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 오늘 첫 재판…일본의 ‘국가 면제’ 주장 따져보니

입력 2019.11.1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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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28 서울 외교부 청사,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합의’ 발표.(왼)기시다 후미오 당시 日 외무상 (오)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

2015년 말, 한일 양국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책을 합의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합의문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점에 양국 정부가 동의했다고 명시했습니다. 피해자들에게는 일본 정부 예산으로 조성된 기금이라며 10억 엔(우리 돈 약 100억 원)을 내밀었습니다.

'한일 관계 회복'이 필요했던 박근혜 정부가 '비공개 이면 합의'까지 해주며 졸속으로 밀어붙인 것이 드러나 공분을 일으킨 바로 그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2015)'입니다.

"상의 한마디 없이 모욕적 합의 받아와" 분노

‘한일 위안부 피해 합의’ 발표 다음날(15.12.29.), 피해 어르신들을 찾은 임성남 당시 외교부 1차관‘한일 위안부 피해 합의’ 발표 다음날(15.12.29.), 피해 어르신들을 찾은 임성남 당시 외교부 1차관

합의가 발표되자마자 위안부 피해 어르신들은 정부가 피해자와의 상의 한마디 없이 일방적이고 모욕적인 결과를 받아왔다며 분노했습니다. 피해 어르신과 유족 20명은 이듬해 직접 일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일제의 거짓 꾀임에 속아 어린 나이에 삶이 송두리째 파괴된, 회복될 수 없는 피해를 홀로 견뎌야 했던 그분들이 가해자인 일본에 요구한 배상금은 1인당 1억 원가량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3년이 다 되도록 소송 서류를 접수하지 않고 피해자들에게 반송하며 재판을 피해왔습니다. 그 사이 할머니 여러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15.12.28 서울 외교부 청사, ‘위안부 피해 합의’ 논의 중인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뒷모습) - 기시다 후미오 당시 日 외무상15.12.28 서울 외교부 청사, ‘위안부 피해 합의’ 논의 중인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뒷모습) - 기시다 후미오 당시 日 외무상

법원은 올해 5월에서야 게시판에 소송 내용을 공지하는 '공시송달'을 통해 겨우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그 재판이 오늘(1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시작됩니다.

'소송 번질라' 다급한 日, 무리수까지…'국가 면제'가 쟁점

일본은 우리 법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21명의 피해가 인정되고, 이것을 계기로 지켜보던 수많은 피해자가 자국을 상대로 대대적 소송에 나설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앞서 대법원에서 배상 판결을 받았던 '강제징용 재판'처럼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전쟁범죄가 국제사회에 낱낱이 폭로되는 것도 아베 정권에서 득세하는 일본 극우세력에겐 견디기 힘든 수치일 것입니다.

한국의 광복절이자 일본 패전일인 8월 15일, 침략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에 욱일기를 든 극우 인사들이 몰려왔다.한국의 광복절이자 일본 패전일인 8월 15일, 침략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에 욱일기를 든 극우 인사들이 몰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 절차가 굴러가기 시작하자, 이제는 '국가 면제'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다른 국가 및 그 재산에 대한 관할 면제'를 뜻하는 '국가 면제'는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와 그 재산에 대해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법 원칙입니다.

이에 따라 일본은 위안부 피해 소송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재판 과정에 일절 참여하지 않을 작정인데요, 이 역시 편협한 시각이라는 비판이 많습니다. 이미 국제적으로 '국가 면제'를 인정하지 않은 중요 판례들이 쌓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 면제' 절대 원칙 아니야 … '제한·예외' 인정 흐름

대표적으로 2004년 이탈리아 대법원의 판결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끌려가 강제로 노역한 자국민이 독일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독일이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다하우 수용소’ 강제 노역 모습/ 위키피디아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다하우 수용소’ 강제 노역 모습/ 위키피디아

불복한 독일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해 "이탈리아 법원이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결정을 얻어냈지만,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면 피해자들의 재판청구권이 침해된다"고 결정했습니다.

독일 나치에 빼앗겼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명 작품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The woman in gold)'도 국가 면제의 예외를 인정받아 2006년,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단순히 인권이나 인정에 호소한 특이 사례가 아니라, 법적으로도 기반이 탄탄합니다. 1926년 채택돼 20개국이 서명한 '브뤼셀 협약'이 이미 국가 면제에 조건을 뒀고, '국가면제에 관한 유럽협약(1972년)'과 2004년 UN 총회에서 채택된 '국가 및 그 재산권 면제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은 예외 조건들이 명시됐습니다.

