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또다시 크리스마스 테러?…獨, 연말 테러 공포 엄습

입력 2019.11.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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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일 베를린 시민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 뉴스가 있었다. 폭탄 테러를 모의하고 준비해 온 남성이 경찰에 검거됐기 때문이다. 시리아 출신의 이 남성은 폭탄 제조에 필요한 화학약품을 구매하고, 온라인 그룹 채팅에서 폭발물 제조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베를린 시민들에게 3년 전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수십 명의 사상자가 생기게 한 트럭 테러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최근 한 수사관이 당시 정부가 테러범에 대한 감시를 차단해 사건을 막지 못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연말을 앞두고 독일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26세 시리아 출신 남성, 폭탄 테러 준비하다 체포

독일 연방경찰 특공대가 19일 베를린의 한 주택을 급습했다. 26살 시리아 남성이 체포됐다. 남성의 집에서는 폭발성이 매우 강한 과산화아세톤(TATP) 제조에 쓰이는 화학약품들이 발견됐다.

경찰은 이 남성이 올해 봄부터 테러단체 IS와 가까운 온라인 채팅 그룹에서 무기와 폭발물 제조에 대한 설명서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설명서의 주요 내용은 플라스틱 폭발물과 폭발물 소포, 자석 폭탄 제조 등이었다. 독일 내무부 당국자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채팅의 주제였다며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3년 전 트럭 테러 악몽 소환…단일 테러 최대 사상자

2016년 12월 19일 저녁 8시,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교회 옆 크리스마스 시장. 연말의 흥겨운 분위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대형 트럭 한 대가 사람들로 북적이던 시장 안으로 돌진해 시장 방문객 11명이 숨지고 55명이 다쳤다. 독일에서 일어난 테러 가운데 최대 사상자를 낸 사건으로 기록됐다.

테러범 암리에 대한 연방검찰의 현상수배 공고테러범 암리에 대한 연방검찰의 현상수배 공고

테러범은 아니스 암리라는 이름의 튀니지 출신 24살 청년이었다. 방화와 테러모의 등의 혐의로 난민 부적격자 판정을 받아 처음 입국했던 이탈리아에서 추방됐다. 이후 모국인 튀니지가 송환을 거부하자 독일로 잠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암리는 트럭을 탈취해 시장으로 돌진했고, 현장에서 달아났다가 나흘 뒤 이탈리아에서 경찰에 사살됐다.

"치안당국이 위험인물 감시 막아 테러 방치" 폭로

트럭 테러 당시, 독일의 크리스마스 시장을 노린 테러가 발생할 것이라고 미국 국무부에서 사전 경고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럼에도 대책을 세우지 못한 독일 경찰에 대해 비난 여론이 쏟아지기도 했다.

베를린 트럭테러사건 수사위원회(11.14, 독일 연방의회) 사진: ARD 화면 캡처베를린 트럭테러사건 수사위원회(11.14, 독일 연방의회) 사진: ARD 화면 캡처

그런데 이번엔 좀 더 구체적인 증언이 나왔다. 그것도 현직 경찰 간부의 폭로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범죄수사대의 형사과장 M 씨가 14일 저녁 독일 연방의회에서 열린 베를린 트럭테러사건 수사위원회에서 증언했다.

M 과장은 당시 암리를 담당하던 정보원이 암리의 테러 위험성에 대한 정보를 계속 보고했지만, 연방내무부와 치안청이 이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이 정보원의 정보활동을 차단했다고 폭로했다.

M 과장의 설명은 이렇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수사당국이 채용한 정보원 중에 터키 출신 독일인 40대 남성이 있었다. 관리 코드는 'VP-01', 가명은 '무라트'였다. 무라트가 암리를 처음 만난 건 2015년 말, 독일 뒤스부르크에서였다. 130명 이상이 숨진 파리 연쇄테러가 일어난 직후였다.

무라트는 암리가 파리 테러에 대해 열광했다고 보고했다. 암리가 총기를 구할 수 있고 직접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다고 수사당국에 알렸다. 무라트는 암리가 2016년 초 베를린으로 이주했다는 사실도 알렸다.

