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영역
상세페이지
‘에네켄’의 꿈…‘멕시코 꼬레아노 114년’
입력 2019.11.27 (07:36) 수정 2019.11.27 (07:53) 뉴스광장(경인)
[앵커]
110여 년 전,대한제국 말기에 미국 하와이에 이어 우리나라의 두번 째 이민국은 멕시코였습니다.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서 힘들게 일했던 한인들의 삶과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특별 전시회가 인천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보도에 박재우 기자입니다.
[리포트]
자신의 뿌리를 찾아 처음 한국을 찾은 한인 3세 `돌로레스 가르시아씨`, 9살에 멕시코로 이민 와서 평생 고향을 드리워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돌로레스 가르시아/멕시코 한인3세 : "(할아버지는) 한국과 크게 달랐던 기후 조건때문에 힘드셨고,언어와 문화가 달라서 어려워하셨습니다."]
`가르시아씨`의 할아버지를 포함해 1905년 멕시코행 `일포드호`에 몸을 실었던 한인은 모두 천 33명, 멕시칸 드림을 안고 태평양을 건넜지만 `선박용 밧줄의 원료로 쓰이는 용설란`, `에네켄`을 수확하는 농장에서의 삶은 노예와 비슷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288명은 1921년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다시 이주했지만,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이들은 절망 속에서도 `한인회`를 결성하고 학교를 세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갔습니다.
또,힘들겨 번 돈을 모아 조국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냈고, 1917년 안창호 선생은 직접 멕시코를 찾아 이들을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신은미/관장/한국이민사박물관 : "고국의 독립을 염원하면서 `에네켄농장`에서 번 돈을 한 푼 두 푼 모았던 그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자."]
현재 멕시코에 있는 한인 3세.4세 등 후손들은 약 3만 여 명, 110년 넘게 한국을 바라보며 살아온 이들에 대한 관심과 교류 확대가 필요한 때입니다.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110여 년 전,대한제국 말기에 미국 하와이에 이어 우리나라의 두번 째 이민국은 멕시코였습니다.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서 힘들게 일했던 한인들의 삶과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특별 전시회가 인천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보도에 박재우 기자입니다.
[리포트]
자신의 뿌리를 찾아 처음 한국을 찾은 한인 3세 `돌로레스 가르시아씨`, 9살에 멕시코로 이민 와서 평생 고향을 드리워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돌로레스 가르시아/멕시코 한인3세 : "(할아버지는) 한국과 크게 달랐던 기후 조건때문에 힘드셨고,언어와 문화가 달라서 어려워하셨습니다."]
`가르시아씨`의 할아버지를 포함해 1905년 멕시코행 `일포드호`에 몸을 실었던 한인은 모두 천 33명, 멕시칸 드림을 안고 태평양을 건넜지만 `선박용 밧줄의 원료로 쓰이는 용설란`, `에네켄`을 수확하는 농장에서의 삶은 노예와 비슷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288명은 1921년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다시 이주했지만,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이들은 절망 속에서도 `한인회`를 결성하고 학교를 세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갔습니다.
또,힘들겨 번 돈을 모아 조국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냈고, 1917년 안창호 선생은 직접 멕시코를 찾아 이들을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신은미/관장/한국이민사박물관 : "고국의 독립을 염원하면서 `에네켄농장`에서 번 돈을 한 푼 두 푼 모았던 그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자."]
현재 멕시코에 있는 한인 3세.4세 등 후손들은 약 3만 여 명, 110년 넘게 한국을 바라보며 살아온 이들에 대한 관심과 교류 확대가 필요한 때입니다.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 ‘에네켄’의 꿈…‘멕시코 꼬레아노 114년’
-
- 입력 2019-11-27 07:38:39
- 수정2019-11-27 07:53:31

[앵커]
110여 년 전,대한제국 말기에 미국 하와이에 이어 우리나라의 두번 째 이민국은 멕시코였습니다.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서 힘들게 일했던 한인들의 삶과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특별 전시회가 인천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보도에 박재우 기자입니다.
[리포트]
자신의 뿌리를 찾아 처음 한국을 찾은 한인 3세 `돌로레스 가르시아씨`, 9살에 멕시코로 이민 와서 평생 고향을 드리워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돌로레스 가르시아/멕시코 한인3세 : "(할아버지는) 한국과 크게 달랐던 기후 조건때문에 힘드셨고,언어와 문화가 달라서 어려워하셨습니다."]
`가르시아씨`의 할아버지를 포함해 1905년 멕시코행 `일포드호`에 몸을 실었던 한인은 모두 천 33명, 멕시칸 드림을 안고 태평양을 건넜지만 `선박용 밧줄의 원료로 쓰이는 용설란`, `에네켄`을 수확하는 농장에서의 삶은 노예와 비슷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288명은 1921년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다시 이주했지만,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이들은 절망 속에서도 `한인회`를 결성하고 학교를 세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갔습니다.
또,힘들겨 번 돈을 모아 조국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냈고, 1917년 안창호 선생은 직접 멕시코를 찾아 이들을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신은미/관장/한국이민사박물관 : "고국의 독립을 염원하면서 `에네켄농장`에서 번 돈을 한 푼 두 푼 모았던 그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자."]
현재 멕시코에 있는 한인 3세.4세 등 후손들은 약 3만 여 명, 110년 넘게 한국을 바라보며 살아온 이들에 대한 관심과 교류 확대가 필요한 때입니다.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110여 년 전,대한제국 말기에 미국 하와이에 이어 우리나라의 두번 째 이민국은 멕시코였습니다.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서 힘들게 일했던 한인들의 삶과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특별 전시회가 인천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보도에 박재우 기자입니다.
[리포트]
자신의 뿌리를 찾아 처음 한국을 찾은 한인 3세 `돌로레스 가르시아씨`, 9살에 멕시코로 이민 와서 평생 고향을 드리워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돌로레스 가르시아/멕시코 한인3세 : "(할아버지는) 한국과 크게 달랐던 기후 조건때문에 힘드셨고,언어와 문화가 달라서 어려워하셨습니다."]
`가르시아씨`의 할아버지를 포함해 1905년 멕시코행 `일포드호`에 몸을 실었던 한인은 모두 천 33명, 멕시칸 드림을 안고 태평양을 건넜지만 `선박용 밧줄의 원료로 쓰이는 용설란`, `에네켄`을 수확하는 농장에서의 삶은 노예와 비슷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288명은 1921년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다시 이주했지만,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이들은 절망 속에서도 `한인회`를 결성하고 학교를 세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갔습니다.
또,힘들겨 번 돈을 모아 조국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냈고, 1917년 안창호 선생은 직접 멕시코를 찾아 이들을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신은미/관장/한국이민사박물관 : "고국의 독립을 염원하면서 `에네켄농장`에서 번 돈을 한 푼 두 푼 모았던 그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자."]
현재 멕시코에 있는 한인 3세.4세 등 후손들은 약 3만 여 명, 110년 넘게 한국을 바라보며 살아온 이들에 대한 관심과 교류 확대가 필요한 때입니다.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 전화 : 02-781-123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뉴스홈페이지 : https://goo.gl/4bWbkG
- 기자 정보
-
-
박재우 기자 pjwoo@kbs.co.kr
박재우 기자의 기사 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