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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쉬운 요양급여 빼돌리기…왜 못 막나?
입력 2019.11.22 (16:28) 취재K
"뭣 모르고 사인했다가, 벌금형이 나왔어요" 요양보호사의 한숨

십여 년간 식당 일을 하다가 지난해 경기도에 있는 한 방문요양센터 요양보호사로 취직한 62살 임 모 씨. 지난해 원장이 건넨 근무일지에 '뭣 모르고' 한 사인 때문에 전과자가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원장은 임 씨가 평일에 돌보는 어르신을 토요일에 자신이 직접 돌보겠다며 근무 일지에 사인만 해달라고 했습니다. 원장으로부터 일감을 받아야 했던 임 씨는 문제없을 거라는 원장의 말에 거절하지 못하고 서명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임 씨는 경찰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임 씨는 원장과 공모해 8달 동안 요양급여 160만 원을 부정수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원장이 토요일에 근무하지 않고 요양급여를 부정수급했던 겁니다. 임 씨는 경찰 조사에서 부정수급 사실을 몰랐고 돈도 받은 적 없다고 호소했지만, 지난달 벌금 5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습니다.


요양보호사 속여 부정수급…"미안하다"는 말만

알고 보니, 해당 기관은 모두 4천2백만 원을 부당청구해 건강보험공단이 환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요양보호사의 근무일과 시간을 허위로 늘려 970여만 원을 빼돌렸습니다. 장기요양기관이 사회복지사를 추가로 배치하고 종사자의 배상책임 보험 가입 의무를 지키면 급여를 더 받을 수 있는데, 보험 가입을 하지 않고도 3천만 원 정도를 더 타갔습니다.

원장은 건보공단이 내린 환수 조치와 업무정지 30일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건보공단은 추가 부정수급이 의심된다며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원장을 찾아갔습니다. 임 씨에게 미안하다며, 벌금을 절반 정도 내줄 의향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원장의 거짓말로 졸지에 부정수급자로 몰린 임 씨에게 위로가 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임 씨는 이달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습니다.


부당청구 수익금 '나눠 먹기'도…기관장 마음대로 근무 시간 조작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이 부당청구가 의심되는 장기요양기관 838곳을 조사했더니, 88.5%인 742곳이 요양급여 150억 3천7백만 원을 부당청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표적인 수법은 기관과 요양보호사, 수급자가 사전 모의해 근무한 것처럼 조작하거나, 실제 서비스 시간보다 부풀려 급여를 청구한 뒤 수익금을 나눠 먹는 식이었습니다.

또 수급자 집에 부착해 근무 시간을 자동 기록하는 태그 기기를 아예 요양기관에 보관해 놓고, 기관장 마음대로 태그기를 찍어 근무 시간을 조작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쉬운 요양급여를 빼돌리기, 왜 못 막나?

부당청구가 의심돼도 처벌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기관 현지조사는 복지부와 지자체가 주관하고 건보공단에서 지원하는데, 인력이 부족해 매년 조사 대상은 전체 기관의 4~5%에 불과합니다. 기관과 요양보호사, 수급자가 짜고 말을 맞추면 부정행위를 적발하기도 쉽지 않고, 조사를 거부하면 강제하기도 어렵습니다.

부당청구가 적발돼도 부당이득금만 환수하고, 업무정지 등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거는 등 방식으로 시간을 끌기도 합니다. 업무정지 처분을 받더라도 그 기간만 끝나면 다시 운영할 수 있습니다. 업무정지를 3번 받으면 지정 취소가 가능한데, 이때까지 계속 부당 청구로 돈을 빼돌리거나 가족 등 명의로 기관을 개설해 운영을 계속하기도 합니다.