하지만 무라트의 정보 보고는 더는 진행되지 못했다. 연방 내무부와 치안청이 무라트를 암리에게서 떼어내기로 결정했다는 게 M 과장의 주장이다. M 과장은 2016년 2월 치안청 직원과 단둘이 있을 때 그 직원이 "무라트가 너무 많은 일거리를 만든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이 때문에 그를 더는 일할 수 없게 상층부에서 결정이 내려졌다고 주장했다. M 과장은 구체적으로 치안청 부장의 이름과 당시 내무장관 토마스 드메지에르를 지목했다.

연방 내무부는 해당 주장에 대해 확인된 바 없다며 부인했다. 지목된 내무부장관이나 치안청 고위 간부가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수사방해 여부 밝혀야"…계속되는 테러 위협

M 과장의 증언이 나오자 국회가 발칵 뒤집혔다. 야당 쪽의 문제 제기가 거셌다. 이레네 미할리치 녹색당 의원은 "당국이 테러 10개월 전 아니스 암리의 계획에 대한 경고를 고의로 무시하고, 수사를 방해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했다. 벤자민 슈트라서 자유민주당 의원은 "내무부와 치안당국의 간부가 신임을 받고 있던 정보원을 어떤 이유에서 파면시켰는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은 치안당국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흔들 수 있기 때문에, 토마스 드메지에르 전 내무장관을 포함해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타깝게도 독일 사회에서 테러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독일 연방경찰은 2016년 12월 트럭 테러 이후 테러 공격을 준비단계에서 적발한 게 7건이라고 밝혔다. 연방경찰 당국자는 이민법과 범죄자 감시, 형사처벌제도의 결함 문제 등이 개선됐지만, 이슬람 극단주의와 극우주의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어 적극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에서는 이번 주부터 크리스마스 시장이 들어선다. 많은 사람이 시장을 찾아 사람도 만나고 쇼핑도 한다. 2016년 트럭 테러 이후 독일의 많은 도시에는 광장 입구에 차량의 돌진을 막는 방어벽이나 시설물들이 설치됐다. 큰 행사 때는 경찰의 경비도 한층 강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말을 앞두고 또다시 테러 시도가 적발됐다는 소식은 불안감을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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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또다시 크리스마스 테러?…獨, 연말 테러 공포 엄습
    • 입력 2019-11-27 09:00:32
    특파원 리포트
최근 독일 베를린 시민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 뉴스가 있었다. 폭탄 테러를 모의하고 준비해 온 남성이 경찰에 검거됐기 때문이다. 시리아 출신의 이 남성은 폭탄 제조에 필요한 화학약품을 구매하고, 온라인 그룹 채팅에서 폭발물 제조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베를린 시민들에게 3년 전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수십 명의 사상자가 생기게 한 트럭 테러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최근 한 수사관이 당시 정부가 테러범에 대한 감시를 차단해 사건을 막지 못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연말을 앞두고 독일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26세 시리아 출신 남성, 폭탄 테러 준비하다 체포

독일 연방경찰 특공대가 19일 베를린의 한 주택을 급습했다. 26살 시리아 남성이 체포됐다. 남성의 집에서는 폭발성이 매우 강한 과산화아세톤(TATP) 제조에 쓰이는 화학약품들이 발견됐다.

경찰은 이 남성이 올해 봄부터 테러단체 IS와 가까운 온라인 채팅 그룹에서 무기와 폭발물 제조에 대한 설명서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설명서의 주요 내용은 플라스틱 폭발물과 폭발물 소포, 자석 폭탄 제조 등이었다. 독일 내무부 당국자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채팅의 주제였다며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3년 전 트럭 테러 악몽 소환…단일 테러 최대 사상자

2016년 12월 19일 저녁 8시,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교회 옆 크리스마스 시장. 연말의 흥겨운 분위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대형 트럭 한 대가 사람들로 북적이던 시장 안으로 돌진해 시장 방문객 11명이 숨지고 55명이 다쳤다. 독일에서 일어난 테러 가운데 최대 사상자를 낸 사건으로 기록됐다.

