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 간 당신의 개, 안녕하십니까?

입력 2019.11.2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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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다른 훈련소처럼 아이를 때리지 않아요"

34살 서 모 씨는 2년 전 더치를 만났습니다. 한 식용견 농장의 뜬장에 살던 더치는 그해 여름 '처리될' 예정이었습니다. 임시 보호 차원에서 데려온 더치는 서 씨네 가족이 됐습니다. 더치는 항상 서 씨를 지켜 주듯 그 옆에서 잠을 잤습니다.

생후 1년이 지나며 더치가 오토바이나 자동차 소리를 예민해 하자, 서 씨는 이런 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전문가에게 더치를 잠시 맡기기로 했습니다. 서 씨는 개인적으로도 반려견 교육을 공부했지만, 확실한 전문가의 관여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서 씨는 평소에 인스타그램을 통해 눈여겨보던 훈련사를 떠올렸습니다. '소수의 반려견을 밀착교육한다', '매일 보호자에게 아이의 상태를 업데이트해준다'라는 말에 믿음이 갔습니다.

무엇보다, '난 절대 다른 훈련소처럼 보호자를 속이거나 몰래 때리는 등 행동을 하지 않는다', '절대 아이가 다칠 일이 없고 관리를 잘한다'는 말에 정말 믿고 맡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훈련소에서 개가 죽으면 보통 500만 원에 합의해요"

그런데 더치는 지난달 26일 싸늘한 사체로 돌아왔습니다. 훈련소로 간 지 두 달이 지나, 귀가를 얼마 앞두지 않은 때였습니다.

전날 훈련사로부터 "오늘 교육 중 더치가 공격성을 보였고 이를 통제하기 위한 압박 훈련을 진행했다"는 말을 들었던 서 씨는 훈련사에게 CCTV를 보여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말을 돌리던 훈련사는, 서 씨가 경찰을 부른다고 하자 그제야 이런 취지의 말을 털어놓습니다.

"더치가 보호장 안에서 다른 개들에게 으르렁대는 모습을 보고 더치를 꺼내서 때렸다. 파이프 같은 둔기를 사용했으며, 패대기를 쳤다. (더치를 때리는 장면은) 어제 CCTV를 포맷해 지금 데이터가 없고, CCTV 암호도 모른다."

훈련사는 처음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2주가 지나서는 "타인에 대한 가해 충동과 자살 충동으로 우울증이 심해져 입원 진단을 받았고, 이로 인해 부모님이 이 사건의 수습을 대리하겠다"는 내용만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훈련소에서 개가 죽으면 보통 500만 원에 합의합니다."


동물학대 사건 이어지는데…멀고 먼 동물보호법 강화

그날 이후 서 씨는 지금도 충격으로 신경안정제와 우울증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훈련사가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기는 했지만, 여론에 의한 신상털기나 악플 등으로 상처를 받을까 업체명을 공개하지도 않았습니다.

서 씨는 대신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어제(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을 알렸습니다.

서 씨가 바라는 것은 동물보호법 강화입니다. 솜방망이 수준인 동물 학대에 대한 처벌 강화는 물론, 반려견 훈련소와 호텔 같은 동물위탁관리업에 대한 규제와 처벌을 강화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동물위탁관리업 종사자가 동물을 학대했을 때 가중처벌하고 자격을 박탈할 것, 동물위탁업자의 명확한 자격요건 규정 등을 요구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담아 먼저 24일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바로가기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3707)은 3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동의했습니다.

실제 현행 동물보호법에서 동물위탁관리업에 대한 기준은 부실합니다. 허가가 아닌 등록제라 개별 휴식실과 사료 설비, CCTV를 1개 이상 설치하는 등 간단한 요건만 충족하면 얼마든지 등록할 수 있습니다. 훈련사에 대한 자격 요건도 없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상돈 의원은 "지난해 우리 의원실에서 대표 발의한 축산법 개정안과 표창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동물보호법 모두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이라며, "관련 부처와 국회 농해수위가 움직이지를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현장을 방문한 동물단체들도 비슷한 내용을 호소했습니다. "동물보호 법제화에 관심이 있는 국회의원이 없다. 동물학대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인식은 높아져 가고 있는데 온도 차가 크다(김현지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팀장)", "동물위탁업에서 비슷한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데 법제화가 돼 있지 않아 대응할 방법이 없다(송지성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겁니다.

반려동물 훈련장과 위탁보호소에서 일어난 사건·사고 제보를 기다립니다

더치의 훈련사가 사건 전 "우리는 절대 다른 곳처럼 아이를 때리지 않는다", 사건 후 "보통 이런 경우 500만 원이면 합의한다"라고 말한 점에 비추어 보면, 훈련장에서 반려견이 죽거나 다치는 경우는 드문 경우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KBS는 반려동물 호텔이나 훈련장 등 동물위탁관리업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사고에 대해 제보를 받습니다. 동물보호법의 사각지대와 허점을 짚는 보도도 이어가겠습니다. 더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많은 제보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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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훈련소 간 당신의 개, 안녕하십니까?
    • 입력 2019-11-28 11:36:24
    취재K
"절대 다른 훈련소처럼 아이를 때리지 않아요"

34살 서 모 씨는 2년 전 더치를 만났습니다. 한 식용견 농장의 뜬장에 살던 더치는 그해 여름 '처리될' 예정이었습니다. 임시 보호 차원에서 데려온 더치는 서 씨네 가족이 됐습니다. 더치는 항상 서 씨를 지켜 주듯 그 옆에서 잠을 잤습니다.