건보공단은 현지조사 인력을 늘려 전체의 10%로 조사 대상을 확대하고, 위반 기관에 대한 공표와 벌칙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입니다. 하지만 관련법은 국회에 계류돼있어 당장 시행이 쉽지 않습니다. 인구 고령화로 장기요양보험 적자 폭도 커지고 있는 만큼 줄줄 새는 급여를 막을 대책이 시급합니다.
  • 너무 쉬운 요양급여 빼돌리기…왜 못 막나?
    • 입력 2019-11-22 16:28:30
    취재K
"뭣 모르고 사인했다가, 벌금형이 나왔어요" 요양보호사의 한숨

십여 년간 식당 일을 하다가 지난해 경기도에 있는 한 방문요양센터 요양보호사로 취직한 62살 임 모 씨. 지난해 원장이 건넨 근무일지에 '뭣 모르고' 한 사인 때문에 전과자가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원장은 임 씨가 평일에 돌보는 어르신을 토요일에 자신이 직접 돌보겠다며 근무 일지에 사인만 해달라고 했습니다. 원장으로부터 일감을 받아야 했던 임 씨는 문제없을 거라는 원장의 말에 거절하지 못하고 서명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임 씨는 경찰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임 씨는 원장과 공모해 8달 동안 요양급여 160만 원을 부정수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원장이 토요일에 근무하지 않고 요양급여를 부정수급했던 겁니다. 임 씨는 경찰 조사에서 부정수급 사실을 몰랐고 돈도 받은 적 없다고 호소했지만, 지난달 벌금 5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습니다.


요양보호사 속여 부정수급…"미안하다"는 말만

알고 보니, 해당 기관은 모두 4천2백만 원을 부당청구해 건강보험공단이 환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요양보호사의 근무일과 시간을 허위로 늘려 970여만 원을 빼돌렸습니다. 장기요양기관이 사회복지사를 추가로 배치하고 종사자의 배상책임 보험 가입 의무를 지키면 급여를 더 받을 수 있는데, 보험 가입을 하지 않고도 3천만 원 정도를 더 타갔습니다.

원장은 건보공단이 내린 환수 조치와 업무정지 30일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건보공단은 추가 부정수급이 의심된다며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원장을 찾아갔습니다. 임 씨에게 미안하다며, 벌금을 절반 정도 내줄 의향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원장의 거짓말로 졸지에 부정수급자로 몰린 임 씨에게 위로가 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임 씨는 이달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습니다.


부당청구 수익금 '나눠 먹기'도…기관장 마음대로 근무 시간 조작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이 부당청구가 의심되는 장기요양기관 838곳을 조사했더니, 88.5%인 742곳이 요양급여 150억 3천7백만 원을 부당청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표적인 수법은 기관과 요양보호사, 수급자가 사전 모의해 근무한 것처럼 조작하거나, 실제 서비스 시간보다 부풀려 급여를 청구한 뒤 수익금을 나눠 먹는 식이었습니다.

또 수급자 집에 부착해 근무 시간을 자동 기록하는 태그 기기를 아예 요양기관에 보관해 놓고, 기관장 마음대로 태그기를 찍어 근무 시간을 조작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쉬운 요양급여를 빼돌리기, 왜 못 막나?

부당청구가 의심돼도 처벌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기관 현지조사는 복지부와 지자체가 주관하고 건보공단에서 지원하는데, 인력이 부족해 매년 조사 대상은 전체 기관의 4~5%에 불과합니다. 기관과 요양보호사, 수급자가 짜고 말을 맞추면 부정행위를 적발하기도 쉽지 않고, 조사를 거부하면 강제하기도 어렵습니다.

부당청구가 적발돼도 부당이득금만 환수하고, 업무정지 등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거는 등 방식으로 시간을 끌기도 합니다. 업무정지 처분을 받더라도 그 기간만 끝나면 다시 운영할 수 있습니다. 업무정지를 3번 받으면 지정 취소가 가능한데, 이때까지 계속 부당 청구로 돈을 빼돌리거나 가족 등 명의로 기관을 개설해 운영을 계속하기도 합니다.

건보공단은 현지조사 인력을 늘려 전체의 10%로 조사 대상을 확대하고, 위반 기관에 대한 공표와 벌칙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입니다. 하지만 관련법은 국회에 계류돼있어 당장 시행이 쉽지 않습니다. 인구 고령화로 장기요양보험 적자 폭도 커지고 있는 만큼 줄줄 새는 급여를 막을 대책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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