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윤 씨는 왜 허위자백했나…‘화성 8차’ 남은 의문점들

입력 2019.11.1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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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이춘재 진술 신빙성 높다" 결론
윤 씨 자백은 허위에 무게
수사과정 불법은 밝히지 못해
국과수 의혹도 여전히 물음표

"구체적으로 진술한 내용이 대부분 현장 상황과 부합한다."

경찰이 어제(15일)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진범은 사실상 이춘재라고 잠정 결론 내렸다. 결론을 콕 집어서 얘기한 건 아니지만, 이춘재의 자세한 진술이 대부분 현장 상황과 부합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경찰이 그동안 보여준 신중한 태도를 봤을 때 이춘재가 진범이라는 내부적 판단이 없었다면 이런 발표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찰은 또 윤 씨 진술서와 피의자신문조서 등을 살펴본 결과 사건 현장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윤 씨가 자기 뜻대로 진술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누군가 협박하거나 회유하는 등 윤 씨 진술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크게 본 것이다.

경찰은 8차 사건을 크게 4가지로 분야로 나눠서 수사했다고 밝혔다. ①이춘재 자백의 신빙성 ②윤 모 씨 진술의 임의성 ③윤 씨 검거 및 조사과정의 위법성 ④국과수 감정 결과의 적정성이다. 어제 경찰 발표로 1번과 2번은 사실상 확인이 끝났다. 남은 건 3번과 4번이다.


윤 씨 수사에 누가, 어떻게 개입했나?

윤 씨는 30년 전 조사 당시 형사들에게 폭행과 협박, 가혹 행위와 회유 등을 당해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경찰이 집에 있던 자신을 체포해 산으로 데려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경찰서에 와서 쪼그려 뛰기와 앉았다 일어서기를 시키고 3일 동안 잠을 제대로 재우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또 체포가 아닌 임의동행인데도 수갑을 채웠으며, 구속 전에 3일이나 붙잡아두고 있었던 것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수사에 참여한 형사들은 단 한 사람도 윤 씨의 말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형사들은 윤 씨를 상대로 범행을 추궁한 적은 있지만, 윤 씨가 스스로 자백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라는 과학적 증거가 있어서 폭행 등을 한 사실은 없다고 덧붙였다. 불법 체포나 구속에 대해서도 당시 수갑을 채우지 않았고, 검사와 법적 절차를 논의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이렇게 윤 씨와 당시 형사들의 주장이 달라 경찰은 윤 씨 수사 과정의 불법을 아직 결론 내진 못 했다. 그러나 수사 결과물인 진술에 대해서는 임의성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임의성이 부족하다는 건 윤 씨가 자기 뜻대로 진술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달리 말하면 진술 과정에서 누군가 개입을 했다는 건데, 진술의 임의성을 해칠 만한 개입은 불법이고 강압수사일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구속의 부당성과 위법 행위 여부 등에 대해 계속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이 계속 노력하겠지만, 진실을 밝혀내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경찰은 당시 수사에 참여한 사람들을 30명 이상 조사했지만, 단 한 사람도 강압수사 의혹을 인정하지 않았다. 윤 씨 주장과 임의성이 떨어지는 진술 외에 서류상으로 드러난 강압수사 정황은 남아 있지 않다.


국과수는 왜 윤 씨를 지목했나

국과수는 8차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와 윤 씨 체모를 방사성 동위원소 감정법으로 감정한 뒤 두 체모가 동일인의 체모로 사료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또 이 감정 결과가 잘못됐을 가능성은 3600만 분의 1이라고도 덧붙였다. 이 결과는 경찰이 윤 씨를 용의자로 체포한 핵심 근거가 됐다.

3,600만 분의 1이라는 확률에 대해 경찰은 당시 국과수가 외국의 통계기법을 이용해서 얻은 확률이라고 밝혔다. 당시 활용한 통계는 여러 논문으로 발표되고 인용됐지만,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통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국과수가 윤 씨 체모 감정 결과를 내놓은 건 1989년인데, 국과수가 방사성 동위원소 감정법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건 1983년 무렵이다. 당시 국과수에는 감정 장비도 없었고 전문 조직도 없었다. 국과수가 외국의 연구 결과를 충분한 검토 없이 범죄수사에 활용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당시 국과수가 윤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게 체모를 이용한 혈액형 감정이다. 사건 현장에서 나온 체모의 혈액형이 B형으로 판명되면서 B형 남성들이 용의 선상에 올랐고, B형인 윤 씨는 포함되고 O형인 이춘재는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에 대해 명확히 밝히진 않았지만, 국과수가 체모를 활용한 혈액형 감정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사실은 공개했다. 경찰은 국과수가 혈액형 항원이 극미량 존재하는 모발을 통한 혈액형 분석은 시료량 등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현장 발견 체모의 혈액형을 B형으로 판단한 게 잘못된 판단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경찰은 국과수 감정 결과가 잘못됐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최종 결론을 내놓지는 않았다. 여러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 당시 감정을 했던 감정인과 외부 전문가 자문을 구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감정했던 체모가 남아 있지 않고, 관련자들도 현직을 떠난 데다 모두 고령이라 잘잘못을 제대로 따지는 건 험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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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K] 윤 씨는 왜 허위자백했나…‘화성 8차’ 남은 의문점들
    • 입력 2019-11-16 10:12:57
    취재K
"이춘재 진술 신빙성 높다" 결론 <br />윤 씨 자백은 허위에 무게 <br />수사과정 불법은 밝히지 못해 <br />국과수 의혹도 여전히 물음표
"구체적으로 진술한 내용이 대부분 현장 상황과 부합한다."

