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차량 GPS 정보 수집한다더니 ‘유명무실’

입력 2019.11.1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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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돼지 40만 마리 가까이 땅에 묻었습니다. 워낙 숫자가 많다 보니 경기도 연천에서는 시간이 지체되면서 채 묻지 못한 돼지 사체에서 침출수가 유출됐습니다. 급하게 어쩔 수 없이 묻었다고는 하지만, 다른 대안이 정말 없었을까요?

'축산차량등록제' 전국 6만 대의 축산차량 위치 정보 수집

앞서 2013년 축산차량등록제가 시행됐습니다. 방역 당국은 '축산차량 등록 및 GPS 단말기 장착을 통해 차량출입정보를 수집·관리함으로써 신속한 역학조사 및 차단방역 등 효율적 방역체계 구축'하기 위해 도입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축이나 분뇨, 사료 등을 운반하는 축산 관련 차량에는 GPS를 부착해 이들이 방문하는 농장이나 축산시설은 모두 데이터로 기록됐습니다. 올해 월 기준 GPS가 부착된 축산차량은 전국 59,521대에 이릅니다.

발병 초기부터 전문가들은 두 가지를 주요 방역 대상으로 지적했습니다. 멧돼지와 차량입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의 전염성은 비교적 낮습니다. 직접 바이러스가 닿아야 옮겨집니다. 다만, 생존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매개체의 위험성을 강조한 겁니다.

이 때문에 정부도 초기에 잠복 기간 농장들 사이에 어떤 차량이 오갔는지 파악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차량을 따라가면 방역 범위가 좁혀질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수집된 GPS 정보, 지나치게 광범위해 비효율적

기대와 달리 GPS로 수집된 데이터는 지나치게 광범위했습니다. 전국 6만 대의 축산차량의 위치 정보는 하루에도 수십만 건이 쌓입니다. 실제로 방문한 곳뿐만이 아니라 이동을 하면서 지나치는 모든 농장과 시설이 기록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데이터가 있음에도 자치단체 협조를 받아 해당 농장이 실제 차량이 드나든 곳인지 하나하나 확인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초기 농장들의 차량 접점을 파악하는 데에도 1주일이 걸렸고, 때로는 그 내용이 뒤바뀌기도 했습니다. 특히 최초로 발병됐던 경기도 파주와 연천의 두 농장은 초기에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같은 사료 차량이 드나들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미 발생 농장은 4곳으로 늘어난 상황이었습니다.

발병 농장들이 공통으로 이용했던 도축장도 KBS 취재진보다 정부가 늦게 파악했습니다. 수집된 정보가 모두 차량 중심이다 보니 공통 시설을 파악하려면 자료를 재가공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축산업계 "스탠드스틸과 매몰로는 한계 있어"

다행스럽게도 14번째 발병 농장 이후 가축으로 기르는 돼지에서는 추가 확진이 없습니다. 네 차례의 축산차량 일시이동중지 명령에 따른 업계의 고통 분담과 돼지 38만 마리의 매몰이 있었지만 어찌 됐든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하는 듯합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지나자 구제역과 AI를 주의해야 하는 겨울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정부는 올해부터 구제역 관련 농가별 정보를 수집해 방역에 사용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또다시 쌓아둔 데이터를 활용하지도 못한 채 죄 없는 동물들만 땅에 묻는 게 아닐지 걱정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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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산차량 GPS 정보 수집한다더니 ‘유명무실’
    • 입력 2019-11-17 11:05:13
    취재K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돼지 40만 마리 가까이 땅에 묻었습니다. 워낙 숫자가 많다 보니 경기도 연천에서는 시간이 지체되면서 채 묻지 못한 돼지 사체에서 침출수가 유출됐습니다. 급하게 어쩔 수 없이 묻었다고는 하지만, 다른 대안이 정말 없었을까요?

'축산차량등록제' 전국 6만 대의 축산차량 위치 정보 수집

앞서 2013년 축산차량등록제가 시행됐습니다. 방역 당국은 '축산차량 등록 및 GPS 단말기 장착을 통해 차량출입정보를 수집·관리함으로써 신속한 역학조사 및 차단방역 등 효율적 방역체계 구축'하기 위해 도입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축이나 분뇨, 사료 등을 운반하는 축산 관련 차량에는 GPS를 부착해 이들이 방문하는 농장이나 축산시설은 모두 데이터로 기록됐습니다. 올해 월 기준 GPS가 부착된 축산차량은 전국 59,521대에 이릅니다.

발병 초기부터 전문가들은 두 가지를 주요 방역 대상으로 지적했습니다. 멧돼지와 차량입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의 전염성은 비교적 낮습니다. 직접 바이러스가 닿아야 옮겨집니다. 다만, 생존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매개체의 위험성을 강조한 겁니다.

이 때문에 정부도 초기에 잠복 기간 농장들 사이에 어떤 차량이 오갔는지 파악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차량을 따라가면 방역 범위가 좁혀질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수집된 GPS 정보, 지나치게 광범위해 비효율적

기대와 달리 GPS로 수집된 데이터는 지나치게 광범위했습니다. 전국 6만 대의 축산차량의 위치 정보는 하루에도 수십만 건이 쌓입니다. 실제로 방문한 곳뿐만이 아니라 이동을 하면서 지나치는 모든 농장과 시설이 기록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데이터가 있음에도 자치단체 협조를 받아 해당 농장이 실제 차량이 드나든 곳인지 하나하나 확인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초기 농장들의 차량 접점을 파악하는 데에도 1주일이 걸렸고, 때로는 그 내용이 뒤바뀌기도 했습니다. 특히 최초로 발병됐던 경기도 파주와 연천의 두 농장은 초기에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같은 사료 차량이 드나들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미 발생 농장은 4곳으로 늘어난 상황이었습니다.

발병 농장들이 공통으로 이용했던 도축장도 KBS 취재진보다 정부가 늦게 파악했습니다. 수집된 정보가 모두 차량 중심이다 보니 공통 시설을 파악하려면 자료를 재가공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축산업계 "스탠드스틸과 매몰로는 한계 있어"

다행스럽게도 14번째 발병 농장 이후 가축으로 기르는 돼지에서는 추가 확진이 없습니다. 네 차례의 축산차량 일시이동중지 명령에 따른 업계의 고통 분담과 돼지 38만 마리의 매몰이 있었지만 어찌 됐든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하는 듯합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지나자 구제역과 AI를 주의해야 하는 겨울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정부는 올해부터 구제역 관련 농가별 정보를 수집해 방역에 사용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또다시 쌓아둔 데이터를 활용하지도 못한 채 죄 없는 동물들만 땅에 묻는 게 아닐지 걱정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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