생후 1년이 지나며 더치가 오토바이나 자동차 소리를 예민해 하자, 서 씨는 이런 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전문가에게 더치를 잠시 맡기기로 했습니다. 서 씨는 개인적으로도 반려견 교육을 공부했지만, 확실한 전문가의 관여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서 씨는 평소에 인스타그램을 통해 눈여겨보던 훈련사를 떠올렸습니다. '소수의 반려견을 밀착교육한다', '매일 보호자에게 아이의 상태를 업데이트해준다'라는 말에 믿음이 갔습니다.

무엇보다, '난 절대 다른 훈련소처럼 보호자를 속이거나 몰래 때리는 등 행동을 하지 않는다', '절대 아이가 다칠 일이 없고 관리를 잘한다'는 말에 정말 믿고 맡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훈련소에서 개가 죽으면 보통 500만 원에 합의해요"

그런데 더치는 지난달 26일 싸늘한 사체로 돌아왔습니다. 훈련소로 간 지 두 달이 지나, 귀가를 얼마 앞두지 않은 때였습니다.

전날 훈련사로부터 "오늘 교육 중 더치가 공격성을 보였고 이를 통제하기 위한 압박 훈련을 진행했다"는 말을 들었던 서 씨는 훈련사에게 CCTV를 보여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말을 돌리던 훈련사는, 서 씨가 경찰을 부른다고 하자 그제야 이런 취지의 말을 털어놓습니다.

"더치가 보호장 안에서 다른 개들에게 으르렁대는 모습을 보고 더치를 꺼내서 때렸다. 파이프 같은 둔기를 사용했으며, 패대기를 쳤다. (더치를 때리는 장면은) 어제 CCTV를 포맷해 지금 데이터가 없고, CCTV 암호도 모른다."

훈련사는 처음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2주가 지나서는 "타인에 대한 가해 충동과 자살 충동으로 우울증이 심해져 입원 진단을 받았고, 이로 인해 부모님이 이 사건의 수습을 대리하겠다"는 내용만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훈련소에서 개가 죽으면 보통 500만 원에 합의합니다."


동물학대 사건 이어지는데…멀고 먼 동물보호법 강화

그날 이후 서 씨는 지금도 충격으로 신경안정제와 우울증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훈련사가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기는 했지만, 여론에 의한 신상털기나 악플 등으로 상처를 받을까 업체명을 공개하지도 않았습니다.

서 씨는 대신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어제(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을 알렸습니다.

서 씨가 바라는 것은 동물보호법 강화입니다. 솜방망이 수준인 동물 학대에 대한 처벌 강화는 물론, 반려견 훈련소와 호텔 같은 동물위탁관리업에 대한 규제와 처벌을 강화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동물위탁관리업 종사자가 동물을 학대했을 때 가중처벌하고 자격을 박탈할 것, 동물위탁업자의 명확한 자격요건 규정 등을 요구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담아 먼저 24일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바로가기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3707)은 3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동의했습니다.

실제 현행 동물보호법에서 동물위탁관리업에 대한 기준은 부실합니다. 허가가 아닌 등록제라 개별 휴식실과 사료 설비, CCTV를 1개 이상 설치하는 등 간단한 요건만 충족하면 얼마든지 등록할 수 있습니다. 훈련사에 대한 자격 요건도 없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상돈 의원은 "지난해 우리 의원실에서 대표 발의한 축산법 개정안과 표창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동물보호법 모두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이라며, "관련 부처와 국회 농해수위가 움직이지를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현장을 방문한 동물단체들도 비슷한 내용을 호소했습니다. "동물보호 법제화에 관심이 있는 국회의원이 없다. 동물학대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인식은 높아져 가고 있는데 온도 차가 크다(김현지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팀장)", "동물위탁업에서 비슷한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데 법제화가 돼 있지 않아 대응할 방법이 없다(송지성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겁니다.

반려동물 훈련장과 위탁보호소에서 일어난 사건·사고 제보를 기다립니다

더치의 훈련사가 사건 전 "우리는 절대 다른 곳처럼 아이를 때리지 않는다", 사건 후 "보통 이런 경우 500만 원이면 합의한다"라고 말한 점에 비추어 보면, 훈련장에서 반려견이 죽거나 다치는 경우는 드문 경우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KBS는 반려동물 호텔이나 훈련장 등 동물위탁관리업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사고에 대해 제보를 받습니다. 동물보호법의 사각지대와 허점을 짚는 보도도 이어가겠습니다. 더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많은 제보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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