테러범 암리에 대한 연방검찰의 현상수배 공고
테러범은 아니스 암리라는 이름의 튀니지 출신 24살 청년이었다. 방화와 테러모의 등의 혐의로 난민 부적격자 판정을 받아 처음 입국했던 이탈리아에서 추방됐다. 이후 모국인 튀니지가 송환을 거부하자 독일로 잠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암리는 트럭을 탈취해 시장으로 돌진했고, 현장에서 달아났다가 나흘 뒤 이탈리아에서 경찰에 사살됐다.

"치안당국이 위험인물 감시 막아 테러 방치" 폭로

트럭 테러 당시, 독일의 크리스마스 시장을 노린 테러가 발생할 것이라고 미국 국무부에서 사전 경고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럼에도 대책을 세우지 못한 독일 경찰에 대해 비난 여론이 쏟아지기도 했다.

베를린 트럭테러사건 수사위원회(11.14, 독일 연방의회) 사진: ARD 화면 캡처
그런데 이번엔 좀 더 구체적인 증언이 나왔다. 그것도 현직 경찰 간부의 폭로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범죄수사대의 형사과장 M 씨가 14일 저녁 독일 연방의회에서 열린 베를린 트럭테러사건 수사위원회에서 증언했다.

M 과장은 당시 암리를 담당하던 정보원이 암리의 테러 위험성에 대한 정보를 계속 보고했지만, 연방내무부와 치안청이 이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이 정보원의 정보활동을 차단했다고 폭로했다.

M 과장의 설명은 이렇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수사당국이 채용한 정보원 중에 터키 출신 독일인 40대 남성이 있었다. 관리 코드는 'VP-01', 가명은 '무라트'였다. 무라트가 암리를 처음 만난 건 2015년 말, 독일 뒤스부르크에서였다. 130명 이상이 숨진 파리 연쇄테러가 일어난 직후였다.

무라트는 암리가 파리 테러에 대해 열광했다고 보고했다. 암리가 총기를 구할 수 있고 직접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다고 수사당국에 알렸다. 무라트는 암리가 2016년 초 베를린으로 이주했다는 사실도 알렸다.

하지만 무라트의 정보 보고는 더는 진행되지 못했다. 연방 내무부와 치안청이 무라트를 암리에게서 떼어내기로 결정했다는 게 M 과장의 주장이다. M 과장은 2016년 2월 치안청 직원과 단둘이 있을 때 그 직원이 "무라트가 너무 많은 일거리를 만든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이 때문에 그를 더는 일할 수 없게 상층부에서 결정이 내려졌다고 주장했다. M 과장은 구체적으로 치안청 부장의 이름과 당시 내무장관 토마스 드메지에르를 지목했다.

연방 내무부는 해당 주장에 대해 확인된 바 없다며 부인했다. 지목된 내무부장관이나 치안청 고위 간부가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수사방해 여부 밝혀야"…계속되는 테러 위협

M 과장의 증언이 나오자 국회가 발칵 뒤집혔다. 야당 쪽의 문제 제기가 거셌다. 이레네 미할리치 녹색당 의원은 "당국이 테러 10개월 전 아니스 암리의 계획에 대한 경고를 고의로 무시하고, 수사를 방해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했다. 벤자민 슈트라서 자유민주당 의원은 "내무부와 치안당국의 간부가 신임을 받고 있던 정보원을 어떤 이유에서 파면시켰는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은 치안당국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흔들 수 있기 때문에, 토마스 드메지에르 전 내무장관을 포함해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타깝게도 독일 사회에서 테러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독일 연방경찰은 2016년 12월 트럭 테러 이후 테러 공격을 준비단계에서 적발한 게 7건이라고 밝혔다. 연방경찰 당국자는 이민법과 범죄자 감시, 형사처벌제도의 결함 문제 등이 개선됐지만, 이슬람 극단주의와 극우주의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어 적극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에서는 이번 주부터 크리스마스 시장이 들어선다. 많은 사람이 시장을 찾아 사람도 만나고 쇼핑도 한다. 2016년 트럭 테러 이후 독일의 많은 도시에는 광장 입구에 차량의 돌진을 막는 방어벽이나 시설물들이 설치됐다. 큰 행사 때는 경찰의 경비도 한층 강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말을 앞두고 또다시 테러 시도가 적발됐다는 소식은 불안감을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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