15.12.30. ‘한일 위안부 합의’ 규탄 시위15.12.30. ‘한일 위안부 합의’ 규탄 시위

국제앰네스티, 하루 전 법률의견서 제출
… "위안부 피해자 배상 청구권 인정돼야"

1차 변론기일 하루 전인 어제(12일), 국제 인권단체인 앰네스티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인정돼야 한다'는 법률의견서를 재판이 진행될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습니다. 국제법상 이들의 피해배상 요구권은 주권(국가) 면제, 청구권협정, 시효 등의 절차적 이유로 제한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 법원이 어떤 관점과 논리로 재판을 이끌어갈지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한·일 관계는 또 다른 역사적 분기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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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 피해’ 오늘 첫 재판…일본의 ‘국가 면제’ 주장 따져보니
    • 입력 2019-11-13 16:02:41
    취재K
15.12.28 서울 외교부 청사,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합의’ 발표.(왼)기시다 후미오 당시 日 외무상 (오)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

2015년 말, 한일 양국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책을 합의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합의문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점에 양국 정부가 동의했다고 명시했습니다. 피해자들에게는 일본 정부 예산으로 조성된 기금이라며 10억 엔(우리 돈 약 100억 원)을 내밀었습니다.

'한일 관계 회복'이 필요했던 박근혜 정부가 '비공개 이면 합의'까지 해주며 졸속으로 밀어붙인 것이 드러나 공분을 일으킨 바로 그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2015)'입니다.

"상의 한마디 없이 모욕적 합의 받아와" 분노

‘한일 위안부 피해 합의’ 발표 다음날(15.12.29.), 피해 어르신들을 찾은 임성남 당시 외교부 1차관
합의가 발표되자마자 위안부 피해 어르신들은 정부가 피해자와의 상의 한마디 없이 일방적이고 모욕적인 결과를 받아왔다며 분노했습니다. 피해 어르신과 유족 20명은 이듬해 직접 일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일제의 거짓 꾀임에 속아 어린 나이에 삶이 송두리째 파괴된, 회복될 수 없는 피해를 홀로 견뎌야 했던 그분들이 가해자인 일본에 요구한 배상금은 1인당 1억 원가량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3년이 다 되도록 소송 서류를 접수하지 않고 피해자들에게 반송하며 재판을 피해왔습니다. 그 사이 할머니 여러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15.12.28 서울 외교부 청사, ‘위안부 피해 합의’ 논의 중인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뒷모습) - 기시다 후미오 당시 日 외무상
법원은 올해 5월에서야 게시판에 소송 내용을 공지하는 '공시송달'을 통해 겨우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그 재판이 오늘(1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시작됩니다.

'소송 번질라' 다급한 日, 무리수까지…'국가 면제'가 쟁점

일본은 우리 법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21명의 피해가 인정되고, 이것을 계기로 지켜보던 수많은 피해자가 자국을 상대로 대대적 소송에 나설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앞서 대법원에서 배상 판결을 받았던 '강제징용 재판'처럼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전쟁범죄가 국제사회에 낱낱이 폭로되는 것도 아베 정권에서 득세하는 일본 극우세력에겐 견디기 힘든 수치일 것입니다.

한국의 광복절이자 일본 패전일인 8월 15일, 침략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에 욱일기를 든 극우 인사들이 몰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 절차가 굴러가기 시작하자, 이제는 '국가 면제'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다른 국가 및 그 재산에 대한 관할 면제'를 뜻하는 '국가 면제'는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와 그 재산에 대해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법 원칙입니다.

이에 따라 일본은 위안부 피해 소송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재판 과정에 일절 참여하지 않을 작정인데요, 이 역시 편협한 시각이라는 비판이 많습니다. 이미 국제적으로 '국가 면제'를 인정하지 않은 중요 판례들이 쌓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 면제' 절대 원칙 아니야 … '제한·예외' 인정 흐름

대표적으로 2004년 이탈리아 대법원의 판결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끌려가 강제로 노역한 자국민이 독일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독일이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다하우 수용소’ 강제 노역 모습/ 위키피디아
불복한 독일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해 "이탈리아 법원이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결정을 얻어냈지만,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면 피해자들의 재판청구권이 침해된다"고 결정했습니다.

독일 나치에 빼앗겼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명 작품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The woman in gold)'도 국가 면제의 예외를 인정받아 2006년,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단순히 인권이나 인정에 호소한 특이 사례가 아니라, 법적으로도 기반이 탄탄합니다. 1926년 채택돼 20개국이 서명한 '브뤼셀 협약'이 이미 국가 면제에 조건을 뒀고, '국가면제에 관한 유럽협약(1972년)'과 2004년 UN 총회에서 채택된 '국가 및 그 재산권 면제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은 예외 조건들이 명시됐습니다.

15.12.30. ‘한일 위안부 합의’ 규탄 시위
국제앰네스티, 하루 전 법률의견서 제출
… "위안부 피해자 배상 청구권 인정돼야"

1차 변론기일 하루 전인 어제(12일), 국제 인권단체인 앰네스티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인정돼야 한다'는 법률의견서를 재판이 진행될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습니다. 국제법상 이들의 피해배상 요구권은 주권(국가) 면제, 청구권협정, 시효 등의 절차적 이유로 제한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 법원이 어떤 관점과 논리로 재판을 이끌어갈지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한·일 관계는 또 다른 역사적 분기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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