 왼쪽 수색도 오른쪽과 마찬가지로 지표투과 레이더와 금속 탐지기가 활용된다.

새롭게 수색한 장소는 화성연쇄살인 9차 사건 피해자가 발견된 곳이다. 1989년 7월 김 양이 실종됐고, 같은 해 12월 김 양의 소지품이 발견됐는데 9차 사건은 이로부터 11개월 후인 1990년 11월 발생했다.

이때 김 양 소지품 발견 지점과 멀지 않은 곳에서 9차 사건 피해자가 발견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 양 사건과 화성 사건과의 연관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 양은 어디에…책임은 누가?

최근 경찰이 확인한 30년 전 수사기록에는 김 양이 '가출인'으로 돼 있다. 기록이 왜 이렇게 돼 있는지 당시 수사관계자들에게 물었지만, 기억이 안 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수사하다가 결론을 내지 않고 단순 실종으로 처리하고 끝낸 게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춘재는 김 양 소지품을 버린 장소에 김 양도 함께 유기했다고 자백했다. 소지품을 발견한 경찰이 암매장된 게 아니라 풀숲에 유기된 김 양을 찾지 못했다는 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김 양 가족들은 김 양의 행방은 물론이고 이렇게 많은 의문점이 있는지조차 그동안 알지 못했다. 30년 전 소지품이 발견됐을 때 경찰은 김 양 가족에게 알리지 않아서 가족들은 최근 보도를 접하고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이제 와서 김 양이 어디 있는지 찾는 건 쉽지 않다. 경찰의 김 양 수색은 다음 주 초반이면 끝난다. 경찰은 추가 수색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김 양 찾기가 이대로 끝난다면 실종사건으로 30년이 지난 이 살인사건은 범인을 잡았어도 미제로 남게된다.

강산이 속절없이 세 번이나 변했지만, 김 양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누가 어떻게 이 마음을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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