경찰이 어제(15일)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진범은 사실상 이춘재라고 잠정 결론 내렸다. 결론을 콕 집어서 얘기한 건 아니지만, 이춘재의 자세한 진술이 대부분 현장 상황과 부합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경찰이 그동안 보여준 신중한 태도를 봤을 때 이춘재가 진범이라는 내부적 판단이 없었다면 이런 발표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찰은 또 윤 씨 진술서와 피의자신문조서 등을 살펴본 결과 사건 현장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윤 씨가 자기 뜻대로 진술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누군가 협박하거나 회유하는 등 윤 씨 진술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크게 본 것이다.

경찰은 8차 사건을 크게 4가지로 분야로 나눠서 수사했다고 밝혔다. ①이춘재 자백의 신빙성 ②윤 모 씨 진술의 임의성 ③윤 씨 검거 및 조사과정의 위법성 ④국과수 감정 결과의 적정성이다. 어제 경찰 발표로 1번과 2번은 사실상 확인이 끝났다. 남은 건 3번과 4번이다.


윤 씨 수사에 누가, 어떻게 개입했나?

윤 씨는 30년 전 조사 당시 형사들에게 폭행과 협박, 가혹 행위와 회유 등을 당해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경찰이 집에 있던 자신을 체포해 산으로 데려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경찰서에 와서 쪼그려 뛰기와 앉았다 일어서기를 시키고 3일 동안 잠을 제대로 재우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또 체포가 아닌 임의동행인데도 수갑을 채웠으며, 구속 전에 3일이나 붙잡아두고 있었던 것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수사에 참여한 형사들은 단 한 사람도 윤 씨의 말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형사들은 윤 씨를 상대로 범행을 추궁한 적은 있지만, 윤 씨가 스스로 자백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라는 과학적 증거가 있어서 폭행 등을 한 사실은 없다고 덧붙였다. 불법 체포나 구속에 대해서도 당시 수갑을 채우지 않았고, 검사와 법적 절차를 논의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이렇게 윤 씨와 당시 형사들의 주장이 달라 경찰은 윤 씨 수사 과정의 불법을 아직 결론 내진 못 했다. 그러나 수사 결과물인 진술에 대해서는 임의성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임의성이 부족하다는 건 윤 씨가 자기 뜻대로 진술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달리 말하면 진술 과정에서 누군가 개입을 했다는 건데, 진술의 임의성을 해칠 만한 개입은 불법이고 강압수사일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구속의 부당성과 위법 행위 여부 등에 대해 계속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이 계속 노력하겠지만, 진실을 밝혀내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경찰은 당시 수사에 참여한 사람들을 30명 이상 조사했지만, 단 한 사람도 강압수사 의혹을 인정하지 않았다. 윤 씨 주장과 임의성이 떨어지는 진술 외에 서류상으로 드러난 강압수사 정황은 남아 있지 않다.


국과수는 왜 윤 씨를 지목했나

국과수는 8차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와 윤 씨 체모를 방사성 동위원소 감정법으로 감정한 뒤 두 체모가 동일인의 체모로 사료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또 이 감정 결과가 잘못됐을 가능성은 3600만 분의 1이라고도 덧붙였다. 이 결과는 경찰이 윤 씨를 용의자로 체포한 핵심 근거가 됐다.

3,600만 분의 1이라는 확률에 대해 경찰은 당시 국과수가 외국의 통계기법을 이용해서 얻은 확률이라고 밝혔다. 당시 활용한 통계는 여러 논문으로 발표되고 인용됐지만,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통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국과수가 윤 씨 체모 감정 결과를 내놓은 건 1989년인데, 국과수가 방사성 동위원소 감정법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건 1983년 무렵이다. 당시 국과수에는 감정 장비도 없었고 전문 조직도 없었다. 국과수가 외국의 연구 결과를 충분한 검토 없이 범죄수사에 활용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당시 국과수가 윤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게 체모를 이용한 혈액형 감정이다. 사건 현장에서 나온 체모의 혈액형이 B형으로 판명되면서 B형 남성들이 용의 선상에 올랐고, B형인 윤 씨는 포함되고 O형인 이춘재는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에 대해 명확히 밝히진 않았지만, 국과수가 체모를 활용한 혈액형 감정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사실은 공개했다. 경찰은 국과수가 혈액형 항원이 극미량 존재하는 모발을 통한 혈액형 분석은 시료량 등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현장 발견 체모의 혈액형을 B형으로 판단한 게 잘못된 판단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경찰은 국과수 감정 결과가 잘못됐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최종 결론을 내놓지는 않았다. 여러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 당시 감정을 했던 감정인과 외부 전문가 자문을 구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감정했던 체모가 남아 있지 않고, 관련자들도 현직을 떠난 데다 모두 고령이라 잘잘못을 제대로 따지는 건 험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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